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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고민에 빠진 박근혜의 외교

냉정과 열정 사이... 對日 · 對中 외교의 명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7일 인도네시아 발리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담장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여준 미소 가득한 열정적인 표정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보여준 웃음기 없는 냉정한 표정이 동아시아 국제사회에서 잔잔한 파문(波紋)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10월 8일 한국 신문들의 보도를 인용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일본 총리와는 ‘인좌영교류(隣座零交流·나란히 이웃한 자리에 앉아서도 아무런 말을 나누지 않았다)’를 보여준 반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는 ‘십분융흡(十分融洽·대단히 잘 어울리는)’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한국 외교부 안총기 경제외교조정관의 말을 인용해서 “한국과 일본 정상 간에는 APEC 기간 동안 아무런 대화가 없었고, 항상 1m 이상의 거리가 유지됐고, 항상 이어폰을 낀 상태였다”고 전했다.

 

반면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천리를 내다보려면 한 층을 더 올라가 내다보아야 한다)’라는 당(唐)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양국 관계는 이제 한 층 더 올라왔다(업그레이드됐다는 뜻)”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인용한 시구는 지난 8월 말 박 대통령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선물한 족자에 적혀 있던 시구였다. 박 대통령은 그 시구를 외워서 시진핑 주석에게 들려준 것이었다.
   
   NHK와 아사히(朝日)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발리에서 정상들 간 기념촬영을 하는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자, 박 대통령이 다른 곳을 응시하다 마지못해 손을 잡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고, 촬영을 마친 박 대통령이 곧바로 방향을 틀어 회의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박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지적한 데 대해 “할 말이 있으면 일본에 직접 하라”는 논조를 보였다.
   
   미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퍼시픽 포럼은 10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 정상에게 보여준 이같은 대조적인 모습에 대해 스테파니 강 연구원이 쓴 ‘보디랭귀지:한·일 관계의 하나의 신호(Body Language:A Sign of ROK-Japan Relations)’라는 소논문을 웹 사이트에 실었다. 이 소논문은 “박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발리의 APEC 회담장에서 차가운 분위기를 보여주었고, 두 정상 사이에 한국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서리가 내린 듯한(frosty) 감정교환이 이뤄진 반면, 박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에는 따뜻한 분위기가 이뤄져 대조적이었다”고 전하고,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의 보디랭귀지는 한·일 관계의 현 상황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테파니 강 연구원의 소논문은 “미국과 일본의 2+2회담이 서울에 경보음을 울리게 만들었다”고 분석하면서, 10월 3일 도쿄(東京)에서 열린 미·일 안보협의회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해 한국이 커다란 관심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이 회담에서 일본이 방위예산을 490억달러로 증가하겠다는 요청을 한 점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군사력 확대의 서곡이라고 보고 있으며, 일본의 군사비 증액은 1990년대 초 걸프전쟁 이래 처음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CSIS의 소논문은 “한국 정부의 이같은 우려는 잘못 형성된 것(Seoul’s concerns are misguided)”이라고 평가하면서 “일본의 군사력 증대는 무엇보다도 북한을 겨냥한 것이며, 어느 한국인도 일본이 군사력을 한국을 상대로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미국과 일본 정부는 미·일동맹의 틀 안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를 시도하고 있으며, 일본의 군사비 확대는 GDP의 1% 이내라는 제한 규정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이 소논문은 “일본의 재무장을 보는 한국인들의 우려는 사실상 실제적인 근거가 약하다”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 중국의 두 정상에게 냉정과 열정의 대조적인 표정을 보여주면서 한국 외교가 고뇌의 시기에 들어갔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지난 10월 4일 제주대 평화연구소가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동아시아 세력 전환과 한국 외교’라는 기조 강연을 통해 한국 외교가 처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도가 증가함에 따라 협력 요소가 증가하는 데 반하여 안보적으로는 대립과 갈등 요소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당면한 아시아 모순(Asian Paradox)이며, 안보와 경제가 상반된 이중 구조의 동아시아 질서를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가 주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한국에 있어서 동북아의 세력 전환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우리에게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의 역할 여하에 따라서는 미·중 양국이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한국이 중국에 경사되는 입장을 취할 경우 이는 일본의 우경화 동인이 된다는 점에서 한·일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우리 외교가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첫째 세력 전환이 일어나는 가운데 항상 균형감을 가지고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며, △둘째 우리 사회에는 단순한 해결책이나 대응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로 인한 오류를 피해야 하므로 한국은 주변국들에 비해 상황 지배력 면에서 뒤떨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복합적인 사고와 신중한 행동이 긴요하다, △셋째 동북아의 세력 전환에 대처하면서 동북아에만 함몰되지 말고 시야를 넓혀 이를 넘어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세계를 대상으로 한 복합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동북아에서 받는 제약을 뛰어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신 전 대사는 “우리의 힘이 약한 만큼 ‘머리로 하는 외교’에 힘써야 한다”면서 “중동의 이스라엘, 동남아의 싱가포르와 같이 역내 동향에 관한 정보 집산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역내에서 우리의 가치를 높이고 국익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일한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지난 9월 2일 평화아카데미에서 한 강연에서 ‘동아시아 강대국 정치와 한국의 좌표’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통해 “현재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ward Asia) 전략이란 기치 아래 서태평양 지역의 제해권(制海權) 수호를 위해 해공군 전력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도전을 모색하고 있는 중국 간에 치열한 각축전이 예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성한 전 차관은 “일본은 현재 미국과 함께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해야 할 처지”라고 말하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미 동맹을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지역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전 차관은 “미국과의 동맹을 견고하게 유지하면서 한·중 경제협력과 정치·군사 협력 간에 균형을 도모하고, 통일 한국이 중국에 득이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가야 한다”며 “결국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를 조화 발전시켜 나가는 데 한국 외교의 좌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 초 취임한 이후 외교의 방향타를 잡고 있는 한국호는 현재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국가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면서 주변 외교의 파고(波高)가 점점 높아지는 해역을 항해 중인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의 GDP(국내총생산)가 전 세계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 정도이며, 미국은 23%, EU(유럽연합)가 20% 남짓인 것으로 세계은행은 집계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빠른 경제 발전에 성공한 중국은 2010년 말에 전 세계 GDP의 8% 정도를 차지하면서 일본의 GDP 규모를 살짝 추월했다.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긴장과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은 바로 이같은 아시안 패러독스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며 일본과 중국이 동아시아 지배권을 놓고 벌이고 있는 각축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 한국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 GDP의 1%를 상회하는 정도이므로 우리로서는 한·미 동맹의 강화를 기반으로 해서 한·미·일 관계와 한·중·일 관계를 신중하게 운용해나갈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현재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은 동아시아에서 지배세력의 교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므로, 우리로서는 일본과 중국 어느 쪽에도 경사(傾斜)되지 않으려는 균형감각 확보를 위한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인 것이다. 지나간 역사문제의 해결을 위해 현재 진행 중인 동아시아 주도권 교체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의존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 모두가 우리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구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자료 : 주간조선(박승준/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