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DERNISM 음악

Nana Mouskouri - I Have A Dream

 

 

5

 

 

Nana Mouskouri - I Have A Dream

 

 

 

 

 

 

I Have A Dream

 

 I have a dream that will come to me

  Just like the sun like the morning

  wonderous to see

 

  So let me wave to the golden sun

  Cold are our dreams

 when we wait too long


  So many roads I stumbled on before

  Now I can live no more without you

  if only I can find my way to you

 

 There are so many words

 I long to say to you

 I'll bring to you the secrets of may life

 Like petals in my hand

 

 and you will understand

 I'll ask for nothing more

  my whole life through

  if I can find my way to you

 

 Demand of me all that I have to give

  And while I live I'll give it gladly

 Command me to demand

 a world on you

                                

I'd give it all away

if you're glad to ask me

Surrending the fragrance of my life

                                

I'll follow where you are

 although the road be far

 And if I find that

                                

you will see me through

 If I can find m way to you

 

 

 

 

0

 

마틴 루터 킹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행했던

 연설에 붙은 별칭이다.

이 연설은 흑인과 백인의 평등과 공존에 대한 요구였다.

킹의 연설은 링컨 기념관 앞에 설치된 연단에서 이루어졌다.

 

이 연설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와 함께 미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연설로 손꼽힌다.

이 연설은 웅변술의 정수로서 널리 추앙받는데, 주로 대중들을 선동하는 미국 침례교의 설교 양식과 닮아있다.

 

연설의 호소 방식은 구약성서, 미합중국 독립선언서, 미합중국 헌법등 상징적이면서도 널리 알려진 소재 즉,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킹 목사는 인유라는 수사학적 기법으로서 중요한 구문들을 인용했다.

 

연설 도입부에서 킹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인유한 "5 score years ago"(100년 전)를 사용했으며 두 번째 문단에서는 시편 30장 5절(야훼의 진노는 잠시뿐이고 그 어지심은 영원하시니, 저녁에 눈물 흘려도 아침이면 기쁘리라.)을 인유하였다.

 

또한 노예 해방 선언문에서 "It came as a joyous daybreak to end the long night of captivity."(이는 오랜 속박의 밤을 끝내는 행복의 새벽으로 다가왔습니다)를, 이사야 40장 4절(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에서 "I have a dream that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내겐 오랜 고난이 기쁨이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를 인유하기도 했다.

 

또한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Now is the time..."(이제 그 때입니다)이란 말의 대구(對句)를 통하여 강조의 어조를 남기기도 하였다.

 

 

 

6

 

 

 

"우리가 이 수도에 온 이유는 어떤 면에선 우리가 지급 받지 못한 수표를 바꾸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건국 당시 사회 인사들은 독립선언서라는 위대한 문서에 서명할때 모든 미국인에게 돌아갈 혜택에 대한 약속에

서명했습니다.

 

이 약속의 수표는 모든 사람에게, 백인 뿐만 아니라 흑인에게도, 양도 불가능한 권리인 행복 추구권과 자유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미국은 우리가 받은 약속 어음에 대해, 적어도 색깔이 문제되는 사람에게는 채무 불이행인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신성한 어음을 인수하지 않는 대신 미국은 흑인에게 '잔고 부족'이라고 찍혀 있는 부도 수표를 돌려주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깨어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창조되었다는 자명한 이념을

신봉한다'는 미국의 신조안에 깃든 참 뜻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네 명의 내 자식들이, 피부 색이 아닌 그들의 품성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합시다.

이 자유의 종 소리가 모든 마을, 모든 촌락, 모든 주, 모든 도시에서 울리게 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대인이건 아니건, 개신교이건 가톨릭이건 간에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날을

향해 나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전능하신 은혜로 우리 자유 얻었네!"

 

이 연설이 있었던 워싱턴 대행진 이후, 존 F. 케네디 행정부에는 시민권 개정 입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라는 압력이 더욱

강해졌다. 케네디가 암살 당한 다음 해, 그를 계승한 린든 존슨 대통령 때 1964년 시민권 개정안이 통과되었으며,

 1965년에는 투표권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년 1월 15일 ~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킹은 미국내 흑인의 인권 운동을 이끈 개신교 목사이다.

그의 인권 운동 활동은 1964년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평가받는다.

 

그 후,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도 목소리를 냈지만,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 되어가는 한중간 시기인 1968년 4월 4일

테네시 주 멤피스의 한 모텔 발코니에서 암살 되었다.

미국에서는 그를 기려 그의 생일(1월 15일)에 가까운 매년 1월 세 번째 토요일을 ‘마틴 루서 킹 2세의 날’로 정하고

 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때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행한 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인종 차별의 철폐와 각 인종간의 공존이라는 고매한 사상을 간결한 문체와 평이한 말로 호소해 넓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 연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과 함께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명연설로 유명하다.

 

 

 

 

 

6-1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 마틴 루터 킹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유시위로 기록될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니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100여년 전, 지금 우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동상의 주인공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했습니다.

노예해방선언은 사그라지는 불의의 불꽃 속에서 고통받아온 수백만 흑인노예들에겐 희망의 봉홧불이었으며, 기나긴

속박의 밤을 걷어 내는 찬란한 기쁨의 새벽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흑인들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흑인들은 차별의 족쇄를 찬 채 절름거리고 있습니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흑인들은 물질적 풍요의 바다에서 가난의 섬 안에 고립되어 살고 있습니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흑인들은 미국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고통당하며 망명객처럼 부자유스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치욕스런 상황을 극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이 곳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명목뿐인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 수도 워싱턴에 모였습니다.

미국의 건국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명한 헌법과 독립선언서의 화려한 문구들은 약속어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흑인 백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양도할 수 없는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 이 있다는 내용의 약속어음에 서명을 했습니다.

미국은 흑인시민에 대해서 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흑인들에게 이 신성한 약속어음에 명시된 현금을 지급하지 않고 '예금잔고 부족' 이라는 표시가 찍힌 부도수표를 되돌려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라는 이름의 은행은 결코 파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기회라는 이름의 거대한 금고 속에 충분한 잔고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어음이 명시하는 자유와 정의를 되돌려 받기 위해서 이 곳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미국에게 현재 사태가 긴급함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이 신성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지금은 호사스럽게 냉각기간을 가지거나 점진주의의 진통제를 먹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흑백차별의 어둡고 황폐한 계곡에서 벗어나서 인종적 정의의 양지 바른 길로 걸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미국을 위태로운 인종차별의 모래밭에서 건져 내서 동포애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주님의 어린양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미국이 현재 사태의 긴급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주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자유와 정의의 상쾌한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흑인들의 정당한 불만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여름은 결코 물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미국이 사태의 긴급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상시처럼 행동한다면, 흑인들의 분노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사람들은 대단히 불쾌할 것입니다.

흑인들의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 미국은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정의의 새벽이 밝아오는 그 날까지 폭동의 소용돌이가 계속되어 미국의 토대를 뒤흔들 것입니다.

정의의 궁전에 이르는 문턱에 서 있는 여러분들께 이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정당한 자리를 되찾으려는 우리의 행동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명심하도록 하십시오.

자유에 대한 갈증을 증오와 원한으로 채우려고 하지 맙시다.

 

위엄 있고 규율 잡힌 태도로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는 창조적인 항의운동을 물리적 폭력으로 타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거듭해서 당부하지만, 우리는 물리적 힘에 대하여 영혼의 힘으로 대처하는 당당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흑인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투쟁성에 이끌려 백인들을 불신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가한 많은 백인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백인형제들 중에는 백인과 흑인이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백인들은 자신들의 자유는 우리들의 자유와 단단히 얽혀 있음을 인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앞장서서 행진해야 합니다. 결코 뒷걸음질쳐서는 안 됩니다.

헌신적인 시민권 활동가들에게 "당신들은 도대체 언제 만족할 거요?"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흑인에 대한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행으로 지친 우리의 몸을 여러 도시의 호텔과 모텔에 누일 수 없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들이 작은 빈민가에서 큰 빈민가로 이주할 자유 밖에 누릴 수 없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백인 전용' 이라는 표지판 앞에서 우리 아이 들의 자존심과 인간적 존엄성이 짓뭉개지는 한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평이 개울처럼 흐르는 그 날까지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큰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좁디좁은 감방에서 방금 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자유를 달라고 외치면 갖은 박해를 당하고 경찰의 가혹한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지역에서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갖은 고난에 시달려 왔을 것입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받는 고통은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속 활동합시다.

미시시피로 돌아갈 때, 앨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루이지애나로 돌아갈 때, 그리고 북부 여러 도시의 빈민가로 돌아갈 때, 언젠가는 이런 상황은 변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갑시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친애하는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역경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어린이들이 백인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남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내어 희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나라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내 꿈이 실현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나의 조국은 아름다운 자유의 땅, 나는 조국을 노래 부르네. 나의 선조들이 묻힌 땅,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선조들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는 땅, 모든 산허리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하라!"

 

주님의 모든 자녀들이 이 구절을 새로운 의미로 암송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우리의 꿈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뉴햄프셔의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펜실바니아의 웅장한 앨러게이니 산맥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힌 로키산맥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구불구불한 산비탈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조지아의 스톤 산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 산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수많은 언덕들과 둔덕들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전국의 모든 산허리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이렇게 된다면, 모든 주, 모든 시, 모든 마을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린다면, 흑인과 백인, 유태교도와 기독교도, 신교도와 구교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주님의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오래 된 흑인영가를 함께 부르게 될 그 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전능하신 주님의 은혜로,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얻었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행진에서 한 연설)

 

 

 

박물관 전시장엔 킹 목사의 업적과 미국초기의 흑인 노예등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들이었다. 



1968년 4월 4일, 킹 목사는 모텔의 길건너 건물인 붉은 벽돌집 창에서 벌사된 총탄에 저격되었다.

위 건물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킹 목사 암살범이 묵은 침대와 식기들도 보존되어 있다.


여기, 모텔의 베란다에 서 있다가 총격을 당했다.


암살범은 여러 이름을 사용하면서 도피하다가 영국 공항에서 범행후 65일만에 검거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