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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Stravinsky -L'oiseau de feu (The Firebird Suite)

 

 

 



발레 [불새] 공연장면


 

 

 



Moscow Radio Symphony Orchestra
Vladimir Fedoseev, Conductor

 


<이어듣기는 14. Disappearance of the Palace - End부터>

 

 

 

 

 


Stravinsky / L'oiseau de feu (The Firebird Suite)

 

 

track list....

1. Introduction

2. Kashcheis Enchanted Garden

3. Appearance of the Firebird
4. Dance of the Firebird
5. Tsarevich Captures the Firebird


6. Supplication of the Firebird
7. The Princesses Game
8. Sudden appearance of the Tsarevich
9. Khorovod
10. Tsarevich enters Kashcheis Palace

11. Magic Carillon
12. Dance of Kashcheis Retinue

13. Infernal Dance
14. Disappearance of the Palace - End

 

 

 

 

 

 

[제1장]


카체이라는 마법의 왕이 사는 궁궐의 정원에서 한 왕자가 불새를 잡았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는 불새를 놔 주고 보은의 표시로 깃털을 하나 받는다.

숲 속 동물들의 소리, 메아리소리, 그리고 먼 곳 천둥소리와 날아오르는 새소리가 들린다.
무대에 있는 한 그루의 나뭇가지에는 금빛 과일이 가지가 휘어질 듯이 달려 있다.
그리고 새 한 마리가 무대 뒤쪽을 향해 날아간다.


그때 사냥꾼 차림의 왕자가 활을 들고 나타난다.
날아오르는 소리와 함께 빛을 발하면서 불새가 날아가자 왕자는 시위를 당긴다.
왕자는 재빨리 붙잡고 불새는 도망치려다 지쳐서 깃털 하나를 내놓고 풀려난다.

 

 



[제2장]


숲 속 깊숙한 곳에 이어진 계단을 왕자가 올라가자 구슬픈 음악이 들리면서 12 명의 시녀를 거느린

공주를 만난다.
그 들은 마법의 왕 카체이에게 볼모로 잡혀있는 처지였다.

소녀들이 마법의 나무를 흔들자, 나무에 매달린 금사과가 떨어지고 왕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공주는

이곳이 마법사의 성이므로 빨리 떠나라고 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왕자는 떠나려 하지 않는다.
갑자기 숲이 환해지면서 마귀 무리가 몰려온다.

그들은 왕자를 붙잡고 마왕이 오기를 기다린다.
곧이어 마법사가 나타나 마법을 걸어 돌로 변하게 하려 하지만 왕자가 불새의 깃털을 흔들자

깊은 잠에 빠져버린다.

 

 

 



 

[제3장]

불새가 남긴 깃털의 도움으로 마왕을 물리친 후 마왕의 목숨이 보존된 알을 발견하여 깨어버려

마왕을 물리친다.
무대가 밝아지면서 마법사의 영토였던 숲은 사라지고 불새도 사라진다.
그리고 아름다운 소녀들이 늘어선 가운데 왕자 이반이 사랑했던 공주가 나타난다.
그후 왕자는 왕으로 추대되고 공주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불새] 발레 안무가 미하일 포킨


 

 

무명 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발레음악 <불새>스트라빈스키의 나이 28세 때

작품이다.
작곡가 경력 초기의 최고 걸작에 속하는 이 작품은 근대 무용예술의 거목 디아길레프가 새로 창단한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


러시아의 유명한 전설에 기초하고 있어 러시아 민요 선율들을 풍부하게 들을 수 있으며, 격정적인
감정 분출, 현란한 색채와 약동하는 리듬이 가득하다.
로열 발레가 완벽한 춤의 세계를 보여주며, 특별히 `결혼`의 안무는 니진스키의 여동생인 전설적인
안무가 니진스키의 것에 따르고 있는데 정말 황홀하다.


러시아의 민화를 테마로 해서 불새의 도움으로 마왕에게  왕녀들을 구출하기까지의 경위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당시 아직 무명이었던 스트라빈스키는 이 발레음악으로 일약 온 유럽의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그 색채적인 관현악법과 리듬의 다양함이 20세기의 음악에 끼친 영향은 크다.

 

 

 




 

 

 

 

 

 

 

 

스트라빈스키, 불새(L‘oiseau de feu)

프랑스에서 20세기 음악의 싹을 틔운 사람은 클로드 드뷔시(1862~1918)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8년 전이었던 1910년에 한 러시아 청년이 파리에 진출해 <불새>(L‘oiseau de feu)라는 발레음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합니다.

 

드뷔시보다 스물 살 연하였던, 당시 28세의 청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였지요.

청년 시절의 그는, 특히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드뷔시의 인상주의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트라빈스키도 훗날 “우리 세대의 음악가들은 드뷔시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하기도 했지요.

 

‘나’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 세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참 스트라빈스키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파리에 머물던 스물여덟 살의 스트라빈스키는 어느 날 드뷔시의 집을 방문해 환담을 나눴던 모양인데, 당시의

 만남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드뷔시는 사진 왼편에 서 있고 스트라빈스키는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오른편의 커튼 사이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와

스트라빈스키의 손과 무릎을 비추고, 거실 바닥에 사각형의 햇살 무늬를 선명하게 새겨놓고 있습니다.

 사진의 핵심은 ‘빛’일진대, 이렇게 빛을 잘 활용해 한 장의 멋진 사진을 만들어낸 그날의 ‘사진사’(?)는 누구였을까요?

 

재미있게도 에릭 사티(1866~1925)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날 드뷔시의 거실에서 20세기 초반의 ‘문제적 음악가’ 세 명이 모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드뷔시의 인상주의를 뛰어넘어 러시아적 색채와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훨씬 화려하고 근육질이지요.

 

스트라빈스키도 만년의 회고에서 자신이 지닌 러시아적 유전자에 대해 털어놓고 있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서 활약했던 음악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나이스가 쓴 <스트라빈스키, 그 삶과 음악>

(이석호 옮김, 포노)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서문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평생을 러시아어로 말하고 러시아어로 생각한,

체질적으로도 기질적으로도 러시아인이다.

 어쩌면 내 음악은 그러한 러시아성을 명백히 드러내지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배경과 숨은 본질에는 러시아성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게다가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의 유명한 성악가였던

표트르 스트라빈스키(1843~1902)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을 대표하는 베이스바리톤이었지요.

덕분에 어린 스트라빈스키는 아주 일찌감치 오페라와 발레에 흠뻑 빠질 수 있었습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도 종종 공연했지만 주요 레퍼토리는 대개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이었습니다.

 미하일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음악이 일찌감치 스트라빈스키의 몸속에 저장됐던 것이지요.

 

물론 그것만이 아닙니다. 드뷔시의 인상주의적 색채감과는 맛이 다른, 스트라빈스키의 좀더 강렬한 색채감은 스승이었던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서 비롯하는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른바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이었지요.

 

 ‘러시아 5인조’에 대해서는 제가 차이코프스키를 언급하는 글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단행본 <더 클래식 - 슈베르트에서 브람스까지>(2015, 돌베개)에도 그 내용이 등장하지요.

이 그룹에 속한 다섯 음악가의 이름은 발라키레프, 보로딘, 큐이,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입니다.

 

그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던 1868년에 음악비평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가 ‘모구차야 구치카’(강력한 소수파)라는 이름을 붙여줬지요.

훗날 ‘러시아 5인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서구와 다른 러시아적 음악을 지향했던 까닭에 ‘국민음악파’라고도

 불립니다.


 
원래 직업이 해군장교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러시아 5인조’ 중에서도 관현악법의 대가로 유명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서구에서 유입된 음악이론들, 이를테면 화성학이나 대위법 등의 전통에 대해 불편해했던 것과 달리,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비록 서구에서 왔다 하더라도 음악적 기초에 대한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러시아 5인조’ 중에서 유일하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교수를 지냈고, 관현악법 교재를 직접 집필해서 많은 학생들이 그 책으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자주 연주되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은 <스페인 기상곡>이나 <세헤라자데> 같은 곡들이지요. 독일ㆍ

오스트리아 음악, 또 프랑스 음악 등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이국적인 정취와 화려한 색채감이 두드러지는 곡들입니다.

 

말하자면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에서 가장 관현악에 능통했던 음악가를 스승으로 만났던 것이지요. 스트라빈스키는

아버지 표트르의 강요에 의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대에 진학했지만 그렇다고 음악에 대한 공부를 접지는 않았습니다.

 

법대를 다니면서도 ‘음악 과외’를 했는데, <봄의 제전>을 설명하는 5월 26일자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도 썼듯이 당시의 선생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였던 표도르 아키멘코(1876~1945)였습니다.

또 바실리 칼라파티(1869~1942)에게서도 음악을 배웠는데 그도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배운제자였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인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처음으로 만난 때는 1902년이었습니다. 법학대학 동기였던 블라디미르가 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만남이 이뤄졌던 것이지요. 한데 이 해는 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 표트르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였는지 스트라빈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흠모했던 대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마치 아버지처럼 따르면서 음악을 공부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1908년 봄에 그 스승마저 타계하고 나자 스트라빈스키는 매우 애통해했다고 합니다.

 

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거기까지가 스트라빈스키의 ‘수업기’라고 해야겠습니다. 이 글의 맨 앞에서 언급한 프랑스 파리행은 본격적인 음악가로서의 행보를 뜻합니다.

물론 그것은 당대의 공연 흥행사였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1872~1929)의 예민한 촉수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에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의 초기작이었던 <불꽃놀이>

(Feu d‘artifice)와 <환상적 스케르초>를 초연하는데, 그것을 마침 디아길레프가 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디아길레프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인 어느 젊은 작곡가의 이야기를 이미 전해 들었겠지요.

 

그의 음악을 눈과 귀로 확인한 디아길레프는 파리에서 공연할 발레 <불새>의 음악을 스트라빈스키에게 의뢰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스트라빈스키에게 작곡을 맡겼던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음악사에서 이름이 좀 희미해진 두 명의 러시아 작곡가(아나톨리 리아도프, 니콜라이 체레프닌)에게 의뢰했으나 작곡이 제대로 진행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디아길레프의 머리에 전구처럼 불이 켜졌던 작곡가가 ‘아하! 스트라빈스키’였던 것이지요.

공연을 불과 6개월쯤 남긴 상태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에 몰두합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기한 안에 작곡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이 중요한 작품에서 당대의 대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기뻤다”라고 회고합니다.

 

 

1910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발레 <불새>((L‘oiseau de feu)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미하일 포킨

(1880~1942)이 대본과 안무를 맡은 발레 <불새>는 러시아의 신화와 민담들을 뒤섞어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지요.

 

간단히 말해 왕자 이반이 불사의 마왕 카슈체이의 정원에서 불새의 도움을 받아 마왕을 죽이고 마법에 갇혀 있던 공주를 구출해 아내로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발레의 성공으로 인해,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곡가가 될 수 있었지요.

 

그는 1911년, 1919년, 1945년에 발레를 떼어낸 관현악 모음곡으로 이 음악을 손질합니다.

그래서 <불새>는 전막 발레 외에도 세 개의 모음곡 버전으로 존재하지요. 지휘자마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 그중 하나를

 선택해 연주하곤 합니다.

관현악 모음곡으로 출판된 것 중에서는 1919년 버전이 자주 연주되는 편입니다. 

 

 

음악은 한마디로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구현된, 러시아풍 의 낭만주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지요.

마법의 걸린 밤의 정경을 묘사하는 음산한 서주에서부터 슬라브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러시아에서 초자연적인 판타지를 오페라와 발레의 소재로 쓰는 일은 서유럽보다 흔했지요. 스트라빈스키도 <불새>를 작곡하면서 세대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나 봅니다.

 

스승인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곡한 두 편의 오페라,

<불사의 카슈체이>와 <황금닭>에서 영향을 받았음직한 음형들과 기악적 테크닉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 러시아 민요의 선율들도 차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발레의 1막에 등장하는 이반 왕자를 묘사하는 선율이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파리의 청중을 의식한 듯한, 인상주의풍의 선율도 간간히 튀어나옵니다.

그렇게 스트라빈스키는기존의 음악적 재료들을 자신의

오선지 속으로 끌어들여, 다른 이들은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로 화려한 관현악의 향연을 펼칩니다.

 

글/문학수 경향신문

 

발레 뤼스 멤버들 사진. 1910년경. 중앙 뒤쪽에 니진스키(좌측 4번째), 스트라빈스키(좌측 5번째),

디아길레프(좌측 7번째)의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