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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영화 어거스트 러쉬 커스틴 쉐리단 감독

 

커스틴 쉐리단 감독

어거스트 러쉬

August Rush, 2007

프레다 하이모어(어거스트 러쉬),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루이스 코렐리), 케리 러셀(라일라 노비첵) 

당신의 가슴을 연주할 특별한 이름. 음악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운명을 부른다. 사랑과 기적을 연주할 특별한 이름.

 

영화 <어거스트 러쉬> 사운드트랙입니다. 영화에서 질주하는 리듬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8월의 광시곡(August's Rhapsody in C Major, composed by Mark Mancina)’을 첫 곡으로 20곡이 이어집니다.

“저건 정말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음악적 재능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절대로 아니거든. 악기를 한 번도 만져 본 적이 없는 아이가 갑자기 기타와 오르간을 능숙하게 연주한다는 게 말이 돼?”

몇 년 전, <어거스트 러쉬>를 함께 본 한 중견 피아니스트가 내게 한 말이다. 맞는 얘기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피나는 훈련과 연습이 없으면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믿게 만드는 배경에는 이른바 천재 신화가 있다. 주인공은 천재이다. 천재는 신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악기도 그 악기를 몇 십 년 다룬 사람처럼 연주한다. 작곡도 식은 죽 먹기이다. 마치 물레가 실을 뽑아내듯 머릿속에서 음악적 영감들이 끊임없이 솟아 나온다.

실존 인물 중에서 음악의 천재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모차르트의 이름을 댈 것이다. ‘음악의 신동’이라는 대명사가 항상 따라다녔던 모차르트는 전설과 같은 기록을 많이 남겼는데, 4살 때 협주곡을 작곡하고 9살 때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신화가 모두 이에 속한다.

모차르트가 천재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저절로 천재가 된 것은 아니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천재성을 갈고 닦고, 적절히 발현하기 위한 피나는 훈련과 연습의 과정이 있었다. 이 점은 베토벤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중에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산책을 하고 있는 베토벤의 모습을 그린 것이 있는데, 이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그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단순한 악상은 산책을 하면서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음악은 책상 위에서, 수많은 시간 동안의 정신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베토벤의 작곡 노트를 보면 그가 단순한 모티브를 거대한 악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영화가 현실을 담을 수도 있지만, 판타지를 담을 수도 있다. 음악가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천재는 음악에 대한 우리의 판타지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음악의 천재, 그가 처한 현실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아니, 척박해야만 한다. 좋은 환경에서는 천재성이 희석될 수밖에 없으니까. 될 수 있으면 불우해야 한다. 그렇게 불우한 환경이라야 그 천재성이 더욱 빛이 난다. <어거스트 러쉬>의 에반이 바로 그런 천재이다. 

영화 속 천재 소년 에반. 어린 나이의 에반은 자신의 자작곡 연주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장래가 촉망되는 첼리스트 라일라 노바첵은 연주회가 끝나고 들른 뉴욕의 한 바에서 우연히 코넬리 브라더스의 리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를 만난다.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 버린 두 사람은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라일라는 잠에서 깨자마자 서둘러 루이스의 곁을 떠난다. 다음 연주회를 위해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일라를 놓치기 싫었던 루이스는 호텔로 돌아가는 라일라를 뒤쫓지만 딸을 감시하는 라일라의 아버지 때문에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차를 타고 떠나는 그녀를 지켜본다.

라일라와 헤어진 후 루이스는 방황한다. 밴드의 리드 싱어로 일하는 것도 시들해져 결국 팀에서 나오고 만다. 한편, 라일라는 루이스와 하룻밤을 보낸 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라일라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장래를 생각해 아이를 지우라고 한다. 하지만 라일라는 아기를 낳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일라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한참 만에 의식을 회복한 라일라는 아버지로부터 아기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해 버린 루이스와 라일라.

그로부터 11년 후, 뉴욕의 한 고아원. 이곳에 에반 테일러라는 11살짜리 소년이 살고 있다. 바로 루이스와 라일라의 아들이다. 라일라의 아버지는 라일라에게 아기를 유산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은 딸 몰래 고아원에 보낸 것이다. 그렇게 고아원에 보내진 에반이 어느덧 11살이 되었다. 하지만 루이스와 라일라는 자기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부모의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것일까. 에반은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음악을 듣는다. 지나가는 바람, 들판에 일렁이는 풀들, 하늘의 별에게서도 음악을 듣는다. 부모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에반은 자신이 음악을 하면 언젠가는 부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그는 고아원을 탈출한다.

에반은 뉴욕의 거리를 헤매다가 거리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떠돌이 흑인 소년을 만난다. 흑인 소년은 에반을 자기의 거처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거리에서 음악 연주로 앵벌이를 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 앵벌이를 시키고 돈을 빼앗는 사람은 거지 대장 위저드이다. 위저드는 에반이 기타를 두 손으로 멋지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단번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그리고 에반을 앞세워 큰돈을 벌려고 그에게 어거스트 러쉬라는 예명을 지어준다.

에반에게 거리 연주를 시키는 위저드(로빈 윌리엄스).

한편 아기를 유산한 후 첼리스트의 길을 포기한 라일라는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인 교습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루이스는 시카고에 살고 있는데, 그 역시 라일라와 헤어진 후 밴드에서 나와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일라는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숨을 거두는 순간에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녀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 라일라는 아들을 찾기 위해 뉴욕으로 온다. 그리고 에반이 살았던 고아원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이미 고아원을 탈출했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한다. 그녀는 아들을 다시 찾는다는 희망을 안고 다시 첼로 연주를 시작한다.

한편, 밴드의 리드 싱어로서의 삶을 버렸던 루이스 역시 운명적인 사랑과 음악에의 열정을 쫓아 다시 뉴욕을 찾는다. 거리의 천재 소년으로 유명해진 에반은 고아원에서부터 자기를 도와주었던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줄리아드 음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학생들 틈에서 공부한다. 워낙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에반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회에서 자신의 자작곡을 직접 지휘하는 행운을 얻는다.

부자지간이란 것을 서로 모른 채 루이스와 에반은 거리에서 같이 연주한다.

그런데 바로 이 연주회에 또 다른 협연자로 라일라가 출연한다. 모자가 한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바로 이때 루이스는 뉴욕을 떠나기 위해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음악회 포스터가 들어온다. 그런데 거기에 첼리스트 라일라 노바첵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루이스는 차에서 내려 센트럴 파크로 달려간다.

이날 라일라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다. 연주가 끝난 후 뒤돌아 나가려고 하는데, 자기 다음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자작곡을 지휘하고 있는 한 꼬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자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들 에반이 아닌가. 놀란 라일라가 감격스런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손을 잡는다. 바로 루이스이다. 11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 어느덧 한 소년의 부모가 된 두 사람이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다. 

어거스트 러쉬(에반)의 연주를 지켜보는 루이스와 라일라.

센트럴 파크의 연주회에서 라일라가 연주한 곡은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 Op.85이다. 엘가는 델리어스, 본 윌리엄스와 더불어 영국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의 아버지는 교회 오르간 연주자이자 피아노 조율사였지만 경제적으로 집안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열다섯 살 때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의 점원으로 일할 정도로 어려웠다. 피아노 개인 레슨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다가 앨리스라는 귀족 여성과 결혼하면서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 후 아내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엘가는 비록 시기적으로는 근대에 살았지만 작품 경향은 고전 형식에 영국의 민족적인 요소를 가미시킨 낭만주의 작곡가로 꼽힌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독창성이나 혁신적인 면은 부족하지만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을 바탕으로 장엄하고 고귀한 영감이 깃든 귀족적인 음악을 썼다.

첼로 협주곡은 피아노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다. 하이든, 생상스, 드보르자크, 슈만 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렇게 빈약한 레퍼토리를 생각할 때,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첼리스트에게 그야말로 축복과도 같은 곡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엘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에 이 곡을 썼다. 그래서 그런가. 곡이 전쟁의 폐허 같은 쓸쓸함과 공허함을 던져준다.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2악장은 계속해서 연주하기 때문에 결국 3악장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악장에 나온 서주 선율이 전곡을 통해 계속해서 나타난다든가 4악장에서 3악장의 테마를 교묘하게 재현시킨 점 등 구상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1857-1934). 1900년대 초

이 곡은 첫 대목부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깊고 강렬한 울림으로 시작하는 레치타티보 풍의 서주. 첼리스트가 자신의 몸을 활활 태워서 연주하는 듯한 이 서주는 앞으로 전개될 장대한 비극의 서막이다. 격렬한 비브라토가 지나가고 나면, 첫 대목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극적인 잠재력을 가진 멜로디가 호소하듯 밑에서 위로 상승한다. 그렇게 서주가 끝난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꿈속을 오가듯 명상적인 주제 선율이 등장한다. 제1주제이다. 이 멜로디는 전체적으로 이 악장을 지배하는데, 이것이 여러 갈래로 변화하며 반복된 후 박자가 바뀌면 첼로에서 제2주제가 나타난다.

2악장은 스케르초 풍의 경쾌한 악장이다. 독주 첼로가 16분 음표로 연주한 다음 빠른 템포에 이르러 제1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짧은 카덴차를 사이에 두고 모티브를 반복한다. 전반적으로 독주 첼로가 눈부시게 활약하는 악장이다.

3악장은 낭만적인 분위기의 가요 악장이다. 이 악장에는 모두 세 개의 선율이 여러 가지 순서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4악장에서는 앞에서 나온 여러 요소들이 또다시 나타난다. 1악장과 같은 서주로 시작하는데, 멜로디는 같지만 극적인 강도는 1악장보다 훨씬 강하다. 4악장에서 마지막 에너지를 불사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데, 여기서 첼리스트가 발산하는 에너지는 거의 핵 폭탄급이다. 그렇게 격렬하게 나가다가 마지막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강렬한 일성(一聲)으로 곡을 끝낸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라일라.

이렇게 음악 자체는 인상적이지만, 영화에서 라일라가 연주하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여기서 라일라는 격렬하게 몸을 불사르지도 않았고, 처절하게 통곡하지도 않았다. 너무 밋밋했다. 연주하는 모습도 그렇고, 음악도 그랬다. 영화의 피날레인데 좀 더 강렬하게 불타올라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11년 동안 아들이 살아 있는지조차 몰랐던 어미의 서러움이,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질 극적인 만남의 기쁨이 더욱 극대화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 점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진회숙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영화 속 클래식 2014.05.19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55653&leafId=176

 

Elgar,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Sol Gabetta, cello

Mario Venzago, conductor

Danmarks Radio SymfoniOrkestret

DR Koncerthuset, Copenhagen

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