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과 시사

박근혜 그리고 민간인 최순실의 실세 증거

 

 

 

 

 


정치에 관심도, 아는 것도 없는 내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한 나라의 대통령도 미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늘의 마음을 받고 태어나, 큰 일을 위해 살신성인하는진정한 인재-영웅이 없는 현 시대에 더욱...)

하루 세 번 밥 먹고, 양치질하고,  고민하고, 잠자고...인간이 동물과 다른 수준 높은 존재의 필요 조건은,

바른 정신과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하고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수많은 사람들과 공동체-국가를 위해 앞장 선 자리에 있는 사람은,하늘-신의 마음인 높고 강한 정신과 최고의 덕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자연과 우주가 그러하듯...보이지 않는 어떤 흐름이 지향점을 향해 계속되고 있다,


신비와 미지의 세계인 우주와 신의 비밀은 알 수 없지만...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의 수많은 별들이 움직여 나가듯...

신과 우주는 긍극적 어떤 목표를 향해 계속 생각하고 움직인다.


 

     
 

  

    

   모바일 작성글

 

 

 

 

 

 

민간인 최순실의 실세 증거

 

 

1) 해외 순방 의상/ 극비인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을 한달 전 인지
2) 공직자인 청와대 행정관이 최순실의 심부름을 맡음
3) 너무 많아...

 

 



최씨 가족과 박근혜 인연


140년 전 박근혜 모친 육영수 사망 직후 최태민 (최순실 부)은 박근혜에게 수차례 편지를 썼다.

 '육 여사가 자신에게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고 현몽했다'는 내용. 박근혜는 최태민이 설립한 정체불명의 구국여성

봉사단의 명예총재가 된다.

2) 1977년 김재규 중정부장은 최태민이 박근혜와의 친분을 내세워 정계, 재계 등과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 공사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했다고 박정희에게 보고한다.

현재 약 50억원에 달하는 금액. 최태민은 스님 출신의 사이비 교주,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을 가졌다.

 

박정희는 '최태민 거세', '구국여성봉사단 해체', '딸에게 접근 금지'를 지시하지만 박근혜는 최태민의 결백을 주장하고

 결국 처벌하지 않는다. 김재규는 이 사건도 박정희 암살의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3) 1982년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 최태민 재접근. 박근혜의 두 동생인 박근령과 박지만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 탄원한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과 사위 정윤회도 육영재단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박근혜는 결국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4)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박근혜에게 영남대 재단을 맡기는데 학생들의 반대 시위로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이사직을

 맡게 된다. 영남학원 재단 운영을 좌지우지하던 4명 중 2명이 최태민의 인척으로 재단 실세인 조순제는 최태민 처의

전남편 사이 아들이고, 영남대 병원 비자금 총책 손윤호는 조순제의 외삼촌이었다.

 

박근혜가 이사로 있는 동안 영남대는 부정입학, 횡령, 병원 비리로 관선 체제 들어선다.


5) 1994년 최태민 사망 3년 후 박근혜 정계 입문. 정윤회가 박근혜의 비서실장이 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은 '최태민 관련 의혹'을 문제 삼았다.

이명박은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이 없겠느냐'고 했다.

6) 승마판정 시비 사건으로 인해 최씨 가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판정시비를 조사한 문체부 체육국장과 실무과장이 청와대 의중과 다른 보고서를 올리자 박근혜는 이들을 '나쁜사람'이라고 말했고 두사람은 좌천된다.

7) 최순실은 아버지 최태민의 수법을 복기한다.

미르재단, 케이 스포츠 재단. 청와대는 최순실과 박근혜의 친분 관계를 부인하려 했으나 최순실이 박근혜의 연설문,

국무회의 자료 등을 도맡아 관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통령 연설문 유출 경로


정호성 제 1부속 실장이 매일 비선 모임(국정 자문 모임)에 30센치 두께의 '대통령 보고 자료'를 전달. 비선 모임은

둘에서 다섯명 정도가 최순실의 논현동 사무실에 모여 회의한다.

최순실, 차은택(전 씨에프 감독), 고영태(기방업체 대표), 이성한(부동산 디벨로퍼)가 회원. 이 회의를 거쳐 박근혜에게 전달

 

 

 

© 뉴스타파 캡처

 

 

정윤회 파문 순서 정리

 

1.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

1) 나홀로 인사, 불통 인사, 밀봉 인사, 수첩 인사라는 수식어를 들어온 박근혜의 인사. 2012년 12월 취임한 박근혜가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도 모르게 깜짝 발표한 인사 1호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의원이 시작. 새 정부 첫 총리로 지목한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는 병역, 부동산 논란.

 

안대희 전 총리 후보는 고액수임료 수수문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친일논란, 교육부 장관 후보는 제자논문 대필

논란, 문화부 장관 후보는 음주운전과 사생활 문제. 이로 인해 청와대에 인사 검증 시스템이 있기는 하냐는 비판이 커짐. 인사 참사를 책임질 배후로 두군데가 지목됐는데 하나는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하는 김기춘 비서실장이고 또 하나는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총무 비서관, 정호성 제 1부속 비서관, 안봉근 제 2부속 비서관이다.

 

이들은 박근혜의 의원 시절부터 오랜 보좌진이다

2)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청와대 감찰 보고서'에서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박근혜의 핵심 보좌진 그룹 10여명을 '십상시'리고 부르며 이들을 실세로 지목.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 내부 문서를 정윤회를 비롯한 외부 인물에게 전달했다는 내용, 공식 직책이 없는 정윤회가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 등을 찌라시에 흘려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포함. 이로써 의혹이었던 정윤회 국정 개입이 공식 문서로 사실화.

3) 문고리 3인방은 대통령 비서실에 소속된 비서관들이다. 1998년 박근혜가 대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 후 쭉 측근에서 보좌해왔다. 이재만 총무 비서관은 청와대 인사와 재무(살림살이)를 총괄. 정호성

 제 1부속 비서관은 정무 전반과 대통령 일정, 보고서를 전담.

대통령에게 보고 올리려면 정호성 비서관을 거쳐야 함.

 

안봉근 제 2부속 비서관은 수행과 경호 책임. 잦은 민원을 넣는 사람도 담당. 박근혜와 접촉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림.

4) 2015년 8월 윤창중 성추행 사태로 허태열 비서실장이 인사 실패의 책임으로 물러남.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보좌진 그룹이 나뉘면서 두 그룹 간에 마찰이 생겼다'고 말했다.

즉 허태열 전 실장과 3인방의 충돌. 허태열 전 실장에 이어 취임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부속실로 쏠리던 힘을 비서실로

당겨와 균혀을 맞췄다는 평을 듣는다.

5) <세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3인방이 직책 상으로 상사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을 꾀한 것.

이 구상에 외부세력이자 민간인인 정윤회가 개입되었다는 것. 정윤회는 1998년 박근혜 의원의 개인비서실장을 맡았고

 3인방을 비롯한 보좌진 체계를 잡은 후 2007년 공식적인 직책에서 물러났다.

 

청와대는 즉각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동향 파악차원에서 보고받은 것'이며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

정윤회도 3인방과 연락하지 않는다고 인터뷰함. 박근혜는 사흘만에 직접 진화에 나서며 '문건은 루머이고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세계일보> 보도를 비판. 그러나 정윤회가 3인방과 연락한 것으로 밝혀짐.

 

박관천 경정의 직속 선임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은 첩보가 맞을 것이라고 인터뷰한 후 정윤회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문자 메시지도 보냄.

 조응천 전 비서관이 이를 무시하자 다음날 이재만 비서관이 정윤회의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고 함. 

6) 조응천 전 비서관은 검찰 출신으로 과거 박지만 eg 회장의 마약수사 검사로 인연을 맺었다.

문고리 3인방이 친인척쪽에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는 데 불만을 품은 박지만 회장이

공직기강비서관을  움직여 '정윤희 계파'를 저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고 함.


-출처 한겨례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이제야 진짜 핵심이 나타난 것 같다.” 최근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

(최서원으로 개명)를 두고 한 일간지 기자가 한 말이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중에서도 핵심 인사로 꼽힌다.

2014년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박관천 전 경정은 최씨를 현 정권의 권력 서열 1위로 꼽았으며,

누군가는 최씨를 ‘박 대통령의 오장육부’라고도

표현했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베일에 가려진 ‘비선 권력’에 대한 의혹에 시달렸다.

정권 초기에는 ‘십상시’라 불리는 박 대통령 측근 보좌진의 전횡(專橫)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다.

 2014년 말에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할 때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정씨와 관련된 의혹은 이를 다룬 청와대 내부 문서가 나오면서 정국을 뒤흔들었다.

정씨의 부인이었던 최순실씨는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한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로 더 유명했을 뿐,

 정권과 관련된 부분에선 남편인 정씨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았다.

 

하지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으로 인해 최씨가 진정한 비선 실세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태민 목사의 5녀인 최순실씨는 1956년생으로, 1952년생인 박근혜 대통령보다 네 살 아래다. 박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와는 1995년 결혼해 2014년 이혼했으며, 1996년 딸 정유라씨를 낳았다. 정윤회씨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박 대통령의 보좌관을 맡기도 했다. 

 

최씨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최씨의 아버지인 최 목사로부터 시작됐다. 최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딸인 최씨도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이후로 최씨는 박 대통령의 행적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최씨와 박 대통령의 동행이 공식적으로 처음 확인된 것은 1979년 6월10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이다.

 

당시 단국대학교 대학원생이었던 최씨는 이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 단체의 총재였다.

최태민 목사는 이 단체 본부장으로서 총괄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당시 행사에 함께 참여했으며, 최씨는 박 대통령 바로 옆에서 행사 내내 함께했다.

당시 경향신문을 통해 최씨가 새마음 제전에서 개회선언을 했다는 내용도 알려졌다. 

 

최씨가 박 대통령과 관련된 일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 때는 1990년 일어난 소위 ‘육영재단 사태’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박 대통령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칩거의 시간을 보내며 육영재단의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최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옆을 지키며 육영재단 일도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1990년 육영재단 직원들과 육영수 여사 숭모회 회원들이 재단 운영에 불만을 품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진정을 넣는 일이 발생한다.

 

경향신문 1990년 11월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사태의 원인은 최씨였다. 경향신문은 ‘현재는 폐간된 《어깨동무》 《꿈나라》 등 어린이 잡지 편집에 딸 순실씨가 간여하는 등 육영(育英)이 목적인 어린이 회관을 수익 사업체로

전환시키려 한 데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최씨가 육영재단에서 발간한 어린이잡지 《어깨동무》의 잡지 편집에 개입하고,《어깨동무》의 수익 일부를 챙겼다는 의혹이 일었다. 결국 이 사태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후 1997년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면서 최씨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최씨 본인이 아닌 남편 정윤회씨를 통해서였다. 정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현재 박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청와대 비서관을 발탁한 이가 정씨다.

정씨는 공식적으로는 2004년까지만 박 대통령을 보좌했지만, 최근까지도 ‘비선 권력’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최순실, 박 대통령의 옷과 장신구 공급”

 

2006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지방유세를 하던 중 칼로 얼굴을 베이는 테러를 당했을 때 최씨가

 박 대통령의 병간호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간호를 하기 위해 병원을 오가는 최씨를 목격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최씨가 박 대통령을 극진히 간호하더라”고

전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를 사실상 지휘한 사람이 최씨의 남편인 정씨였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또 2012년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 내부에서도 정씨 측 인사들이 내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과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다는 얘기도 있었다. 

 

2012년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면서 최씨의 존재감은 더 두드러졌다.

2014년 11월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을 계기로 최씨의 행적이 일부 알려졌다.

박 대통령 집권 1년 차였던 2013년,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부터 얼마 후 박 대통령은 체육계에 대한 광범위한 감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승마협회와 최씨 양측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자 박 대통령은 “이 사람이 아직도 있느냐”며 질책했고,

결국 보고서를 올린 문체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국장이 갑자기 경질됐다.

 

또 최씨가 비공식적으로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며 박 대통령을 만났고 대통령의 옷과 장신구도 직접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장신구는 서울 청담동에 있는 주얼리숍 B매장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최근 B매장을 방문했다. 건물 2층에 자리한 이 매장은 유명 연예인과 유력 인사들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한 점당 수백만원에 달했다. 매장에는 미리 약속이 잡힌 손님만 입장할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진열대에 목걸이와 귀고리 등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묻자 매장

관계자는 “우리는 최씨와 아무 관계도 없다”며 황급히 매장 문을 닫았다.

‘대통령이 이 매장 제품을 착용하는 것이 맞느냐’는 물음에도 “그렇지 않다”며 부인했다.

 

결국 올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사태로 최씨가 국정에 깊숙하게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게 됐다.

최씨는 CF감독인 차은택씨를 비롯해 측근들을 재단에 포진시키고 국정에 개입했으며, 딸이 다니는 이화여대에 압력을

 행사하고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언론을 통해 최씨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이 같은 의혹은 점점 신빙성을 얻는 상황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최씨는그동안 전면에 나서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박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을 한 것 같다.

항간에는 별의별 소문이 다 돌고 있는데, 이런 소문이 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려주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두 요승

왼쪽이 라스푸틴

 

 

과거 주한 미국대사관이 최순실 씨 아버지인 고(故) 최태민 씨에 대해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불린다고 본국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수록된 2007년 7월 20일자 문서에 따르면 윌리엄 스탠턴 당시 주한 미 부대사는 한국

대선을 앞둔 각당 후보들의 상황과 판세, 대선이슈 등을 본국에 보고하면서 당시 한나라당 경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박 후보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스탠턴 전 부대사는 "경쟁자들이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부르는 최태민이라는 목사(pastor)와의 35년전 관계와 그가 육영수 여사 서거 후 박 후보가 퍼스트레이디로 있던 시절 박 후보를 어떻게 지배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있다고 적었다.

'요승'으로 불리는 그리고리 라스푸틴(1872∼1916)은 황태자의 병을 고쳐주겠다며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를 사로잡아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전횡을 일삼다 결국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이끈 인물이다. 
스탠턴 전 부대사는 또 "최태민이 인격 형성기에 박 후보의 심신을 완전히 지배했고, 최태민의 자제들이 그 결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루머가 널리 퍼져있다"고 전했다.

전직 미국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의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를 인용해 '한국 대선 : 여전한 소용돌이 정치'라고

제목 붙인 이 문서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미 대사가 기밀로 분류한 후 미 국무부 등에 전송했다. 

 

 

 

 

 

박과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