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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Handel 'Sarabande' Harpsicord Suite No.4 in D minor, HWV437 /라르고

'Sarabande'

 

Harpsicord Suite No.4 in D minor, HWV437

 

헨델 / 사라방드

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

 

 

 

 

 

 



 

George Frideric Handel
'Sarabande' Harpsichord Suite No.4 in D minor HWV 437

 

 

 



헨델은 바로크시대의 가장 뛰어난 음악가로 동시대의 바하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헨델은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종교곡, 관현악 등 많은 곡을 작곡했고, 그의 음악은 명랑하며 웅장합니다.

사후에야 인정 받은 많은 음악가들과는 달리 헨델은 살아 생전에 인정을 받은 음악가입니다.

 

 

 



사라방드(프.sarabande)

어원은 스페인어 zarabanda, 이 말의 의미는 확실치 않다.

이 음악이 시작한 곡은 스페인의 안달루지아 지방 또는 멕시코로 지목되기도 한다.

중세 이후 스페인에 전래된 아랍의 노래 가사인 제엘(Z?jel)과 "사라반다"라는 이름으로 전래된 노래형식이

 일치한다.

 하지만 사라반다라는 말이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 된 것은 멕시코에 남아 있다(Ramo de la Inquisici?n 1572).

 그 내용은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서 심문받은 중에 나온 말이다.

스페인에서 이 용어가 처음 나온 것도 이 노래를 부르면 벌을 받는다는 내용과 관련되어 있다(1583)

당시 사람들에게 이 음악은 쌍쌍이 마주 보고 추는 외설적인 춤으로 이해되었다.

이 무용곡은 흔히 샤코느(Chaconne), 그리고 세귀디야(seguidilla)와 함께 언급되는 일이 많았다.

이 무용곡이 스페인에서 프랑스 궁정에 소개된다(1625).

그 이후 서양음악의 17-18세기에, 특히 기악곡을 위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작곡된 무용곡이 된다.

물론 16세기 말경의 음악으로 추측되는 사라방드도 없지 않다.

 따라서 비교적 긴 기간 동안 통용된 음악이라 말할 수 있다.

17세기초의 사라방드는 "스페인 사라방드"와 "프랑스 사라방드"로 구분되었다. 전자는 화성과 멜로디의 틀을

 지키는 것으로, 후자는 그렇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사라방드는 17세기 전반부까지 매우 빠른 음악이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중반부터 "느리게"(lentement) 또는 "무겁게"(grave)라는 연주 지시어를 달고 나타난다.

그리고 이전의 빠른 사라방드는 "가벼운 사라방드"

(sarabande l?g?re)라는 명칭이 붙으며 전통을 유지한다.
사라방드는 3/2 또는 3/4박자로 기록되는데, 두 번째 박이 강조된다.

 사라방드는 1740년대까지 피아노 음악, 기악 앙상블 음악, 오페라 등에 나타난다.

영국에서도 사라방드 음악이 17세기초에 나타나는데, 이는 빠른 종류의 사라방드이다.

 이태리에서도 17세기초에 빠른 사라방드가 사용된다(바싸니, 비탈리). 비발디는 그러나 알레그로, 안단테,

 라르고의 연주지시어를 기록한다.

코렐리는 위의 세 가지와 함께 비바체까지 덧붙인다. 17세기초의 독일에서도 빠른 사라방드가 작곡되었다.

그러나 독일에도 느린 사라방드가 들어오면서 느리고 빠른 두 종류가 모두 작곡되었다.

 17세기 중엽 사라방드는 모음곡의 핵심곡들(사라방드, 쿠랑트, 알르망드, 지그) 중 하나로 자리 잡는다.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 되는 헨델의 사라방드 음악은(예: lascia ch'io pianga) 두 번째 음을 강조하는 특징에

매우 충실하다.

하지만 바하의 40여개의 사라방드는 변화를 지니면서도 두 번째 음을 강조하는 성격이 상실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는다.

바하의 사라방드는 무용곡적인 기본을 넘어서는, 예술적 성격이 매우 강한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사라방드"는 17, 18세기의 영국 귀족사회의 화려하면서도 근엄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는 곡이다.

사라방드는 일반적으로 느리고 장중한 3박자 계통의 무곡을 말하는 것으로 고전형식에서 제1소절의 2박자째에

 악센트를 두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바로크양식의 모음곡에서 정해진 것이다. 사라방드는 스페인의 무곡으로 알려져왔으며

원류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즉, 어떤 것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또 어떤 것은 아이를 많이 낳기를 원하는 민속무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도

하며, 멀리 아스테카와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15세기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의 저서가 증명하듯이 쾌활한 사라방드라는 두 가지 타입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빠른 형태의 것이 대중적 사라방드 양식이라고 짐작되어지는데 이 양식은 외설성과 난잡함으로 인해 교회와

세속으로부터 노여움을 샀었으며 필리페 2세는 한때 이것을 금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당시에는 <노래가 있는>무곡이었고, 가사가 연애에 관한 것과 에로틱하다는

것만으로 이 무곡에 외설적이라는 낙인을 찍었다는 점이다.

사라방드는 16세기 말경에 프랑스의 궁정에 도입되었으며, 이 프랑스 궁정에 의해서 장중하고 고귀한 양식과

 적당한 리듬이 주어진 것으로 짐작되어지고 있다.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은 독일인이지만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서,

특히 런던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의 오페라 작품은 약 50곡이 현재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이 고대나 중세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은 아리아를 나열한 오페라 세리아이며 또 카스트라토(castrato,

거세 가수)를 주역으로 한 것이 많기 때문에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공연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제2차 대전 이후에 헨델 오페라 협회가 설립되고 작품 연구가 진척되면서, 헨델이 죽은 뒤

백 년이 되는 해인 1859년 이후 적극적인 부활 공연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대부분의 오페라가 전곡 녹음되었고

아울러 수많은 헨델 아리아 집이 나오게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자연 발성에 가까운 유능한 카운터테너(countertenor)가 계속 생겨났기 때문에 의욕적인

우수한 공연이나 녹음이 눈에 띈다.

 

  부활한 헨델의 오페라

 

  페르샤의 대왕 크세르크세스(Xerxes) 1세(세르세)를 주인공으로 한 헨델의 오페라 <세리아>는 오랫동안

 공연되지 않았다.

세르세와 동생 아르사메네 역은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했으나 지금은 남장한 여성 가수나 카운터 테너가 맡는다.

작품은 전3막이며 N, 미나토(Nicolo Minato)의 대본을 스탐필리아(Silvio Stampiglia)가 개정하고 작곡가가

 직접 가필했다.

 

  기원 전 5세기 경, 페르샤의 왕 세르세는 로밀다에 반해 궁정(宮廷)에 끌어 들이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왕의 동생인 아르사메네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로밀다의 여동생 아탈란타도 아르사메네에게 은근히 연정을 품고 있어 언니와 아르사메네 사이를 갈라놓을

궁리를 하고 있다.

 왕은 그런 동생을 해외로 추방한다. 아르사메네는 로밀다에게 보내는 편지를 하인에게 맡긴다. 그 편지를 받은

아탈란타는 왕에게 제출하며 아르사메네가 자기 앞으로 보낸 연애편지라고 제멋대로 설명한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개통식에 출석한 아르사메네는 왕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로밀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왕은 로밀다에게 구혼하지만 그녀는 이미 왕의 동생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듯한 암시를 풍긴다.

 

다른 나라의 공주이며 세르세 왕의 약혼자로 결정되어 있던 아마스트레는 남자 차림으로 페르샤 군에 들어가 왕의

 변절을 직접 보고 들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쯤에서 정체를 밝히고 왕의 부덕(不德)을 나무란다. 세르세 왕도 그만 뉘우치고 아마스트레와 맺어 지고

왕의 동생 아르사메네도 로밀다와 짝이 된다.

 

 

      오페라 <세르세>의 장면.            

 

  <세르세>는 원래는 카스트라토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곡이다. 현대에서는 카운터테너 혹은 여성이 배역을 맡는다.

 

  헨델의 ‘라르고’로 알려진 노래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찬양하는 짧은 레치타티보(recitativo, 서창敍唱.

보통 이야기 하는 식 또는 연설이나 낭창朗唱을 모방하거나 강조하도록 만든 노래)와 가사로는 더 이상 짧을 수가 없는

아리아로 제1막을 연다.

노래는 본래 카스트라토의 앨토 역인 페르샤 왕 세르세가 이 아리아를 부른 뒤 폭군다운 횡포를 부리거나 남에게

 골탕을 먹거나 하면서 예상 밖의 행동을 하며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가사는 “나무(vegetabile)의 그늘(ombra)이 결코… 없다(mai… fu)이며 나무 그늘을 그리운(cara)과

사랑스러운(amabile)의 두 가지 형용사로 수식하고 ”결코… 없었다”와 합쳐서 서술부를 이루지만,

 이 노래기 끝나면서 후렴처럼 계속되는 어지러운 구(句)가 뒤섞여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통에 무엇이 무엇을 수식,

 서술하는지 알 수 없어 어지럽기만 하다.

 

  “그립고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도…”(옴부라 마이 후)는 그 달콤한 선율 때문에 흔히 ‘헨델의 라르고

(largo=매우 느린 속도로)’(실제로는 라르게토)[larghetto=라르고 보다 약간 빠르게]로 알려져 기악곡으로도

편곡되었다.

미국의 흑인 가수 배틀(Kathleen Battle)이 TV의 CM 송으로 불러 유명해졌다.

 

 

 

  안동림 |전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이며,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 작가이자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 평론가이다.

저서로는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장자』『벽암록』 등이 있다.

 

  사라방드란 샤콘느와 같은 춤곡의 일종이다.

 2/3 또는 3/4박자로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되는 헨델의 <사라방드>는 대체로 느리고 장중한 3박자 계통의 스페인

 무곡을 말하는 것으로 고전 형식에서 제 1소절의 2박자 째에 악센트를 두는 것이 특징이니다.

 사라방드는 17, 18세기 영국 귀족사회의 화려하면서도 근엄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준다.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장중한 3박자의 춤곡으로 스페인 궁정에서도 유행했으나 지나치게 분방하고 관능적이라는 이유로 교회 등지에서 금지되어 19세기 잠시 사라졌다가 20세기 초 본래의 우아한 분위기를 되살린 춤곡으로 부활했다.

헨델의 <사라방드> 원곡은 그의 하프시코드 조곡 중 한 곡을 편곡해서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