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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일기는 한 사람의 역사|

 

 

 

일기는 한 사람의 역사|                  

   

고등학교 시절 꽤 열심히 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일기를 다시 써보려고 시도했지만 며칠 가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언젠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고

하루의 이런저런 일을 짧게 기록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며칠 안 쓰고 그만뒀습니다.

 

 또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일기를 읽고 마음이 동해서 일기장을 펼쳤지만 이번에도

 며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일기를 써볼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대회 선생이 쓴 <선비답게 산다는 것>에서 놀라운 인물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1,700년대를 살았던 조선시대 문인 유만주(兪晩柱), 그는 스물한 살이 되던 1775년(영조 51년) 정월 초하루부터

 1787년(정조 11년)까지 13년간 거의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그 결과 <흠영(欽英)>이라는 제목으로 24책 방대한 분량의 일기를 남겼습니다.

그가 34살에 요절했음을 감안하면 자기 생의 3부의 1 이상을 일기로 남겨놓은 셈입니다.

 

그는 한 해의 일기를 일부(一部)로 삼아 모두 13부로 구성하고, 각 부 앞에 서문을 써 두었습니다.

다음은 그가 일기를 쓴 첫 해의 서문 가운데 일부입니다.

 

“무릇 사람의 일이란 가까우면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멀어지면 헷갈리며, 아주 멀어지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일기를 쓴다면 가까운 일은 더욱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먼 일은 헷갈리지 않으며, 아주 먼 일도 잊지 않는다.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일은 일기로 인해 행하기에 좋고, 법도에 어긋나는 일은 일기로 인해 조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기란 것은 이 한 몸의 역사다.”

 

안대회 선생은 “<흠영>은 그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하루하루 꼼꼼하게 기록한 근면함과 갖가지 풍부한 내용이

 경탄을 자아낸다”면서 “유만주의 일기는 사대부의 눈으로 바라본 18세기 후반 정조(正祖) 시대의 살아 있는 역

사라 불러도 좋을 만큼 내용이 풍부하다”고 평합니다.

 

요컨대 <흠영>에서 다룬 주제가 매우 광범위하고 내용도 풍성하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만주는 그날의 날씨부터 자신이 읽은 책과 쓴 시와 글, 한 일과 만난 사람 등 당일의 행적과 소회, 집안 대소사, 서울 장안에서 벌어진 사건,

조정에서 일어난 일 등 자기 주변은 물론 나라 안팎의 거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했습니다.

 

그렇다고 잡다한 내용을 중언부언한 것은 아닙니다. 일기를 쓴지 6년째인 1780년 서문에서 그는 일기를 쓰는 방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 일기는 하루를 강령(綱領)으로 하여 네 가지 법을 세목(細目)으로 한다. 그 세목은 사건, 대화, 문장, 생각이다.

이 네 가지로 고금의 일을 포괄하고 고아한 일에서부터 비속한 일까지 두루 갖추어 싣는다.

 

크게는 성인과 영웅의 사업에서부터 작게는 서민과 미물의 생성까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대로 기록해 둔다.

 

번잡해도 꺼리지 않고 기록해, 제사에 어떤 물고기와 어떤 과자를 올렸는지, 병을 고치는 데 무슨 약을 처방했는지,

책은 무엇을 편찬했는지, 도무지 얼마 만에 옷을 갈아입었는지, 쌀값은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 등을 모두 적어놓는다.”

 

 

또한 유만주는 김창협(金昌協)과 박지원(朴趾源) 등 선배 문인들과 같은 시대를 함께 산 문인들의 글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의견을 남겼습니다. 안대회 선생에 따르면 <흠영>에서 독서 경험과 사유의 기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흠영>과 유만주의 일기 쓰는 자세를 보며 나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입니다.

내가 일기를 쓴다면 소로우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일기를 쓰고 이순신 장군이 그랬듯이, 또 유만주가 그의 방식으로

일기를 썼듯이 나도 나의 색깔에 맞게 쓰고 싶습니다.

 

그래야 즐길 수 있습니다.

즐길 수 있어야 오래갈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일기(日記)는 하루하루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등을 적은 기록입니다.

그래서 신변잡기(身邊雜記)로 흐르기 쉽습니다.

바로 그 점에 일기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나날의 기록으로 가치가 있고, 소로우의 일기는 일상을 사는 한 사람의

 삶에 관한 성찰의 깊이를 보여주며, <흠영>은 18세기 조선시대의 생활과 사회상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셋 다 자신과 주변의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일기의 가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성찰과 탐구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일기를 쓰며 하루 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다 잡을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여 심오한 것에 이르는 패턴은 일종의 공부이자 사유를 심화시키는 방법입니다.

 

꾸준히 하면 구체적인 현상을 보고 그 이면에 흐르는 본질 혹은 원리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나는 책상 위에 빨간색 노트를 꺼내 놓았습니다.


글 : 홍승완

 

 

 

 

 

 

해설


유만주(兪晩柱, 1755~1788)의 자(字)는 백취(伯翠), 호는 통원(通園)이고,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벼슬하지 않은 채 독서인으로 한 평생을 보내며 저술에 힘썼다.

 

그의 저술은 24책이나 되는 방대한 일기 《흠영(欽英)》에 고스란히 갈무리되어 있다.

1775년부터 시작하여 1787년까지 1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체계를 잘 갖추어 쓴 일기는 그의 삶과 학문과 문학 등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일상의 모든 사실을 세세하게 기록하였다.

이 글은 유만주가 스물 한 살 되던 1775년(영조 51년) 정월 초하루부터 《흠영》을 쓰기 시작하면서 쓴 서문이다.

 그는 매 해의 일기마다 첫머리에 모두 서문을 붙였다.

 서문의 일부가 없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남아 있어서 일기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서문은 일기를 쓰려는 의도를 밝혔다.

그는 “일기는 이 한 몸의 역사”라고 하며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간명하게 밝혔다.

내게 일어나는 일을 나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내게 일어난 일과 내 삶의 소중함은 저 상고적 역사와도, 세상의 큰 사건과도 견줄 필요가 없다. 나에게 날마다

 새로 벌어지는 일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다.

 

일기는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상고 시대의 알지도 못하는 사적은 견강부회하여 만들어 내면서도정작 자신에게 일어난 일,

그것도 얼마 멀지 않은 시기에 일어난 일조차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는 일기를 쓰면서 꼼꼼한 시간 단위를 중시하였다. 몇 년 몇 달이라는 큰 시간 단위를 기억과 기록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지난 십여 년의 과거를 3,700일이라는 날짜로 계산하였다. 그는 시간을 잘게 나누어 보고자 하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시시콜콜하게 시헌력, 곧 당시의 달력에 마련된 공란에 기록하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세밀하게 기록하고자 하였다.

 요즘의 달력에 메모하는 형식과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가물가물해지는,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한 기억을 붙들어 매는 ‘일기’에 관한 새로운 사유를 이 글은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