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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Jose Feliciano -Que Sera , Once There Was a Love

 
 

 

 

 

 

 

 
Jose Feliciano -Que Sera

 

 

Que Sera

 

 


Pueblo mio, que estas en la colina
tendido como un viejo que se muere
la pena, el abandono, son tu triste compañia
pueblo mio te dejo sin alegria.
Que sera, que sera, que sera

que sera de mi vida, que sera
si se mucho o no se nada
ya mañana se vera, y sera
sera, sera lo que sera.

Ya mis amigos, se fueron casi todos
y los otros partiran despues que yo.
Lo siento porque amaba su agradable compañia
mas es mi vida tengo que marchar.

Que sera, que sera, que sera
que sera, de mi vida que sera
en las noches mi guitarra dulcemente sonara
y una niña de mi pueblo llorara.


Amor mio me llevo tu sonrisa
que fue la fuente de mi amor primero
amor te lo prometo, como y cuando no lo se
mas se tan solo que regresare.


언덕 위에 서 있는 나의 고향 아
난 이젠 너를 떠나서 멀리 가련다
날마다 지루해져만 가는 병든 나의 고향 아


난 이제 너를 떠나가련다
무엇이 올까나 무엇이
무엇이 길 떠나는 내게로 올까나

기타만은 가지고 가야지 외로운 밤이 오면
내 고향 하늘 보면서 노래 부르리
먼저 떠나갔던 고향 친구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

내 마음 이제 부쳐서 편지를 전해야지
내 뒤에 떠나올 고향친구를 위해
무엇이 올까나 무엇이
무엇이 길 떠나는 내게로 올까나

나의 사랑하는 여인아 나를 기다리고 있어라
정녕코 고향으로 돌아오리라.

 

 

 

 

 

 

 

 

 

Once There Was a Love

 

 

 

Once there was a love deeper than any ocean

Once there was a love filled with such devotion

it was yours and mine

 

한 때 어느 바다보다도 깊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깊은 애정으로 가득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건 당신과 나의 사랑이었습니다

 

To hold and cherish and to keep for a life time

Then you went away on the lonely day

once there was a love

 

평생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그러나 쓸쓸한 어느 날 당신을 떠나버렸습니다

한 때 그러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Now I don't know how I can go on

Somehow I feel so all alone

wondering where I've gone wrong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외로운 마음, 혼자라는 느낌이랍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Once there was a love that will never come again

so let's not pretend once there was a love

but that was long ago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사랑이 한 때 내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없었던 일로 여기려 합니다.

한 때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1945년에 미국 영토인 서인도제도의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섬의 힐타운에서 태어난 호세 펠리치아노

(Jose Feliciano)는,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선천적인 맹인이었다.

 9살 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18살 때 뉴욕으로 진출하여,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을 극복하면서 스페니쉬

할렘에 있는 푸에르트 리코 극장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1963년에 뉴욕의 포크 클럽인 포크 시티에 출연하던 중에 RCA 레코드사에 발탁되어 계약을맺었으며, 1964년에는

 뉴포트 포크 훼스티벌에 출연하는 등, 제법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후 호세 펠리치아노는 1965년 여름에 자신의 데뷰 앨범 「The Voice And Guitar of Jose 
Feliciano」를 발표했다.

 

그리고 1966년 1월에는 두번째 앨범 「A Bag Full of Soul」을 발표하면서 탁월한 자신의어쿠스틱 기타 솜씨를 펼쳐

 보았다.

 과거에 도어스(Doors)가 발표하여 히트시켰던 <Light My Fire>를, 1968년에 발표한 앨범「Feliciano!」에

 삽입하여 발표해 편곡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 곡은 그 해 8월 23일자 캐쉬 박스에 3위에 랭크되는 호조를 보이기도 했으며, 1968년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남성 가수상과 최우수 신인 남성 가수상을 받는 영광을 차지하기도했다.

소울 풍의 휠링이 섞인 그의 목소리는 동양적인 애수에 차 있기도 하며, 호세 펠리치아노가 발표해 국내에서 지금까지

애청되고 있는 <Once There Was A Love>는 포근함까지 곁들이고 있다.

 

32개의 골드앨범과 2회에 걸쳐 그래미 상을 수상한 바 있는 호세 펠리치아노는 RCA 레코드사에서 모타운 레코드사로

 이적해 「Jose Feliciano」를 내놓고, 그 중에서 싱글<Everybody Loves Me>를 히트시켜 자신이 수퍼스타임을

입증하였다.

 

 

 

 

 

 

 

 

 

 

 

 

 

 

Jose Feliciano

 



선천성 녹내장으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보는 호세 펠리치아노는 다섯살 때 뉴욕으로 이주한 후 아코디온과 기타를

독학, 아홉살에 공연무대에 설 정도로 음악성이 뛰어났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으며. 9세땐 기타를 배우게 된다.

17세에 가정 형편상 학교를 그만둔 그는, Greenwich Village에 있는 커피숍에서 일을 하면서 음악의 열정을 갖구

 노력을 하였다.

'60년대 초반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및 클럽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해 포크 음악계에서 명성을 펼치기 시작한 호세

펠리치아노는 한 시대 를 풍미한 음유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력을 상실 한 탓에 시각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그는 1945년 9월 8일 남 미 푸에르토

리코 힐타운에서 스페인계 미국인으로 태어났다


1965년 라틴 시장을 겨냥한 앨범 [The Voice And Guitar Of Jose Feliciano] 으로 대중 음악계에 데뷔했다.

앨범 [Feliciano]에 이르러 비로소 미국 팝 시장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고 히트 싱글 'Light My Fire'를 낳기도 했다.

그 후로 도 'California Dreamin', 'Sunny', 'Let It Be', 'Susie-Q', 'Rain', 'once There Was A Love',

'Gypsy' 등의 다양한 오리지널 넘 버들과 리메이크 트랙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각색해 노래하므로써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라틴 계 팝 싱어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1971년에는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해 이탈리아 그룹 리키포베리와 함께 'Che Sara'를 불러 2위를 차지했고.

 1971년 San Remo 페스티벌에서 노래한 2위 입상곡 '케사라'는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하였으며 가수 이용복이 번안곡을 불렀다


'무엇이 될까' 또는 '될대로 되라'는 뜻의 이태리어 제목 'Que Sara' (스페인은 'Que Sera')는 사랑하는 여인을 고향에 둔 채 먼 길을 떠나는 기대와 불안을 애절하게 노래한 라틴 팝이다.


Jose Feliciano 는 사운드 트랙 트랙 앨범 [Mackenna's Gold]를 비롯해 10장 이상의 베스트 세링 앨범들을 양산했으며 1980년 10월에는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기타 협주 곡 'Concerto De Paulhino'를

발표하여 포크나 팝 팬들로 뿐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들에게까지 어필하며 호응을 얻었다.

그후로도 니나 사이먼(Nina Simone), 레이 찰스(Ray Charles) 등과 공연을 가지며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1982년에 [Escenas De Amor]를 내 놓았고 같은 해 수잔 오밀리안과 캘리포니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90년 까지 6개의 그래미상을 탔고 16번이나 노미네이트 되었을 만큼 실력이 인정된 가수로 1968년에 낸 앨범

 'Feliciano'로 미국 팝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후 32개의 골드 앨범 을 기록하며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남미의 라틴 팝은 1950년대에 국내에도 번안되어 애청된 곡 "Besame Mucho", "Que Sera"가 말해주듯 특유의

낭만적인 리듬과 애조 띤 멜로디를 생명으로 구미사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인기를 누려왔다.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는 팝과 록음악을 플라밍고 스타일로 소화해내며 라틴 팝 음악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함으로써 스페인 언어권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60년대 초반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및 클럽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해 포크 음악계에서 명성을 펼치기 시작한

 호세 펠리치아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음유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마다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길거리 스피커와 라디오 전파를 뒤덮는 곡 "Feliz Navidad"를 부른 주인공이 바로

 호세 펠리치아노다.

이 곡 말고도 그는 국내에서 once there was a love"와 "The gypsy", "Rain", "Nature boy"와 같은 골든

 팝송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이 노래 대부분은 국내에서는 라디오 전파를 잠식하며 절대적인 호응을 누렸지만 본고장 팝 팬들이 기억하는 곡들은

 아니다. "Rain"의 경우도 빌보드 차트에서 76위에 그쳤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전혀 싱글로 발표되지 않은 앨범의 수록곡 가운데 우리 정서에 맞는 것들을 당대의 음악다방과

 라디오 디스크자키들이 골라내 인구에 회자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적 팝송'이다.

DJ들이 이 곡들을 숨겨진 보물 찾듯이 발굴한데는 '그 애조 띤 멜로디와 낭랑한 어쿠스틱 기타 음을 분명히 우리의

 팝팬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했을 것이다.

 

그럼 미국에서는 어떤 곡들이 사랑 받았을까.

그는 다른 가수들의 곡을 특유의 감성으로 놀랍게 바꿔낸 '리메이크' 노래들로 명성을 떨쳤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시각장애인의 운명을 안고 1945년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 가족을 따라 고향인

 푸에르토 리코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한다.

아코디언과 기타를 독학한 후 9살에 뉴욕의 스페니쉬 할렘가에 있는 푸에르토 리코 극장에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서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 그리니치 빌리지의 커피 하우스에서 연주 아르바이트를 한다.

 

1962년부터 디트로이트에서 정식 연주가로 활동한 그는 RCA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1964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발

(Newport Jazz Festival)에 출연하여 각광을 받게 된다.

 

1964년 싱글 "Everybody Do the Click"을 선보인 후 플라밍고 스타일의 데뷔 앨범 [The voice and Guitar of

 Jose Feliciano](1965)를 발표한 그는 [The Fantastic Feliciano](1966)와 [A Bag Full of Soul](1966)까지

 연이은 레코딩 작업과 순회공연으로 차츰 명성을 얻어간다.

 

1968년 재즈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Ray Brown)을 비롯해 몇몇 뮤지션이 참여한 [Feliciano]를 발표, 도어즈

(Doors)의 "Light My Fire"를 라틴 형식으로 불러 팝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능란한 어쿠스틱 기타연주를 바탕으로 로맨틱하면서도 클라이맥스에서 솟아오르며 사정없이 뿌려대는 보컬,

 사이키델릭인 도어스의 곡이 단숨에 라틴 팝이 되어 나온 것이다.

 

 

호세 펠리치아노의 "Light my fire"는 리메이크임에도 불구하고 전미차트 3위를 오르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곧이어 토미 터클(Tommy Tucker)의 R&B곡인 "Hi Heel Sneakers"로 그 명성을 공고히 했으며, 1968년 10월7일에는 월드 시리즈 야구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는 영광을 얻는다.

 

 

물론 미국 국가를 어쿠스틱 기타로 라틴 재즈 형식으로 부른 것 때문에 한때 국가를 신성시하는 전통주의자들과

 국수주의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는 반문화 체제의 젊은 세대들로부터는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

 이 경기장 라이브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인기차트에도 올라 전미 차트 50위에 오르는 히트를 쳤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그 해 그래미상의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했다.

 

1969년 세 장의 앨범 [Souled], [Alive Alive-O], [Feliciano 10 to 20]을 발표한 그는 비지스(Bee Gees)의

"The Sun Will Shine"을 리메이크해 히트시켰고, 그래미 최고 신인 아티스트(Best New Artist)상을 수상하며

 60년대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70년대 들어서 아르헨티나, 멕시코, 베네주엘라 등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돌며 스페인어 앨범과 영어앨범 작업을 통해

일련의 싱글들을 히트시켜 온 그는 텔레비전 시리즈물인 [Chico and the Man]의 테마음악을 부르기도 했고,

 [Aaron Loves Angela] 등의 영화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해 이탈리아 그룹 리키 에 포베리(Ricchi E Poveri)와 함께 "Che Sara"를 불러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80년 10월에는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기타 협주 곡 "Concerto De Paulhino"를 발표하여

 포크나 팝 팬들로 뿐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들에게까지 어필하며 호응을 얻었다.

 

1981년 모타운 라틴 지부의 첫 주자가 된 그는 [Tu Immenso Amor](1987)같은 스페인어 라틴 앨범들을 비롯해,

 클래식 기타 음악 앨범, [I'm Never Gonna Change](1989) 같은 영어 팝 앨범을 녹음했다.
그는 1983년 "Me enamore", 1986년 "Lelolai", 1989년 "Cielito", 1990년의

"Por que te tengo que olvidar?"로 그래미 최우수 라틴 팝 퍼포먼스 상을 무려 네 차례나 수상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동부 할렘가에 그의 이름을 딴 아트 스쿨이 생길 정도로 라틴 집단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 온 그는 90년대 들어 재즈음악을 추구하며 [Steppin' Out](1990)을 발매했고, 1995년 폴리그램의 라티노(Latino,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 아메리카계 시민) 음반에 참여, [El Americano](1996)를 발표했다.

 

1997년 [On Second Thought]로 여전히 호소력 짙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호세 펠리치아노는 2000년대에도 그는 계속적인 월드투어를 통해 팬들에게 라틴 음악의 로맨티시즘을 전달하는 동시에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신보를 발표하고 있다.

 


2007년말 내한 공연을 가지기도 했던 호세 펠리치아노는 앞을 볼 수 없는 선천적인 장애를 타고난 재능과 하루 14시간씩 연습하는 노력을 통해 빼어난 기타연주자로 거듭났다.

 이름 앞에 거물 기타리스트(virtuoso guitarist)라는 수식이 모든 공식자료에 붙을 정도. 기타전문지들에 의해 수도

 없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40년 넘게 어쿠스틱 기타분야의 전설로 숭앙받으며 지금도 라틴 음악에 관한 한 '일렉트릭 기타는 산타나, 어쿠스틱

기타는 호세 펠리치아노'라는 일반의 인식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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