Beach Boys -Kokomo *칵테일 삽입곡*
Kokomo
Aruba, Jamaica ooo I wanna take you
Bermuda, Bahama come on pretty mama
Key Largo, Montego baby why don't we go
Jamaica
Off the Florida Keys
There's a place called Kokomo
That's where you wanna go to get away from it all
Bodies in the sand
Tropical drink melting in your hand
We will be falling in love
To the rhythm of a steel drum band
Down in Kokomo
Aruba, Jamaica ooo I wanna take you
To Bermuda, Bahama come on pretty mama
Key Largo, Montego baby why don't we go
Ooo I wanna take you down to Kokomo
We will get there fast
And then we will take it slow
That's where we wanna go
Way down to Kokomo
To Martinique, that Monserrat mystique
We will put out to sea
And we will perfect our chemistry
By and by we will defy a little bit of gravity
Afternoon delight
Cocktails and moonlit nights
That dreamy look in your eye
Give me a tropical contact high
Way down in Kokomo
Aruba, Jamaica ooo I wanna take you
To Bermuda, Bahama come on pretty mama
Key Largo, Montego baby why don't we go
Ooo I wanna take you down to Kokomo
We will get there fast
And then we will take it slow
That's where we wanna go
Way down to Kokomo
Port Au Prince I wanna catch a glimpse
Everybody knows
A little place like Kokomo
Now if you wanna go
And get away from it all
Go down to Kokomo
Aruba, Jamaica ooo I wanna take you
To Bermuda, Bahama come on pretty mama
Key Largo, Montego baby why don't we go
Ooo I wanna take you down to Kokomo
We will get there fast
And then we will take it slow
That's where we wanna go
Way down to Kokomo
자마이카의 아루바 섬.
당신을 바하마에 있는
버뮤다로 데려가고 싶어요.
이리와요, 내 사랑.
몬테고의 라고섬로 가지 않을래요?
플로리다 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코코모라고 불리는 곳이 있어요
그곳은 바로 당신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가고 싶어하는 곳이에요
모래사장에 누운 채
손에는 열대 음료를 들고,
우리는 밴드의 드럼 연주에 맞추어
사랑에 빠질 거에요
저 아래 코코모에서...
자마이카의 아루바 섬.
당신을 바하마에 있는
버뮤다로 데려가고 싶어요.
이리와요, 내 사랑.
몬테고의 라고섬로 가지 않을래요?
당신을 저 아래
코코모로 데려가고 싶어요.
우리 어서 거기 가서
느긋하게 지내요.
저 아래 코코모는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죠.
마티니크 섬, 신비로운 몬세라트에 가요.
우린 바다로 가서
우리의 사랑을 이룰 거에요.
그러면 서서히
중력의 힘도 물리칠테죠.
기분 좋은 오후에
마시는 칵테일과 달빛 비치는 밤.
당신 눈에 어린 꿈결같은 표정.
저 아래 코코모에서
정열적인 사랑을 해주세요.
자마이카의 아루바 섬.
당신을 바하마에 있는
버뮤다로 데려가고 싶어.
이리와요, 내 사랑.
몬테고의 라고섬로 가지 않을래요?
당신을 저 아래
코코모로 데려가고 싶어요.
우리 어서 거기 가서
느긋하게 지내요.
저 아래 코코모는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죠.
프린스 항구
그곳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요.
코코모와 같은 곳을
누구나 한가지는 알고 있죠.
당신도 원한다면
모두 훌훌 털어 버리고
코코모로 내려가요.
자마이카의 아루바 섬.
당신을 바하마에 있는
버뮤다로 데려가고 싶어.
이리와요, 내 사랑.
몬테고의 라고섬로 가지 않을래요?
당신을 저 아래
코코모로 데려가고 싶어요.
우리 어서 거기 가서
느긋하게 지내요.
저 아래 코코모는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죠.
Surfin' USA-The Beach Boys live 2016 Visalia CA 공연모습
Surfin USA
If everybody had an ocean across the U.S.A
만약 모두들이 미국 전체에 걸쳐 넒은 바다를 가질수 있다면
Then everybodyd be surfin's like California
모두들 파도타기를 할텐데 캘리포니아에서 처럼
You'd see'em wearing their baggies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는 그들을 볼 거에요
Huarachi sandals too
후라아치 샌들을 신고
A bushy bushy blonde hairdo surfin' U.S.A
헝클어진 금발머리를 하고 미국 전체를 파도타러
You'll catch'em surfin' at Del Mar
델마에서 파도타는 그들을 볼 수 있을 거에요
Ventura county line Santa Cruz and Tressels
벤츄라 군 경계선을 따라 산타 크루즈와 트레슬스에서도
Australia's Narabine all over Manhattan
호주의 나라빈에서도 맨하탄 전역에서도
And down Doheny way
도히니 해변을 따라
Everybody's gone surfin' surfin' U.S.A
모두가 파도를 타러 갔어요 미국 전체를 파도타러
We'll all be planning that route
우리 모두 여행을 떠날 계획이에요
We're gonna take real soon
우리는 곧 떠날 거에요
We're waxing down our surfboards
우린 써핑 보드에 광을 내고 있어요
We can't wait for June
6월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We'll all be gone for the summer
여름 내내 가 있을 거에요
We're on safari to stay
파도 타기 여행을 다닐 거에요
Tell the teacher we're surfin' surfin' U.S.A
선생님께 우린 파도타러 갔다고 말해줘요 미국 전체를 파도타러
Haggarty's and Swamies, Pacific palisades
해거티스와 스와미스, 퍼시픽 팰리세이즈
San O'nofre and sunset Redondo beach L.A
샌 오노프리와 선셋 로스 앤젤레스의 리단도 비치
All over La Jolla at Waimia Bay
라 호야 전역에서 그리고 와이메아 만에서
Everybody's gone surfin' surfin' U.S.A
모두가 파도를 타러 갔어요 미국 전체를 파도타러
60년대를 풍미했던 비치 보이스(Beach Boys)는 파도타기(surfing)를 좋아하는 10대들의 무대였던 캘리포니아 호손(Hawthorne)에서 결성된 전형적인 섬머타임 밴드로서 미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하나의 이디엄(idiom)으로
남아있는 그룹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장수 그룹 비치 보이스는 60년대 미국 음악계에서 모타운 사운드와 함께 양대산맥을 형성했던 서프
(Surf) 뮤직을 대중화시켰다.
다분히 척 베리로부터 영향받은 그룹은 열정적인 하와이언 기타 선율을 앞세운 신명나는 로큰롤을 주조해냈다.
이들이 주로 노래했던 대상은 캘리포니아 해변에서의 서핑과 달콤한 사랑 이야기였다.
산뜻하고 유쾌한 이들의 음악은기성세대의 귀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했던 젊은 세대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획득했다.
비치 보이스는 1961년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키보드·베이스), 칼 윌슨(Carl Wilson, 기타), 데니스 윌슨
(Dennis Wilson, 드럼), 마이크 러브(Mike Love, 보컬·색소폰), 알 자딘(Al Jardine, 기타), 이렇게 세 명의 형제,
한 명의 사촌, 학교 친구로 구성되었다.
윌슨 삼형제는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는 부모님이 음식을 사먹으라고 주 250달러를 즉시 악기를 비는데 사용하였고
이러한 이들의 음악적 관심과 열의는 이들의 음악적 소양을 길러 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비치 보이스의 다섯 명은 모두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보컬 실력 또한 뛰어나 이들의 보컬 하모니는 보컬 하모니를
강점으로 활동하는 여타의 흑인 그룹들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악기를 연주하고 곡을 쓰며 흑인들 빰치는 완벽한 보컬 하모니까지 갖춘 그룹은 당시로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특히 그룹의 리더로서 작곡, 프로듀스, 편곡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히트곡 제조기 브라이언에 의해 하모니와
음악성이 다듬어지고 빛을 발하게 된다.
이들은 1962년 "Surfin'"을 발표하였다.
파도타기 광이었던 데니스 윌슨(Dennis Wilson)의 제안으로 브라이언과 마이크에 의해 만들어진 초기 히트곡
'Surfin'은 척 베리 스타일의 밀어붙이는 로큰롤 리듬과 복잡하고 정교한 보컬 하모니, 재미있는 백 코러스의 조화로
새로운 미국의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서프 사운드는 남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Surfin'"이 L.A.지역에서 차트 2위까지 오르면서 이들은 메이저 레이블인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된다.
캐피톨은 이들에게 "Surfin'"과 똑같은 스타일의 곡들을 만들어 내기를 원했다.
비치 보이즈는 그들의 첫 번째 앨범 SURFIN' SAFARI를 시작으로 이 후 2년동안 무려 7장의 서프 앨범을 발표한다.
[Surfin' U.S.A.], [Surfer Girl], [Little Deuce Coupe], [Shut Down], [The Beach Boys Concert],
[All Summer Long] 등이 당시에 그들이 발표한 앨범들이다.
1963년 3월에 발표된 앨범 [Surfin' U.S.A.]에 실린 동명의 타이틀곡 "Surfin' U.S.A."는 그들의 첫 번째 톱 텐
히트곡이 되었고 앨범 역시 골드를 기록하게 된다.
전작을 내놓은지 4개월 만에 발표한 [Surfer Girl] 역시 톱 텐 히트와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다. 이 당시 브라이언 윌슨은 비치 보이즈의 거의 대부분의 곡들을 작사,작곡하였고 이들은 이 와중에도 공연을 계속해서 하는 등 거의 초인적인
음악 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Surfer Girl]이 발표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들의 네 번째 앨범인 [Little Deuce Coupe]를 발표하였고
이 앨범 역시 밀리언 셀링을 기록하며 이들의 지칠줄 모르는 창작열과 인기에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어 주었고,
명실공히 비치 보이스의 황금시대를 영위하게 된다.
사실 당시에 음반을 만드는 일이 아무리 지금보다 간단하다고 해도 이 정도로 앨범을 제작하고 발표하는 것은
그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싶다.
물론 앨범을 한 달 걸러서 혹은 몇 개월 단위로 낸다는 것이 꼭 바람직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노래를
부르기만 하는 그룹이 아닌, 곡을 만들고 악기 연주까지 하는 그룹이 계속해서 공연을 하면서도 이렇게 단기간 내에
많은 앨범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1964년초 이들은 소위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 불리는 영국음악의 침공을 보게 된다.
그 선봉에 선 그룹이 바로 비틀즈(Beatles)였다. 비틀즈의 미국 침공은 미국의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큰자극을 주었다. 비치 보이즈 역시 이러한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이들은 차츰 비틀즈에게 커다란 경쟁심을 갖기 시작한다.
비틀즈의 미국 침공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인기를 주춤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이들은 비틀즈의 침공이
있었던 1964년에도 "Fun, Fun, Fun", "When I Grow Up(To Be A Man)", "Dance, Dance, Dance" 등을 톱
10에 랭크시켰고, "I Get Around"로 차트에서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세 장의 앨범 [Shut Down],
[The Beach Boys Concert], [All Summer Long]가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전적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런 강행군은 브라이언 윌슨을 결국 지치게 만들었고 1964년 말에 브라이언은 비치 보이즈를 일시적으로 탈퇴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후임으로 브루스 존스톤이 가입했고 이들은 1965년에 넘버 원 싱글 "Help Me Rhonda"가
포함되어 있는 앨범 [The Beach Boys Today!]를 발표한다. 그리고 넉달 후 그들의 여덟 번째 골드 앨범이자
너무나도 유명한 톱 10 히트곡 "California Girl"이 들어 있는 앨범 [Summer Days]를 발표하게 된다.
이로서 비치 보이스는 초창기에 그들이 들려주었던 단순한 10대 찬가의 음악에서 훨씬 성숙한 음악으로의 진보를
이루어 냈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비틀즈의 영향이 가장 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장기(서프 뮤직)를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바로 비틀즈가 1965년 공개한 걸작 중의 걸작
[Rubber Soul] 때문이었다.
이 앨범은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10대 밴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그들을 '아티스트'로 만들어 주었던 앨범으로
그동안 사랑 타령 일색이던 그들의 가사는 추상적이고 은유적으로 인생과 자기성찰을 꾀하고 있었고 사운드 면에서도
필 스펙터의 사운드를 흡수하여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던 앨범이었다.
특히 리더 브라이언 윌슨은 서프 뮤직은 물론 모든 록 장르를 시범한 비틀즈의 음악에 전율을 느꼈다.
브라이언 윌슨이 신경쇠약 증세로 그룹을 잠시 떠났을 때 그는 서프 음악과의 결별을 다짐하였고 그는 새로운 변신을
위해 작곡과 편곡 그리고 사운드 녹음에 집착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집착의 결과는 1966년 4개월 동안의 실험 끝에 오케스트라 세션이 동원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대작 [Pet Sounds]에서 고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뛰어난 악기편성과 음향효과 등으로 비틀즈의 제작자 조지 마틴과 필 스펙터에 버금 가는 실력을 인정 받았던 브라이언 윌슨은 앨범 [Pet Sound]로 1인 오케스트라 체제의 제작 기법을 구현해내기도 했다.
이들이 '록 역사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Pet Sounds]가 있기 때문이다. 폴 매카트니가 1967년, 팝 사상 최고의 명반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만든 후 "만약 [Pet Sounds]가 없었더라면 이 앨범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실토했을 정도다.
사실 비치 보이스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해 브라이언 윌슨의 솔로 앨범이라고 할만큼 그의 개인적인 색깔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 있던 작품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더빙을 반복하여 사운드를 보다 두껍게 만들었고 종소리,
경적 소리 등 여러 가지 효과음을 사용하는 등 사운드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여 스튜디오가 하나의 음악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이 앨범은 "Sloop John B", "Wouldn't It Be Nice" 등의 톱 텐 히트곡을 만들었으나 이 전에 발표된 비치 보이즈의
음반 만큼의 대중적인 반응을 보이지 못했고 판매고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 앨범으로 비치 보이즈는 서프 음악으로 반짝 인기를 얻었던 그룹이 아닌 록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그룹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 앨범 이후 비치 보이즈는 "Good Vibrations"(1966)라는 넘버 원 히트곡을 발표하였다. 브라이언은 다시 경쟁상대인 비틀즈에 대응할 만한 대작으로 [Smile]이라는 타이틀의 앨범 작업에 들어갔지만, 심각한 신경쇠약과 약물과용에
따른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Smiley Smile](1967)이라는 이름의 다른 앨범이 제작되는 불운을
맞이한다.
그러던 중 순수한 팝 음악을 지향하는 비치 보이스의 다른 멤버들과 대작만을 고집하는 브라이언 사이에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은 더 이상 결속력과 중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윌슨가의 막내인 데니스 윌슨 역시 결혼의 실패 등으로 고통을 받았고 마이크 러브는 명상 철학에 입문하는 등 그룹은
갈팡질팡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기는 했으나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까지 그들이
발표했던 음반들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1969년 4월 1일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는 그들의 레코드사인 캐피톨 레코드사에 소송을 걸었다.
밴드의 주작곡자인 브라이언 윌슨에게 로열티와 프로듀스에 대한 지불을 포함, 200여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편 독자적인 레이블 브라더스 레코드(Brothers Records)의 출발을 선언했다. 이것은 아티스트가 음반사를 소유한 최초의 선례였다.
그러나 이들은 멤버들의 개인사 및 종교 문제 그리고 건강 무제가 겹쳐 60년대 후반 이후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데니스의 활약으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앨범 [Sun Flower](1970) 이후에는 멤버 각자 저마다의 역량을
최대한도로 발전시켜 나갔다.
1973년 이후에는 별다른 신곡 작업 없이 빡빡한 투어 일정 속에 스스로를 던져넣었다.
초기 히트곡들을 편집한 [Endless Summer](1974), [Spirit of America](1975)로 한때나마 재기의 길을 걷는듯
했다.
또한 1970년에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꾸준하지만 의욕적이지는 못한 활동을 벌이며 전성기가 지났음을 증명하는 70년대를 보낸다.
1976년에 3년만에 발표한 스튜디오 앨범 [15 Big ones]는 브라이언 윌슨이 10년만에 프로듀서로 제작한 앨범으로
척 베리의 고전을 리메이크 한 "Rock And Roll Music"이 톱 텐에 랭크되면서 그들의 부활이 실현되는 듯 했으나
브라이언 윌슨의 갑작스런 탈퇴로 인한 그룹 내부의 충돌과 여러 가지 잡다한 외부사업의 문제로 인해 혼란이 계속되어 이 후에 발표한 앨범들은 다시금 실패의 연속이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멤버들의 솔로 활동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브라이언의 부재와 1983년 막내 데니스의 갑작스런 익사사고 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밴드는 핵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비치 보이스의 부활은 완전히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였다.
1985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노장의 건재함을 알렸지만, 역시 신세대 팝 팬들에 그들의 존재감을 재인식시킨
것은 영화 <칵테일> 주제가로 차트 정상에 오른 "Kokomo"였다.
"Kokomo"가 빌보드 차트 넘버원이 되면서 다시 적극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듬해에는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 주연의 영화 <리셀 웨폰 2>의 주제곡 "Still cruisin'"과 삽입곡 "Somewhere near Japan" 등이 포함된
앨범 [Still Cruisin']을 발표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백전노장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들은 90년대에 들어서 브라이언 윌슨의 두 딸인 카니와 웬디 윌슨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존 필립스의 딸인 차이나
필립스와 함께 윌슨 필립스(Wilson Phillips)를 결성하여 차트에서 맹위를 떨칠 때에도 베스트 앨범으로 동시에 차트에 랭크되어 있을 만큼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30년이 넘도록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팝 사랑을 꾸준히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멤버 칼이 1998년에 암으로 사망하고 브라이언이 다시 솔로행을 선언하는가 하면, 비치 보이스 자체도 이제는
마이크 러브가 영도하는 오리지널 팀과 알 자딘이 이끄는 비치 보이스 패밀리 체제로 양분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비록 현재까지도 크리스마스 앨범, 히트곡 편집앨범, 박스 세트 등을 발매하며 꾸준히 순회공연을 하고는 있지만,
비치 보이스는 거의 이름뿐인 그룹이 되어버렸다.
아직까지 팝계에 흔적을 남기고 있긴 하지만 새로운 앨범 활동은 하지 않는 소위 한물간 그룹이라 할지라도, 밝고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로 60년대 로큰롤 그룹 중 유일하게 비틀즈와 경쟁하며 음악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던
비치 보이스는 미국 팝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그룹이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1966년까지 승승장구하던 비틀스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난 1번도 2번도 후보가 될 수 있다. 1번은 영국 내 록 그룹의 형태로 라이벌일 수 있다.
비틀스와는 다르게 반항적인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한 그룹이다. 더 몽키스는 미국 그룹이다. 말로는 비틀스 라이벌이라고 떠들어댄다(내가 보기엔 완벽한 매체 플레이). 하지만 그들은 비틀스의 모조품, 서민적으로 말해 비틀스의 짝퉁이다.
'YMCA'를 부른 빌리지 피플처럼 구수하다. '해변으로 가요' 를 부른 키보이스의 미국 판인가 싶기도 하다.
비치 보이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프 뮤직의 전설'이다. 솔의 전설이라고 하면 마빈 게이, 펑크(Punk)의 전설이라고 하면 섹스 피스톨즈, 펑크(Funk)의 전설이라고 하면 제임스 브라운, 얼터너티브의 전설이라고 하면 너바나... 영화 '나는 전설이다.'처럼 '비치보이스는 서프뮤직의 전설이다.'
비틀스와 비치 보이스는 대대적인 격돌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인기 면에서는 각자의 나라(비틀스는 영국, 비치보이스는 미국)에서 우선적으로 그랬고, 전 세계적으로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극단의 위치에 섰던 그들이었지만 그 동안의 앨범의 진보성만을 놓고 보면 급진적인 변화는 한참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비틀스는 그저 흥겨운 리듬 속에서 발랄하게 노래를 했다. 진정한 아이돌의 모습을 지닌 채... 비치 보이스는 당장에라도 파도에 뛰어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서프보드도 없는 상태로...
물론 '이렇게 비슷하게 앨범과 곡들이 진행되는 것은 안 좋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싫다. 그 이유는 마이클 잭슨 때문이다. 잭슨 파이브 시절만 제외하고 옛날 음악이나 지금 음악이나 거의 유사하다. 뭔가 쫓기는 듯 긴박한 보컬과 매끄럽지만 구분이 명확한 비트, 그리고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멜로디 라인까지 그러하다. 마이클 잭슨의 어떤 앨범을 꺼내놔도 그 느낌은 비슷하다. 난 그저 이처럼 완벽 서러운 마이클 잭슨이 좋을 뿐이다.
그리고 1966년 브라이언 윌슨은 문제작을 내놓는다. 앨범명은 바로, 펫 사운즈... 서핀유에스에이를 필두로 서핀, 서핀 사파리에 이르기까지 서핀으로 디자인된 주크박스를 쉼 없이 돌려대던 비치보이스...
그렇게 시원하고 쿨한 그들이 따스한 음악으로 돌아왔다. 너무나도 가슴 뭉클한 오르간 음악과 신디 사이저 음악으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이전의 음반들과 비교해 보면 펫 사운즈 앨범은 굉장히 달랐다. 트랙의 느낌은 너무나 평화롭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얼마나 고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실제적인 변화를 시행한 앨범이니까...
Pet Sounds.동물 소리들이라고? 굉장히 환경친화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이 앨범은 대체 어떤 앨범일까? 앨범을 살짝 들여다보자. 노루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해변 소년들이 보인다. 가운데 세 분은 무표정하고 외곽에 있는 두 분은 즐거워한다. 멤버 이름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다. 그건 지난 몇 십 년간 한국인들이 너무 고루하게 진행해온 사각형식 방법론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참 재미없는 접근법이라는 것도 잘 알기에 |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곡들이 어떤지 살펴볼까?' 라고 하고 곡들을 설명하고 “이러한 곡이 타이틀곡이고 이러한 곡들이 명(名)트랙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것도 역시나 진부하다.
굳이 한 곡을 듣고 싶다면, 2분 50초를 'God only knows' 를 듣는데 활용해라. 무슨 곡인지 모르겠다면,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보면 된다.
< 비치보이스의 God only Knows를 국내에 널리 알린, 러브 액츄얼리 OST >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비틀스에게 제대로 먹이기 위해, 귀에 좋은 악기 소리들과 참기름을 목에 듬뿍 바르고 평화로운 보컬을 뽐내는 그들의 모습을 잘 담아낸 비치 보이스의 펫 사운즈 앨범을 기억했으면 고맙겠다. 그리고 이것까지 기억하면 좋다. 인도음악과 블루스음악을 시도한 비틀스의 1965년산 앨범 Rubber Soul이 펫 사운즈 앨범에 영향을 줬다는 것을...
사실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대부분의 비틀 매니아와 평단에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인식하고 있다. 나중에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 우리 앞에 등장하여, “난 절대 비틀스의 러버 소울 앨범에 영향을 받지 않았어!”라고 말을 한다면, 일부는 그의 말을 신뢰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매체에 두들겨 맞는 존재이기 때문에...
비틀스의 러버소울, 비스티 보이스의 펫 사운즈, 이 두 앨범을 비교해 들었는데 두 앨범이 각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없다고 느끼면 그대로 인식하면 된다.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신세대들의 에티튜트(Attitude) 아닌가? 요즘 신세대들은 매체도 발아래 놓던데... 참 멋진 친구들이다.
비틀스의 그 수많은 명반들 중에 '초명반'이라고 하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핫 클럽 밴드 앨범을 살펴볼 시간이다.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인터넷상에 무수히 존재한다. 이처럼 자료가 풍부할 때는 이렇게 외쳐라! “검색만이 살 길이다.”
듣는 것보단 보는 것에 익숙한 우리이니 역시 앨범부터 살펴보자. 이 재킷에는 56명의 사람들이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틀즈 4명과 그 외의 52명의 사람들이다. 물론 52명도 유명한 분들이다.
작가에서부터 예술가 그리고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책에서 그렇게 유능하다고 떠들어대던 학자에 이르기까지...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굿 바이브레이션(Good Vibration). 1966년 10월 10일에 싱글판으로 발매되어 그해 12월 10일자 빌보드 핫100차트 1위에 올랐다.
I get Around(1964. 7. 4 ~ 7. 11),
Help Me Rhonda(1965. 5. 29 ~ 6. 5)에 이은 비치보이스의 세번째 1위곡이다.
60년대 당시는 비틀즈와 영국 밴드들의 미국 공세가 맹렬하던 때, 미국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비치보이스와 비틀즈의경쟁은
치열했고 이 같은 서로간의 신경전과 각축전이 전세계 팝음악 수준을 한단계 올려 놓았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치 보이스의 맏형이자 리더였던 브라이언 윌슨은 비틀즈의 폴 맥카트니와 존 레넌에 필적할 만한 천재적인 작곡가. 브라이언은 1965년 12월에 나온 비틀즈의 6번째 앨범 러버 소울(Rubber Soul)을 듣고 큰 충격을 받고 비치 보이스하면 떠 오르는 서핑과 자동차 그리고 젊은이들의 로맨스를 주제로 한 캘리포니아 사운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우리가 잘 아는 Sloop John B.(앞마을 냇터에 빨래하는 순이...)는 이 앨범에 있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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