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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영화 희생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영화 속 클래식]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희생

The Sacrifice 1986               

                                       얼랜드 조셉슨(알렉산더), 수잔 플리트우드(아델라이드),

                           알란 에드발(오토), 구드룬 기슬라도티르(마리아)

 “아들아, 네 온 마음을 담는다면,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운단다.”

 

'영화의 구도자'라 불리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영화는 취향이 맞지 않으면,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다가 이내 잠이 들어버리고 맙니다.^^ 한 장면을 길고 오래 촬영하는 롱테이크 기법을 고집스레 사용하면서 물과 바람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만을 포착해내는 듯한 그의 영화는 스토리는 고사하고 어느 한 대상이나 인물에 집중하기 힘들게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유작인 영화 <희생>은 1986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국제영화 비평가상, 예술 공헌상, 기독교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고, 영화 제작사는 망했습니다. 영화만이 명화로 남았습니다. 스페인어 자막본입니다.

“아주 먼 옛날, 한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단다. 이름은 팜베였지. 그는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산에 심었단다. 그리고 제자 조안 코롭에게 말했지.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같이 물을 주도록 해라. 어쨌든 조안은 매일 이른 아침 물통에 물을 담아 산에 올라가서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는 저녁이 되어서야 수도원으로 돌아오곤 했지. 그렇게 3년 동안 물을 주던 어느 날 그는 나무에 온통 꽃이 만발한 것을 발견했단다. 끝없이 노력하면 결실을 얻는 법이지. 만약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늘 꾸준하게, 의식과도 같이 말이다. 그러면 세상은 변하게 될 거다.”

전직 교수이자 연극배우인 알렉산더는 죽은 나무를 땅에 심으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의 아들 고센은 어찌 된 일인지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문을 닫아버린 아들에게 ‘말’을 한다. 어떤 일이든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이날은 알렉산더의 생일날이다.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이자 의사인 빅터와 마을의 우편배달부 오토가 그의 집을 찾는다. 친구,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을 때,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알렉산더는 전쟁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의 아내는 공포에서 오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발작한다.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되고, 그것이 지구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알렉산더는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오! 주여! 이 암울한 시대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포기하겠습니다. 집도, 사랑하는 아들도 버리겠습니다. 평생을 벙어리로 살겠습니다. 제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어제 혹은 오늘 아침과 똑같이 모든 것을 되돌려 주소서. 그리고 저의 이 끔찍한 두려움을 없애 주십시오. 내 모든 것을. 오!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 약속한 모든 것을 지키겠습니다.”

알렉산더는 신에게 약속한 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집을 불태운다.

알렉산더는 만약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때 세상이 오늘과 다름없이 평화롭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신에게 약속한다. 이때 우체부 오토가 알렉산더를 찾아온다. 그리고 가정부인 마리아와 동침을 하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이 말을 들은 알렉산더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마리아를 찾아간다. 그리고 매우 의미심장한 얘기를 들려준다.

“어머니의 집 정원에는 잡초가 무성했지. 몇 년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황폐한 정원에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었소. 지금은 그게 무언지 알 것 같아.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머니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서 정원을 내다보곤 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원을 청소하기로 했소. 전체를 내 식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요. 꼬박 2주 동안 절단기와 낫을 들고 정말로 바쁘게 일했소. 그리고 일이 다 끝난 다음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창밖을 내다보았지.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린, 자연미라고는 전혀 없는 너무도 추한 풍경이었소. 폭력이 휩쓸고 간 현장이었지. 그런가 하면 이런 일도 있었소. 내 여동생이 어렸을 때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른 적이 있는데, 집에 돌아온 그녀를 보고 아버지가 울었던 기억이 나오. 정원과 마찬가지 경우라고 할 수 있지.”   <!--[if !supportEmptyParas]-->

마리아와 알렉산더

여기서 알렉산더의 말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얘기하는 어머니의 정원은 이 세상이다. 인간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신이 보시기에 그곳은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린, 자연미라고는 전혀 없는 황폐한 세상이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신이 슬퍼하고 있다. 아름다운 머리를 잘라버린 여동생을 보고 그의 아버지가 울음을 터트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신은 황폐하게 변한 이 세상을 버리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안 알렉산더는 울면서 신에게 매달린다. 그러다가 마리아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로 한다. 마리아는 처음에 동침하자는 알렉산더의 청을 거절한다. 하지만 그가 권총으로 자살을 사도하려고 하자 마침내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 두 사람은 절실한 마음으로 인류 구원의 의식을 치른다.

그런 다음 알렉산더는 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린다. 자신이 지금까지 속했던 세계와 완전히 결별하고, 가족과의 인연뿐만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집에도 불을 지른다. 그런 완벽한 희생을 통해서만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타는 집을 보고 알렉산더의 가족들은 절규하고, 알렉산더는 앰뷸런스에 실러 간다. 그렇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 알렉산더는 세상과 결별한다.

알렉산더의 희생으로 지구 멸망의 위험은 지나갔다. 또다시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 알렉산더의 아들 고센이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그때 바흐의 <마태 수난곡> 중 알토 아리아 ‘나의 하느님. 눈물로서 기도하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울려 퍼진다.

죽은 나무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정성껏 죽은 나무에 물을 주던 고센에게는 변화가 찾아왔다.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센은 죽은 나무 아래 누워서 이렇게 속삭인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아빠 그게 무슨 뜻이지요?”

매일 나무에 물을 주는 고센.

<희생>은 시적 상징과 이미지로 충만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세 명의 동방박사가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장면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바흐의 <마태 수난곡> 중 알토 아리아 ‘나의 하느님! 눈물로서 기도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나오는데, 두 가지 모두 희생과 구원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영화는 바흐의 음악으로 시작해 바흐의 음악으로 끝난다. 바흐가 살던 시절, 독일의 여러 교회에서는 매년 성 금요일이 되면 그리스도의 수난을 소재로 한 수난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수난주간이 되면 다른 모든 음악 활동이 금지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수난곡을 듣는 것이 유일한 음악 행사였으며, 따라서 이 곡에 쏠리는 사람들의 기대도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칸토르(합창단 총감독)로 일하고 있었던 바흐는 1729년 4월 15일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 <마태 수난곡>을 초연하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방박사의 경배>, 1481년, 나무에 유채, 246×243cm, 우피치 미술관

<마태 수난곡>은 예수의 수난을 다룬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대한 음악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모두 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에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것에서부터 최후의 만찬, 예수의 예언,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거쳐 예수가 체포를 당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1부이고, 예수가 대제사장 앞에서는 때부터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장면과 유다의 죽음, 빌라도의 심판, 사형선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숨을 거두는 예수, 무덤에 묻히는 예수까지의 이야기가 2부에 해당된다. 바흐는 3년 동안의 작업을 거쳐 이 인류 최대의 드라마를 기악 반주를 동반한 합창과 독창, 중창으로 펼쳐 보였다. 모두 78곡, 전곡의 연주시간만 해도 3시간에 달하는 대작인데, 성 토마스 교회에서 처음 연주되었을 때에는 중간에 목사의 설교와 기도 순서가 있었기 때문에 연주시간이 약 5시간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태 수난곡>은 흔히 종교음악의 하나로 분류된다. 하지만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다룬 이 인류 최대의 서사시에서 나는 신의 목소리보다는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예수의 인간적인 고뇌와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와 그를 세 번 씩이나 부인한 베드로,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입장과 태도를 보이는 인간 군상들… 신과 인간, 성(聖)과 속(俗), 영혼과 육체, 믿음과 배신… 어쩌면 예수 고난의 이야기는 이 모든 인간적인 것을 담고 있는 한 편의 휴먼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휴먼 드라마의 정점에 이 아리아 ‘나의 하느님, 눈물로서 기도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있다. ▶렘브란트, <십자가로부터의 강하>, 1634년, 캔버스에 유채, 158x117cm, 에르미타주 미술관

나의 하느님.

눈물로서 기도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우는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보시옵고

나를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의 하느님’은 비탄에 찬 바이올린 전주로 시작을 한다. 애절하다 못해 처절한 느낌마저 주는 바이올린 오블리가토가 짙은 음영의 알토 아리아와 어우러지면서 ‘나의 하나님’은 처연한 슬픔의 비가(悲歌)가 된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단순한 반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알토 아리아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이 곡은 바이올린과 알토의 2중주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만약 바이올린 오블리가토가 없었다면 이 곡의 처연함이 그토록 절실하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

예수가 드디어 잡히게 되었다. 그러자 예수는 제자인 베드로에게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예언한다. 하지만 베드로는 죽는 한이 있어도 자기는 그렇게 비겁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드디어 예수가 체포되고 베드로는 잡혀가는 예수의 뒤를 몰래 따라간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사람이 그를 가리키며 ‘저 자도 예수와 한 패였다’고 소리친다. 그러자 그는 황급히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예수의 존재를 부인하기를 세 번, 드디어 닭이 운다. 바로 그때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자기를 세 번이나 부인하리라는 예수의 예언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순간을 ‘흐르는 눈물이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았다. 그는 군중 밖으로 나가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고 적고 있다. ▶렘브란트,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 1660년, 캔버스에 유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나의 하느님’으로 시작하는 알토 아리아는 바로 이 장면 다음에 노래된다. <마태 수난곡>을 처음부터 쭉 듣고 있다 보면 베드로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바로 다음 장면에 이 곡을 집어 넣은 바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확실히 바흐는 작곡은 물론 음악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극적 구성에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한껏 부각시켜 놓은 다음에 ‘이 부족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아리아가 나오도록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이 노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알렉산더의 기원과 눈물을 상징한다. 그는 눈물로서 신에게 호소했고, 신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진회숙(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영화 속 클래식 2014.06.1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58145

 :

Bach, St. Matthew Passion ‘Erbarme dich, mein Gott’

Wolfgang Gönnenwein, conductor

Julia Hamari, alto

바흐의 <마태 수난곡>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베드로의 ‘나의 하느님, 눈물로서 기도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알토 줄리아 하마리가 부르는데 영화 <희생>에 쓰인 바로 그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