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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영화 <쉘부르의 우산>: 비의 서정 그리고 눈

 

 

            

 

            

                    La Gare (Les Parapluies De Cherbourg) / Danielle Licari

 

 

 

영화 <쉘부르의 우산>: 비의 서정 그리고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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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주인공(피천득)이 젊은 날 일본 동경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만난 아사꼬란 소녀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당시 이 구절을 읽으며 국어 선생님이 <쉘부르의 우산>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달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게 어느 나라 영화인지 쉘부르가 뭔 지, 최소한 내 기억에는 없다. 

 그러나 그날 이후 '쉘부르의 우산'이란 말이 내 의식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남았다.

영화든 책이든 꼭 한 번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게 실현 된 것은 그 후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그러니까 거의 20대가 저물어 가던 때였다.

 우연히 TV에서 <쉘부르의 우산>을 본 것이다.

 

 60년대 영화였으니 영화관에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그때도 내 의식에 떠 오른 것은 <인연>이란 수필이었다.

 

거의 15년 만에 의문 하나가 풀렸다. 쉘부르의 우산이 뭔지? 그게 왜 세계 영화사(뮤지컬)의 고전이 되었는지? 그 후 비가 오면 늘 <쉘부르의 우산>이 생각났다.

 

<쉘부르의 우산>

 

무대는 1950년대 말 프랑스하고도 쉘부르Cherbourg란  도시,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조그만

항구도시다.

파리에서 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고도古都. 여기에 산뜻하고 세련된 우산 가게가 하나

있으니 그 이름이 <쉘부르의 우산>이다.

 

 

 

영화의 막이 열리면 어느 비 내리는 해거름에 노란 셔츠를 입은 한 아가씨가 창문 밖을 내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곧 가게 건너편 보도 위로 노란 자전거를 탄 청년이 한 명 나타난다.

 작업복을 입었지만 잘 생기고 멋진 젊은이다.

가게를 뛰쳐나온 여자와 깊은 포옹을 한다.

 

 

 

             

             

 

여:   내 사랑, 하루 종일 너만 생각했어.

남:   즈땜므/사랑해.

여:   옷에 가솔린 냄새가 나.

남:   종류가 좀 다른 향수지.

 

보도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두 사람은 떨어질 줄 모른다.

 여자의 이름은 쥬느뷔에브, 남자는 가이(Guy, 불어로는 기이).

 여자는 홀어머니와 우산가게를 하고 남자는 연로한 고모와 살고 있는 자동차 정비공이다.

 

이 두 사람이 바로 <쉘부르 우산>의 주인공이다.

 이들의 청신하고 유쾌한 연애가 세련된 프랑스어와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한 참 이어진다.

 

그러나 곧이어 스토리의 갈등상황이 전개된다.

어머니와 사는 쥬느뷔에브의 집이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머니가 자동차 정비공인 딸의 파트너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모녀는 집안의 가보라고 할 수 있는 목걸이를 팔려고 보석방에 간다.

 원하는 값을 받을 수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가게에 있던 멋진 신사가 접근한다.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카사르라 이름하는 이 젊고 폼 나는 파리의 사업가는 첫 눈에 쥬느뷔에브에게 빠진 것이다.

그녀에게서 옛 첫사랑을 다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에게 대책 없이 마음을 빼앗긴 것은 딸이 아니라 어머니다.

일단 돈 때문이다.

 

 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카사르는 딸을 사이에 두고 편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만나서

작전을 짠다. 어머니는 딸을 집요하게 설득하나 손톱도 안 들어간다.

 

정작 문제는 가이한테서 발생한다.

알제리 전쟁 때문에 징집영장이 나온 것이다.

최소한 2년의 이별은 각오해야 한다.

 

 쥬느뷔에브는 순결을 바치므로 기꺼이 기다리겠다는 마음을 표한다.

가이는 연로한 고모를 마들렌이란 여인에게 맡기고 전장으로 간다.

 

 마들렌은 그전부터 고모를 돌보아온 마음씨 착한 아가씨인데, 가이를 사랑하지만 쥬느뷔에브 때문에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별의 날이 다가왔다.

 저 유명한 셀부르 역 커피숖, 아무리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해봐도 가슴은 찢어진다.

 

죽는 날까지 사랑하겠다며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남자, 가지마라 돌아오라고 외치며 기차를 따라 달리는 여자.

자고로 이별의 운명을 가시화하는 데 기차만큼 좋은 영상적 장치도 없다. 여기서 저 전설적인

 다니엘 리까리의 샹송이 나온다.

 

 

 

남자의 부재가 분명해지자 엄마와 카사르는 더욱 가열차게 협공을 가한다.

그러자 쥬느뷔에브는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가이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으로도 카사르의 열정은 철회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카사르는 가이의 아이를 기꺼이 자신의 아이로 키우겠다고 치고 들어온다.

 

정작 쥬느뷔에브의 고민은 군에 간 가이에게서 거의 편지가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뒤 늦게 날아 온 한 장의 편지에는 곧 돌아가겠지만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고 상황이 몹시

위험하다는 말만 쓰여 있다.

 

 대신 딸을 낳으면 프랑소아즈라 이름하라고 말한다.

얼마 뒤 가이는 전투에서 다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진다.

 

결국 눈이 펑펑 쏟아지던 겨울 어느 날 쥬느뷔에브는 만삭의 몸으로 드레스를 입고 카사르의 품에

 안긴다.

 

그녀는 우산가게을 처분하고 어머니와 함께 남편을 따라 파리로 가버린다.

 

 

 

 

 

 

 

 

 

 

 

 

 

 

 

 

 

 

 

 

 

 

 

 

 

 

몇 년 뒤 쉘부르의 기차역, 가이가 귀향하고 있다.

 다리를 약간 져는 것이 아직 완치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가장 먼저 <쉘브르의 우산>을 찾는다.

 

주인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우산은 하나도 없다.

 다른 가게로 업종전환이 되어있고 쥬느뷔에브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던 가이는 어느 날 술에 취해 창녀랑 하루 밤 잔다.

 이 여자의 이름도 쥬느뷔에브다.

 

집에 돌아오니 마들렌이 울며 문을 열어준다.

고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문득 마들렌을 보는 가이의 시선이 달라진다.

 

자신이 없는 사이 고모를 정성껏 보살펴 온 여인이다.

왜 그동안 저 여인을 보지 못했을까. 가이에게 새로운 사랑이 싹튼다.

가이는 마음을 잡고 고모의 유산을 처분해 도시 외곽에 주유소를 하나 차린다.

어느 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마들렌에게 청혼을 한다.

 

 

 

              

              

 

 

가이:     네가 원한다면 너와 인생을 같이하고 싶어

마들렌:   내가 짐이 되지 않을까?

가이:     무슨 소리. 그런데 너 지금 울고 있는 거야? 내가 말을 잘못했나?

마들렌:   아니. 좀 두려워.

가이:      뭐가?

마들렌:    쥬느뷔에브 생각 안 해?

가이:      아니, 다 잊었어. 남은 인생은 너와 행복해지고 싶어.

마들렌:    흑 흑 흑...

가이:      마들렌, 울지마.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이어지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다.

어느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주유소 뒤쪽에 있는 가이의 아늑한 집 안의 전경이 보인다.

 

크리스마스 츄리가 반짝이고 가이와 마들렌이 서너 살 되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눈처럼 빛나는 웃음을 주고받고 있다.

 

 마들렌은 남편의 선물을 산다며 아들의 손을 잡고 시내로 나간다.

조금 뒤 주유소 앞으로 BMW 승용차 한 대가 와 멈춘다.

가이는 차에서 내리는 쥬느뷔에브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본다.

 

 

 

 

쥬느뷔에브:    춥네요

가이:    안으로 들어와

  

차안에는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노란 옷을 입고 창문에 쌓인 눈을 긁어모으며 놀고 있다. 쥬느뷔에브 혼자 가이의 거실로 따라 들어온다. 어색한 가이는 할 말이 없어 담배를 피워 문다.

 

쥬느뷔에브:   여기는 따뜻하네요.

근처 마을에 있는 시어머니한테 딸애를 찾아 파리로 돌아가던 길이에요.

 

 결혼한 이후 쉘부르는 이게 처음인데 당신을 만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이런 우연이 있다니..... 

 아, 저 크리스마스 츄리 참 이쁘네요.

 

가이:  아내가 만든 거야. 밖에 차 안에 있는 아이는 누구야.

쥬느뷔에브:  프랑소와즈. 당신을 많이 닮았는데 한 번 볼래요.

가이:   아니.

 

쥬느뷔에브의 차는 쓸쓸히 눈 속으로 사라지고 곧이어 마들렌과 아들이 유쾌한 웃음으로 돌아온다.

가이는 노란 잠바를 입은 아들과 집 앞에서 눈싸움을 한다.

 

그걸 바라보는 마들렌의 눈은 행복의 빛으로 빤짝인다.

텅빈 주유소 앞마당에 함박눈이 쉬지 않고 내리는데 화면이 서서히 닫힌다.

 

이렇듯 비내리는 우산 가게 앞에서 시작한 러브스토리가 눈 내리는 주유소 앞에서 막을 내린다.

이제 우산雨傘은 필요가 없다.

 

설산雪傘이 있다면 몰라도.

제목은 <쉘부르의 우산>인데 비가 눈으로 바뀐 것은 왜 일까?

 

마지막 반전과 눈(雪)의 미학

 

   The Umbrellas of Cherbourg

  

문학적으로 말하면 비의 감성은 서정적이고 눈은 서사적이다.

서정성이란 과거를 회상하면서 발생하는 감상과 센티멘털리즘이다.

 

 대체로 이런 저런 사연 깔고 있는 어른들의 감정이다.

반면에 서사성이란 미래를 향한 긴장과 도전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출발선상에 서 있는 젊은이들의 감성이고 청춘의 순수함이 핵심

정서다.

 서정성은 비가 대변하고 서사성은 눈이 대변한다.

 

심수봉의 노래(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가 단적으로 대변하듯이

 비는 과거를 추회하는 어른들이 좋아하고 눈은 미래의 사랑을

 

 기다리는 맑고 순정한 청춘들의 꿈을 대변한다.

쉘부르의 비가 눈으로 바뀐 것은 가이의 사랑이 과거 지향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가 쥬느뷔에브와의 과거 사연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마들렌과 아들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서사적 발걸음을 떼어 놓는 것은 눈의 정서와 일치한다.

 

그가 눈 속에서 쥬느뷔에브와 딸 프랑소아즈를 돌려보낸 것은 비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서사적 의지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추적추적하고 센티하게 내려깔리는 무거운 비의 감성을 화사하고 가벼운 이성적 눈이 극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영화 처음에 비오는 날 쥬느뷔에브가 가이를 기다리면서 입고 있던 노란 쉐타가 눈싸움 하는 프

랑소아 (가이의 아들)의 노란 겨울 잠바로 바뀌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우연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우산은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행복한 만남과 결속을 드러내는 매우 긍정적인

장치이지만 운명적인 굴레로 작용할 수도 있다. 쉘부르는 이것을 넘어서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것이 비에서 눈으로의 이행에 함의되어 있고 우산의 사라짐이 의미하는 바다.

결국 <쉘부르의 우산>은 우산의 극복을 이야기하고 비의 서정을 넘어서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영화한편을 나름대로 내 주관적으로 생각해 봤다,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이별, 비와 눈, 모든 개체가 상반적으로 대두되나,

결국 그 원천은 같은 줄기가 아니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