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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영화 플래툰 올리버 스톤 감독

플래툰

Platoon 1987

톰 베린저(반즈 역), 윌렘 대포(엘리어스 역), 찰리 쉰(크리스 테일러 역)

영화에서 엘리어스가 온몸에 총을 맞으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슬로 모션 장면에서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흐르는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상은 물론 음악 자체도 슬로 모션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느리고 유연하게 영상과 음악은 함께 흘러간다.

 

Platoon Music Video - Samuel Barber, Adagio for Strings, Op.11

영화 <플래툰>의 내용을 압축한 영상입니다.

어린 시절 전쟁영화를 많이 보았다. 어린 나에게 전쟁영화는 나쁜 나라 사람들을 물리치는 좋은 나라의 영웅 이야기였다. 그때 본 전쟁영화의 대부분이 ‘무찌르자 공산당’을 외치는 반공 영화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영화에서 처음에는 나쁜 나라가 이긴다. 주인공 김 대위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총탄에 쓰러진다. 김 대위는 총알을 맞고 쓰러진 박 일병을 품에 안고 “박 일병. 일어나.”라고 울부짖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박 일병은 고향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아! 이런 부하의 죽음에 눈이 뒤집힌 우리의 김 대위. 갑자기 벌떡 일어나 적을 향해 미친 듯이 기관총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전세가 역전되어 김 대위의 총탄에 적군들이 슬로 모션으로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한다. 통쾌한 장면과 함께 장엄한 음악이 흐르고 극장 안은 순식간에 눈물과 콧물을 동반한 감동의 도가니가 된다.

전쟁영화의 주인공은 정의감에 충만하고, 의리가 있으며, 자기 자신보다 동지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 이들이 등장하는 전쟁영화에는 눈물이 있고, 따뜻한 전우애가 있으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다. 여기다 말랑말랑한 남녀상열지사까지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적군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던 바로 그 김 대위가 고향에 두고 온 애인을 그리워하는 더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남자였다니. 이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쟁영화의 로맨티시즘은 이렇게 완성된다.

그러나 전쟁의 실상이 정말 그럴까.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존재일까. 직접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쟁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승자나 패자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실제로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중에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심지어는 자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전쟁은 전쟁일 뿐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지닌 전쟁이라도 전쟁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설사 전쟁에서 승리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쟁터에서 처참하게 죽거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은 그 승리의 나라에 들지 못하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전쟁에는 진정한 의미의 승자는 없다. 인간성이 말살된다는 점에서 모두가 패자인 것이다.

전쟁영화 중에 이런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있다. 어떤 명분의 전쟁이든 전쟁은 비극이라는 것. 인간성을 파괴시키고 한 개인의 삶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은 그런 영화 중 하나이다. 올리버 스톤은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의 본질과 인간 본성의 문제를 파헤쳤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베트남이지만 꼭 베트남 전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하는 것이다. 

[왼쪽] 좌측부터 엘리어스 하사, 크리스 테일러, 반즈 중사. 크리스는 영웅을 꿈꾸며 월남전에 참여한다. [오른쪽] 전쟁광 반즈 중사와 인도주의자 엘리어스 하사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주인공인 크리스 테일러는 대학에 다니다가 자원해서 군에 입대한 신참이다. 처음에는 막연한 사명감을 가지고 군인이 되었지만, 직접 전투에 뛰어들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몸으로 체험한다. 매일같이 계속되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사랑하던 전우들이 하나 둘씩 처참하게 죽어 가고, 이에 따라 대원들의 증오와 복수심도 점점 커져 간다.

그런데 그가 소속된 부대에는 반즈 중사와 엘리어스 하사라는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가진 상관이 있다. 반즈는 타고난 전쟁광으로 살상을 밥 먹듯이 하고, 이 때문에 휴머니스트인 엘리어스 하사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두 사람이 이렇게 서로 반목하고 있던 어느 날, 반즈는 정글 숲을 혼자 걷고 있는 엘리어스를 발견한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반즈는 엘리어스를 총으로 쏘아 쓰러뜨린다. 반즈는 곧 뒤따라온 크리스에게 엘리어스가 전사했다고 말하지만 크리스는 직감적으로 반즈가 엘리어스를 죽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전쟁으로 인해 살인마가 된 반즈 중사는 무고한 어린이에게 총을 들이대며 위협한다.

수세에 몰린 미군들이 적의 공격을 피해 헬리콥터를 타고 주둔지를 빠져나올 때, 저 밑에서 죽은 줄 알았던 엘리어스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적지를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허공을 향해 두 손을 들고 구원을 요청하는 엘리어스의 몸에 사정없이 총탄이 박힌다. 화면 가득 비장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엘리어스는 슬로 모션으로 장렬하게 전사한다.

엘리어스가 전사하는 장면에서 비장하게 흐르는 음악이 바로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이다. <플래툰>의 주제음악으로 쓰이고 나서 아주 유명해진 곡인데, 이 영화에서는 이 장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이 곡이 배경으로 깔린다. 장면에 맞게 여러 개의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영화와는 달리 <플래툰>에서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 단 한 곡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구원을 요청하는 엘리어스 하사의 몸에는 총탄이 박히고, 이때 <현을 위한 아다지오> 음악이 웅장하게 들린다.

이 곡을 작곡한 사무엘 바버는 20세기의 중요한 미국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온건한 화성과 아름다운 멜로디, 로맨틱하고 시적인 정서를 특징으로 한다. 그는 현대 작곡가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난해하고 복잡한 음악을 쓰지 않았다. 바버의 음악은 다른 현대음악에 비해 지극히 단순하고, 어느 면에서 보면 보수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만 보아도 그가 어떤 성향의 작곡가인지 알 수 있다. ◀사무엘 바버, 1944

비슷한 시대의 다른 미국 작곡가들이 혁신적인 기법을 사용해서 작품을 쓴 데 반해서 사무엘 바버는 19세기의 화성법을 존중하는 신낭만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처음에는 주로 성악곡을 작곡했으며, 스트라빈스키나 재즈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35년 로마 대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어 로마에 체류하는 시기부터 작품 경향이 달라졌다. 이때는 전통적인 화성법에 의거한 신낭만주의적인 작품을 썼다. 중간에 혁신적인 기법에 잠시 눈을 돌리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쓴 작품에는 복잡한 리듬, 드뷔시나 베베른의 영향이 엿보이는 관현악 색채, 불협화적 대위법, 심지어는 다조적인 기법도 보인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호로비츠에게 헌정한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12음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다시 예전의 보수적인 경향으로 돌아왔다.

<플래툰>에 나오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사무엘 바버의 현악 4중주 1번의 2악장을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현악 4중주 1번은 바버가 이탈리아에 유학하고 있던 1936년에 작곡했다. 1937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바버의 교향곡 1번을 듣고 큰 감명을 받은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그에게 새로 창립한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첫 시즌에 연주할 곡을 의뢰했다. 바버는 토스카니니의 제의를 받아들여 <첫 번째 에세이>와 현악 4중주 1번의 2악장을 현악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썼다. 이 두 곡은 1938년 11월 5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되었으며, 연주회 실황은 NBC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그 후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연주에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참여한다. 성부는 제2바이올린과 첼로 파트가 각각 두 개로 나뉘어져 모두 7성부로 되어 있다. 이 곡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전이나 낭만시대의 음악과는 다르다. 일정한 리듬과 형태를 가진 뚜렷한 멜로디가 기승전결의 법칙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형, 발전되는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일곱 개의 파트가 각자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의 움직임에 대응하고 있다. 특징적인 리듬은 없고, 4분음표로 이루어진 단순한 음형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여기서 조용하면서도 풍부한 표정의 주제 선율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환기시킨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그렇게 끊임없이 흘러간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여러 파트의 음들이 아주 느린 속도로 우주공간을 유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유영하다가 때로는 같은 음으로 합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합쳐져서 두터운 화음을 이루기도 한다.

처음에 낮은 곳에서 조용히 시작된 이들의 유영은 아주 느린 속도로 점점 고도를 높여 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모든 음들이 유영을 멈추고 한 곳에서 날카롭고 투명한 화음으로 만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모든 움직임이 정지된다. 이런 클라이맥스 뒤에 곧 숨 막힐 듯 날카로운 침묵이 이어지고, 이렇게 찰나와 같은 침묵이 끝나고 나면 모든 음들이 처음과 비슷한 몸짓으로 느린 여행의 마무리를 짓는다. 그 모양이 마치 아치와 같다. 조용히 시작해 별다른 동요 없이 영원히 지속할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조금씩 고조되다가 어느새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날카로운 휴지를 거쳐 조용히 사라진다. 영화에서 엘리어스가 온몸에 총을 맞으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슬로 모션 장면에서 이 음악이 깔리는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상은 물론 음악 자체도 슬로 모션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느리고 유연하게 흘러간다.

비단 엘리어스가 죽는 장면에만 이 음악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수시로 등장해 영화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크리스가 부상을 당해 헬리콥터로 호송되는 장면에서도 이 음악이 나오는데, 여기서 크리스는 이렇게 독백한다.

‘돌아보면 우린 적이 아닌 우리 자신과 싸웠습니다. 적은 바로 우리 안에 있었지요. 전쟁은 끝났지만 그 기억은 늘 저와 함께 할 겁니다. 엘리어스는 반즈와 싸우며 평생 동안 제 영혼을 사로잡으려 하겠지요. 때로는 내가 그 둘을 아버지로 해서 태어난 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든 간에 살아남은 자에게는 그 전쟁을 다시 상기하고 우리가 배운 것을 남에게 알리며 우리의 남은 생을 바쳐 생명의 존귀함과 참 의미를 알아야 할 의무가 남아 있습니다.’

이 독백을 들으며 다소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지만 굳이 주인공의 입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나친 친절이 바버의 음악과 잘 맞아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저렇게 심오한 음악에는 이에 버금가는 심오한 멘트가 나와 주어야 한다. 전쟁의 참상이라는 현실을 넘어선 보다 근원적인 문제, 전쟁의 교훈이라든가 생명의 고귀함,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영겁의 시간을 슬로 모션으로 유영하는 저 음들에 합당한 진지함과 심오함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

진회숙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영화 속 클래식 2013.07.01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30683

Arturo Toscanini,/NBC Symphony Orchestra - Samuel Barber, Adagio for Strings, Op.11

Arturo Toscanini, conductor

NBC Symphony Orchestra

Carnegie Hall, New York

1942.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