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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Handel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HWV 351



 


 

 

 

 



 

 

 

제1곡 서곡. 팀파니의 트레몰로로 시작하는프랑스 풍의 즐겁고 화려한 곡이다.

 


1. Overture (07:46)


제2곡 부레. 프랑스에서 시작된 빠른 무곡, 고전 조곡에서 흔히 쓴다.

 


2. Bouree (01:08)


3곡 라르고 알라 시칠리아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무곡이다.

아름다운 목가조이며 언제인가부터 '평화'(La_paix)라는 이름이 붙었다.

 

 


3. La_paix (03:23)


제4곡 환희. 알레그로이며 제3곡 '평화'와는 대조적인 밝은 곡이다.

 

 


4. La_rejouissance (01:21)


제5곡 메누에트. 영국의 작곡가 퍼셀을 연상시키는 작풍(作風)이다.

편곡자에 따라서는 제4곡 '환희'를 빼거나조곡 배열이 다르기도 하다.

 

 

5. Menuet (02:34)


 

 

 



 

오라트리오 '메시아'로 널리 알려진 헨델은 바하와 같은 시대에 나서 그 때까지의 음악의 모든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새로운 음악 세계로 비약시켰습니다.
바하의 음악이 이지적이며 대위법적이고 교회와 궁정을 중심한 경건한 음악이라 한다면 헨델의 음악은 감정적이며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여 세속과 대중을 상대로 웅장하고 상쾌한 음악을 창조했습니다.

헨델은 참으로 백절불굴의 투지와 정력적이고 활동적이며 강하나 인정미가 넘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대중을 상대로 썼으며 극적이고, 웅대하고, 활달하여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것은 그 인격의 반영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21세 때 이탈리아 음악을 꿈꾸면서 새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대망을 품고 로마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 신진 작곡가로 활약 하면서 건반악기의 연주자로서도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하노버 궁정 악장의 자리를 차지했고 1710년, 영국을 방문한 이래 영국에 머무르면서 앤 여왕의 비호를

 받아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도가 그의 평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 악파인 보논치니 (1670-1747)와는 음악상의 적수였습니다.
이들의 경쟁과 헨델을 질투하는 음모 때문에 수차의 파산과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당했습니다.
아무튼 그는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많은 작품을 썼으며 1726년에는 영국에 귀화했습니다.


한때 비운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아일랜드 총독의 더블린 연주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곳에서 .필생의 대작인 '메시아'가 24일이란 단기간에 탈고되어 1742년 4월 12일, 더불린에서 초연하여 절찬을

 받았습니다.


 

메시아의 초연 후 8년째인 그가 63세 되던 해에는 완전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생존시의 '메시아' 공연만 해도 34회나 되었다고 합니다.
헨델은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아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그의 작품은 46곡의 오페라와 우수한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고 신선하여 생생한 리듬에 성악적입니다.

그는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1000파운드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토벤의 말과 같이 그는 공전의 대음악가였습니다.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HWV 351


헨델이 64세 때인 1749년에 작곡했으며「물의 음악 Water Music」과 함께 그의 만년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관현악곡입니다.


1749년 4월 27일, 런던의 그린 파크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평화조약을 축하하기 위해 대규모의 불꽃놀이

축제가 열렸습니다.

 헨델은 이때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을 작곡 연주했습니다.

이야기는 8년 전인 1740년 오스트리아의 황제 칼 6세의 서거(逝去) 무렵으로 돌아갑니다.
칼 6세에게는 아들이 없어 국본칙령(國本勅令=기본법을 이루는 조칙, pragmatic sanction)으로 가헌(家憲)을 정해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중부 유럽, 벨기에, 이탈리아를 포함한 광대한 영토을 전부 상속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칼 6세가 죽자 상속권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바바리아의 선제후(選帝侯)였던 칼알브레히트가 프랑스, 스페인, 프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침공하여 빈의 마리아 테리지아를 내쫓고 1742년에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쫓겨난 마리아 테레지아는 친척인 헝가리의 도움을 얻어 바바리아, 프랑스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프러시아 왕 후페데리크와 평화조약을 맺었스빈다.
한편 영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여 우위를 되찾았습니다.

그러한 영국과의 관계에 불만을 품은 프러시아가 얼마후 평화조약을 깨뜨리고 보헤미아로 쳐들어왔습니다.
마침 바바리아의 칼 알브레히트가 죽어서 오스트리아와 다시 협상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을 황제로 선임하여 모든 일을 일단락된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테리지아 편을 들은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적대했던 프랑스의 갈등이 마리아 테레지아의 상속을 구실

삼아 또 전쟁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전쟁은 8년이나 계속된 뒤에 간신히 끝났습니다.

비로소 두 나라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 1748년 7월 7일 에스 라 샤펠(아헨)에서 평화조약을 맺고 관계국은 모두 점령한 땅을 돌려 주었습니다.

이듬해 봄, 영국은 긴 전쟁에서 해방된 기쁨을 축하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계획했습니다.
불꽃은 카발리에레 세르반도니가, 음악은 헨델이 각기 담당했습니다.

헨델은 군악용 악기를 쓰라는 영국 황제 죠지 2세의 요구에 맞추어 트럼페트 9개, 호른 9개, 오보에 24개, 화고트 12개, 콘트라화고트 1개, 팀파니 3상, 작은 북 2개, 여기에 세르팡 sepent이라는 아직 영국에서는 낯선 저음악기까지 덧붙여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57인의 대합주 편성으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초연에는 관악기를 늘려 100개 이상이나 사용했다고 합니다.
불꽃놀이를 열기 1주일 전인 4월 21일 보크스 홀 가든에서 공개 연습을 할 때 1만 2천명의 군중이 모여들어 법석을

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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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는 실패했으나 음악은 축제를 화려하게 빛내


축제 당일은「왕국의 불꽃놀이 음악」의 서곡을 연주하고 101발의 캐논포가 울려퍼진 뒤, 불꽃이 올라가야 할 차례가

 되었으나 모처럼 아름다운 거대한 성당 모양을 하늘에 그리려던 시도는 무산(霧散)되고 오히려 불꽃이 딴 곳으로

튀어 근처 건물을 태우는 소동만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불꽃을 담당한 세르반도니는 울확 치민 나머지 칼을 뽑아들고 축제 집행관에게 덤벼들어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관심은「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으로 몰려 예기한 대로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미 64세였던 헨델은 3년 뒤인 1752년에는 장님이 되어 더 이상 작곡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있다가 1759년에 죽었고,「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려한 무대였습니다.


축제를 치룬 후 헨델은 현악기를 보강하여 연주회용 관현악곡으로 고쳐 썼습니다.
그해 5월에 런던의 자선 음악회 때 이 개정판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의 원곡은 매우 깁니다.
불꽃을 쏘아올리기 전의 서곡. 불꽃과 불꽃 사이에 연주되는 무곡풍의 여러 소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훗날 해밀톤 하티, 막스 자이훼르트,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등 여러 사람이 조곡으로 편곡했습니다.

제1곡: 서곡(Overture), d장조 4분의 4박자의 장중한 느낌을 주는 느슨한 부분과, 3박자의 빠르고 화려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장엄한 맛을 풍겨줍니다.

팀파니의 트레몰로로 시작하는프랑스 풍의 즐겁고 화려한 곡입니다.
제2곡: 분의4박자(Bourree) 프랑스에서 시작되 빠른 무곡, 고전 조곡에서 흔히 씁니다.

제3곡: 라르고 알라 시찰리아나, d장조 12분의8박자 한창 불꽃이 작열하는 가운데 연주 됩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무곡입니다. 아름다운 목가조이며 언제부터인가 온화하고 태평스런 분위기가 풍긴다 하여 '평화(La Paix)'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4/5곡: 환희. 알레그로, d장조 4분의4박자 '평화'와는 대조적인 밝은 곡입니다.

화려한 트럼펫이 주주를 이루는 행진곡풍의 "환희(La Rejouissance)"란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끝으로 f단조의 미뉴엣과 b장조의 미뉴엣이 종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미누에트 제1 제2의 2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국의 작곡가 퍼셀을 연상시키는 작풍(作風)입니다.

 

 



 



Johannes Somary

 스위스의 취리히 태생인 요하넥스 소머리 (Johannes Somary)는 예일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그가 창단했으며 지휘를 하고 있는 아모르 아티스 코랄 앤드 오케스트라 (Amor Artis Chorale and Orchestra)와

함께 그는 해마다 링컨 센터에서 공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40개이상의 음반을 녹음했으며, 그 중 헨델의 테오도라 (Theodora), 예프타 (Jeptha), 메시아 그리고 마카바이오스의 주더스 (Judas Maccabeus)는 스테레오 리뷰 (Stereo Review)지에 의해 최고의 명반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명성있는 작곡가이기도 하며 헨델의 작품뿐 아니라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들도 미국에서 초연했습니다.

 현재 그는 뉴욕에 있는 호리스만 학교의 예술학과장입니다.

비범한 솔리스트들로 구성된 영국 실내악단 (The English Chamber Orchestra)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주단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연주단은 완벽한 감수성, 조화 그리고 작은 연주단에게서나 느낄수 있는 섬세함 등을 보여줍니다. 또한 많은 녹음 요청을 받고있으며, 발매된 음반들은 국제적인 인정과 상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명한 지휘자 재프리 테이트 (Jeffrey Tate)가 지휘를 맡고 있는데, 다니엘 바렌보이 (Damiel Barenboim)과 벤자민 (Benjamin Britten)등과 협연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