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K9 자주포가 지난해 말 성남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에서 전시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사진=한화디펜스]
인도 육군이 지난달 라다크에 배치한 자주포 K9 바즈라. 인디언 디펜스 뉴스
中과 혈투' 인도 비장의 무기..한국산 K9 자주포 100문 샀다
202X년 히말라야 자락. 인도 육군의 포병 진지로 포탄이 날아왔다. 국경분쟁이 격해지자 중국 인민해방군이 기습한 것이다. 인도군은 자주포인 K9 바즈라를 긴급히 가동했다.
그리곤, 포탄을 먼저 쏜 중국군의 자주포인 PCL-181을 향해 반격을 날렸다.
가상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실에선 곧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히말라야에서 인도의 K9 바즈라와 중국의 PCL-181 사이 대결 말이다.
“인도 육군의 찬디 프라사드 모한티 참모차장이 라다크를 찾아 안보 상황을 점검했다.”
인도의 군사 전문 매체인 인디언 디펜스 뉴스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사진 한 장과 함께 올린 뉴스다. 사진엔 승무원이 자주포 앞에 서있다.
인디언 디펜스 뉴스는 “K9 바즈라가 보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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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인도ㆍ중국의 무력 증강
라다크는 지난해 인도와 중국이 국경분쟁을 일으킨 곳이다.
양국군은 몽둥이를 들고 난투극을 벌였다. 자세한 피해 상황에 대해서 두 나라 모두 입을 다물었다.
러시아의 타스 통신에 따르면 인도군 20명, 중국군 45명이 사망했다.
한국 육군이 보유하고 있는 자주포 K9의 기동과 사격. 국방부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최근 인도와 중국이 라다크 지역에 무기를 증강 배치하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를 관할하는 인민해방군 신장군구는 지난달 25일 단거리 대공 미사일인 HQ-17A, 122㎜ 다연장 로켓인 PHL-11, 지뢰방호차량(MRAP)인 CSK181을 공개했다고 영국의 군사 전문 매체인 제인스가 보도했다.
신장은 라다크와 맞닿아 있다.
중국이 신장에서 군사력를 키우는 것은 인도와의 국경 분쟁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게 인도의 해석이다.최현호씨는 “라다크는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곳이라 항공기가 뜨기 힘들고, 탱크가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며 “라다크에선 포병이 결국 승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도가 중국에 맞불을 놓기 위해 라다크에 가져다 놓은 비장의 무기가 K9 바즈라다.
K9 바즈라는 한국 한화디펜스가 만든 자주포 K9의 인도 수출형이다.
인도는 K9 100문을 도입했다.
바즈라(Vajra)는 K9의 별명인 천둥의 힌디어다.
불교에서 제석천이 아수라를 무찌를 때 쓰는 무기인 금강저란 뜻도 있다.
인도와 중국가 라다크에서 전면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인도 육군의 K9 바즈라는 인민해방군 육군의 PCL-181과 일합을 겨뤄야 한다.
무겁지만 단단한 K9, 가볍고 빠른 PCL-181
두 자주포를 비교해 보자. 가장 큰 차이점은 K9 바즈라는 탱크와 비슷한 궤도형이고, PCL-181은 트럭에 포대를 올린 차륜형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신장군구에 배치한 자주포인 PCL-181 기동과 사격., 유튜브
dd luciferdd 계정 캡처
박찬준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위원은 “인도가 점유하는 히말라야는 교통이 불편한 데 비해 중국은 서부 개발을 한다며 도로망을 많이 깔았다”며 “중국은 유사시 히말라야로 급파하기 위해 기동성을 높인 차륜형 자주포를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9 바즈라는 무게 47t에 길이 12m, 넓이 3.4m, 높이 2.73m다.
승무원은 6명. PCL-181은 무게 25t에 길이 6.5m, 넓이 2.66m, 높이 3.6m다.
승무원은 K9 바즈라보다 1명 더 많은 6명이다.
상대적으로 PCL-181이 작고 가볍다.
최대 속도는 PCL-181(시속 100㎞)이 K9 바즈라(67㎞)보다 훨씬 더 빠르다.
K9 바즈라와 PCL-181의 구경은 모두 155㎜다. 최대 사거리는 40㎞다.
PCL-181이 사거리 연장탄을 쏠 경우 70㎞까지 날아간다고 제조사인 노린코(中國北方工業)가 주장하고 있다.
K9 바즈라는 30초 안에 초탄을 발사할 수 있다.
15초 안에 3발을 재빨리 쏠 수 있고, 분당 6~8발을 사격할 수 있다.
PCL-181은 분당 4~6발 사격이 가능하다.
K9 바즈라는 1문으로 일제사격(TOT)을 할 수 있다.
고각(高角)을 달리해 연속사격하는 방식으로 여러 발의 포탄이 동시에 목표를 타격하는 사격 방식이다.
K9 바즈라는 인도는 물론 터키ㆍ폴란드ㆍ핀란드ㆍ노르웨이ㆍ에스토니아로 수출됐다. 파키스탄은 PCL-181을 SH-15라는 제식명으로 수입했다.
실전 기록에서 K9이 앞서
이 두 자주포가 실전에서 어떻게 싸울까.
물론 인도와 중국은 국경분쟁의 확전을 막기 위해 실탄을 쏘지 않는다는 약속을 암묵적으로 맺었다.
하지만, 사소한 충돌이 전쟁으로 불이 붙는 사례는 역사에서 많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해병대 K9 자주포가 북한군의 방사포 공격 속
에서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국방부
스펙으로 보면 K9 바즈라가 PCL-181을 압도한다. 박찬준 위원은 “PCL-181이 먼저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방어력이 더 뛰어난 K9 바즈라가 이를 막아내고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K9 바즈라는 수가 적어도 TOT 사격으로 PCL-181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전 기록이 K9 바즈라의 우수성을 말해준다.
한국 해병대의 K9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한 인민군의 122㎜ 방사포 포격을 견뎌냈다.
당시 연평도에 배치된 해병대 K9은 6문이었다.
이 중 1문은 불발탄 처리 문제로 정비를 받고 있었다.
나머지 5문 가운데 2문이 방사포탄에 일부 피해를 입었다.
1문은 바로 수리를 끝내고 반격에 참여했다.
해병대는 K9 4문으로 북한군을 타격해 큰 손실을 입혔다.
2019년 인도는 파키스탄과 국경 분쟁에 K9 바즈라를 동원해 파키스탄의 SH-15와 상대했다.
SH-15는 PCL-181의 수출형이다.
정확한 전과는 불분명하다. 다만 인도는 K9 바즈라에 대해 만족해 추가 주문을 검토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SH-15를 더 사들인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진 않는다.
자주포 성능 제외 인도가 열세
하지만, 무기의 성능이 늘 전투의 승리를 이끄는 법이 아니다.
K9 바즈라에 올라 탄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인도 총리실
최현호씨는 “인도의 K9 바즈라가 우수하지만, 효율적인 운용을 위한 작전 체계나 서로 다른 국가에서 도입된 무기간의 데이터링크 문제, 현대 포병전략에 필수적인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표적 확인 등에선 인도가 열세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찬준 위원도 “히말라야와 같은 산악 지역에선 보급이 중요하다”며 “중국이 보급에선 전반적으로 인도를 앞선다. 국경분쟁이 길어진다면 K9 바즈라의 우세가 바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철재ㆍ박용한 기자 seajay@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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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디펜스가 공동 개발한 K9 자주포.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인도, 중국 국경지역에 韓 K-9 자주포 배치
분쟁지역 실제 배치 첫 확인
인도가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히말라야 라다크 지역에 한국의 K-9 자주포(사진)를 배치했다.
1일 인도 인디아투데이와 중국 언론 등에 따르면 인도군은 5월 27일 모한티 육군 중장이 중국과 영토분쟁 지역인 히말라야 라다크 동부지역을 방문한 소식을 알리며 한국산 K-9 자주포가 국경 지역에 배치됐다고 밝혔다.
그 동안 인도와 중국 국경에 K-9 자주포가 배치된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실제 배치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K-9 자주포는 중국이 최근 히말라야 국경에 무기를 배치하고 신장 지역에서 실탄훈련을 반복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배치됐다.
인도군은 고원 지역에서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K-9 자주포 3대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K-9 자주포는 52구경장의 155㎜ 화포를 채용했다.
최대 사거리가 40㎞이며 분당 12발 발사가 가능하다.
사격 속도, 기동 능력 등 핵심 기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도는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라다크 지역에 아파치 헬기, 미그 29 전투기 등 첨단무기를 지속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한국과도 2017년 K-9 자주포 100문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그중 90대는 인도에서 현지 조립됐다.
인도와 중국은 1962년 국경문제로 전쟁까지 치렀지만 국경선을 확정하지 못한 채 3488㎞ 길이의 실질 통제선을 경계로 맞선 상태다.
중국은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프라데시주의 약 9만㎢ 땅이 중국 영토라는 입장이다.
반면 인도는 카슈미르 악사이친의 3만8000㎢의 땅을 중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한국산 K21-105 경전차. [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중국 제압용 인도 경전차 ‘Made in Korea’ 두 모델 경쟁 중
K21-105 vs K9 자주포 차체+벨기에제 포탑 2파전 양상
4월 하순 인도 국방부는 차기 경전차 도입 사업을 정식 공고했다.
인도는 지난해 여름 중국과의 국경 분쟁 지역에 신형 경전차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당초 적당한 모델을 해외에서 수입해 즉시 배치할 예정이었으나 ‘인도판 신토불이’ 정책인 ‘Make In India’ 기조에 따라 해외 기술을 도입해 인도에서 생산하는 사업이 됐다.
예산 2조 원을 들여 경전차 350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중국은 지난해 인도와 국경 분쟁을 벌인 라다크 일대에 최신형 15식 경전차를 배치했다.
중국이 고원지대까지 고성능 경전차를 끌고 오자 인도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산악지대에서 경전차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1962년 인도는 국경 분쟁에 프랑스제 AMX-13 경전차를 투입해 중국군을 격파했다.
AMX-13은 프랑스가 해외 식민지에 긴급하게 전개할 목적으로 개발한 수송기 탑재용 경전차다.
중국군은 보병만으로 저항하다 AMX-13 몇 대에 참패했다.
인도는 최근 노후 AMX-13을 후계 차량 없이 전량 퇴역시킨 반면, 중국은 경전차 개발에 나섰다.
15식 경전차는 35t급 차체에 복합장갑·반응장갑을 장착한 고성능 경전차다.
기관포탄을 대부분 막아내고, 반응장갑 덕에 보병 휴대용 대전차 화기를 맞아도 끄떡없다.
주포는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105㎜ 강선포다.
한국군 K1 전차에 장착된 M68A1의 중국제 카피인 83식 전차포의 저압포(장약을 적게 넣어 포신 압력을 줄인 것) 버전이다.
인도군 T-72 전차 정도는 너끈히 파괴할 위력을 지녔다.
중국제 GP-2 대전차 미사일을 사용하면 T-90 전차도 격파할 수 있다.
中 신형 경전차에 인도군 ‘패닉’
인도 업체 L&T는 한국산 K9 자주포 차체(사진)에 벨기에제 포탑을 장착한 경전차
모델을 인도 국방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당초 인도군이 도입하려던 경전차는 러시아 공수부대가 운용하는 공수 대전차 자주포 2S25M ‘스프루트(Sprut-SDM)’이다.
이 모델은 공수가 가능할 뿐 아니라 화력도 강력하다.
2S25M은 수송기에서 낙하산으로 공중 투하할 수 있다.
전차 내부에 연료와 탄약을 싣고 승무원도 탑승한 상태에서 낙하산 투하가 가능하다
화력도 엄청나다.
전투중량이 18t인데, 40t급 주력전차가 사용하는 125㎜ 활강포를 탑재한 ‘괴물’이다.
카탈로그 데이터만 보면 라다크 고원에 있는 중국군 15식 경전차를 박살 낼 괴물이지만 인도는 수개월 만에 도입 계획을 철회했다.
알고 보니 중국도 20년 전 도입하려다 포기한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장갑은 근거리에서 적의 기관총에도 쉽게 뚫렸다.
가벼운 차체에 지나치게 강력한 주포를 탑재하니 발사할 때마다 차체가 요동쳐 포격 정밀도가 최악이었다.
이후 인도는 다른 모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는 한국 한화디펜스 K21-105, 인도 현지 면허생산이 이뤄진 K9 자주포(국방과학연구소·한화디펜스 공동개발) 차체에 새 포탑을 얹은 신규 모델, BAE 시스템스 미국 법인의 M8 뷰포드 경전차, 인도네시아-터키의 합작품 하리마우 경전차 등이다.
성능 · 가격 · 정치 문제… 경쟁 모델 ‘아웃’될 듯
지난해 6월 중국과 인도의 국경 지역에서 중국군이 인도군 병사를 포박해
위협하고 있다. [웨이보 캡처]
최근 급속히 가까워진 미국과 인도의 관계 덕분에 주목받던 M8 뷰포드는 중량이 25t으로 경전차치곤 너무 무거워 산악지대 운용이 어려울 수 있다.
인도 측이 가격과 기술 이전을 놓고 까다로운 요구를 내놓은 터라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
인도네시아-터키 합작품 하리마우는 정치 문제에 발목이 잡힐 듯하다.
사실 터키는 인도보다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가깝다.
인도-파키스탄 국경 분쟁에서도 파키스탄 편을 들었다.
그런 터키의 군사 장비를 인도가 구매할 확률은 낮다.
따라서 한국 한화디펜스가 인도군 경전차 도입 사업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화디펜스는 경전차 모델 K21-105를 개발한 바 있고, 인도 측이 요구하는 기술과 모듈을 대부분 확보하고 있다.
인도는 신형 경전차 모델에 대해 △원격 조종 무장 스테이션(RCWS) △대전차·대공 임무 동시 수행 △안티 드론 전자전 교란 △주포 발사 대전차 미사일 및 스마트 탄약 운용 능력 △다양한 전자장비 운용을 위한 보조동력장치(APU) 등을 요구하고 있다.
K21-105는 이런 요구를 모두 충족하는 몇 안 되는 경전차다.
K21 보병전투장갑차 차체에 벨기에 방산업체 존 코커릴(John Cockerill)의 XC-8 105-102HP 포탑을 얹은 모델이다.
주포에서 다양한 스마트 탄약과 우크라이나제 주포 발사 대전차 미사일 ‘팔라릭 105’를 쏠 수 있다.
원격 조종 무장 스테이션과 안티 드론 장비, APU의 경우 한화디펜스가 완성한 기성품이 다수 존재한다.
인도군 수뇌부가 한화디펜스를 신뢰하는 것도 유리한 점이다.
최근 인도는 K9 자주포 100문을 현지 면허 생산했다.
인도군의 면허 생산 역사에서 최초로 납기 일정보다 빠르게 하자 없이 사업이 완료됐다.
이에 고무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라즈 나트 싱 국방장관이 차례로 생산 라인을 찾아 한화디펜스의 사업 관리 능력을 극찬했다.
한화디펜스 K21-105 모델의 라이벌은 한국산 K9 자주포 차체에 존 코커릴사의 포탑을 합친 모델이다. K9을 면허 생산한 인도 업체 L&T가 인도 국방부에 제안한 방식이다.
이번 사업은 ‘K21 차체’와 ‘K9 차체’의 2파전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산 경전차가 인도에서 ‘잭팟’을 터뜨릴까.
주간동아 1288호 (p26~27)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중국국기[사진=로이터]
(사진=이미지투데이)
영토분쟁에 대한 중국의 타협전략과 갈등고조전략은?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1949년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했다.
그해에 인민해방군은 신장 지역을, 이듬해엔 티베트를 점령했다.
현재 중국은 14개국과 육상 경계를, 6개국과는 해상 경계를 맞대고 있다.
중국이 경제적·군사적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접경 국가들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져 간다. 대만을 병합하기 위해 중국은 과연 무력침공을 단행할 것인가?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중국이 점령할 것인가? 중국-인도 사이의 영토분쟁은 전면전으로 비화할 것인가?
미국 MIT 대학의 테일러 프레이블 교수는 이런 의문에 대해 중국의 군사안보와 영토분쟁을 연구해왔다.
그가 2008년 펴낸 '중국의 영토분쟁'은 1949년 건국 이후 중국의 영토분쟁 사례들을 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해 종합 분석한 책이다. 그 13년 만에 이번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1949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은 23건의 영토분쟁 현안 중 17건의 분쟁을 타협적으로 해결했고, 나머지 6건은 미결 상태로 남았다.
영토분쟁을 해결키 위해 중국은 어떤 전략을 선택해왔을까?
타협일까, 아니면 무력충돌일까?
책은 그동안 중국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해왔는지 설명함으로써 향후 영토분쟁에서 중국의 전략과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프레이블 교수는 "중국은 영토문제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갈등을 무력에 호소하기보다 분쟁해결을 지연시키거나 타협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에도 중국이 무력수단에 의한 분쟁해결을 선호한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영토문제에서 무력사용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인접국인 소련, 인도, 베트남과 몇 차례 무력충돌을 벌인 바 있고, 남중국해에서도 몇몇 섬을 무력으로 점령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무력사용이 본격적인 침공 의도에서가 아니라 상대국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력이 더욱 강해지면서 중국은 대만을 넘어 남중국해, 동중국해, 인도 국경으로 분쟁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 지역에서 무력수단으로 분쟁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보다는 장악력을 유지·강화하는 방식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중국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홍콩과 마카오를 다시 손에 넣었고, 남중국해에서는 비군사조직인 해상민병대를 동원해 지형물들을 장악했다.
인도와의 국경지역에서는 인도와 티베트의 연결을 차단하는 방식을 썼다.
프레이블 교수는 "2021년은 10여 년 전에 비해 중국의 입장이 좀 더 강경해지고 분쟁지역들은 언제든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열점(hot spot)이 되고 있다"면서 "중국은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입지나 장악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고, 주변국들은 이런 중국에 대항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는 지역은 어떨까? 저자는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영토분쟁은 한국으로서 남의 일이 아니라며 중국이 남중국해를 장악할 경우 한국의 생명선을 쥐게 된다고 경계한다.
센
카쿠 열도를 차지하면 동중국해로 진출하는 문이 열리게 되는데, 이럴 경우 중국은 서해를 내해화하려 할 것이고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과 이어도 영유권에 본격적으로 도전해올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와 함께 남북통일 과정에서도 중국과의 경계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리가 중국의 영토분쟁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장성준 옮김. 김앤김북스. .
ido@yna.co.kr
임형두기자
<저작권자(c) 연합뉴스, 2021/06/03 10:52 송고
이스라엘 정착촌처럼… 中, 인도 국경에 마을 지어 ‘알박기’
인도 북동부 오지에 100여채 민가 건설
“中 분쟁지역서 영유권 강화하려는 전략”
인도와 영토 분쟁 중인 중국이 인도와의 국경 지역에 대규모 민간인 마을을 짓기 시작했다.
과거 안보 문제로 비워 놨던 땅에 도로와 전기, 수도, 통신을 연결해 언제고 군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전략을 모방해 분쟁 지역을 실효지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의소리(VOA)는 4일(현지시간) “국경 분쟁 지역인 인도 북동부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에서 중국이 새로 건설한 마을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위성사진에 따르면 사실상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오지에 100여채의 집이 지어졌다.
이 지역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중국이 히말라야 국경을 따라 만들려는 수백개의 정착촌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이다.
새로운 마을이 들어선 아루나찰 프라데시는 두 나라의 오랜 충돌 지역이다.
중국은 이곳을 남티베트로 부른다.
티베트 학자로 중국·인도 관계 전문가인 클라우드 아피는 “무장공격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인도가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
정말로 큰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1967년)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후보지였던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 일대를 점령했다.
이후 “불법으로 빼앗은 땅을 팔레스타인에 반환하라”는 국제사회 요구를 거부하고 수많은 이스라엘인 정착촌을 지었다.
중국도 이스라엘처럼 주변국의 반발을 감수하고 이곳을 장악하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정착촌 전략은 부탄과 네팔 등 국경 분쟁 중인 다른 나라에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뉴델리 정책 연구소의 전략학 교수 브라마 첼라니는 “최근에 지어진 국경 마을은 남중국해에 인공적으로 만든 섬에 해당한다”면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단 한 발의 미사일도 쏘지 않고도 지정학적 지도를 새로 그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의 영토 내에서 정상적인 건설 활동에 나서는 것은 전적으로 주권의 문제”라면서 “우리는 이 지역(아루나찰 프라데시)에서 불법적인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인디아투데이는 최근 중국에서 마무리된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자료를 입수해 “중국 정부가 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과 2035년 장기 목표를 통해 ‘국경 지역의 전략적 과학 기술 프로그램 증대’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국제사회를 의식해 구체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인도와의 국경 분쟁을 겨냥해 군사 무기의 현대화를 추진한다는 의미라고 매체는 지적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중국-인도 지역 분쟁 소셜미디어 영상.
중국이 과거 영토분쟁에서 양보한 이유는…
◇중국의 영토분쟁
중국은 현상유지(status quo) 국가인가, 아니면 수정주의(revisionist) 국가인가.’
2000년대 들어 국제정치학계의 최대 화두다.
현재의 국제 체제를 받아들이면 전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후자다.
급격히 힘을 불린 신흥 강대국은 수정주의로 치달아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이런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존 미어셰이머 등 미국 학자들이 중국의 공격성을 부각하는 것과 배치된다.
중국은 1949∼2008년 주변국과 23건의 영토 분쟁을 벌였는데 이 중 17건이 중국의 양보나 타협에 의해 해결됐다.
대만 인도 부탄 일본 베트남 등 나머지 6건의 미해결 영토 분쟁은 본토 수복(대만)을 제외하고 대부분 해양 진출과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이 기간 영토 분쟁에서 양보한 이유는 무얼까.
저자는 1949년 건국된 신생국의 취약성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마오쩌둥의 극좌운동으로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소수민족들의 저항에 부닥친 중국 정부가 외부 위협을 낮추기 위해 인접국과의 갈등을 피했다는 얘기다.
예컨대 1959년 티베트 봉기에 이어 1962년 대약진운동 실패로 어려움에 처한 중국은 북한 몽골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소련과의 영토 분쟁에서 한발씩 물러섰다.
그러나 중국이 일방적으로 양보만 한 건 아니다.
횟수는 적지만 중국은 양자관계에서 자국의 협상력이 현격히 줄었다고 판단되면 무력을 동원했다.
예컨대 중국은 1962년 10월 인도와의 국경협상이 결렬된 후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인도의 병력 증강이 가시화된 데다 경제위기로 중국의 입지가 약화됐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런 맥락에서 대만과의 영토 분쟁을 매개로 향후 미중관계의 불안요인이 커질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대만 지원이 자국의 협상력을 현격히 약화시켰다고 중국이 인식하면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중국의 군사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중국이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을 평화적으로만 해결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테일러 프레이블 지음·장성준 옮김/544쪽·2만 원·김앤김북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동아일보 & donga.com
중국 국기 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마스크를 쓰는 행인의 모습.
[사진=아이뉴스DB]
좁혀지는 '中 포위망' G7에 호주·인도·EU까지
공들였던 독일·프랑스도 압박
- 호주·인도·일본 등 사방이 갈등【베이징=정지우 특파원】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중국 포위망’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공을 들여온 독일, 프랑스도 주요 7개국(G7)국가와 함께 중국 견제에 적극 동참하면서 돌파구는 갈수록 좁혀지는 양상이다.
호주, 인도 등 다른 국가와 관계 역시 악화일로다.
중국은 “미국의 꼬임에 빠져 대항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미국이 국제 사회 장악에 나선 현재 상황에서 설득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 주석은 노동절 연휴 전후로 이스라엘, 헝가리 등 국가와 잇따라 유대 강화에 나섰다. 반중국 세력 대응 전략으로 풀이된다.
■공들였던 독일·프랑스도 압박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와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6일 공동 사설을 내고 “무리를 지어 중국에 맞서는 것은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게 악몽이 될 것”이라며 “대항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이는 G7 외교장관들이 5일(현지시간) 영국에서 회담을 가진 뒤 중국 견제를 골자로 한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G7은 성명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티베트 인권 문제, 홍콩 민주주의 퇴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우려를 언급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이들 사항은 모두 중국이 넘지 말아야할 선으로 규정한 ‘핵심 이익’이다.
G7 국가들이 이처럼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한꺼번에 내는 것은 지난달 미국과 일본의 공동 성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비슷한 내용에 참여 국가가 대폭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은 점차 강화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G7에 독일, 프랑스 등 중국이 유럽과 관계 개선을 위해 신경을 쓰고 있는 국가들도 포함돼 있다는 점은 중국 입장에선 더욱 부정적이다.
시 주석은 지난달 미국과 일본의 반중국 공동 성명이 나온 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 화상회의를 갖고 기후변화, 코로나19 백신을 놓고 협력을 강화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 중국과 유럽이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맞고 있으며 중국은 높은 수준의 개방을 외부 세계로 확대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을 위해 공정하며 차별 없는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시 주석은 제안은 중국·EU 투자협정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양측은 7년간 끌어오던 이 협정을 체결하기로 지난해 말 합의했지만 신장 인권과 홍콩 선거제 개편 문제로 부딪치면서 물거품이 될 상황까지 처했다. 이 협정은 미국 중심의 반중국 동맹 전선을 흔들 수 있는 기회로 평가받았었다.
EU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4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EU와 중국 간 대규모 투자 협상을 마무리 짓는 노력을 중단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 국기. 바이두뉴스 캡쳐
■호주·인도·일본 등 사방이 갈등
G7 이외의 국가와 관계도 실타래가 더욱 엉키고 있다. 미국 못지않게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호주가 다윈항의 장기 임대에 대한 재검토에 나서자, 중국 정부는 이날 양국 간 전략 경제대화의 무기한 중단을 선언했다.
다윈항은 2015년 중국 기업 랜드브리지에 99년 만기로 호주가 임대해 줬다.
지난해 국경 충돌 후 신장 관계에 놓인 인도는 5세대 이동통신(5G) 사업에서 화웨이, ZTE 등 중국업체를 전날 공식적으로 배제했다.
EU 27개 회원국은 중국의 홍콩 선거제 재편을 비판하는 성명과 12가지 대응 조치 채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반면 시 주석은 노동절 연휴 첫날인 지난 1일 성지순례 행사장 압사 사고와 관련해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으며 지난달 29일에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 잇따라 상호 협력을 재확인했다.
이들 국가는 상대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환구시보 등은 “중국은 유엔 헌장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제와 국제법에 근거한 국제질서 유지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개별 국가를 향해 중국에 대항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해당 국가를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중국의 힘은 과거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들보다 강하고, 경제·과학·군사력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미국의 꼬임에 빠져 중국에 맞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강조했다.
매체는 미국과 관계를 끊지 않고 중국에도 대항하지 않는 방식으로 G7국가들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주도하는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조만간 중국의 무역 정책을 총괄하는 류허 부총리와 만날 것으로 밝혔다고 주요 외신은 전했다.
미국은 회담에서 앞서 약속한 ‘1단계’ 무역 합의 이행 수준을 점검한 뒤 중국 무역제재 해제 여부를 결정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jjw@fnnews.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버지니아주 햄프턴의 랭리-유스티스
공군기지를 방문,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싸움
속에 있다”고 운을 뗐다./AP연합뉴스
◆…미 국방부에 걸린 미·중 국기 <사진 로이터>
바이든 “시진핑, 중국이 15년 안에 미국 이길 것이라 믿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완승(完勝)을 거둘 것이라 믿고 있다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각)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 연휴를 맞아 버지니아주 햄프턴의 랭리-유스티스 공군기지를 방문해 군인들 앞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나는 다른 어떤 정상들보다 시 주석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통역 한 명만 사이에 두고 그와 24시간 동안 독대(獨對)한 적도 있고, 중국 방문을 위해 1만7000마일(2만 7000 km)을 비행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그(시진핑 주석)는 중국이 2035년 이전에 미국을 상대로 완승(own America)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권위주의 국가는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싸움 한복판에 있다”고도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각종 연설에서 중국 견제 발언을 빼놓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미중관계를 협력, 경쟁, 대결을 뜻하는 ‘3C(Cooperation, Competition, Confrontation)’로 설명해왔는데 최근에는 ‘대결'에 방점을 찍으며 각 분야에서 중국 추격에 적극 맞서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도 지난 27일 “양국 관계는 이제 치열한 경쟁의 시기에 접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28일 발표한 2022회계연도 국방 예산에서도 중국을 정조준했다.
중국 군사력 증강에 맞서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레이더와 위성, 미사일 시스템 자금 투입 등을 골자로 한 ‘태평양억지구상(PDI)’에 51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고, 군사 기술력을 키우기 위한 연구·개발 예산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120억 달러를 책정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국방 예산은 중국의 도전과제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벌찬 기자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AFP뉴스1
840조원' 국방예산 발표한 美… 핵심은 ‘中 억제
핵 전력 증강
北 미사일 방어 강화
미국 국방부는 28일(현지시간) 7529억달러(약 840조원)에 달하는 2022회계연도(2021년 10월 1일~2022년 9월 30일) 국방예산안을 발표했다.
북한 등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 본토와 동맹을 향한 공격에 대비한 미사일 방어시스템 예산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국방 분야 우위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내년도 전체 국방예산안 가운데 국방부 예산은 7150억 달러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제 0.6% 감소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설명했다.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 때처럼 매년 3~5% 국방비 증액 기조를 유지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 내 진보파는 국방 예산의 최소 10% 삭감을 요구해 의회 심사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은 이번 국방 예산을 통해 최대 경쟁자인 중국을 겨냥하고, 러시아와 북한, 이란도 대응해야 할 위협 국가로 적시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번 예산이 중국의 도전과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한다”고 했고, 캐슬린 힉스 부장관도 “최대 전략적 위협인 중국에 대한 명확한 접근법을 요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방부는 연구·개발 예산으로 역대 최대인 1120억달러를 책정했다.
올해 대비 5% 증액한 것이다.
육해공 운송수단의 무인화, 사이버, 5세대 유도 에너지, 마이크로칩, 인공지능, 극초음속 기술 등에 집행된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키우려 한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맞서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레이더와 위성, 미사일 시스템 자금 투입 등을 골자로 한 ‘태평양억지구상(PDI)’ 예산에는 51억달러가 배정됐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핵무기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군 준비태세, 우주, PDI에 투자하고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국방부는 3대 핵전력으로 불리는 컬럼비아급 탄도미사일 잠수함, B-21 스텔스 폭격기, 지상발사체 등에 대한 현대화에도 주력한다.
이 분야에 모두 277억달러를 투자키로 했는데, B-21 30억달러, 잠수함 50억달러, 오래된 ICBM을 대체하는 사업인 지상기반전략억지 26억달러, 원거리 순항미사일(LRSO) 6억달러 등이 배정됐다.
ICBM을 포함해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무기 등 적국의 공격적 미사일 시스템에 대비한 육해공의 미사일 방어 분야에는 204억달러가 책정됐다.
해상의 경우 이지스함에서 발사하는 요격 미사일 ‘SM-3 IIA’ 등에 6억달러, 해상기반 미사일 방어시스템에 10억달러가 각각 배정됐다.
지상기반 미사일 방어 및 차세대 요격미사일에 17억달러,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THAAD)에 5억달러를 배정했다.
사드의 경우 18개의 추가 요격미사일, 노후화 완화, 생산 및 훈련 지원, 사드 비축 신뢰성 프로그램 등이 예산 투입 대상으로 적시됐다.
국방부는 이번 예산이 미국 본토와 괌, 한국, 일본을 포함해 미국과 동맹에 대한 북한의 탄도미사일 사용에 대항해 탐지, 교란, 방어 능력을 늘리기 위해 고안된 프로젝트에 계속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군인 임금을 2.7% 인상키로 했고, 군사시설이 기후변화에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7억 달러의 투자를 계획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2018년 6월 11일, 베트남 호치민시의 반중 시위/ 2018년 6월 11일
https://www.bbc.com/news/world-asia-44436019>
세계적인 반중 감정...6·25전쟁과 문혁 때부터 시작됐다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59회>
현재 중국은 외교적으로 1978년 개혁개방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세계 각국의 반중 감정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PEW 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세계 각국에서 중국을 싫어하는 인구의 비율은 일본 85%, 호주 81%, 스웨덴 85%, 덴마크 75%, 한국 75%, 영국 74%, 미국 73%, 캐나다 73%, 독일 71%, 프랑스 70% 등을 보인다.
이들 국가들의 반중 감정은 코로나 19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2017년 이래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BBC의 조사에 따르면, 반중 감정은 독일 35%, 캐나다 51%, 호주 47%였고, 2019 PEW 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독일 56%, 캐나다 67%, 호주57%였다.
2018년 현재 세계190국 중에서 128개국이 중국을 제1 교역 상대국으로 삼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중국과 경제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중국을 경계하고, 불신하고, 심지어는 혐오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코로나 19의 확산은 반중 감정을 강화시켰지만, 오로지 코로나 19 때문에 글로벌 반중 감정이 생겨났다고 볼 수는 없다.
전 세계적 반중 정서의 확산을 설명하기 위해선 1949년 건국 이래 지속돼 온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 인권유린, 중국-중심적(China-centric) 패권주의, 배타적 징고이즘(jingoism)에 주목해야 한다.
반중 정서를 확산시킨 굵직한 사건들만 역순으로 꼽자면, 코로나 19 팬데믹, 1989년 톈안먼(天安門) 대학살, 문혁 시기의 외교참사(1967-1969년), 한국전 파병(1950-1953, 이른바 “항미원조” 전쟁) 등을 들 수 있다.
영국 대사관 방화...문혁 시기 중국의 외교참사
1967-1969년 인구 8억의 거대한 대륙국가 중국은 문화혁명의 광열 속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고립무원의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1967년 8월 베이징의 홍위병들은 영국 대사관에 난입해서 불을 지르는 외교적 망동을 자행했다.
이 사건 이후 중국의 외교적 고립주의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1968년 한 해 중국의 외교는 마비상태였다.
외교참사의 최절정은 1969년 3월 만주의 국경에서 발생한 소련과의 군사 충돌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중국은 배후에서 북베트남에 무기 및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은 중공정부에 반미제국주의 선전선동의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들은 날마다 미국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기사로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968년 3월 미국의 존슨(Lyndon B. Johnson) 행정부는 북베트남과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소련의 중재를 통해 북베트남이 “파리 평화협상”의 제안을 수용하자 중월 관계는 큰 시련에 휩싸였다. 1968년 6월, 광저우(廣州), 쿤밍(昆明), 난닝(南寧)의 베트남 영사관에선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쿤밍의 베트남 영사관은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외교 전술이 중·월 관계를 위협한 셈이었다.
중·소 관계는 1968년 8월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으로 더 큰 위기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해 1월 5일 알렉산더 둡체크( Alexander Dubček, 1921-1992)가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자유화를 외치는 대규모 군중 시위가 발생했다.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었다.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부응한 둡체크 정부는 경제적 분권화 및 자유화 개혁을 추진했고, 이에 분개한 크렘린은 “공산국가의 배신을 단죄하기 위해” 65만 “붉은 군대”를 급파했다.
본래 둡체크의 개혁을 수정주의 노선이라 비판하던 중공정부는 180도 방향을 틀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편에 서서 소련의 군사행동을 규탄했다. 이후 중·소 대결은 악화 일로였다.
<1968년 8월 소련 점령군 탱크 앞에서 저항하는 프라하의 청년/ 공공부문>
그밖에도 중국은 홍콩 문제를 놓고 영국과 계속 맞서고 있었으며, 인도네시아 및 버마와도 충돌했다. 1967년 말, 베이징의 인도네시아 대사관이 공격을 당하자 자카르타의 중국대사관에 대한 보복 공격이 가해졌다.
20명의 중국인들이 부상을 당하고, 여러 명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후 양국은 공관을 모두 철수하는 극한 조치를 이어갔다.
게다가 중국은 심층 취재를 빌미로 일본인 기자단을 추방하고, 재중 일본 사업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이 인도의 반군 세력에 무기지원을 감행하면서 중·인 관계도 극심한 위기에 빠졌다.
1969년 5월 5일, 인도를 방문한 소련의 수상 코시긴(Alexei Kosygin, 1904-1980)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양국의 연합을 논했다.
1969년 5월 소련의 의장 포드고르니(Nikolai Podgorny, 1903-1983)는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직접 회유하기도 했다.
오직 캄보디아만이 표면상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성공했다.
미국이 캄보디아 내의 북베트남 병참기지를 공습하자 1968년 초부터 중국은 캄보디아에 군사지원을 보장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그러나 물밑에선 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1922-2012)에 저항하는 크메르 루주를 지원하는 양면전략을 취했다.
요컨대 1968년, 문혁의 광열 속에서 중국의 외교는 실종 상태였다. 8억 인구의 거대한 대륙이 고립주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외교적 출로가 막혀버리자 중국은 군사적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뼛속 깊숙이 게릴라 전사였던 마오쩌둥의 모험심이 다시 발동되는 모멘트였다.
<1969년 3월, 전바오다오로 진격하는 중국 병력의 모습/ 공공부문>
1969년 3월 중소 국경분쟁...중의 도발과 소련의 보복
중소 사이의 국경분쟁은 1959년부터 시작되어 1969년까지 해마다 점진적으로 고조됐다.
1966년 이후부터 중·소 이념갈등이 격화되자 국경 다툼도 거세졌다.
특히 1967년부터 중·소 국경은 화약고가 되어갔다.
1967년 1월 헤이룽장(黑龍江)성 북단의 우수리(Ussuri)강에서 최초의 국지전이 일어났다.
1967년 12월 7-9일, 23일과 1968년 1월 말 아무르(Amur)강과 우수리강에서 분쟁이 계속됐다. 1967년 11월까지 소련의 수 개 사단 병력이 몽골에 배치됐다.
이에 중국은 국경 맞은편에 방어적으로 병력을 배치했다.
동남방의 푸젠(福建)성의 병력까지 이동시켜 소련-몽골 국경에 배치하는 대규모 작전까지 펼쳐졌다.
급기야 1969년 3월 만주의 북쪽 중소국경의 우수리강 전바오다오(珍寶島)에서 중·소 군사충돌이 발발했다. 1860년 조약에 따라 청(淸)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국경으로 정해진 전바오다오는 아무도 살지 않고 전략적 가치도 없는 그저 작은 강 위의 섬일 뿐이었다. 이 작은 섬을 두고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두 차례의 격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 여파로 10년 넘게 중·소 양국 사이의 어색한 갈등이 지속됐다.
전문가의 해석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1차 교전은 중국의 의도된 도발로 보인다.
3월 1일 심야 300여 명의 중공군이 전바오다오에 진입해서 참호를 파고 매복에 들어갔다.
다음 날 오전 11시경 20-30명의 중공군이 구호를 외치면서 소련군을 유인했다.
중국 측 병력의 이상 징후를 포착한 소련군이 병력을 내보내자 중국 측은 선제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7명이 즉석에서 사망했다.
이에 매복하던 300 명의 중공군이 본격적으로 수류탄, 기관총 및 대전차포를 쏘아댔다.
중공군은 소련군에 돌진해서 백병전을 벌였다.
소련 측 주장에 따르면, 중공군은 19명의 소련군 포로를 생포해서 돌아간 후 즉석에서 처형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3월 15일 중·소 사이에 훨씬 더 큰 규모의 군사충돌이 이어졌다.
확실하진 않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전투가 보복을 맹세한 소련 측 선제공격에서 시작됐다고 해석한다.
중국 측은 2천 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했고, 수적 열세를 보였던 소련군은 50대의 탱크와 병력 수송 장갑차를 내보내 1만 발 이상의 포탄을 쏘아댔고, 36대의 전투기가 출격했다.
9시간의 전투 끝에 저녁 7시 경에야 전투가 끝이 났다.
소련 측 사상자는 60명, 중국 측 사상자는 800명에 달했다.
<1969년 전바오다오 사건 이후 버려진 소련제 탱크 T62 위에 올라선 중국
병사들의 모습/ 공공부문>
소련의 핵전쟁 위협...마오쩌둥 “세계 인구 절반 죽겠지”
1969년 3월 8일, 격분한 소련 정부는 중국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최고의 군사협박을 가했다.
3월 15일 2차 전투 이후 소련은 대중 유화책을 펴기 시작했다.
중국도 소련과의 전면전을 원치 않았다.
중국의 입장에서 전바오다오의 군사 충돌은 소련의 침공을 막기 위한 방어적 국지전일 뿐이었다.
그러나 양국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한 채 6개월 넘게 격한 흑색선전과 이념적 공방전을 이어갔다.
1969년 8월 13일 신장 지역에선 대규모 무력 충돌이 다시 일어났다. 소련은 그해 8월 말부터 다시 중국의 핵시설을 폭격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에 9월 5일 미국은 중·소 분쟁의 위험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현실적으로 양측 모두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는 현실인데, 외교적 해결책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1969년 9월 11일, 소련의 수상 코시긴은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서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와 담판을 벌였다. 코시긴이 중국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이 가능하다고 언급하자 저우언라이는 항일전쟁의 경험을 살려 전면적인 지구전에 돌입하겠다고 맞섰다. 두 사람은 잠정적 휴전에 일단 합의했지만, 양국 사이의 군사긴장은 향후 10년 이상 지속됐다.
그 당시 소련은 실제로 중국에 대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검토했었다.
당시 중국은 1964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고 2년 후 열핵(熱核) 실험까지 마쳤지만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 개발에선 여전히 뒤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이 핵무기 사용을 포기한 이유는 다름 아닌 중국 특유의 인해전술(人海戰術) 때문이었다.
1957년 11월 초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오쩌둥은 공식석상에서 제3차 대전이 일어날 경우 자본주의 체제가 멸망할 것이라 단언하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3차 대전이 터지면 최악의 경우 세계 인구 27억 중에서 절반은 죽고, 절반은 생존하겠지. 그렇게 되면 제국주의 국가들은 모두 파멸하고, 전 세계는 사회주의 체제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수년 안에 세계 인구는 다시 27억이 될 터이다.”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연설하는 마오쩌둥의 모습/ 공공부문>
1969년 6월 브레제네프는 국제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을 규탄하면서 말했다.
“12년 전 바로 이 장소에서 마오쩌둥은 놀라운 허세와 냉소를 머금고서 핵전쟁이 나면 인류의 절반이 죽을 것이라 말했죠.” 마오의 발언은 취중의 실언일 수도 있고 엉뚱한 농담일 수도 있지만, 혁명을 위해서라면 세계 인구의 절반까지 기꺼이 걸 수 있는 그의 도박사적 광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민의 목숨을 건 마오의 도박은 신비로운 마력을 발휘했다. 소련은 흐지부지 중국에 대한 과격한 군사작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미국은 중·소 사이의 벌어진 틈에 비집고 들어가 외교관계를 재건하는 “쐐기 전략”(wedge strategy)을 꺼내들었다.
외교적 고립상태에 빠져 있던 중국으로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야말로 소련을 견제하고 타이완을 탈환할 수 있는 최고의 묘책이었다.
놀랍게도 마오의 대(對)소련 군사 도발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물꼬를 텄다. 1971년 4월 11일 미국의 탁구팀과 기자단이 중국 땅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어서 1971년 7월 15일 미대통령 닉슨(Richard Nixon, 1913-1994)은 전국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이듬해 중국을 방문하겠다고 발표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평화가 절대선이다
김명인ㅣ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나는 지난해 말 미국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이성과 양식에 따라 바이든의 당선을 바라느냐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한가닥 기대를 위해 트럼프의 재선을 바라느냐를 두고 진지한 고민을 했었다.
비록 하노이 회담의 충격적 결렬 이후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고는 할지라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의 기억이 아직 선연한 이 시점에서 남북, 북-미 간에 지난 70여년간의 적대체제를 불가역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긴절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려한 것과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주의에 머물지 않고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선언을 존중한다고 언명하는 등 북-미 간 대화에 나름의 의지를 보인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 왜 긴요하고 간절한 것인가는 우리가 지난 70여년 동안 치러온 정치, 사회, 경제적 차원의 막대한 분단비용을 생각해본다면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먹고사는 문제로만 한정한다 하더라도 저성장 단계에 들어선 현 세계경제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의 탐색과 개발이 시급한 현재, 이를테면 유라시아 철도망 구축을 비롯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같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 사회적 교류의 본격화가 가져올 기대이익만으로도 그 긍정적 효과는 막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북한은 더 이상 냉전시대와 같은 공산주의 세력의 극동전진기지가 아니고 탈냉전시대에 국가존립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로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제재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사활을 건 목표라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기존의 낡은 관성으로 북한을 동북아시아 관리를 위한 꽃놀이패처럼 이용해서 얻는 이득보다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기왕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결코 더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는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물론 무엇보다 간절하고 딱한 것은 북한의 처지이다.
북한의 2020년도 국내총생산은 35조3천억원으로 남한의 1919조원에 비해 54분의 1에 불과하며 1인당 국민소득은 141만원으로 남한의 3744만원에 비해 27분의 1에 불과하다.
70년대 중반 이후 5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북한은 소련 및 동구권의 붕괴와 미국 주도의 국제 경제제재의 지속으로 인해 하락을 거듭하여 지금처럼 참담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런 그들이 군사력 유지에 국력을 쏟고 핵개발을 하는 것은 제재와 고립 앞에서 농성형의 병영국가체제의 유지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극악한 사정에 처한 북한으로서도 평화체제 구축 외엔 어떤 해법도 없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최근 북한이 노동당 규약 개정을 통해 남한혁명통일론, 즉 이른바 적화통일 의지를 포기한 것은 바로 그 명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한-미 회담에서 한·미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 ‘남북 이산가족 상봉 촉진’ 등 남북한의 자율적 교류에 대한 일정한 합의에 도달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이제부터라도 더 적극적인 대북 화해 협력 조치들을 재개해야 할 것인데, 남북, 북-미 간에 일정한 신뢰의 회복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무기한 연기를 동력으로 삼아 이산가족 상봉 프로세스의 재개, 금강산 등 남한 국민의 북한 관광 재개, 각종 인도적 지원의 전면적 재개는 물론 무엇보다 개성공단의 재가동과 남북 철도 연결, 북한 경제특구에 대한
투자 실행 등을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하며, 이에 대한 어떤 외부적 간섭이나 제약도 과감히 무릅쓰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정에서 민주적 개혁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기득권의 해체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제 남은 임기 동안 남북문제만이라도 좀 더 과감한 행보를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우리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와 지지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인식의 대대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남북 간의 체제 비교나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
북한 정권이 남북 분단 초기에 상대적으로 더 정통성과 정당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한국전쟁의 비극과 북한 사회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고, 그 사회를 더 이상 바람직한 사회모델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으며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넘는 동경은 한갓 몽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둘째,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가 하나의 국가체제로서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한, 그 자율성과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이제 삼가야 한다.
북한을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마치 일개 조폭집단을 대하듯이 함부로 비하하거나 능멸하고 그 인위적 붕괴를 기대하거나 선동하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을 자극하여 기존의 완고한 농성체제를 더욱 강화할 뿐이며 대화의 문을 봉쇄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셋째, 이와 더불어 현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가장 바람직한 미래상은 더 이상 ‘통일’이 아니라 상호 국가적 독자성을 지닌 상태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통일이라면 더 바람직하겠지만 우파건 좌파건 간에 통일이 절대선이라는 인식은 이제 낡았다.
중요한 것은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호 다른 사회체제를 선택하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이질적 역사를 경험해온 서로 다른 국가와 국민으로서 더 이상 적대하지 않고 호혜적인 협력이 가능한 선한 이웃 국가로서 평화적 선린관계를 마련하는 것이 현 단계에선 최선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평화야말로 절대선이다.
우리는 36년간 우리를 지배하고 수탈한 일본과도, 한국전쟁에서 교전 상대국의 하나였던 중국과도 가끔은 티격대기도 하지만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북한과는 왜 그럴 수 없는가.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북한을 한갓 반국가단체로 간주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물론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정하고 있는 헌법상 영토조항의 삭제와 같은 결단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모색과 실천은 이와 같이 열정과 냉정의 황금비율 속에서 이루어질 때 그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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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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