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

서양 문화사에 나타난 음악적 변화 (고대에서 현대까지)

 

 

 

고대(선사시대 - 5세기)

음악사에서 고대는 선사 시대로부터 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 까지를 일컫는다. 이시대의 음악에 관한 자료는 매우

 적지만, 옛 문헌과 동굴.무덤.사원 등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에서 당시에도 음악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고대음악의 발자취는 문명의 발상지인 국가들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의 고대국가들의 음악도 종교의식과 관련된 것들이고 그 이외에는 궁정에서의 향연이나 오락 등을 위한 것과 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음악들로 추정된다.

 

이 시대의 음악은 화성도 대위법도 없는 단선율로서 그 선율도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특히,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는 기원전 4,000년경에 벌써 매우 수준 높은 음악이 있었다.

이들은 하프와 플루트 종류, 그리고 타악기 등을 사용하였고 이집트 지방에서는 B.C 3.000년경에는 일종의 관현악도

행해졌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보다 약 1,000년 늦게, 유대에서는 음악이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달하여 B.C

1.000년경, 즉 다윗왕이나 솔로몬왕 시대에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는데 이것은 구약성서에도 자주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음악은 B.C 1.000년경에 성하였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미적 감각이 발달해 있었고, 동화력이 강해서

자기들의 음악을 발전시켰고, 또한 고대 오리엔트 여러 민족의 음악을 흡수하고 동화하였다. 즉 고대의 음악은 그리스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종합되고 체계화되어 그 수준을 한층 높였다.

 

그들은 음악을 단지 제사와 오락뿐만 아니라 매우 지적으로 다루었으며 음악에 대한 철학성, 윤리성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논의되었고 과학적인 연구를 하였으며 음악을 교육상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고대의 대부분의

 음악문화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리스의 음악이론은 로마를 거쳐서 오늘날의 서양음악의 모체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음악으로는 시편에 붙여진 단성의 노래가 많이 불리었고, 그리스 음악에 중요하게 담당되었던 악기는 키타라

(Kethara)와 아울로스(Aulos)로서 이것은 시리아 지방에서 일찍이 발견된 것들이며, 피타고라스에 의해 음악 이론이 발달되기도 하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 음악에 중요하게 담당되었던 악기 키타라                              아울루스                

 

 

 

 

 

 

 

 

중세(500-1450)


6세기부터 15세기까지를 중세라 하며, 중세는 봉건사회제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도교의 사회로서 정치문화에 있어서 강력한 종교적 지배를 받던 시대였다. 중세기의 음악사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의식과 결부시킨 성가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중세기에 유럽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리스도교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교는 그 모태가된 유대교의 영향도 있지만 그밖에 음악을 존중하여 초기단계부터 독특한 의식음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중세음악의 특징은 로마네스크 음악(성가의발전), 고딕음악, 세속음악의 출현이다.

 

(1) 로마네스크음악(Romanesque Music)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발달되었던 음악으로서 이것은 로마네스크미술과 통하는 양식이다.

그 주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의 교회음악으로서, 고대음악처럼 단선율이지만 대체로 성악이며 기독교적인 가사를 가지고 있다.

이 음악은 4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 성가로 절정을 이룬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음악을 존중했으나, 처음에는 기독교 박해로 숨어서 음악을 하다가, 기원후 313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성대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음악은 처음에는 시리아, 팔레스티니, 소아시아 등지의 음악, 즉 유태적이거나 그리스적인 음악들을 필요에 따라 적당히 기독교적으로 고쳐서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이 그 후 로마의 각 지방에서 조금씩 서로 다른 양식의 음악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

로마의 교회세력이 크게 떨치자 지금까지 지방에서 행해지던 교리와 의식, 성가등을 일정한 형식으로 통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성가의 경우 밀리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339년경∼397년)가 개혁한 암브로시오 성가(Ambrosian Chant) 이래 2세기후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540∼604)가 제정한 그리고리우스 성가(Gregorian Chant)로서 마침내 그리스도교 음악을 통일시켰다.

 

 이 전통적인 교회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선율의 라틴어 가사로 된 단순한 것이지만 그 유동적인 선율은 실로

 거룩하고 아름답다. 이 성가는 지금도 카톨릭교회에서 공식적인 음악으로 쓰여지고 있다.

 

(2) 고딕음악(Gothic Music)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체로 10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네델란드와 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다성음악(Polypony)형식의 교회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교회의 건축양식에서 유래되었다.

다성음악은 구라파 북쪽 민족들 사이에  6,7세기경부터 시도되었던 것을 10세기에 이르러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

 
노래되던 그레고리우스 성가를 정선율( Cantus Firmus)로 하고 여기에 새로운 성부(오르가눔, Organum)를

추가하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 고딕음악은 음악을 교회 음악에서 벗어내어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 넣으려는 운동으로 눈부신 개혁과

시도가 계속된 14세기의 찬란한 아르스노바(Ars Nova, 새 예술)와 15세기가 되면서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한 대위법적인 다성 음악의 극치를 이룬 네델란드악파(Netherland School)의 음악을 포함하고 있다.

 

 

(3) 세속음악(Secular Music)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1세기경까지 유럽의 모든 예술과 학문 분야는 성직자들이 주도하였으나 12세기에 이르러 봉건사회의 기사계급은

그동안의 교회와 수도원의 전통적인 권위의 지배속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추구하였다. 또한 오랜 십자군

전쟁 이후 극단적인 종교열은 침체했고 동방의 화려한 이국문화의 접견으로 세속적 요소가 사회생활에 팽배해졌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속음악은 점차 민중속에서 발전해 나갔다. 대부분의 세속음악은 단선율로서 악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이러한 세속음악은 12세기경부터 귀족계급인 남프랑스의 투르바두르(Troubadour)와 북프랑스의 투르베르(Trouvere)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작품도 많이 나왔다. 그들은 자작의 시에 노래를 즉흥적으로 불렀다.

 

여러 곳의 왕궁과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여 간단한 악기의 반주로 그것을 노래했다.
시의 내용은 사랑노래와 발라드 풍의 이야기, 자연의 찬미, 종교적 또는 도덕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예인도 고용하여 다녔는데 자작의 시를 그들에게 노래시켰다.

 

이들은 프랑스에서는 8세기경부터 종글뢰르

(Jongleur) 영국에서는 민스트럴(Minstrel)이라고 했다.

13,4세기경에는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에 걸쳐 미네쟁거(Minnesange)라는 음유시인이 있었다. 이들은 기사

계급이 많았는데 이후 세속음악은 점차 기사계급에서 교양있는 시민계급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독일의 마이스터징거(Miestersinger)이다. 이들은 16세기경까지 계속되는데 독창적으로 창작곡을 내는 것보다 기존의 성가나 세속음악을 수정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르네상스(1450-160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는 14세기경에서 16세기까지의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을 말하는데 음악에 있어서는 대체로 16세기전반을 걸쳐 발달한 단성음악 양식의 시기를 말한다.

 

중세의 교권의 지배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시민계급중심의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정신을 기초로 하여 학문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과학과 예술분야에서 대단한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학문과 문화의 놀라운 발전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서 작곡가들은 심미적인 인본주의 작품을 만들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음악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발달했는데 그 방법에 있어서는 로마와 베네치아가 조금 다르다.

로마에서는 교회음악이 현저하게 발달했으며 오라토리오에 있어서도 크게 발달하였다.

베네치아에서는 주로 세속적인 음악과 기악의 현저한 발전이 있었으며 교회음악에는 화려한 2중창의 방법도 사용되었다.

 

 독일에서도 르네상스적인 음악이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네델란드 출신 라소(Orlando de Lassos

 1532년경∼1594)인데 그는 많은 교회용 음악과 세속적인 여러 가지 합창곡을 썼는데,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분방하며, 불협화음과 선율의 대비를 과감하게 썼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세속성악음악형식으로는 마드리갈(Madrigal)로서 그 음악적 특성이 다양하다.

세속 합창곡으로 목가적이거나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가사를 쓰는데 초기에는 종교음악과 유사한 조용한  음악이었다.

점차 정교하면서도 대위법적으로 양식이 바뀌어 후기에 가서는 독창도 사용되는 다양한 양식을 갖게된다.

라소와 팔레스트리나, 몬테비르디(Momteverdi)등의 작곡가들이 중요한 작곡가이다.

독일 르네상스의 가장 현저하고 특징있는 현상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에 의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회의 코랄(Choral)이다.

이 찬송가는 민요풍의 간소한 멜로디를 높은 성부에 놓고 음 대 음의 화성적인 것으로서 누구나 노래하기 쉬운 합창곡

으로 가장 르네상스적이라할수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팔레스트리나                                                             몬테베르디

 

 

 

 

바로크(1600 - 1750)


1600년 경부터 1750년까지를 바로크 시대라 한다.

이 시대는 절대 군주의 시대로, 변화와 모험, 이성과 신앙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시기였다.

음악의 중심이 교회로부터 궁정이나 귀족사회로 옮겨지게 되면서 교회 선법은 점차 약회되고, 장조와 단조의 중심적

역할이 뚜렷해졌다.

그리고 다성 음악이 절정에 이르면서 화성 음악이 발달해 갔고, 여러 가지 새로운 모습의 양식이 나타났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그리스 극음악을 부흥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그 후 몬테베르디, 프랑스의 륄리, 영국의

퍼셀, 나폴리의 스카를라티 등에 의해 근대 오페라(가극)로 발전하였다.

기악 양식이 발전되면서 현악기나 건반 악기가 발달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코렐리·비발디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 합주

 협주곡·바로크 소나타·모음곡·푸가 등이 만들어졌다.
특히 바흐의 헨델은 오라토리오·칸타타·협주곡 등에서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원래 바로크(Barock)라는 말은 주로 미술에서 사용된 시대양식의 개념으로서 스페인의 베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란브란트 등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변화있는 색채, 웅대한 구도, 장식 적인 곡선, 극적이고 정열적인 표현 등이

 바로크예술의 특징이다.


그리고 바로크음악의 사회 적 바
탕은 절대주의의 귀족 제도로서 주로 극음악과 기악음악의 분애로서 이탈리아가

그중심 이 되었다.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면 대체로 극음악이 탄생한 1600년경부터 바흐가 죽은 1750년경을 말하는데 이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에 싹튼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팽배해져서 점차 시민계급을 성장시켰고 사상적인 면에서도 합리적인 관념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로크(Baroque)란 말은 "찌그러진 진주"라는 의미로서 이 시대의 음악은 안정감 대신 약동감을 특징으로 하여

웅장하고 거대하면서도 거기에 다채로운 장식이 함께 가해지는 것이다.

대체로 17세기 전반을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한 단성음악 양식과 18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한 대위법적 다성음악 양식이 발달한 시대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발디                                                                            바하

 


고전파(1750 - 1825)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로코코


1750∼1825년까지를 '고전주의 시대'라 한다. 이 시대는 사회적으로 신인문주의가 제창되었고, 사상적으로는 관념론과 이상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시민 계급이 해방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위에  예술은 단순 명료하고 간결하며, 인간의 실체와 정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하였다.


음악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여러 면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대위법 중심의 복잡한 다성음악에서, 간결하고 명쾌한 화성 음악으로 변화하였고, 소나타 형식이 생겨나 교향곡·협주곡·독주 소나타·현악중주곡 등의 새로운 기악 양식이 사용되었다.

가극은 시와 극과 음악이 융합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작곡되어, 극음악이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는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을 들 수 있다. 하이든은 소나타 형식과 악기 편성법을 확립하였고, 모차르트는 소나타 형식을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을 최고도로 발전시키고 낭만파 음악에의 길을 열었다.

단순명료하고 질서와 절제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음악이 주가 됨으로서 종교음악 분야는 음악사상 처음으로 침체국면을 맞게 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베토벤

 

 

낭만파(1820 - 190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romanticism

낭만주의는 19세기의 음악을 지배한 기본적인 지도 이념으로써, 특히 문예분야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 중요한 본질은 새로운 것을 희구하는 욕구, 개성의 존중, 자유에의 태도, 또한 새로운 시대 정신에의 동경등 이다.

따라서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 음악에서 존중하던 보편적인 형식과 이상화된 내용을 버리고 신기한 것을 쫓고 통제적인 울을 벗어나 개성적인 색조를 강화한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로 자기의 음악을 가지고 노래하려는 정신경향,

또한 시나 희화 등 음악 외적인 분야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을 희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음악의 기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혁을 갖게 되어 고전음악시대의 최고의 이상형식이던 소나타를 대담하게 변형 또는 포기하고 그 대신 자유롭고 유동적인 형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단일악장의 환상적인 소품 형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은 프랑스대혁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듯이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대두된 시기였다.

프랑스대혁명은 일반 시민계급이 특권계급에 대한 반발이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은 18세기의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이른바 계몽주의 사상과 그 문예사조등에 의해서 양성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계몽주의는 이성에 지나치게 편중하고 전통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19세기에 들어오자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 냉철한 이성보다는 인간 본연의 감정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것보다는 공상적, 목가적인 세계를 동경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먼저 개개인의 인간성을 존중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이러한 경향이 바로 낭만주의인데 예술가들도 자유에 대한 이상과 개인주의 사상에 심취하기에 이르렀고, 음악에 있어서도 역시 낭만적 요소가 깃들기 시작하였다.

고전주의 작곡가들은 형식성을 중심으로 하여 객관적인 아름다운을 추구한데 대하여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무엇보다도

자기표출이라는 주관성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의 감정을 유일한 실마리로 삼고 있었다.

 

또한 산업혁명의 결과 부유한 자본주위 중산층이 형성되어 청중의 범위가 크게 확산되었고, 이러한 부유 중류계층들은

곧 작곡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일반청중을 대상으로 곡을 써 나갔다.

 

 청중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연주를 하였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여러 형태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폭넓게 독서했고 음악 이외의 다른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다루는 소재는 다양했다.

 그리이스 신화에서부터 전설과 동화, 자연의 경관, 연인의 사랑 등 모든 것이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소재는 다양하고

풍부하게 음악으로 표현되어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카알 마리아 폰 베버 - Carl Maria von Weber [1786-1836]
2)프란츠 슈베르트 - Franz Peater Schubert [1797-1828]
3) 펠릭스 멘델스존 - Felix Mendelssohn [1809-1847]


4) 프리데릭 쇼팽 - Fryderyk Chopin [1810-1849]
5) 로베르트 슈만 - Robert Schuman [1810-1856]
6) 프란츠 리스트 - Franz Liszt [1811-1886]

7) 리하르트 바그너 - Richard Wagner [1813-1883]
8) 쥬셉페 베르디 - Giuseppe Verdi [1813-1901]
9) 페테르 차이코프스키 - Peter Tchikovsky [1840-1893]
10) 안토닌 드보르작 - Antonin Dvoralk [1841-1904]

 

 

 

 

국민악파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동유럽 여러 나라와 북유럽 제국에서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조성된 자유·평등의 전신과 민족

해방을 목표로 하는 국민주의 운동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음악에도 나타나 국민 악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독일·프랑스·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던 낭만파 음악에 대항하여 , 러시아·헝가리·보헤미아 등지의 작곡가들이 중심이 된 '음악 재창조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예술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작품 소재의 소중한 근원이라 생각하였다. 작곡가들은 자기 나라의

 민요나 전승 음악의 선율·리듬 등을 재편성한 작품과 자기 나라의 신화·전설·역사·자연·풍속 등을 소재로 하여 극음악을

작곡하였다.

이러한 국민 악파의 음악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빛을 잃었지만, 오늘날 민족적인 소재를 현대 음악에 사용하려는 경향을 낳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글린카(1804 1857)를 비롯하여 발라키레프(1837 1910)·보로딘(1833 1887)·큐이*1835

1918)·무소르그스키(1839 1881)·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 등의 러시아 5인조가 나타났으며, 체코에서는

 스메타나(1824∼1884)와 드보르자크(1841 1904), 노르웨이에서는 그리그(1840∼1911), 핀란드에서는

 

시벨리우스(1865∼1957) 등이 이 시대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들로 활약하였다. 그밖에 헝가리의 바르토크(

1881∼1945), 코다이(1882∼1967) 등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무소르그스키

 

근현대 음악

 

과학의 세기라고 불리는 19세기는 인류의 역사에 일대 변혁을 야기시켰다. 특히 그 후반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수많은 발명과 고안이 이루어졌다.

교통과 전파 매체의 발달로 세계는 더욱 작게 만들어져서 오늘의 새로운 창조를 그 이튿날에는 이미 옛것이 되게

함으로서, 인류사에 끊임없는 창조의 불길을 질렀던 것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보급은 이것을 더 빠르게 진행시켰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당연히 미(�에 대한 인간의 감각에도

변화를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표준적인 심미관(��)이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20세기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들의 공존을 보여 준다.

 

지나간 세월의 음악, 다른 민족들의 음악, 이런 모든 음악들의 자료가 음반과 녹음기의 발명으로 쉽게 들을 수 있어

모든 음악과 예술에 대한 지식이 확대되어 간 것이다.

 

거기에다 전제정치와 제 1,2차 세계대전에 의한 공포와 재난, 인류전멸의 위험, 경제대공황, 빈부격차, 빈국과 부국의

대립, 동서대립에 의한 긴장상태, 말세론적 위기감, 미래세계에 대한 동경, 공상과학세계 등 급속하게 변화하는

 과학문명과 사회의 갖가지 불안감 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가치 기준과 의식 상태가 변화하게 되고 또한 이와 함께

미(�의 개념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달라지게 된 것이다.

 

현대음악의 특징인 다원주의와 불협화음은 통일된 세계상의 결핍, 인간과 자연의 조화상실, 인간의 내적 부조화를

 증거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예술 중의 하나가 음악이라는 과거의 미적 작고고 원칙은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이제 음악이 무조건적으로 '아름답다'든지 조화스러워야 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진실'해야 하기 때문에 추()할 수도 있다.

 

'음악'과 '음악예술작품'의 개념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

20세기의 음악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현상들을 관철시켜, 이것이 옛 음악관과 함께 병존할 수 있는

 길을 연다.

 

 


 

 

근대

인상주의 음악 : 19세기적인 주관주의에 대한 하나의 반동으로, 미술의 색채와 감각을 음악에 표현한 것이다.

반음계·온음계·교회 선법 등의 도입, 불현화음의 사용, 관현악의 색채적인 용법의 탐구 등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받은 순간적인 인상을 그린 음악으로, 드뷔시와 라벨이 그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음악 : 종래의 조성이나 형식을 타파하고 조성이 없는 음악으로의 변혁을 꾀하면서 내면의 감성을 대담하게 표현한 음악으로, 쇤베르크·베베른 등이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③ 원시주의 음악 : 후기 낭만파의 지나친 세련성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음악으로, 강렬하고 격렬한 리듬과 음색을

사용하여 원시적이 ㄴ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불새', 바르토크의 '알레그로 바르바로' 등이 원시주의 음악의 좋은 보기이다

 

 

 

표현주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18년부터 1930  연대 초까지에 유행하던 신음악 경향, 1930연대에 고개를 든

 신고전주의적 경향, 제2차 대전 이후까지의 세 시기를 현대 음악의 시기라고 한다.

제1차 대전 이후, 당시까지의 주관적·서정적·조화적인 음악에 반하는, 극단적이고 비정서적이며, 불협화음적인 음악이

 유행되었다. 악곡의 구성이나 악기 편성은 규모가 작아졌고, 악곡의 형식은 종래와 다른 새로운 기법이 나타났다.

이러한 음악을 '신음악'이라고 한다.

신음악의 과도기적인 실험을 기초로 하여 다시 엄격한 구성감과 고전적인 질서로 돌아가려는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스트라빈스키와 힌데미트에 의해 1930연대에 시도되었다.

그 후 제 2차 대전과 파시즘으로 말미암아 많은 음악가들이 사망하거나 활동에 제약을 받아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젊은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새로운 음악에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현대 음악은 매우

 광범위해졌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조 음악과 무조 음악이 뒤섞여 나타났기 때문에 근대 음악의 특징과 작곡가의

 구분도 분명한 선을 긋기가 힘들어졌다.

현대 음악은 현대 과학에 의한 음향 기기가 사용됨으로써 새로운 음악이 다양하게 시도되었는데, 자연의 소리를 녹음

편집해서 만드는 구체 음악과 전자파에서 얻은 음향을 변화 합성시킨 전자 음악, 컴퓨터 음악 등이 시도되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 슈톡 하우젠·케이지 등이 있다


 

 


 

' CLASSIC ' 카테고리의 다른 글

Beethoven -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0) 2016.10.03
서양음악사  (0) 2016.10.01
Haydn, Sympony No.93 in D major   (0) 2016.09.30
Joseph Haydn - Piano Sonata in E-flat major, Hob. XVI/49, L.59  (0) 2016.09.30
Chopin Polonaises Nos. 1 - 7  (0) 201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