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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의 이야기

물소리를 듣다

 

 

 

 


                          
 
 
 
 
 
 
 
 
 
 
때론 보이지 않을 때 열려오는 귀가 있다
달 없는 밤 냇가에 앉아 듣는 물소리는
세상의 옹이며 모서리를 둥근 律로
물과 불이 빚어내는 저 무구함의 세계는
제 길 막는 돌에게 제 살 깎는 물에게
서로가 서로의 길 열어주려 몸 낮추는 소리다

누군가를 향해 세운 익명의 날(刀)이 있다면
냇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맡길 일이다
무채색 순한 경전이 가슴에 돌아들 것이니


* 현대시학 8월호 중에서



<시작노트> 

 

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그 공을 다투지 아니하거니와 몸은 낮은 곳에 마음은 깊은 곳에 둔다 하였다.

 자연의 여러 소리들 중에서 물소리만큼 귀 거스름이 없는 것도 드물 것 같다.

몇년 전 어느 그믐밤,냇가에 나간 적이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물소리에 온전히 빠질 수 있었다.

귀가 열리니 마음이 열리고, 물소리가 왜 그토록 귀를 거스름 없는 맑고 둥근 소리인지,

 왜 그토록 사람들의 가슴을 공명케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서로를 감싸주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물과 돌, 돌과 물!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리라.

서로 헤아리고 서로를 위해 몸낮춰 본 적이 있었던가.

 

서숙희 시인 약력 

1959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

1989현대시조 신인상 당선.

1990시조문학천료.

1992년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각각 당선.

시집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 '손이 작은 그 여자'가 있음.

11회 경상북도문학상 수상.

6회 한국시조작품상 수상.

현재, 포항시 공무원으로 포항시립도서관 근무.

 

 

돌 돌 도르르…. 어머니의 양수에 둘러싸여 완전한 평안을 누리던 그때의 소리였을까.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물소리가 그리운 것일까. 어떤 각진 것에서도 날카로움에서도 둥글게 감싸주던….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을 찌르는 날카로운 빛, 금속성, 모서리에 익숙해지면서 서로가 누군가에게 모난 돌이 되어 온 우리이기에 물이 되어 만나리라. 완전한 합의, 완전한 사랑…. 마침내 동심 일체가 되리라. 그저 뼈끝까지 가난하기만 한 물과 물이 만나 서러운 따스함 하나를 이루라고 물소리를 그리워한다. 

- 윤원영·시조시인

<윤원영 약력〉
1952년 수원 출생.

1993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조집 '뒤란에서 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