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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Respighi 고풍적 무곡과 아리아’(Respighi, Ancient Airs and Dances)

Respighi, Ancient Airs and Dances

레스피기 ‘고풍적 무곡과 아리아’

Ottorino Respighi

1879-1936

Neville Marriner, conductor

Los Angeles Chamber Orchestra

Ambassador Auditorium, Pasadena

1975.11

 


 



 

오토리노 레스피기는 메트너와 시마노프스키, 그보다 오래 살았던 버르토크, 코다이, 스트라빈스키, 동향의 작곡가 말리피에로나 볼프-페라리와 정확하게 동시대를 살았던 작곡가이다. 그는 1879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나 1913년부터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한 로마에서 1936년에 세상을 떴다. 볼로냐의 리체오 무지칼레에서 1891년부터 1901년까지 수학하면서 마르투치를 사사했는데, 마르투치가 1904년에 작곡한 두 번째 교향곡은 말리피에로부터 비(非) 오페라적 이탈리아 음악의 르네상스를 연 분기점과 같은 작품으로 높이 칭송받았고, 당대 이탈리아의 저명한 바그네리안(바그너 음악 애호가)이자 리비스타 무지칼레 이탈리아나의 편집장이었던 루이지 토르치로부터도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관현악의 마법사’ 레스피기

1900~1903년 러시아에 체류할 때 레스피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상임주자로 활동했는데, 여기서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러시아의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만나 오케스트레이션 레슨을 정기적으로 받는 한편 베를린에서는 막스 브루흐를 짧게나마 사사했다. 라벨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또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레스피기 특유의 거대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레이션과 엄청난 다이내믹, 투명한 서정성과 상상력 풍부한 스토리는 당대 오케스트라 명인들로부터 물려받은 테크닉과 정신을 기반으로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레스피기의 폭넓은 색채감과 장인적인 오케스트라 기법은 유명한 로마 3부작 <로마의 분수>(1916), <로마의 소나무>(1924), <로마의 축제>(1928)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의 명성은 오랫동안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은 채 애매모호한 상태로 지속되었다. 그 까닭은 어린이 같은 천진난만함 혹은 고지식함,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의 음악학자이자 몬테베르디 전문가인 앙리 프뤼니에르의 평가, 즉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대위법과 드뷔시의 하모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현란한 오케스트레이션 사이의 현명한 타협점을 찾아 최소한의 이탈리아적 멜로디로 채색했다”라는 분석은 그에 대한 흔치 않은 가장 정확한 관점일 것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휘자 토스카니니로부터 시작해 지난 70여 년 동안 위대한 지휘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레스피기의 휘황찬란한 오케스트라 작품들은 수준 낮은 인기곡 정도로만 인식되어 콘서트홀에서는 홀대받아 왔던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그의 오페라들은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을뿐더러 옛 음악으로의 학구적인 시간여행 또한 정당한 평가를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몰이해는 조금씩 극복되어 가며 레스피기의 음악에 대한 헌신, 예술적 노력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Neville Marriner/LA Chamber Orchestra - Respighi, Ancient Airs and Dances Suite No.2

1. Laura soave (0:00) - 2. Danza rustica (3:51) - 3. Campanae parisienses & Aria (7:32) - 4. Bergamasca (12:41)

‘지중해파’의 신고전주의 운동

멘델스존에서 비롯하여 브람스와 한슬리크에 의해 바그너에 맞설 무기로 재탄생한 신고전주의 최초의 물결은 바흐의 대위법이나 코랄과 같은 기법을 차용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신고전주의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는데, 표현주의ㆍ무조주의ㆍ인상주의 등에 대한 반동으로 힌데미트나 프랑스 6인조를 거쳐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커다란 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 운동의 힘은 너무도 강력하여 쇤베르크나 베베른도 신고전주의 기법을 사용할 정도였다. 프랑스의 라벨과 러시아의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또한 신고전주의 기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레스피기는 16-17세기 이탈리아 음악의 고아한 느낌을 탁월하게 활용했다. <피렌체 여인>, 보티첼리 작. 베를린 프리드리히 황제 박물관 소장.

여기서 또 다른 중요한 흐름으로 ‘지중해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중해를 기반으로 활동한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작곡가들―말리피에로, 카젤라, 피체티, 레스피기, 볼프-페라리 등과 같은 작곡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저 찬란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음악의 영광을 (프랑스 근대 작곡가들이 이루고자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다시금 재현하고자 했다.

이 ‘지중해파’ 신고전주의 운동은 다른 지역과 명백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신고전주의 미학은 과거로부터 채용한 양식과 기법을 현대화하는 것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많이 들리기 마련이었다. 또한 ‘불안한 시대의 미학적 유혹’으로 일컬어진 신고전주의는 2차원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중해파’에서는 신고전주의적 개념이 신낭만주의적 흐름으로 녹아 들어가 이탈리아적 특성과 민족주의적 성격을 한층 강화하는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후기 베리스모 작곡가인 몬테메지, 잔도나이, 알파노 같은 작곡가들에게 계승된다.

레스피기는 이탈리아의 특징과 현대적 기법, 그리고 고전적 양식 모두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이해했던 선구자적인 작곡가이다. “멜로디와 명료함이야말로 이탈리아의 중요한 유산이다. 최근 화성에서는 교회음악을, 형식에서는 옛 무곡을 차용하는 과거로의 세련되지 못한 회귀가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라고 그는 언급한 바 있다. 의식 있는 골동품 수집가처럼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옛 음악, 특히 이탈리아의 옛 악보를 모으고 분석하며 편집해 현대의 악기와 정서에 맞게 새로운 버전으로 편곡하여 출판하는 데 바쳤던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고전주의자였다. 오랜 역사와 함께해 왔던, 그러나 철저히 잊힌 이탈리아의 옛 음악들은 레스피기에 의해 비로소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레스피기는 파이지엘로와 치마로사의 오페라들을 새롭게 편집하여 무대에 올렸고, 몬테베르디의 저 위대한 <오르페오> 또한 새롭게 각색하여(1935년 밀라노 초연) 이탈리아의 평론가 귀도 가티로부터 “옛 걸작이 현대의 취향에 의해 재건되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한편 창작 오페라로 1923년 이후 <벨파고르>, <물에 잠긴 종>, <이집트의 마리아>, <불꽃> 등을 작곡하여 고전으로부터 익힌 것들을 현대적 무대와 융합하려고 했다.

이 작품은 옛 이탈리아 예술의 고풍적 멋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해석했다.

옛 이탈리아에 대한 재발견

한편 레스피기는 오케스트라 작품에서도 많은 신고전주의적 작품을 남겼다. 로시니 풍의 화려한 관현악곡으로 디아길레프를 위해 작곡한 발레곡 <이상한 가게>와 <로시니아나>, 17세기 하프시코드 곡에 의한 모음곡 <새>, 실내악곡 <도리아 선법에 의한 현악 4중주>와 기악곡 <그레고리오 성가 풍에 의한 협주곡> 등을 작곡했다.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바로 <류트를 위한 고풍적 무곡과 아리아>이다. 이는 페르골레지의 음악을 스트라빈스키가 각색한 <풀치넬라>에 비견할 만한 작품이다. 1917년부터 1931년에 걸쳐 완성된 이 작품은 그의 부인인 엘사에 의해 1938년에 발레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각각 네 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세 개의 모음곡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3번 모음곡(1931)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멜로디와 간결함에서 그의 관현악 작품들 가운데 ‘로마 3부작’ 외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니메이션 <노다메 칸타빌레>에 사용되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작품이다.

Neville Marriner/LA Chamber Orchestra - Respighi, Ancient Airs and Dances Suite No.3

1. Italiana (0:00) - 2. Arie di Corte (1:55) - 3. Siciliana (8:39) - 4. Passacaglia (12:18)

3번 모음곡 첫 번째 곡 ‘이탈리아나’(Italiana)는 1600년대 이탈리아의 작자 미상의 류트 음악인 ‘황홀한 이탈리아나와 우아한 시칠리아나’를 편곡한 것이다. 간결한 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아한 선율과 고귀한 느낌은 이탈리아의 향기를 담뿍 전달해준다.

3번 모음곡 두 번째 곡 ‘궁정풍의 아리아’(Arie di Corte)는 16세기 프랑스의 류트 연주가 장-밥티스트 베사르의 사랑에 관한 음악을 새롭게 편집, 편곡한 것이다. 사랑스러운 느낌과 애상감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이 대목은 총 일곱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Andante cantabile 당신과 함께함은 불행이어라’ - ‘Allegretto 영원히 안녕, 양치는 소녀여’ - ‘Vivace 맑게 응시하는 사랑스러운 눈이여’ - ‘Lento con grande espressione 사랑의 작은 배’ - ‘Allegro vivace 내 영혼을 어루만진 신성함이여’ - ‘Vivacissimo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내 순결함 때문일지니’ - ‘Andante cantabile 당신과 함께함은 불행이어라’.

3번 모음곡 세 번째 곡 ‘시칠리아나’(Siciliana)는 역시 16세기 이탈리아의 작자 미상의 류트 음악을 주제로 삼은 것으로, 목가적이고도 명상적인 멜로디가 확대, 발전, 회귀하는 구성이다. 저역현의 스타카토를 배경으로 영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역현의 앙상블이 어우러지며 시칠리아 섬 특유의 정서가 오롯이 피어난다.

3번 모음곡 네 번째 곡 ‘파사칼리아’(Passacaglia)는 17세기 후반의 이탈리아 기타리스트인 루도비코 론칼리의 ‘Capricci armonici sopra la chitarra spagnola’(베르가모, 1692)라는 작품에서 차용한 것으로, 엄격하고도 발전적인 변주가 비장미를 극대화하며 종곡으로서의 위엄을 발산한다.

 

추천음반

1. 가장 먼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베를린 필과 녹음한 음반(DG)이 눈에 띈다. 비록 바로크적인 간결함보다는 후기낭만주의적인 스타일이 강하게 느껴지는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카라얀이 만들어내는 탐미적인 음향과 세부의 정묘함은 단연 발군이다.

2. 오자와 세이지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앨범(DG)은 이 작품에 대한 가장 정석적인 해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3. 리코 사카니가 이끄는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의 연주(Naxos)도 수준 이상의 밝고 우아한 연주를 들려준다.

4. 고전적인 음반으로 안탈 도라티가 필하모니아 훙가리카를 이끌고 녹음한 음반(Mercury)은 연주도 훌륭하거니와 무엇보다도 리코딩 퀄리티가 대단히 좋다.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6.0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5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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