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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Donizetti- Don Pasquale act III, 'Tornami a dir che m'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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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니제티 / <돈 파스콸레> 3막 ‘사랑한다고 다시 말해주세요’                 










Anna Netrebko, soprano -  Juan Diego Florez, te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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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파스콸레는
코믹하고 익살스러운 스토리의 오페라 부파에 속하지만
도니제티 특유의 아름다운 서정미와
가슴을 저미는듯한 애절함을 느낄 수 있어
이탈리아 부파 전체에서
가장 빛나고 가치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돈 많은 구두쇠 늙은 독신 노인
돈 파스콸레는...
젊은 여자와의 결혼에 눈이 멀어
친구로 부터 정숙한 여자 노리나를 소개 받고 기뻐한다.

그러나
실은 돈 파스콸레의 조카 에르네스트와
노리나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친구의 책략으로 두사람은 결혼에 성공하고
해피엔딩으로 막이 내린다.

날 사랑한다고 다시 한번 더 말해주세요
그대는 내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그대가 날 보석이라고 불러주면
내 삶은 두 배로 소중해져요.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대의 목소리는
내 짓눌린 마음을 기쁘게 해주지요.

오! 그대가 내 곁에 있어주면 마음이 가라앉고,
떠나버리면 마음이 괴로워져요.

[Bochum:scholle/24.02.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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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제티

 

  그가 작곡한 많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오페라는 로시니와 베르디를 연결하는 오페라의 발전에 다리를 놓았다.

작품들 중 특히 <람메르무어의 루차 Lucia di Lammermoor> (1835), <연대의 딸 La fille du régiment>(1840),

 <라 파보리테 La favorite>(1840) 등이 유명하다.

 

그의 오페라세리아(비극적 혹은 기타 진지한 주제에 의한 이탈리아 정통 오페라)에는 독특한 극적 중량감과

감정적 내용이 잘 표현되고 있으며, 희가극에서도 특유의 재치와 명랑함이 돋보인다.

 

  시(市) 전당포 관리인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나 바이에른의 신부 요한네스 지몬 마이어(베르가모의 주요한 성당인

 산타마리아 마지오레의 음악감독이자 성공적인 오페라 작곡가)에게 음악을 처음 배웠다.

 

합창단원으로서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그의 잠재된 음악 재능을 높이 산 마이어 신부가 그를

볼로냐에 있는 리체오 필라르모니코 음악원에 입학시켰다.

 

이곳에서 푸가와 대위법을 철저히 공부했으며, 아버지의 소원대로 교회음악 작곡가가 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양의

종교음악을 작곡해보기도 했지만 천성은 오페라 등 극음악에 적합했다.

 

  최초의 성공작은 <보르고냐의 엔리코 Enrico di Borgogna>로 1818년 베네치아의 테아트로 산 루카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이후 12년 동안 작곡한 31개가 넘는 오페라들은 대부분 나폴리에서 공연되었는데

현재 거의 공연되지 않는 상태이다.

 

1830년 <안나 볼레나 Anna Bolena>를 밀라노에서 공연함으로써 전 유럽 도시와 이후 대서양을 넘어 미국에까지

그의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년 후 그는 당시 최대의 극작가 펠리체 로마니의 대본에 의한 매력적인

 희가극 <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e>으로 또 한번 대성공을 거두었다.

 

역시 로마니가 대본을 쓴 <루크레차 보르자 Lucrezia Borgia>(1833)가 또다시 성공하면서 밀라노의

 라 스칼라 가극장 등 이탈리아 여러 곳에서 명성을 굳혔다.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와 벨리니가 그보다 먼저파리로 간 것처럼 그 역시 이탈리아에서 성공한 후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공연한 <마리노 팔리에로 Marino Faliero>는 실패작은 아니었지만 몇 주 전에 발표된 벨리니의

 <청교도 I Puritani>로 인해 그늘에 가린 감이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