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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OST The Bodyguard Whitney Houston - I Will Always Love You


 

 

If I should stay,
I would only be in your way.
So I`ll go, but I know
I`ll think of you ev`ry step of the way.
내가 당신 곁에 남는다면 방해만 될 거에요.


그래서 난 가겠어요.
하지만 난 걸음걸음마다
당신을 생각할 거란 걸 알죠.


And I will always love you.
I will always love you.
You, my darling you. Hmm.


그리고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내 사랑..당신.

Bittersweet memories
that is all I`m taking with me.
So, goodbye..Please, don`t cry.
We both know
I`m not what you, you need.


내게 남겨진 건 달콤쌉싸롬한 기억뿐.
잘 가세요..제발 울지 말아요.
당신께 필요한 사람은
제가 아니란 걸 우린 알잖아요.


And I will always love you.
I will always love you.

당신을 언제나 사랑하겠어요.
언제까지나..


I hope life treats you kind
And I hope you have all you`ve dreamed of.
And I wish to you joy and happiness.
But above all this,
I wish you love.


당신 삶이 순조롭기를,
그리고 당신이 꿈꾸는 모든 걸 이루길 바래요.
당신께 기쁨과 행복이 함께 하길 빌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이
새로운 사랑을 하길 바래요.


And I will always love you.
You, darling, I love you.
I`ll always..I`ll always love you.


당신을 언제나 사랑하겠어요.
내 사랑...사랑해요.
언제까지나 사랑하겠어요.

 

 

 

 

 

 

 

<영화 "보디가드(The Bodyguard)">

 


'워너 브러더스'가 제작하여 직배 보급한 영화 <보디가드>는 주연을 맡은

배우가 미국 최고의 스타들이라는 점에서 일단 흥행 성공을 보장받고 있었다.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꿈의구장? 등에서 화려하게 국내 무대에

 등장한 캐빈 코스트너와 미국 최고의 흑인 여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나오는

이 영화의 주제는 간단하다.

 

 극중에서 유명한 가수로 등장하는 레이첼(휘트니 휴스턴)에게는 보디가드가 필요했고, 미국 대통령 경호원으로 있다가 대통령이 총상에 맞는 사건 때문에 해고 당해서 밥벌이로 개인 경호원을 하고 있는 케빈 코스트너가 보디가드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사랑이 싹트고 휘트니 휴스턴을 살해하려는

정신질환자이며, 스토커인 암살자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이들의 사랑이

 정점에 이르게 되는 전형적인 멜로물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던져주는 충격은 강하다.

그것은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가 그렇듯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서 물량공세로 밀어 붙이고, 그 물량에 압도 당하게 된다.

 

 화려하고 열정적인 음악, 현란한 영상, 비버리힐즈의 최고 부자들이 살고 있는 호사스런 저택 등, 미국 자본의 막강한

위력이 드러나고 있는 영화 속에는 또 다른 이념이 감춰져 있다. 다름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백인과 흑인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방식의 문제다.

 

이 영화가 가진 이념은 흑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로 백인 남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많은 흑인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대적으로 백인들보다 열악한 상태에서 불평등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백인우월주의가 예전처럼 노골적이지 않고 흑인 대통령까지 등장하고 있으나, 여전히 불평등은 잔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극히 소수의 흑인들은 스포츠나 연예가에

최고층에 올라서서 엄청난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런 소수의 흑인 부자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고 기회의 땅

 ‘어메리칸 드림’을 외쳐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굼하다.

 

 “자, 봐라. 너희들도 노력하면 저렇게 잘 살 수 있다” 고, 멕시코,

남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몰려갔고 극히 소수는 성공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인구의 2%가 전체 부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백인들은, 영화나 텔레비전 속에 성공한 흑인들을 등장시키고 그들과 백인들이 평등한 존재라고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톱스타인 여성과 그의 보디가드와의 사랑은 직업과 성공여부를 떠나, 순수한 사랑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약하고 감성적 여성에 대비하여 강인하고 이성적인 남성상을 부각시키고 있어 남성 우월적 성차별감을

느낄 수 있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보디가드>는 단순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어 스트레스 해소용 멜로 영화로 가볍게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자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팝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http://blog.daum.net/asd6448/287

 


 



 

출처 : http://blog.daum.net/paulsong/15861276

 

 

 

 

 

“I will always love you, 휘트니 휴스턴” 비련의 디바, 하늘 무대로…

 

 

ㆍ솔로 여성보컬시대 연 팝의 여왕…결혼 이후 몰락 가도
ㆍ약물 중독·파산 소문 남기고 48세 일기로 호텔서 숨져

‘디바’(DIVA)는 클래식 용어였다. ‘여신’이란 뜻의 이탈리어로, 오페라에서 노래하는 최고 인기의 소프라노 가수를 가르켰다. 1985년 휘트니 휴스턴을 시작으로 일군의 여성 보컬리스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LA경찰은 지난 11일(현지시간) LA의 한 호텔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숨진채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타살 흔적은 없었다. 그의 나이 마흔 여덟. 짧지만 그만큼 족적을 남긴 가수도 드물다.

휘트니 휴스턴은 흑인 여성을 중심으로 한 ‘솔로 여성 보컬가수의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데뷔 이후 5년 뒤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이 등장했다. 여성 솔로 디바의 계보는 이후로 토니 블랙스톤, 비욘세 등으로 이어진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머라이어 캐리 등 이후 여가수들은 휴스턴에게 큰 빚을 졌다”는 표현으로 휘트니 휴스턴이 차지하는 팝사(史)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팝계는 특히 남성 가수들의 점유지였다. 마이클 잭슨이 버티고 있었고, 프린스, U2, 본조비 등이 팝과 록, 팝메탈 등 각자의 장르를 주도했다. 섹시미로 무장했던 마돈나 정도만이 그들과 겨루고 있었을 뿐이다.

80년대 미국음악계 역시 화려함을 추구하고 있었다. 폭축을 쏘아대고 뇌쇄적 춤이 뒤따르는 퍼포먼스 형 팝가수들과 정면으로 겨뤘던 그의 싸움은 그래서 더욱 근사했다.

1985년, 1987년 휴트니의 앨범이 연이어 이뤄낸 성과로 대중음악산업의 중심축은 그제서야 여성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985년 그의 데뷔 음반은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앨범(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거둔 앨범)을 기록했다. 87년 등장한 두번째 앨범에서도 2년차 징크스 따윈 없었다. 88년까지 나온 싱들 6장이 모두 빌보드 정상을 밟았다.

휘트니 휴스턴은 11살 미국 뉴저지 교회의 청소년 성가대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어머니인 가수 씨시 휴스턴, 사촌 디온 워윅, 그의 대모(god mother)이자 솔 가수인 아레사 프랭클린까지, 그가 뛰고 놀았던 음악적 토양은 기름졌다. 음악적 환경 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인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휴스턴은 어머니를 도와 어느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레코드사에 발탁돼 데뷔했다.

1992년 매스미디어의 화려한 관심 속에서 시작한 유명 가수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안정적인 가정 생활을 기대했던 휴스턴과 달리 바비 브라운은 방랑자적 기질이 다분했다. 불화설, 폭행설, 약물복용설 등 각종 ‘설’들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1994년 영화 <보디가드>의 흥행만이 그를 위로했다. 영화는 작품완성도보다 음악의 호쾌함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흥행가도를 달렸다. OST 음반은 4200만장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디바 중 디바임을 과시했다.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휘트니 휴스턴의 목청은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이 앗아갔다”고 말하는 팬들이 많다. 휘트니 휴스턴은 결혼 후 이렇다할 음악 활동이 없었다. 2007년 바비 브라운과 이혼한 휴스턴은 2년간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려야했다.

약물중독이 문제였다. 휴스턴은 약물 중독 치료를 수차례 받았다. 2009년 재기 앨범을 내고 월드 투어에 나선 그는 “휴스턴의 시대는 끝났다”는 조롱을 듣곤 했다. 호흡이 예전같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부 공연은 콘디션 난조로 취소된 적도 있다. 2010년 한국을 한차례 찾아 마련했던 무대에서도 그는 때때로 숨가빠했다. 지난해 자발적으로 약물치료 과정을 밟겠다고 선언했지만 오래된 디바의 몰락을 미처 되돌리진 못했다. 최근 파산설이 불거졌고, 이후 그는 LA의 한 호텔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데뷔 만큼이나 사망 소식 역시 충격을 전해준다”며 “매직 보컬, 세기의 보컬이 스러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천부적으로 명징했고, 따스하게 퍼져가는 보컬이 일품이었다”며 “전성기 시절 그가 고음에서 들려주었던 쾌감은 남달랐다”고 술회했다.

그의 후배이자 좋은 경쟁자였던 머라이어 캐리는 그를 영원히 기리고자 했다. 12일(한국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세상을 은혜롭게 한 최고의 목소리를 지녔던 그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국내 가수 인순이는 “또 한명의 슈퍼스타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했고, 옥주현은 “첫사랑같은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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