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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Gershwin, An American in Paris

 

 

 

 

 

  

 

 

 

 

 

 

 

 

 

 

파리의 아메리카인 (An American In Paris) - 1951

 

감독 : 빈센트 미넬리

출연 : 진 켈리, 레슬리 캐론 

 

미국 현대음악의 거장 거쉬인(George Gershwin)의 명곡 "파리의 미국인"을 배경에 깔고서,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고
감상적인 미국식 뮤지칼의 전형을 화면에 아름답게 전개시킨 뮤지칼 명작.
이것은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와 함께 미국 뮤지칼 영화의 양대 거목인 진 켈리(Gene Kelly)의 영화 인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작품도 유명하며, 그는 이 영화에서 연기, 춤 과 함께 안무까지 담당했으며 이 작품의 아이디어
자체가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파리에서 화가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살아가는 미국인 청년 제리는 우연히 만난 여인 리즈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그의 절친한 친구 앙리의 약혼자였다. 미국으로 떠나는 두사람을 보내고 혼자 쓸쓸히
파리 시내를 걸으면서 그는 리즈와 함께 춤을 추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의 눈앞에 리즈가 나타난다.
 앙리가 두사람의 진실한 사랑을 알고서 그녀를 보내준 것이었다.
  흔해 빠진 진부한 스토리 라인에 비해서, 뛰어난 안무 솜씨와 함께 진 켈리의 모든 것을 화려하게 펼친 화면에다 레반트가 연주하는 거쉬인의 콘체르토, 테크니칼라 카메라로 잡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파리의 모습 등이 매우 인상적이다.

  레슬리 캐론(Leslie Caron)은 진 켈리가 1949년에 파리의 샹젤리제 발레단에서 직접 스카웃한 신예(당시 19살)로,
그에게 뒤지지 않는 춤솜씨와 요정같은 매력을 보여줌으로써 그후 미국 뮤지칼 영화의 인기 여배우로 떠오른다.
이 작품은 종래에 춤과 노래만이 중심이 되었던 뮤지칼의 전통을 과감히 혁신하여, 모던 발레, 음악, 색채, 장치, 무용, 미술 등이 영상속에 하나로 융화되어 있다.
 
특히 로트렉, 유트릴로, 루소 등 프랑스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배경으로 해서 그와 유사한 분위기를 영화 화면에 연출하는 장면들이 매우 독특했다.
 
또한 클라이맥스의 환상 장면에서 약 20분간에 걸쳐 전개되는 켈리와 캐론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댄싱 장면은 실로
 압권이다.
영화 역사상 가장 긴 두사람의 댄스 씬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일련의 씬 들은, 거쉬인의 음악과 절묘한 촬영, 켈리의 안무에 의한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춤, 수려한 미술과 의상 등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이 작품은 그해 아카데미상에서 작품, 각본, 색채활영, 색채미술, 뮤지칼음악, 색채의상디자인의 6개부문에서 수상하고,

 제작자 아서 프리드가 어빙 살버그상을 받고 진 켈리가 영화계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공로로 특별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외적인 우수성과 화려함에 비해서 내적으로는 알맹이 없는 스토리에 엉성한 구성으로 결점이

많았기 때문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젊은이의 양지> 같은 영화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들을 젖히고 작품상을

 받은데 대해서 말썽이 많았다.

그것은 제작사인 M.G.M.의 막강한 로비와 관록의 명우 진 켈리 개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다른 두 작품상 후보작은 <반역(Decision Before Dawn)>, <쿼바디스(Quo Vadis)>였다.


  이 작품에 대한 이러한 일부 비판적 평가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이며, 다만 이 영화가 보여준 종합예술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마땅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의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사조의 원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혁신적인 기법들은, 진 켈리라는 명우의 천재성을 실감하게 해준다. 그의 예술성은 다음해의 <비는 사랑을 타고(Singing In The Rain)>(52)>라는 걸작과 함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홍성진의 영화해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daum Musik
[조지 거쉰, G.Gershwin]

미국의 작곡가, 뉴욕 출생, 대중적인 경음악을 작곡하면서 재즈기교에 의한 수준 높은 관현악곡과

 

오페라를 창작하여 새로운 측면을 개척하였다.

 

소년시절 개인교사에게 피아노와 화성학을 배우고 16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 음악출판사의 피아니스트로서 작곡을

 

시작하였다.

 

19세 때부터는 극장 전속 피아니스트로 근무하였으며, 21세 때에는 [스와니]를 발표하여 히트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인기를 모아 리뷰나 쇼의 일류 작곡가가 되었으며, 1924년(26세) 폴 화이트먼이 위촉한 재즈의 기법을

 

따른 피아노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를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고전음악과 경음악을 조화시켜 관현악곡 [파리의 미국인](28세), [피아노협주곡 F장조](25) 및 오페라

 

[포기와 베스](35) 등의 본격적인 작품 외에도 많은 통속 희가극과 대중음악,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는데 뇌종양이

 

발병해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는 로맨틱한 멜로디보다는 리듬의 시대라고 일컬을 만큼 재즈의 강렬한 리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은

 

작곡가는 없다.

 

재즈가 지닌 야성적인 활력과 리듬의 참신한 매력을 현대 음악과 의식적으로 결부시킨 작곡가로는 유럽 출신의

 

스트라빈스키와 미국 출신의 거쉰이 대표적이라고 할 것이다.

 

거쉰은 20세기 전반에 가장 미국적인 성격과 수법을 작품에 반영한 작곡가로서 그의 작품은 독특한 재즈 감각과 도시인

 

취미의 세련된 선율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랩소디 인 블루>로 미국 악단의 총아가 된 거쉰은 <파리의 아메리카인>, <피아노 협주곡>, 오페라 <포기와 베스>등

 

으로 절정을 이루면서 미국 음악계의 혜성과 같은 존재일 뿐 아니라 음악사에 교향적 재즈의 확립이라는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출발한 그는 재즈나 파퓰러 음악에 관심이 높았고 많은 가곡을 작곡하여 인기를

 

모으고 있을 무렵, 당시 재즈계의 거장이던 폴 화이트먼이 거쉰의 뛰어난 재능을 간파하였다.
폴 화이트먼은 그에게 재즈의 수법을 도입한 교향적인 재즈를 쓰도록 간곡하게 권유하여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하게 된 것이며 초연 당시 미국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상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재즈와 교향악을 교묘하게 혼합하는데 성공한 거쉰의 독자성은 재즈를 교향적인 음악에 도입했다기보다는 재즈를

 

교향악의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음악사에 있어 멜로디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발전에 비해 등한시되었던 리듬에 대한 자각으로 멜로디와 리듬의

 

현대적인 결합이라는 점에 더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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