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P SONG & ROCK

Michael Schenker Group - Rock Will Never Die ,Never trust A Stranger

 

 

 

 

 

Michael Schenker Group - I'm Gonna Make You Mine

 

 

 

 

 

 

 

 

 Michael Schenker Group >Assault Attack<

 

 

 

 

마이클 쉥커는 현재 존재하는 몇 안되는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로 평가된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잉베이 맘스틴이나 반 헤일런 만큼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마이클 쉥커의 음반이 예전에

 락이 한참 유행할 당시에 거의 수입되지 않았고, 라디오에서도 거의 방송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80년대 중반 잉베이 맘스틴과 같이 활발한 활약을 하였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마이클 쉥커의 인지도가 상당히 크다. 얼마전 메가데쓰의 보컬겸 기타리스트였던 데이브 머스테인이나 역시 메가데쓰의 리드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 메탈리카의 제임스 헤트필드, 영원한 기타의 신 조 새트리아니,

나이트 레인져의 제프 와트슨, 건즈 앤 로지스의 슬래쉬와 같은 명 기타리스트들 조차도 마이클 쉥커의 기타를 최고의

연주로 꼽을 정도로 그의 기타를 다루는 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다루기가 어렵고 소리를 제대로 내기 힘들어 대부분의 기타리스트들이 다루기 싫어하는

 'Flyng-V'기타를 가지고도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마이클 쉥커는 단순히 듣고 즐기는 락음악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듯한 아름답고 섬세한 연주를 무기로

매우 다양한 연주기법을 선보인다.

락을 연주하던 데뷔시절부터 크로스오버 내지는 선음악을 지향하는 그의 음악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마이클 쉥커는 1956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그는 9살이 되던 무렵, 낮에는 형 루돌프와 부모는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언제나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형 루돌프는 마이클에게 숙제를 남기고 나갔는데, 그것은 기타로 좋은 리프를 만들어 녹음해놓는 것이었다.


마이클의 기타는 형 루돌프가 치고 있던 낡은 것으로,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사 준 어쿠스틱 기타였다.
그런데 루돌프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자기의 기타를 사면서 그 어쿠스틱 기타를 마이클에게 주었고,마이클은

 

 이 기타를 가지고 열심히 연습해 10세경엔 비틀즈등을 카피할 수 있었다. 15살부터 친형인 루돌프 쉥커

(現, Scorpions 기타리스트)와 함께 기타를 잡기 시작한 쉥커는 기타를 잡은지 몇개월도 지나지 않아 모든 음악을

 연주할 만큼 기타의 실력이 뛰어났다. 그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형인 루돌프 조차도 놀라 할말을 잃을

정도 였다고 한다.

그렇게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쉥커는 드디어 Scorpions라는 대그룹에 참가하게 된다. 원래 스콜피온스의

기타리스트는 마이클이 아니었지만 처음 참가한 기타리스트는 입단 후 곧 마이클 쉥커로 교체된다.

 

이렇게 탄생한 스콜피온스는 마이클 쉥커가 16세이던 1972년 드디어 불후의 명작 'Lonesome Crow'를 발표한다.

물론 형과 같이 기타를 맡았지만 거의 모든 곡들의 솔로와 편곡을 최연소자였던 마이클이 소화해냈던 것이다.

16세! 그것도 단순한 락음악이 아닌 프로그레시브 음악과 융합된 13분여의 대곡을 소화해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다.

초기 스콜피언즈 시절 그는 루돌프의 깁슨 레스폴을 빌려서 치고 있었는데,
어느날 공연도중 그 기타가 부서져 버리자 급하게 형의 흰색 플라잉 V를 빌리게 된다.
마이클은 플라잉 V의 독특한 음색과 부드러운 감촉에 반해버렸고마이클과 플라잉 V의 운명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그렇게 훌륭한 음악을 16세의 소년이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세계 굴지의 락그룹들은 마이클 쉥커의 영입에 힘쓰게 된다.

마이클은 스콜피언즈의 데뷔앨범 발매 직후 영국의 UFO로 부터 기타리스트로 가입해줄 것을 요청받았고,

이에 마이클은 록의 본고장 영국에서 활동해 보고픈 마음이 있어 그 제의를 받아들인다.

UFO에서 73년부터 78년까지 6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등 뛰어난 활동을 하다가 잠시 스콜피온스의 게스트로 참여하고,

80년 자신의 독자적인 밴드 MSG(Michael Schenker Group)를 결성해초위력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며 최고의

록 기타리스트중 하나로 떠올랐다.

MSG에서 80년 발표한 1집음반은 지금도 락 최고의 명반으로 꼽고 있는데, 연주곡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Into the Arena, 그 밖에 Armed and ready, Lost Horizen, 감미로운 멜로디가 매력적인 Bijou Pleasurette,

 Cry for the Nation 등 어느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완벽한 음악으로 그의 MSG무대는 대성공을 이뤄낸다.

 

이후에도 마이클 쉥커는 발표하는 음반마다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며 유럽은 물론 미국시장까지 석권하게 되는데,

 지금도 아마추어 락그룹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Rock will never die'는 락음악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멤버들의 탈퇴로 인해 마이클은 큰 시련기에 접어들고 미국에서 다시 밴드를 규합하려 했지만,
돈이 없어 포기 할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Aero Smith와 White Snake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마이클은 보컬 로빈 매컬리와 함께

 MSG(McAuley Schenker Group)를 낸다.

86년부터 쉥커는 보컬리스트인 로빈 멕콜리와 손을 잡고 멕콜리 쉥커그룹을 결성한다.

역시 여기서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감각적인 그만의 기타연주를 느낄 수 있는데, 'Save yourself'라는 곡은 그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명작품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쉥커는 인도로 음악여행을 하게되는데, 그곳에서 인도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마이클 쉥커의 후속으로 스콜피온스에 몸담았던 울리히 로스 역시 쉥커와 비슷한 음악에 빠지기도 했는데,

음악의 정신세계를 무척이나 중시했던 것같아 보인다.

 

9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오면서 마이클 쉥커는 다시 MSG를 재결성을 하면서 기타리스트들이 대거 모이는 큰 공연마다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아무에게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MTV언플러그드 공연까지 성황리에 치뤄낸다.

사운드메이킹에 있어서 그는 마샬 앰프의 출력을 한껏 올리고 거기에 와와페달을 부스트시킨 파워 디스토션을 통해

 박력과 긴장감, 그리고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음색을 들려주었다.


그는 게리무어등을 비롯한 몇명과 함께 록 기타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록 기타라는 측면에서 마이클은 가장 바람직한

록 프레이즈와 리프를 남긴 불세출의 명 플레이어라 평가되어진다.

전자기타의 역사는 아직 채 100년이 안된다. 이 짧은 시간동안에도 시대를 빛내는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우리 기억속에

남아있다.

이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은 작고했거나 연로했기 때문에 시대는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

아마도 마이클 쉥커는 이 시대를 빛낸 가장 훌륭한 기타리스트의 한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이클 쉥커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만이 기타라는 악기의 연주가 단순한 연주가 아닌 완벽한 표현을 해내는

예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