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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베르디의 생애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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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 나부코[ Nabucco , Nebuchadnezzar ]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19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는 1834년 밀라노에서 최초의 오페라 <오베르토>를 작곡,

1839년 스칼라극장에서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초연된 <하루만의 임금님(가짜 스타니슬라오)>은 실패로 끝나 실의에 빠졌으나 스칼라극장

 지배인 메레리의 후원으로 <나부코>를 작곡하였다.

 

 

  1842년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성공을 거두었는데, 특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압정 아래 있던 이탈리아의 조국통일운동 속에서 제2의 국가(國歌)가 되어 널리 불려졌다.

 

 

  1847년 발표한 <맥베스>는 증오와 몽상이라는 인간 감정의 적극적 표현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 결과 이탈리아 오페라는 보다 극적인 통일성, 심리적 표현을 다루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작품 가운데 51∼53년에 걸쳐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등 성격이 각기 다른 걸작을 발표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 속에서 19세기 전반의 벨칸토(belcanto) 오페라 시대의 유일한 개성적

작곡가로 활동했다. 그는 구성상의 문제와 연기에 유의하여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서

항상 유려한 선율성을 주장했으며,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 독립을 부르짖던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베르디는 그의 긴 생애를 거의 오페라에 바쳤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작품은 거의 없고 1874년에 시인

만조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레퀴엠(진혼곡)>을 발표하기도 앴다.

 

 

  1901년 뇌졸중으로 쓰려져 사망한 베르디의 장례식에서는 그가 생전에 작곡한 오페라 <나부코>의

주제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전 세계에서 약 20만 명의 인사들이 참석했고 특히 푸치니, 레온카발로,

지오르다노 등 당대 젊은 오페라 작가들도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또 이탈리아 일간지들은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일제히 1면에 검은 리본을 인쇄했다.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그의 <일트로바토레>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춘희)> <아이다> 등이

연주되고 있다. 베르디는 불멸의 작곡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