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

서양음악사

 

 

서양음악사

 


 

고대의 음악 :

음악은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처음으로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인류가 역사를 알게 된 것은 말이 있고, 글이 생긴 이후 일이며, 음악에 관한 모든 실제적인 지식은 어떤 적당한 기보법이 만들어진 이후에야 가능한 일로서 그 이전의 일들은 상상으로밖에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음악의 발상에 관한 설은 세계의 어느 민족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데 신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신수설과 자연발생설을 들 수가 있다.

미개한 민족에 있어서도 어떤 형태이든간에 음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음악은 분명히 인간의 본능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음악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같이 시작되어, 지금 남아 있는 벽화나 고분의 유물, 그리고 지구상에 아직 남아 있는 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디언, 오세아니아 종족들과 같은 원시집단의 음악연주와 실제로 오늘날까지 어느 정도 문화풍토를 지니고 있는 중국, 인도, 샴, 일본 등이나 다른 동양인  고대음악 연주들을 통하여 상상으로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개한 원시시대의 원시인들의 음악은 영적인 것과 연관된 일련의 신앙적인 것에 연루된다. 신앙을 필요로 하여 음악이 발생되었고, 이러한 음악은 마법의 기능으로 병을 고친다고 생각했고, 노동이나 전쟁에 사용하기 위하여 음악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음악의 발자취는 문명의 발상지인 국가들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의 고대국가들의 음악도 종교의식과 관련된 것들이고 그 이외에는 궁정에서의 향연이나 오락등을 위한 것과 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음악들로 추정된다.

 

시대의 음악은 화성도 대위법도 없는 단선율로서 그 선율도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특히,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는 기원전 4,000년경에 벌써 매우 수준높은 음악이 있었다. 이들은 하프와 플루트 종류, 그리고 타악기등을 사용하였고 이집트 지방에서는 B.C 3.000년경에는 일종의 관현악도 행해졌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보다 약 1,000년 늦게, 유대에서는 음악이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달하여 B.C 1.000년경, 즉 다윗왕이나 솔로몬왕 시대에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는데 이것은 구약성서에도 자주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음악은 B.C 1.000년경에 성하였는데, 그리이스 사람들은 미적 감각이 발달해 있었고, 동화력이 강해서 자기들의 음악을 발전시켰고, 또한 고대 오리엔트 여러 민족의 음악을 흡수하고 동화하였다.

 

즉 고대의 음악은 그리이스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종합되고 체계화되어 그 수준을 한층 높였다. 그들은 음악을 단지 제사와 오락 뿐만 아니라 매우 지적으로 다루었으며 음악에 대한 철학성, 윤리성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논의되었고 과학적인 연구를 하였으며 음악을 교육상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고대의 대부분의 음악문화는 그리이스에서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리이스의 음악이론은 로마를 거쳐서 오늘날의 서양음악의 모체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이스 음악에 중요하게 담당되었던 악기는 키타라(Kethara)와 아울로스(Aulos)로서 이것은 시리아 지방에서 일찍이 발견된 것들이다.

 





중세의 음악 :

 


중세는 봉건사회제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도교의 사회로서 정치문화에 있어서 강력한 종교적 지배를 받던 시대였다. 중세기의 음악사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의식과 결부시킨 성가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중세기에 유럽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리스도교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교는 그 모태가된 유대교의 영향도 있지만 그밖에 음악을 존중하여 초기단계부터 독특한 의식음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중세음악은 대체로 로마네스크 음악, 고딕음악, 세속음악 등으로 크게 구분한다.

 

 

 

 

 

 


(1) 로마네스크음악(Romanesque Music)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발달되었던 음악으로서 이것은 로마네스크미술과 통하는 양식이다. 그 주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의 교회읨악으로서, 고대음악처럼 단선율이지마느 대체로 성악이며 기독교적인 가사르 가지고 있다. 이 음악은 4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 성가로 절정을 이룬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음악을 존중했으나, 처음에는 기독교 박해로 숨어서 음악을 하다가, 기원후 313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성대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음악은 처음에는 시리아, 팔레스티니, 소아시아 등지의 음악, 즉 유태적이거나 그리이스적인 음악들을 필요에 따라 적당히 기독교적으로 고쳐서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이 그후 로마의 각 지방에서 조금씩 서로 다른 양식의 음악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 로마의 교회세력이 크게 떨치자 지금까지 지방에서 행해지던 교리와 의식, 성가등을 일정한 형식으로 통일시켜야겠다는 생각ㅇ르 갖게 되었다.

 

성가의 경우 밀리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339년경∼397년)가 개혁한 암브로시오 성가(Ambrosian Chant) 이래 2세기후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540∼604)가 제정한 그리고리우스 성가(Gregorian Chant)로서 마침내 그리스도교 음악을 통일시켰다.

 

이 전통적인 교회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선율의 라틴어 가사로 된 단순한 것이지만 그 유동적인 선율은 실로 거룩하고 아름답다. 이 성가는 지금도 카톨릭교회에서 공식적인 음악으로 쓰여지고 있다.

 

 0612       0982

 

 

 



(2) 고딕음악(Gothic Music)

 

대체로 10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네델란드와 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다성음악(Polypony)형식의 교회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교회의 건축양식에서 유래되었다. 다성음악은 구라파 북쪽 민족들 사이에 대략 6,7세기경부터 시도되었던 것을 10세기에 이르러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

 


노래되던 그레고리우스 성가를 정선율( Cantus Firmus)로 하고 여기에 새로운 성부(오르가눔, Organum)를 추가하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 고딕음악은 음악을 교회 음악에서 벗어내어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 넣으려는 운동으로 눈부신 개혁과 시도가 계속된 14세기의 찬란한 아르스노바(Ars Nova, 새 예술)와 15세기가 되면서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한 대위법적인 다성 음악의 극치를 이룬 네델란드악파(Netherland School)의 음악을 포함하고 있다.

 

 

 

 

 


(3) 세속음악(Secular Music)

 

11세기경까지 유럽의 모든 예술과 학문 분야는 성직자들이 주도하였으나 12세기에 이르러 봉건사회의 기사계급은 그동안의 교회와 수도원의 전통적인 권위의 지배속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추구하였다.
또한 오랜 십자군 전쟁 이후 극단적인 종교열은 침체했고 동방의 화려한 이국문화의 접견으로 세속적 요소가 사회생활에 팽배해졌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속음악은 점차 민중속에서 발전해 나갔다. 대부분의 세속음악은 단선율로서 악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이러한 세속음악은 12세기경부터 귀족계급인 남프랑스의 투르바두르(Troubadour)와 북프랑스의 투르베르(Trouvere)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작품도 많이 나왔다. 그들은 자작의 시에 노래를 즉흥저긍로 불렀다.

 


여러 곳의 왕궁과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여 간단한 악기의 반주로 그것을 노래했다.
시의 내용은 사랑노래와 발라드 풍의 이야기, 자연의 찬미, 종교적 또는 도덕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예인도 고용하여 다녔는데 자작의 시를 그들에게 노래시켰다.

 

이들은 프랑스에서는 8세기경부터 종글뢰르(Jongleur) 영국에서는 민스트럴(Minstrel)이라고 했다. 13,4세기경에는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에 걸쳐 미네쟁거(Minnesange)라는 음유시인이 있었다. 이들은 기사계급이 많았는데 이후 세속음악은 점차 기사계급에서 교양있는 시민계급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독일의 마이스터징거(Miestersinger)이다. 이들은 16세기경까지 계속되는데 독창적으로 창작곡을 내는 것보다 기존의 성가나 세속음악을 수정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4) 기보법의 발달

 

그레고리 성가를 위한 기보법이 9세기경에 네우마(Neuma)라는 그리이스말로 창안되었으며 1세기경에는 이탈리아의 귀도 다레쪼(Guido d'Arezzo)는 네우마를 4개의 평행선상에 두고 음의 높낮이를 표시하는 기보법을 창안하였고,또한 계명부르기를 고안하였다.

 


13세기경에는 쾰른의 성 요한 수도원의 수도사이며 교사인 프랑코 데 콜로니아(Franco de Colonia)에 의해 음의 높낮이뿐만 아닌 길이도 표시할 수 있는 정량기보법을 창안하였다.
오늘날의 5선보에 의한 편리한 기보법이 완성되기까지는 천여년의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두오모 대성당의 동문에 있는 '천국의 문' 




르네상스의 음악 :

르네상스는 14세기경에서 16세기까지의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을 말하는데 음악에 있어서는 대체로 16세기전반을 걸쳐 발달한 단성음악 양식의 시기를 말한다.
중세의 교권의 지배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시민계급중심의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정신을 기초로 하여 학문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과학과 예술분야에서 대단한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학문과 문화의 놀라운 발전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서 작곡가들은 심미적인 인본주의 작품을 만들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음악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발달했는데 그 방법에 있어서는 로마와 베네치아가 조금 다르다.
로마에서는 교회음악이 현저하게 발달했으며 오라토리오에 있어서도 크게 발달하였다.

 

베네치아에서는 주로 세속적인 음악과 기악의 현저한 발전이 있었으며 교회음악에는 화려한 2중창의 방법도 사용되었다.
로마에서의 대표적 작곡가인 팔레스트리나(G.P . Palestrina 1525년경 ∼1594)는 자유로운 대위법으로 작곡하고 복잡해진 대위법으로 단순화하고 한음에 한가사를 붙이는 새로운 시도와 무반주(A Cappella)양식의 교회 합창곡을 도입하여 미사곡을 비롯한 많은 종교곡으로 작곡하였다.

 

베네치아에서는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10∼1586)와 그의 생질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4년경∼1612)가 성악을 화려하고 자유롭게 만들었으며 특히 오르간을 비롯한 기악음악을 많이 발전시켰다.

 

이 무렵에 독일에서도 르네상스적인 음악이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네델란드 출신 라소(Orlando de Lassos 1532년경∼1594)인데 그는 많은 교회용 음악과 세속적인 여러 가지 합창곡을 썼는데,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분방하며, 불협화음과 선율의 대비를 과감하게 썼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세속성악음악형식으로는 마드리갈(Madrigal)로서 그 음악적 특성이 다양하다. 세속 합창곡으로 목가적이거나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가사를 쓰는데 초기에는 종교음악과 유사한 조용한 느낌의 음악이었다.
점차 정교하면서도 대위법적으로 양식이 바뀌어 후기에 가서는 독창도 사용되는 다양한 양식을 갖게된다.

 

라소와 팔레스트리나, 몬테비르디(Momteverdi)등의 작곡가들이 중요한 작곡가이다.
독일 르네상스의 가장 현저하고 특징있는 현상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에 의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회의 코랄(Choral)이다. 이 찬송가는 민요풍의 간소한 멜로디를 높은 성부에 놓고 음 대 음의 화성적인 것으로서 누구나 노래하기 쉬운 합창곡으로 가장 르네상스적이라 할 수 있다.

 

 

 



바로크의 음악 :

17세기 초에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혁신적인 젊은 음악가들이 일반 문화예술의 르네상스 정신에 자극되어 새로운 양식, 다시 말해서 화성적인 반주를 가진 단선율의 양식을 장조 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노디아(Monodia)즉 단 음악이다. 이 단음악이 정착 되었을때 르네상스음악이 완성된 것이지만 이 선율음악은 대위법적인 구속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서창적인 선율과 이를 뒷받침하는 단순한 화성적인 반주로 가장 직접적인 표현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독창가곡이나 오페라, 그리고 오라토리오로서 나타났는데, 이러한 양식에 의해 근대적인 음악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편 옛 겹선율에 의한 복음악이 모두 쇠퇴해버린 것은 아니며 당분간 신구 두 개 의 양식이 서로 접촉하고 영향을 주며 사용되었다.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많은 음악가는 그 풍부한 화성적 가능성에서 복음악적인 방향으로 나갔고, 이에 반해 이탈리아의 대부분의 음 악가는 르네상스적인 단음악을 택하고 오페라나 아리아, 그리고 소나타와 협주곡의 양식을 창안 발전 시켰다.

이 두 개의 조류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하이든이나 모짜르트등의 고전음악에서 화해하고 교류하게 된다.
이 르네상스 정신의 최고의 발현시대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부터 18세기 전 반기에 바하나 헨델이 대위법적인 음악을 완성한 복음악의 전성기에 이르는 약 150년간을 바 로크음악시대라고 부른다.

원래 바로크(Barock)라는 말은 주로 미술에서 사용된 시대양식의 개념으로서 스페인의 베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란브란트 등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변화있는 색채, 웅대한 구도, 장식 적인 곡선, 극적이고 정열적인 표현 등이 바로크예술의 특징이다.

바로크 음악은 원칙적으로 저음에 기초를 두어 그위에서 화성적인 성부를 배정해 가는 통주 저음기법을 기반으로 대조적인 협주양식, 즉 강주와 약주, 전 합주와 독주, 밝은 것과 어두운 것과 같은 대비적인 효과를 추구하고 심리적인 감동과 극성을 표현하기 위해 선율울 장식하고 화성에서 으뜸음을 중심으로 힘차고 색채감과 극감을 더해 준다.

 

그리고 마로크음악의 사회 적 바탕은 절대주의의 귀족 제도로서 주로 극음악과 기악음악의 분애로서 이탈리아가 그중심 이 되었다.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면 대체로 극음악이 탄생한 1600년경부터 바흐가 죽은 1750년경을 말하는데 이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에 싹튼 인간중신적 세계관이 팽배해져서 점차 시민계급을 성장시켰고 사상적인 면에서도 합리적인 관념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로크(Baroque)란 말은 "찌그러진 진주"라는 의미로서 이 시대의 음악은 안정감 대신 약동감을 특징으로 하여 웅장하고 거대하면서도 거기에 다채로운 장식이 함께 가해지는 것이다.

 

대체로 17세기 전반을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한 단성음악 양식과 18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한 대위법적 다성음악 양식이 발달한 시대이다.

바로크 음악의 시작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활동한 카메라타(Camerata)라는 문예인들의 새로운 음악 관념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대위법적 음악이 가사의 내용을 전달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여 가벼운 기악반주 위에서 가사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새로운 음악 형태를 탄생시켰는데 이것이 단성음악(Monody)이다.
이것을 적용하여 카메라타 일원인 갈릴레이(V. Galilei, 1520∼1591)와 카치니(G. Caccini) 1545∼1618)는 최초로 반주가 딸린 서정가곡을 만들었다.

 

단성음악의 선율반주는 저음 현악기로 연주되는데 이것은 작품전체를 통하여 계속되기 때문에 통주저음(Basso Continuo)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통주저음은 저음부 아래에 화음을 지시하는 숫자를 붙였기 때문에 숫자저음(Figured Bass)이라고도 부른다.

 


 

 


(1) 오페라(Opera)의 탄생

 

16세기말경 이탈리아 피렌체의 음악애호가 바르디(G. Bardi, 1534∼1562)의 집에 젊은 음악가와 시인들이 모여 새로운 음악을 연구했는데 이 집단을 카메라타(Camerata)라고 불렀다.

 

1597년에 시인 리눗치니(O. Rinuccini, 1563∼1623)의 대본에 페리(J. Peri, 1561∼1633)가 오페라《다프네(Dafne)》를 작곡하였다. 두 번째 작품도 리눗치니 시(詩)에 페리와 카치니가 작곡한 《에우리디체(Euridece)》를 1600년에 상연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에우리디체뿐이다.

 

그런데 근대적 개념의 오페라에 접근되는 진보적인 오페라를 만든 사람은 몬테베르디(C. Monteverdi, 1567∼1643)이다. 그는 1607년 《오르페오(La Favola d' Orfeo)》를 상연하였는데 대규모의 합창과 관현악, 무용 등이 한데 어울려 이전의 오페라라는 표현양식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으며. 기악의 서주로 시작하였고 댄스음악이 있고 신포니아라고 하는 기악곡이 사이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스카를라티(A. Scarlatti, 1660∼1725)를 중심으로 한 나풀리악파가 생겼으며 프랑스에서는 륄리(J. Baptiste Lully, 1632∼1686)를 중심으로 프랑스 오페라가 생겼으며, 영국과 독일에서도오페라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다.

 

 


(2) 오라토리오(Oratorio)와 칸타타(Catata)


오페라보다 조금 늦게 종교음악의 한 형식으로 태어난 오라토리오는 초기의 모습이 오페라와 매우 유사하였다.

오라토리오의 특성은 오페라와 달리 종교적 내용으로 무대장치, 연기가 없다는 것이지만 초기의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연극적인 형태를 모두 갖추었다.

 

최초의 오라토리오는 카발리에리(Emilo de Cavalieri, 1550년경∼1602년)의《영혼과 육체의 극》인데 성서적

 내용이 약하고 연극적인 면이 강하여 오페라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하겠다.

그후 카리씨미(Giacomo Carissimi, 1605∼1674)가 쓴 《예프테, Jephte》로써 오라토리오의 음악양식을

 확립하였다.

 

바로크말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는 헨델(George Friederch Handel, 1685∼1759)이다.

그는 극적 요소를 더욱 강조하여 합창을 증가시켰고, 소재도 성서적 내용이외에 고대 그리이스의 신화적 인물을등장시키는 등 기존의 오라토리오의 음악 양식에서 탈피하여 오라토리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의 불후의 명작 《메시아, Messiah》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 범 세계적인 작품이 되었다.

칸타타의 음악형식구조는 오라토리오와 유사하다. 다만 그 규모가 축소되어 전례용으로 사용되기 적합하였다.

17세기중엽부터는 성서적 내용 이외에도 서정적인 세속가사를 사용하여 칸타타의 영역을 넓혔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은 200여편의 코랄을 사용한 교회 칸타타를 작곡하여 바로크 칸타타의 최고경지를 이룩했다.

 

 

 





(3) 기악음악

바로크시대의 기악음악은 중세에세부터 내려오는 악기의 발달과 양식의 확립, 새로운 악기의 출현으로 성악음악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건반악기는 독주용악기로도 사용되었으나 통주저음의 필수적인 악기로 어떠한 기악음악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바fh크시대에 이르러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오르간을 위시하여 클라비코드, 쳄발로 등은 독주나 합주용 악기로 인기가 높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1709년에는 크리스토포리(B. Cristofori, 1655∼1713)가 만든 피아노(Clavicembalo col Piano e Forte)가 등장하여 피아노 문헌의 첫장을 열었다.

 

현악기 부분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는데, 르네상스를 점유했던 비올족이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의 현악기군을 이루는 바이올린 족으로 대치되어 관현악 음악의 중심을 이루었다.

 

 특히 크레모나(Cremona)출신의 아마티(N. Amati), 과르네리(G.B. Guarneri), 스트라디바리(A. Stradivari)등의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우수한 악기를 만들어 바로크 현악을 더욱 수준 높은 음악으로 끌어 올렸다.

르네상스를 지배하던 루트는 바로크시대에 들어오면서 그 빛을 잃고 퇴조하여 그 명맥만을 유지시켰다.

 

 



 

 

관악기는 여전히 정립되지 않았으나, 관현악에서 그 중요성이 더 새져서 악기의 사용 빈도수가 높아갔다.
바로크시대의 작곡가들은 르네상스시대에 유행했던 몇몇 기악형식을 여전히 사용하였고, 아울러 새로운 음악형식을

개발하여 근대적인 기악 음악으로 그 모습을 점차 바꾸어나갔다.


르네상스의 기악형식이었던 푸가(Fugue)는 바로크시대에 와서는 독립된 기악작품은 물론 성악, 합창곡에서도 그

기법이 사용되었다.

모음곡(Suite)은 무곡을 여러 개의 부분으로 확대해서 독주와 합주용의 기악 음악형식으로 사용되었다.

 

 모음곡은 주로 같은 조성의 알르망드(Allemande), 쿠랑트(Courante), 사라반드(Sarabande), 지그(Gigue)를

 주로 하여 그밖에 지그의 앞과 뒤에 미뉴에트(Minuet), 부레(Bouree), 가보트(Gavotte)등이 삽입되기도 하였다.

바로크시대에 와서 르네상스의 세속 성악음 들을 성악과 기악의 혼합 내지는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형태가 흔하였는데

이것이 다악장 형식의 소나타(Sonata)라는 이름으로 흡수되었다.

 

많은 바로크 소나타는 두 개의 바이올린과 콘티누오를 위하여 작곡되었는데 이것이 트리오 소나타이다. 다른 형태의

소나타로 (Sonata da Camera)와 교회소나타(Sonata de Chiesa)라는 두 종류로 분류지었고 일반적으로 같은

조성의 4악장으로 구성된다.

바로크시대의 협주곡은 합주협주곡(Comcerto Grosso)과 독주협주곡(Solo Concerto)의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합주협주곡의 확립자는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1713)이고 독주협주곡은 3악장 형식으로 오늘날의 협주곡 악장의 구성원리를 제공하였다.

 

대표적 작곡가는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로서 근대적 개념의 협주곡 완성자이다. 관현악을 의미하는 신포니아(Sinfornia), 서곡(Overture), 협주곡(Concerto) 등이 있었으나 용어의 구분처럼 음악적 내용의 구분이나 표준은 서 있지 않았고 관현악의 형태도 아직 악기의 구성이나 기준이 일정치 않았다.

관현악의 주된 악기는 현악기였고 관악기나 타악기는 간헐적으로 사용되었다.

 



[주요 작곡가]
1) 안토니오 비발디 - Antonio Vivaldi [1678-1741]
2)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 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
3) 요한 세바스찬 바하 - Johann Sebastisn Bach [1685-1750]

 

 




고전파음악 :

바로크 음악 시대의 최후의 완성자인 바하와 헨델이 복음악으로 바로크 양식의 황금시대를 이루었으나, 그들의 만년에는 한편에서 이에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운동이 일고 있었다.

 대 중들은 복잡한 다성부 음악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간결하고 선명한 음악을 희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취향에 따라 음악은 간결하고 솔직한 선율을 택하게 되었고, 이것을 화성 적인 반주로 뒷받침하는 단순한 화성적인 단음악 즉 호모포니(Homophony)음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음악은 선율이 그 진행이나 구조에서 기능적인 화성에 뿌리를 박게 되었고, 그 구조에서도 바로크 선율과 같이 자유분방하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4마디로 악 구를 이루어 반마침을 하고 8마디로 완전마침을 해서 독립된 악절을 이룬다는 성격적이고 규칙적, 내지는 균형적인 구성방법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주도 대위법적 방법이 아니라 화성적인 것 또는 화음적인 것으로 펼친 화음과 같은 것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균형진 규칙적인 형식미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그 형식도 간결하고 솔직한 것을 좋아 하게 되었고 모든 형식이

 어떤 일정한 논리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양식을 클래식(classic) 즉 고전 음악이라고 이른다.

 

클래식이라는 어휘는 원래 "고전적" 이라는 뜻보다는"모범적" 내지는 "표준적" 이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나 오늘날 클래식이라는 말은 역사적인 또는 시대 적인 범주로 고전파음악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고전파 음악은 바하가 1750년에 세상을 떠난 무렵부터 더욱 융성을 보아 19세기의 30년경 까지 지배적인 세력을 갖고 음악의 모든 분야에 걸쳐 침투해서 실현을 보았다.

 

따라서 작곡 가들의 음악활동면에서 볼 때 고전파 음악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에 걸친 약 80년간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시대의 커다란 업적이라고 한다면 화성음악의 확립, 소나타 형식의 확립과 발전, 기악의 확립과 발전 즉 교향곡,

 근대적 협주곡, 현악 4중주, 피아노 3중주 등의 기악양식과 연주양식의 확립등이다.

고전파음악이란 말은 본래 당시 작곡가들이 붙인 말이 아니라 후세에 이르러 낭만주의 음악에 대해 그 이전의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한 말이다.

바로크시대의 사회적, 국가적 체제가 어디까지나 절대주의적 왕권 아래 있었으나, 점차 신흥 시민 계급이 대두하면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회문화의 건설을 희망하는 계몽주의 철학의 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술분야도 과거 종교나 특정인만이 향유할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넓게 수용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시하는 고대 그리이스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져서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형식과 균형의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을 지향하게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위법적인 음악보다는 단순 명쾌한 선율을 지닌 화성음악을 선호하였고 개성적인 감각의 성악음악보다는 기악음악이 인기가 있게 되었다.

 

작곡가들은 이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음악기법을 창안하는 노력이 필요하였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는 소나타형식(Sonata Form)이라는 형식적인 틀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 시대의 형식의 범주안에서 단순명료하고 질서와 절제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음악이 주가 되므로서 종교음악 분야는 음악사상 처음으로 침체국면을 맞게 된다.

 

 



(1) 전기 고전파
전기 고전파는 바로크말기의 1720년경에서부터 고전 초엽의 1770년대의 음악을 가르킨다.

이 시기에는 당대한 바로크양식에서 벗어나 경쾌하고 단순 명료한, 그러면서도 가벼운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로코코

(Rococo)양식이 나타난다.

 

 감상적인 멜로디에 화성기법이 사용되었으며 독이 남부의 만하임악파에서는 소나타 형식의 발전과 함께 4악장제의 교향곡의 정형을 완성하였다.

 

 작곡가로는 만하임악파(Demenico Scarlatti, 1685∼1757), 소나타형식을 창시한 바흐의 아들 임마누엘 바흐(Cari,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 등이 있다.

 

 

 

 


(2) 오페라의 개혁
18세기 전반을 주도했던 나폴리 오페라는 극적 사실을 경시하고 성악적 기교만을 강조하여 청중을 자극할 수 있는 감각 위주의 음악표현에만 치중하였다.

 

이러한 가수의 화려한 기교위주의 오페라는 극의 진행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막의 진행이 중단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욤멜리(N, Jommilli)와 트라에타(T. Traetta)와 같은 작곡가들에게 개혁의 의지를 일으켜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글루카(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0는 1762년 빈에서 새로운 구성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발표하여 오페라 개혁의 선봉에 나섰다. 이어서 많은 혁신적인 오페라를 발표하여 이러한 개혁정신은 얼마간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지속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퇴색하여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오페라에 있어서 극과 음악이 모두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글루크의 이상은 19세기에야 비로소 베버(C.M Weber), 바그너(W. R. Wagner) 등에 의해서 실현하게 된다.

 

 

 

 



(3)빈 고전파(Viennese Classics)
고전파음악은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초에 걸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서 완성되고, 이어서 베토벤에 의해서 한층 더 충실하게 되고, 또 베토벤에 의해 또 다른 방향으로 인도되었다.

이 대가들은 주로 빈에서 살았는데 그래서 이 완성기의 고전파음악을 빈 고전파음악이라고 한다.

빈 고전파의 첫 번째 대가인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은 화성적 단성율 음악에 크게 성공했고 2개의 대립되는 테마를 제시하여 그것을 발전시키고 다시 테마를 반복 재현하는 소나타형식을 완성시켰다. 또한 교향곡에 있어서 제 3악장에 미뉴에트를 고정 배치하여 제 1악장 소나타형식, 제 2악장 가요형식, 제 3악장 미뉴에트, 제 4악장 론도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의 근대적 교향곡의 형태를 확립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104개의 교향곡, 83개의 현악 4중주곡, 24개의 오페라 《천지창조》를 비롯한 4개의 오라토리오, 14개의 미사곡, 20개의 피아노협주곡, 기타 수많은 종류의 곡이 있다. 한결같이 명浩構?쾌활하며, 전형적인 고전파음악의 성격을 지닌 걸작들이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35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주옥같은 명작을 많이 남겼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독특한 유머 감각과 넘치는 창작적 기지로 시종 일관되어 있어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고전주의 오페라의 최고봉에 올라서 있다.

 

그리고 하이든이 확립한 소나타 형식에 풍부한 색채감과 음악다운 즐거움을 부여하여 자유분방하게 작곡하였다.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음악을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의 작품은 41편의 교향곡을 포함하여 600여곡이 넘는데 모두 모범이 될 만한 것이며, 작곡의 중점을 오페라에 두었으나,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미사곡등 매우 광범위한 작곡활동을 하였다.

베토벤(Ludwing van Beethoven, 1770∼1827)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고전파음악에 풍성한 생명을 주어 알찬 열매를 가져오는 마지막 매듭을 지었으며 낭만파의 새로운 장에 문을 열어 준 교량적 역할을 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베토벤은 신체적 장애로 그의 창작세계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영원불멸한 그의 작품은 그의 생애를 더욱 빛내고 만민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음악의 전 분야에 걸쳐 작곡된 그의 작품에는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개발한 고전형식에서 발전부의 확대, 코다부분의 계속적인 장려한 음악진행, 악장편성의 자유로운 취급, 교향곡의 제3악장에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로의 교체, 강약법의 급변 등 여거 형태의 독창적인 음악적 수법을 창안하여 새로운 진보적 경향을 수립함으로써 낭만주의의 문을 열게 하였던 것이다. 그의 생애를 분류하여 일반적으로 작품시기를 3부분으로 구분한다.

제1기는 1802년경까지로서 이 무렵에는 주로 하이든, 모차르트의 양식을 따르거나 그 영향을 받은 시기로서,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1번과 제2번》, 피아노 소나타 《비창》과 《월광》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2기는 1815년경까지로서, 이 시기의 작품은 그 자신 특유의 힘차고 그 내용이 심각한 것으로, 그의 독특한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시기로서, 교향곡 제3번에서 제8번까지, 《열정》등의 피아노 소나타, 《라즈모프스키》 현악4중주곡, 오페라《피델리오》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3기는 마지막 시기로서 청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후의 영감을 통한 창작의 시기로서,《교향곡 제9번》, 《장엄미사》, 마지막《현악4중주곡》등이 있으며 모두 깊은 사색과 인생을 달관한 종교적 색채가 깃들어져 있는 음악사상 최고의 예술이라 하겠다.


[주요 작곡가]
1)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 Franz Joseph Haydn [1732-1809]
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 Wolfgang Amadeus Morzart [1756-1791]
3) 루드비히 반 베에토벤 -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낭만파음악 :

낭만주의는 19세기의 음악을 지배한 기본적인 지도 이념으로써, 특히 문예분야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 중요한 본질은 새로운 것을 희구하는 욕구, 개성의 존중, 자유에의 태도, 또한 새로운 시대 정신에의 동경등 이다.

 

 따라서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 음악에서 존중하던 보편적인 형식과 이상화된 내용을 버리고 신기한 것을 쫓고

통제적인 울을 벗어나 개성적인 색조를 강화한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로 자기의 음악을 가지고 노래하려는

 정신경향, 또한 시나 희화 등 음악 외적인 분야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을 희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음악의 기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혁을 갖게 되어 고전음악시대의 최고의 이상형식이던 소나타를 대담하게

변형 또는 포기하고 그 대신 자유롭고 유동적인 형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단일악장의 환상적인 소품 형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 선율은 고전음악 시대처럼 마디 수가 배수로 구성되는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인 것이 많아지고

 당김 음이라든가 잇단음표 등을 자주 사용해서 다채로운 변화와 표현의 폭을 넓히고 그 음역도 확 대하고 때로는 비성가적인 음정도 서슴치 않고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리듬도 자유롭게 되어 복잡한 겹리듬을 자주 쓰게 되었고, 화성도 아직 3화음을 원칙으로 하나 보다 자유롭고 변화를 가져와 불협화음을 자주 사용하고 대담한 조바꿈을 하게 되었다.

또한, 관현악 편성도 다양하고 확대되어 새로운 음색을 모색하게 되었고, 편성도 대대적인 편성으로 압도적인 음향을

요구하게 되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은 프랑스대혁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듯이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대두된 시기였다. 프랑스대혁명은 일반 시민계급이 특권계급에 대한 반발이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은 18세기의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이른바 계몽주의 사상과 그 문예사조등에 의해서 양성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계몽주의는 이성에 지나치게 편중하고 전통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19세기에 들어오자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 냉철한 이성보다는 인간 본연의 감정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것보다는 공상적, 목가적인 세계를 동경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먼저 개개인의 인간성을 존중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이러한 경향이 바로 낭만주의인데 예술가들도 자유에 대한 이상과 개인주의 사상에 심취하기에 이르렀고, 음악에 있어서도 역시 낭만적 요소가 깃들기 시작하였다.

고전주의 작곡가들은 형식성을 중심으로 하여 객관적인 아름다운을 추구한데 대하여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무엇보다도 자기표출이라는 주관성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의 감정을 유일한 실마리로 삼고 있었다.

 

또한 산업혁명의 결과 부유한 자본주위 중산층이 형성되어 청중의 범위가 크게 확산되었고, 이러한 부유 중류계층들은

 곧 작곡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일반청중을 대상으로 곡을 써 나갔다. 청중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연주를 하였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여러 형태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폭넓게 독서했고 음악 이외의 다른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다루는 소재는 다양했다.

 

그리이스 신화에서부터 전설과 동화, 자연의 경관, 연인의 사랑 등 모든 것이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소재는 다양하고

풍부하게 음악으로 표현되어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 초기 낭만파
초기 낭만파음악은 베토벤의 중기에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18∼1826)가 1821년에 오페라 《사탄의 마수》를 발표하고 모차르트, 베토벤에세 바그너에 이르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는데,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악기에 의한 상징법, 혁신적인 악기사용,

 독일의 전설을 소재로 사용하는 등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확고한 지반을 구축하였다.

 

또한 베버는 오페라 이외의 작품에서도 강한 극적 효과와 다양한 색채저거 효과를 거두어 낭만적인 경향을 추구하였다.
예술가곡과 즉흥곡으로써 시정이 흐르는 낭만 정신을 이끌어들인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는 600여곡의 가곡 작품에서 그의 끊임없이 샘솟는 선율을 서정시에 붙여, 다양하고 오묘한 화성을 창출하는 피아노 반주와 함께 낭만적인 정감속에 융합하였다.

교향곡, 실내악곡 그리고 피아노곡 등 그의 모든 작품들은 낭만적 풍취가 넘치는 낭만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2)중기 낭만파
낭만의 꽃이 피기 시작한 시기로서 서정적인 작은 형식을 자유롭게 다루며, 자매예술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표현법으로 주관적인 사고로서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멘델스존(Felix Jakob Ludwing Mendelssohn-Batholdy, 1809∼1847)은 시의 세계를 피아노에 도입시킨 '무언가의 창시자'로서, 그의 작품은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대부분은 고전적인 전통에 뿌리박고 있으나 《한 여름밤의꿈》,서곡《핑갈의동굴》,교향곡《스코틀랜드》《이탈리아》등의 표제음악에서 볼 수 있는 회화성은 분명히 낭만적인 꿈과 시(詩)가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기악곡 등으로 독일 낭만주의를 절정에 끌어올린 슈만(Rovert Schumann,1810∼1856)은 그의 피아노 음악에서 서정시와 관계되는 서정성을 밑바탕으로 하여 피아노 페달의 효과적인 사용, 대담한 반음계적 화성, 음형의 다양한 변화 등의 개성적인 표현이 뛰어났다.

 

그의 가곡은 문학과 음악이 가장 접근된 것으로서 아름다운 선율과 다양한 피아노 반주로 시의 이미지에 의한 내적 융합의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피아노의 온갖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피아노곡들이 대부분이며, 모두 아름답고 향기가 높다.

 

대개가 즉흥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꾸밈음과 템포의 변화, 독특한 장식음의 전개 등을 특색으로 하여 시적으로

 표현된다.

이 시기에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 1868), 도니체티(Guetano, Donizetti, 1797∼18480,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68)로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프랑스에서도 오페라가 성행했는데, 낭만주의 사조에 의한 낭만적인 정서가 그들의 작품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3) 후기 낭만파
후기 낭만파 또는 신 낭만파라고도 하는데 이 시기는 낭만주의 음악이 결실을 맺는 시대이며 또는 새로운 음악으로 변화되는 새로운 기운이 있는 시대라 하겠다. 이 시대에는 표제음악의 발달과 함께 교향시, 악극(Music Drama)이 창시되었고, 관현악이 발달하였으며 오페라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EH한 말기에는 무조(撫棗, Atona)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최초의 작곡자는 이탈리아의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이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명수로서,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 새로운 기교를 연주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으며 그의 신기에 가까운 다채로운 표현을 당시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의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환상교향곡》을 발표하여 관현악에 새로운 효과를 시도하여 표제음악을 완성하였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고정관념(Idee Fixe)이란 것을 창안하여 음악의 줄거리 진행에 있어서 특정한 모티브로서 주인공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베를리오즈는 관현악의 규모를 확대시켰고 악기의 그 표현 능력을 극도로 발휘시켰다.

 또 이와 같은 새로움을 헝가리의 대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에 의해 교향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냈다.

 

리스트는 12곡의 교향시를 작곡하였는데 그 어떤 형식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또 악장을 나누지도 않는 음악으로 시적인 묘사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표제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 오페라도 크게 성행하였는데 이탈리아의 가극왕 베르디(Giusepe Verdi, 1813∼1901)는 민족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오페라를 작곡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그는 초기의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을 중시하여 작곡하였으나 당시 낭만주의 문예의 영향을 받은 중기 이후의 작품에서는 극적 진실을 추구하여 극과 음악이 함께 중요시되었고 관현악법도 충실한 명락들을 이루면서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은《리골레토 Rigoletto》《춘희 La Traviata》《아이다 Aida》등의 많은 걸작들이 있다. 베르디 이후에 이탈리아 작곡가는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5∼1945)와 레온카발로(Ruggiero Leoncavallo, 1858∼1919)인데 이들은 신낭만주의 수법을 써서 현실생활의 잔인한 사건을 묘사적으로 다루는 베리스모(Verismo), 즉 사실주의 오페라를 시도했다. 이것은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토스카 Tosca》에 이어진다.

 

그의 작품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인 풍부한 서정적 선율에 탁월한 관현악법으로 《라보엠 La Boheme》《나비부인 Mudame Butterfly》등의 명작을 작곡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비제(George Alexandre Leopold Bizert, 1838∼1875)가 오페라《카르멘 Carmen》을 발표하였다.

독일에서는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악극(樂劇, Music Drama)을 창시하였다. 기존의 전통적인 오페라의 불합리한 점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형식의 음악극을 만들어낸 그는 유도동기(誘導動機, Leit motiv)를 사용하여 극중 인물이나, 특정 장면을 나타냈고, 극의 단절을 방지하기 위하여 '무한선율

(無限旋律, Unendliche Melodie)'를 창안하였다.

 

이런 수법의 악극으로 《크리스탄과 이졸데》가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는데 반음계의 빈번한 사용과 불협화음의 사용 등으로 재래의 기능 화성법의 한계를 넘어 조성의 붕괴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바그너파인 오스트리아의 브루크너(Anon Bruckner, 1824∼1896)는 오르간의 명수이면서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는 등의 창작활동으로 조용하고 종교적 달관을 느끼게하는 음악경지를 이루었고 볼프(Hugo Wolf, 1860∼1903)는 주로 가곡을통하여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였는데 슈베르트 이후의 독일 가곡의 문학적, 예술적 발전을 정상으로까지 끌어 올렸다. 이와같은 진보적인 신낭만주의는 바그너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 음악계 전체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는데, 그 반면에 고전파 음악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작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의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인데 그의 화성이나 선율은 중기 낭만파의 모습을 띠고 있으나 그는 바흐와 베토벤의 정신을 이어받아 독일 고전의 정수를 순수하게 지켰다.

 4개의 교향곡 이외에 관현악곡, 피아노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신고전악파'라 불리울 만큼 절대음악에 온갖 힘을 경주한 작곡가였다.

 

그리고 그밖의 후기 낭만파 음악의 작곡가는 프랑스의 프랑크(C. Auguste, Frank, 1822∼1890)와 생상스(C, Camile Saint-Saens, 1835∼1921), 러시아적인 성격으로 독일 낭만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향곡 《비창》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등이 있고, 가곡과 교향곡 분야에 두루 뛰어나고 특히 거대한 규모의 작품을 쓴

 

 오스트리아의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와 교향시에 표제적인 내용과 그의 독특한 스타일에 근대적인 작곡 수법을 가미하였고 200역곡의 예술가곡을 작곡하여 독일 리트의 전통을 이어받은 R슈트라우스(Richad Respighi, 1879∼1936)등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는 오페라 이외에 기악곡을 중시하여 능란한 관현악법으로 색채감있게 창작활동을한 레스피기(Ottorio Respighi, 1879∼1936)등이 있다.

한편, 이 시대에 파리와 빈, 그리고 런던을 중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경음악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것을 오페레타(Operetta)의 세계였다. 파리에서는 오페라부파, 빈에서는 오페레타, 런던에서는 라이트 오페라(Light Opera)등으로 명칭이 달랐지만, 그 내용은 모두 친숙한 제재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특색으로 삼고 있다.

 

파리에서는《천국과 지옥》을 작곡한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 빈에서는 오페레타와 많은 왈츠의 명곡을 남긴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1804∼1849, 1825∼1899) 부자, 서곡《경기병》으로 유명한 주페(F, van Suppe, 1819∼1895), 런던에서는 설리번(A.S. Sullivan, 1842∼1900)등이 유명하다.

 

 

 

 

 



[주요작곡가]
1)카알 마리아 폰 베버 - Carl Maria von Weber [1786-1836]
2)프란츠 슈베르트 - Franz Peater Schubert [1797-1828]
3) 펠릭스 멘델스존 - Felix Mendelssohn [1809-1847]

4) 프리데릭 쇼팽 - Fryderyk Chopin [1810-1849]
5) 로베르트 슈만 - Robert Schuman [1810-1856]
6) 프란츠 리스트 - Franz Liszt [1811-1886]


7) 리하르트 바그너 - Richard Wagner [1813-1883]
8) 쥬셉페 베르디 - Giuseppe Verdi [1813-1901]
9) 페테르 차이코프스키 - Peter Tchikovsky [1840-1893]
10) 안토닌 드보르작 - Antonin Dvoralk [1841-1904]

 



국민악파음악 :
19세기 말경 러시아, 보헤미아 및 북유럽 등에서 나타난 민족주의 음악인데 음악의 기법상으로는 낭만파음악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표현되어 있는 민족적인 색채는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독자적인 기법에 의해서 한층 더 명확한 민족주의 음악으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국민주의 음악이 맨 처음 활발하게 일어난 나라는 러시아로서 글린카(M.I. Glinka, 1804∼1857)로 러시아 최초의 오페라《황제에게 바친 목숨》을 발표한 이후에 이른바 '5인조'가 국민주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5인조의 리더인 발라키레프(M.A. Balakirew, 1837∼1887)은 오페라 《이고르 공》등을 작곡했고, 오페라《보리스 고두노프》와 모음곡《전람회의 그림》등을 작곡한 무소르그스키(M.P. Mussorgsky, 1839∼1881), 관현악법의 대가로서 《세헤라자데》등을 작곡한 림스키 코르사코프, 그리고 큐이(C, Cui, 1835∼1918)등이 있다.

보헤미아의 첫 번째 국민주의 작곡가는 스메타나(B, Smetana, 1824∼1884)이다. 그는 리스트의 영향을 받아《몰다우》등 6개의 교향시 연작인 《나의 조국》, 오페레타《팔려간 신부》등으로 보헤미아의 국민 음악을 확립하였고, 드보르작(A. Dvorak, 1841∼1904)은 교향곡《신세계》등 음악적 비중이 높은 곡들을 작곡하여 민족음악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 외에 노르웨이의 그리그(E, Grieg, 1843∼1907), 핀란드의 시벨리우스(J. Sibelius, 1865∼1958), 스페인의 알베니츠(I. Albeniz, 1860∼1909), 팔랴(M.D Falla, 1876∼1946)등이 있다.

발라키레프(1837-1910 : 러시아) 작품은 많지 않으나, 관현악곡, 가곡, 피아노곡 등은 서정적인 시적 감정이 풍부하다.
보로딘(1833-1887 : 러시아) 의학 박사로서 교향시 <중앙 아시아의 광야에서>, <이고르공> 등의 걸작을 남겼다.

차이코프스키(1840-1893 : 러시아) 국민 악파 5인조와는 다르게 서구풍의 수법으로 낭만파 음악을 썼다. 그러나 그의 작품 교향곡 <비창>, 무용 모음곡 <백조의 호수>,<호도까기 인형> 등에서는 역시 다채로운 슬라브의 특색을 엿볼 수 있다.
무소르그스키(1837-1881 :러시아) 방종한 생활로 정신 착란이 되어 절명하였으나, 오페라 <보리스고두노프>, 교향시 <벌거숭이산의 하룻밤>,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 등의 걸작을 남겼다.

그리이크(1843-1907 : 노르웨이) 그리이크는 청년시절에 독일로 유학하여 작곡과 피아노를 배워,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나, 귀국 후에는 자기 나라의 풍토와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 음악을 만들어 , 노르웨이 국민음악의 토대를 쌓았다. 그의 음악은 서정성과 북유럽의 향토색을 풍부히 표현한 신선감이 넘치는 작품으로 사랑받는다.

시벨리우스(1865-1957 : 필란드)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있으나, 교향시 <핀란디아>가 유명하다.
스메타나(1824-1884 : 보헤미아) 스메타나는 어릴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 19세 때에 프라하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그 이후로 피아니스트나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작곡 활동을 계속하여, 수많은 뛰어난 작품을 썼다. 오페레타<팔려간 신부>, 교향시 <나의 조국>이 유명하다.

드보르자크(1841-1904 : 보헤미아) 뉴욕 음악원의 초청으로 아메리카로 건너가 그 곳에서 3년간 지냈다. 그 때 작곡한 유명한 교향곡 <신세계>에서는 아메리카 흑인 민요를 교묘한 솜씨로 집어 넣은 것으로, 이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음빛깔이 다채로운 관현악법으로 다루어져서 누구나 좋아하는 명곡이다.

 

 

 



근대현대음악 :

20세기는 새음악 (독. Neue Musik, 라. Musica nova, 동시대음악 Contemporary Music, 현대음악 Modern Music, 전위음악 Anant-grade)의 시대이다. 새로운 음악이란 말은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과거와의 단절이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는데, 이는 조성의 포기(쇤베르크)와 모든 전통적인 '음악' '작품'이라는 개념을 포기한 일(존케이지)이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세기라고 불리는 19세기는 인류의 역사에 일대 변혁을 야기시켰다. 특히 그 후반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수많은 발명과 고안이 이루어졌다.

 

교통과 전파 매체의 발달로 세계는 더욱 작게 만들어져서 오늘의 새로운 창조를 그 이튿날에는 이미 옛것이 되게 함으로서, 인류사에 끊임없는 창조의 불길을 질렀던 것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보급은 이것을 더 빠르게 진행시켰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당연히 미(美)에 대한 인간의 감각에도 변화를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표준적인 심미관(審美觀)이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20세기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들의 공존을 보여 준다.

지나간 세월의 음악, 다른 민족들의 음악, 이런 모든 음악들의 자료가 음반과 녹음기의 발명으로 쉽게 들을 수 있어 모든 음악과 예술에 대한 지식이 확대되어 간 것이다.

 

거기에다 전제정치와 제 1,2차 세계대전에 의한 공포와 재난, 인류전멸의 위험, 경제대공황, 빈부격차, 빈국과 부국의 대립, 동서대립에 의한 긴장상태, 말세론적 위기감, 미래세계에 대한 동경, 공상과학세계 등 급속하게 변화하는 과학문명과 사회의 갖가지 불안감 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가치 기준과 의식 상태가 변화하게 되고 또한 이와 함께 미(美)의 개념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달라지게 된 것이다.

현대음악의 특징인 다원주의와 불협화음은 통일된 세계상의 결핍, 인간과 자연의 조화상실, 인간의 내적 부조화를 증거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예술 중의 하나가 음악이라는 과거의 미적 작고고 원칙은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이제 음악이 무조건적으로 '아름답다'든지 조화스러워야 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진실'해야 하기 때문에 추(醜)할 수도 있다.

 

 '음악'과 '음악예술작품'의 개념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 20세기의 음악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현상들을 관철시켜, 이것이 옛 음악관과 함께 병존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새로운 현상들에는 신고전주의와 같은 보편적 양식도 있고, 수많은 개성적 해결 방안의 것들도 있다. 다양성은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악파, 지향성, 유행성, 모델은 점차 빠르게 변화하여 지속성을 띠지 못한다.
보편적인 구분, 즉 기악과 성악, 오페라, 교향곡, 소나타 등의 구분이 20세기에는 더욱 명확한 것이 못된다. 예외와 혼합, 그리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서양음악이 이국적 요소를 도입하는데 그쳤으나, 20세기는 이국의 문화와 음악으로부터 서양음악의 존립과 표현을 위한 내적 자극을 찾으려고 한다. 특히 인도를 비롯한 동양음악은 높은 정신성과 섬세한 음악 전통으로 매력적 자극제가 되고 있다. 작곡가들은 새로운 것을 연주 기술면에서도 찾았다.

 

이제까지의 악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20세기의 기본사고에 따라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서 해당 악기의 원래 목적을 크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세계 곳곳의 악기를 구입하거나 제작하여 사용하거나 새로운 악기를 발명하기도 하여 새로운 음향을 찾는다.

 

 


1900년 전후(前後)의 음악
후기 낭만의 1850년 이후 리스트와 바그너의 작품에서 조성(調性, Tonality)은 더욱 애매해져 무조적인 경향으로 점차 나아갔다. 1890년경을 낭만주의 음악의 해체로 보고 있는데 그 후 그 유산을 풍부하게 받으면서 또는 그 반동으로 새 양식이 대두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문학과 회화 등 자매예술과의 영향도 많이 나타난다.

 

(1)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프랑스의 드뷔시가 창안한 인상주의 음악은 낭만주의에서 현대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악파이다. 이 음악은 프랑스의 인상파의 회화와 상징문학에서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인상파 회화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중시하는 야외 회화를 주장하였고, 형태를 그리는 선보다는 색채와 분위기적 인상을 중시하였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와 흡사하여 선율이나 형식의 명확성 대신에 감정을 강조하는 색채적 음악을 썼다. 자연계의 여러 가지 현상,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외계로부터의 자극에 대하여 예술가가 받은 순간적인 감응이며 응답이다. 그러므로 인상이란 외계의 묘사가 아니라 한번 마음에 자극된 내적인 인상을 결국 주관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음악의 다이내믹한 감동보다는 음빛깔, 뉘앙스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한다. 기법상으로는 화음진행이 색채적이고, 연속적인 불협화음과 선법, 5음음계등 예외적인 음계 등을 사용하였다.

드뷔시는 1892년에 말라르메(S, Mallarme, 1842∼1898)의 상징시에 작곡한 《목신의 오후에서의 전주곡》으로 인상주의 수법을 확립시켰다. 그 외에도 관현악 작품《녹턴집, Nocturnes》《영상 Imagine》《바다 La Mer》가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품들이고, 팔랴(M, Falla)의 《스페인 정원에서의 밤들》과 레스피기(O. Respighi)의 《로마의 소나무》등이 있다.

 

 

 



(2) 원시주의(Primitivism)
19세기말 극도의 문화적인 성숙에 따른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동경에서 온 것이다.

이국적인 제재를 음악에 도입하여 새로운 것을 표현하려 하였다. 원시음악은 당시 음악의 지나치게 세련된 연약한 음악에 대해서 원시 예술의 힘찬 원기를 되찾아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음악이라 하겠다.

 

기법상으로는 일정한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하거나 홀수박자 또는 폴리리듬(Polyrhythm)등을 사용하였고 강하고 자극적인 색채 감각 등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스트라빈스키(I. Stravinsky)로서 그의 3대 발레인《불새》《페츠루시카》《봄의 제전》등의 작품이 대표작이다.

 

 

 

 

 

 



(3) 표현주의(expression‎ism)
20세기 초반에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주로 비엔나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외적인 형태의 표현으로서의 인상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내면적인, 특히 잠재의식적인 일면을 표현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정치정세는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어 유럽사회는 불안에 차고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웠으며 정신은 안정을 잃고 있었다. 쇤베르크 등의 작곡가들은 고착된 표피성, 이중윤리, 순응주의, 허구적 달콤함으로
특징이 지워진 시민사회를 거부하고 도전적인 진실, 깨어 있는 감수성, 불편함까지도 감수하는 철저함을 추구한다.

표현주의는 극단성, 대조성, 거의 광란에 가까운 격정을 많이 보여주는데 그후 이러한 극단적인 것은 새로운 음악의 본질이 되어 고전적 균형을 철저히 기피하게 된다. 표현주의 기법의 특징은 철저히 주관적이고, 멜로디는 무조(無調, Atonality)이고 화성은 극단적인 불협화음, 거칠게 연주되는 악기들의 음색대조 등을 들 수 있다. 표현주의 작품으로는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와 교향시곡《펠레아스와 멜리장드》등을 들 수 있다.

 

 

 

 


(4)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신고전주의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주관적인 정서의 과잉, 방대한 관현악의 편성, 표제음악적인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등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신고전주의는 객관성과 형식성을 보이는 낭만주의 이전의 음악관념으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18세기 고전주의 양식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고전주의의 기본적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이전의 간결한 형식미를 추구하지만 예기치 않은 전조, 선율의 혼합, 그리고 강렬한 화성, 불협화음 등의 20세기 성향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서는 스트라빈스키(I. Stravinsky)의《풀치넬라》, 《피아노와 목관악기를 위한 협주곡》, 《시편 교향곡》, 힌데미트(P. Hindemith)의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4개의 협주곡 op.36》, 그리고 프로고피에프(S. Prokofiev)의 오페라《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피아노 협주곡》,《고전 교향곡》등이 있다.

 

그리고 바르토크(B. Bartok)는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 어법으로서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 말하자면 그는

민족적 신고전주의 작곡가로 간주할 수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미크로코스모스》,《현악기, 타악기와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등이 있다.

 

 

 

 

 

 



 

 

 

 

 

 

 

 

 

 

 

 

 

(5) 12음주의(Dodacaphonism)
12음기법으로 작곡한 음악을 12음음악이라 하는데 이는 쇤베르크가 종래의 조성 음악에서 벗어나 철저한 무조성의 체계화를 시도하여 창조한 것이다.

 

이 기법은 한 옥타브 안에 있는 반음을 포함한 12개의 서로 다른 음을 1회식 일정한 순서에 따라 사용하는 것인데 먼저 세리(Serie)라고 하는 음렬(音列, Tonreihe)을 만들어 이 세리를 역행, 전위, 역행전위 등으로 진행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전통음악의 음조직을 해체하고 12개의 음을 모두 평등한 가치로서 독립시켜 새로운 음의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장대한 곡에 이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 음악은 쇤베르크의 제자 베베른과 베르크에 의해서 계승되었고 제2차 대전 후에는 여러나라에 보급되어 더욱 새로운 발전을 보였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쇤베르크의《관현악을 위한 변주곡, op.31》, 오페라《모세와 아론》, 베르크의《바이올린, 피아노, 13개의 관악기를 위한 실내합주곡》, 베베른 작품《칸타타 No.I, op.29)등이 있다.

 

 

 

 

 

 

 

 


 

 

 

 

 

 

 

 

 

 

 

 

 

 

 

 

 

(6) 신즉물주의(Neue Suchlichkiet, 新卽物主義)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을 철저히 하려는 것으로 표현주의에의 반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표현주의가 강한 주관성에 기초하고 있는데 대하여, 신즉물주의는 대상물의 본질에 대한 냉철한 관찰과 정확하나 묘사를 의도하는 예술운동으로서, 다분히 실용성이 인정되는 운동이었다.

 

특별한 경우와 목적을 위해 작곡되어 청중과 연주가의 거리감을 좁혀서 음악적인 이해를 보다 쉽게 하려는데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전위적 기법보다는 단순한 자료를 사용한다. 힌데미트(P. Hindemith) 의 《플린의 음악제》, 《우리는 도시를 세운다》, 영국왕 조지5세가 서거하였을 때 작곡한 《장송곡》이 있다.

 

 

 

 

 


1945년 이후의 음악

제2차세계대전이 1945년에 끝나자 지금까지 폐쇄되었던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길은 다시 열리게 되었다. 그런 제대로 궤도에 올라 새로운 양식의 예술 활동이 나타나기는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직후에는 반낭만적인 사조가 강한데 비해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메시앙과 같이 르네상스와 주세기의 기교의 부활을 꾀하는 작곡 활동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는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양식과 기법에 의한 1950년대부터의 새로운 음악을 좁은 의미에서 아방가르드(Avant-grade,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 구체음악(Musique Concrete, 具體音樂)
1948년에 프랑스의 파리 방송국에서 쉐퍼(Pierre Shaeffer, 1910∼1984)가 처음 시도한 이후 1950년 파리에서 최초의 음악회를 가졌던 새로운 표현 방법이다.

 

이것은 악보에 음을 적는 대신에 음악이나 말을 직접 녹음시켜서 연주한다.

문닫는 소리, 자동차 소음, 병따는 소리 등 현실에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음향을 녹음하여 테이프에 담고 편집한다.

 

녹음한 것들을 서로 겹치게 하거나 테이프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을 미국에서는 테이프 레코더 음악(Tape Recorder Music)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구체음악은 착상부재가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을 받은 후 전자음악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8) 전자음악(Elektronische Music, 電子音樂)

최초의 전자음악 스튜디오는 1951년 쾰른의 북서 독일 방송국에 설치되었는데 그 책임자는 아이메르트(H. Eimert, 1897∼1972)였고, 이어 밀라노, 파리, 미국 등으로 확산되어 갔다.

전자 기술적으로 확성시키기만 하는 음악은 여기에 속하지 않고 전자로 만들어낸 음향이나 작품만을 전자음악이라 한다.

 

이 음악은 구체음악처런 전자음향 발전기를 통하여 만들어진 소리를 녹음 테이프에 집어넣고, 그 테이프를 편집하여 얻어진 소재로 구성된다. 발음기로 나온 순음을 겹치게 하고, 뛰게 하고, 메아리지게 동시적으로 울리게 하는 등의 여러 방법으로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저자음악과 일반적 소음을 결합시키기도 하고 준비된 녹음 테이프와 연주자가 같이 연주하기도 한다. 이것은 1960년대의 신디사이저(Electronic Music Synthesizer)의 등장으로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전자음악을 행하고, 후에 재결합하고, 혼합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발전하여 새로운 전자 음악의 시대로 가고 있다.

전자음악은 아이메르트와 베이어(R. Beyer)등이 시작했으나 전자음악의 권위자는 스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이라 하겠다. 그의 작품으로는 《전자음악》,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콘카테(Konkate)》, 《소년의 노래》등이 있다.

 

 

 

 

 

 



(9)우연성의 음악(Music of Chance Operation, 偶然性)
불정확성 음악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전통적 음악 개념으로는 음악이라고 보기 어려운 20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아방가르드이다. 이 음악은 일정한 법칙이나 제한이 없다.

 

 작곡가는 기존하는 음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련의 기호 같은 음표를 대신하기도 한다. 연주자는 작곡자의 의도를 자유롭게 이해하고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물론 연주는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고 작품은 녹음을 해야만 보존될 수 있다. 미국의 존 케이지(John Cage, 1912∼)와 스토크하우젠은 우연성 음악을 많이 실행하였다.

존 케이지의 《상상적인 풍경화, op.4)는 12개의 라디오를 각각 다른 주파수에 맞춰 놓고 두 사람의 연주자가 나와 주파수와 음량을 조절한다.

1954년에 발표한 그의 작품 피아노곡《4분 33초》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악기 앞에 앉은 채로 아무 연주도 하지 않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피아노 뚜껑을 닫고 퇴장한다.

 

말하자면 그 시간이 들려오는 잡음이라든가 듣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 고동소리 그 모두가 다 음악이라는 것이다. 스토크하우젠의 작품 《피아노곡 11번》은 19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6가지의 다른 빠르기와 강약, 여러 가지 스타카토와 레가토 등으로 순서 없이 연주한다.

타악기를 위한 작품《싸이클》에서는 악보가 원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연주자는 어느 방향에서 시작해도 결국 시작 지점으로 오게 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12음기법 음악과 같이 너무나 치밀한 작곡법에 대한 반발과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세계 정세의 불안과 긴장의 연속 등에 기인하여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관현악의 어떤 파트에 대하여 대략 지시만 해주고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작곡법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재료, 테크닉, 합리주의가 매력을 상실하고 예술과 음악에 새로운 것에 대한 추진력이 쇠퇴한다. 50∼60년대의 고립적 성향 대신에 청중과 공동체에의 접근이 시도된다. 주관적 감정은 나르시즘적 성향까지 띠는 일이

 많고, 사회와도 긍정적으로 연결된다.

 

교향곡, 현악4중주, 오페라 등과 같은 옛 장르들과 기존 장르들의 복합형태가 선호된다.

 이 음악들은 50∼60년대의 혼란하고 다양성을 보이던 아방가르드 음악처럼 많은 말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음악의 모델은 고전 음악이 아니고 낭만주의 음악에 가깝다. 하지만 다양한 개성은 그대로 존속된다.

항상 좋은 질의 음악은 오늘날도 어떤 프로그램이나 악파를 통해 나오지 않고 작곡가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요작곡가]
1) 클로드 애시유 드뷔시 - 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
2)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Sergei Rakhmaninov [1873-1943]
3) 아놀트 쇤 베르크 - Arnold Schonberg [1874-1951]
4) 프리츠 크라이슬러 - Fritz Kreisler [1875-1963

(출 처)

 

\

 


 

 

 


제1악장 Adagio ma non ta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