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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Metallica -Fade To Black

   

Metallica - Fade To Black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Fade To Black

 

 

Life it seems, will fade away
Drifting further every day
Getting lost within myself
Nothing matters, no one else


I have lost the will to live
Simply nothing more to give
There is nothing more for me
Need the end to set me free


Things are not what they used to be
Missing one inside of me
Deathly lost, this can't be real
Cannot stand this hell I feel


Emptiness is filing me
to the point of agony
Growing darkness taking dawn
I was he, but now he's gone


No one but me can save myself
But it to late
Now I can think,
think why I should even try


Yesterday seems
as though it never existed
Death Greets me warm
Now I will just say good-bye

 

 

 

 

 
하루하루 멀리 떠내려가는 듯한
이 삶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길을 잃어 혼란스러운 내게
문제될 건 아무 것도, 그 누구도 없어


난 더 이상 살아갈 의지를 잃었고
더 이상 보여줄 것도 없을 뿐이야
내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날 자유롭게 해줄 끝맺음만 남았지

 

 모든 게 예전 같지가 않고
내 안에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아
이 치명적인 상실감은 현실 같지가 않아
이 끔찍한 기분을 참을 수가 없어


고통의 지경에까지 이른
공허함만이 날 가득 채우고
짙어가는 어둠은 이제 새벽을 맞으려 해
그와 나는 하나였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아

 

 나 자신말고는 아무도 날 구할 수 없어
하지만 이제 너무 늦었어
이제야 알 것 같아
어째서 시도라도 해봐야 할지를 말야


지난날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죽음만이 날 따스하게 맞아주고
이젠 난 작별을 고할거야











 

 

 

 


 

 

 

검게 칠해진 재킷과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뱀 그림. 이 때문에 ‘블랙 앨범’ 혹은 ‘뱀 앨범’이라고도 불렸던 메탈리카의

 5집 앨범은 헤비메탈 역사의 리빙 레전드(living legend), 즉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는다.

 

그들은 앨범을 통해 헤비메탈의 음악적 어프로치 자체를 바꿨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거대한 상업적 부와 연결시켜

막대한 판매량을 쌓아 올렸다. 미국 내에서만 1,500만 장, 세계적으로 2,500만 장이라는 메탈 레코드로는 이례적인

수치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이전까지 메탈리카는 4집 『...And Justice For All』의 수록곡 「One」으로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서 연주도 하고

상도 받았지만, 여전히 메탈 키드들에게만 추앙받으며 헤비메탈의 카테고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거칠고 날카로우며

묵직했던 그들의 중금속 사이클론 사운드가 일반 팬들에게는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멤버들 모두 절감하고 있을

때였다.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한 이 시점에 그들은 2집부터 프로듀스를 맡았던 플레밍 라스무센(Flemming

Rasmussen)과 헤어지고, 머틀리 크루(Motley Crue), 본 조비 등과의 작업으로 유명한 밥 록을 초빙하였다.

사운드의 스피드를 내리고 경량화를 꾀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메탈리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와 관련, 음반 발표 직후 드러머 라스 울리히는 “우리는 『Dr. Feelgood』(머틀리 크루의 1989년 명반)의 크고

풍요로운 메탈 사운드를 정말 좋아했다”며 일찌감치 그와의 조우를 희망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밥 록의 참여는 메탈리카의 음악에 윤기와 세련미를 가져다주었다. 메탈은 메탈이되, 과거와 비교해 한결 부드러워진 사운드 퀄리티 덕에 그들에게 관심조차 없었던 대중들마저 메탈리카의 음악에 새롭게 눈뜨고 음반 구입을 주저하지 않았다.

기세를 몰아 앨범은 영국과 미국 차트를 동시에 석권하였고, 최대 히트곡 「Enter Sandman」(미국 16위)을 출발점으로 블랙 사바스의 잔재를 느낄 수 있는 「My Friend Of Misery」, 밥 록이 ‘1990년대의 「Kashmir」

(레드 제플린의 명곡)’라며 극찬한 「Sad But True」, 「Holier Than Thou」, 「The Unforgiven」, 그리고

그룹 최초의 발라드 「Nothing Else Matters」에 이르기까지, 쉴 틈 없이 히트곡을 난사했다.

 

「Q」지의 평가대로 음반은 ‘컬트 메탈 히어로가 글로벌 슈퍼스타로 성공적으로 탈바꿈한 전환점’이었던 것이다.

 또한 1991년 닐슨 사운드스캔이 설립되어 음반 판매고를 집계한 이래 이 앨범보다 많이 팔린 레코드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놀라움은 배가된다.

 

(기존 코어 팬들의 실망과 비난을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과거의 터프하게 몰아붙이는 스래시 메탈을 과감히 버리고, 크고 웅장하면서도 풍성한 헤비메탈로 레일 포인트를 변환한 것은 결국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지가 이 음반을 평하며 “더 느리고, 덜 복잡한데, 기이하게도 이전보다 두 배 이상은 헤비하다”라고 찬사를 보낸 그대로였다.

 

심지어 데프 레퍼드의 싱어 조 엘리엇은 자존심을 버리고 “데프 레퍼드의 앨범이 아닌 이 음반이 바로 헤비메탈 필드의 『Thriller』다”라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이는 마이클 잭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이 작품을 능가할 만한 헤비메탈계의 걸작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장르를 향한 조종(弔鐘)이기도 했다.

 후배 메탈 밴드들의 역량을 떠나, 그런지 록의 파고가 당대를 잠식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왼쪽부터 

Jason Newsted

Kirk Hammett

Lars Ulrich

James Hetfield

 


 

 

 

 

 

 

 

메탈리카는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 드럼에 라스 울리히(Lars Ulrich)와

베이시스트 로버트 트루질로(Robert Trujillo), 기타리스트 커크 해미트(Kirk Hammett)로 구성된

 스래시 메탈의 제왕이자 전설적인 록 밴드이다. 


1981년 라스 울리히와 제임스 헷필드를 주축으로 결성되었으며 1억 1천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 및

 전 세계 수백만명의 팬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는 등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록 밴드이다.

 1983년 첫 앨범 [Kill ‘Em All]을 발매하였으며 특히 1991년 발매된 5집 [Metallica]는

 미국에서만 1700만장을 판매해 사운드스캔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판매고만큼이나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총 9차례 그래미 어워드와 2차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그리고 다수의 MTV 뮤직 어워드에서 수상하였으며, 2009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2013년 12월에는 남극에서 공연을 진행했으며 이로써 메탈리카는 1년 이내에 7개 대륙에서

 공연을 펼친 최초의 밴드로 기네스 세계 레코드에 이름을 올렸다.

 

 

 

 



 

 

 

 

캘리포니아 한 시골 마을 출신이었던 클리프 버튼은 1962년 2월 10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1982년 원년 멤버 Ron McGoveny 후임으로 Metallica의 베이스를 맡게된 클리프 버튼은 "(Anasthesia)Pulling Teeth"의 솔로, "For Whom The Bell Tolls" 인트로 부분, "The Call of Ktulu", "Orion" 에서의 베이스 솔로 등 Metallica의 여러 트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국면에서 주옥같은 베이스 플레잉을 새겼다. 그는 제임스 햇필드에게 음악 이론을 가르친 장본인이었으며, 메탈리카가 성취한 스래쉬 사운드의 금자탑인 "Master of Puppets"를 설계한 이가 클리프 버튼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메탈리카 초기 시절부터 베이스 솔로를 즐긴 클리프 버튼의 연주는 다양한 스타일을 함축하고 있었음은 물론, 재즈적인 타임감과 싸이키델릭한 멜로디를 풀어내는 열띤 흐름을 유지했다. 그의 연주는 잡다한 노이즈를 허락지 않는 깔끔한 것이었으며 언제나 풍부한 필링과 테크닉으로 꽉 차있었다. 멜로딕한 그의 솔로는, 클래시컬함과 뜨거운 영감을 함축하고 있어 메탈리카의 여러 곡에서 중요한 창작 아이템으로 작용했다.

 

붉은색 Rickenbacker 4001 모델을 주악기로 쓰다 86년 Aria 베이스로 메인 악기를 바꾼 클리프버튼은, 전적으로 핑거 피킹에 의존한 플레이를 보여줘 아이언메이든의 스티브 해리스와 종종 비교되기도 했다. 클리프 버튼은 또, 디스토션과 와우 페달을 사용해 화려한 톤을 잡아내기도 했다. 독특한 자신의 톤에 대해 클리프 버튼은 인터뷰에서, Motorhead의 Lemmy가 사용하던 디스토션 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기타리스트들의 Thin Lizzy의 모든 사운드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도 했다.

 

클리프 버튼의 최후는 비참했다. 86년 메탈리카의 유럽투어 도중 공연장 이동 간에 사고가 일어났고 투어 버스가 중심을 잃고 몇 바퀴 구르자 그는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의 나이 스물 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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