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1975.
Live, 2003.
Live, Grammy, 2007.
DIAMONDS AND RUST
(Words and Music by Joan Baez)
Well I'll be damned,
here comes your ghost again
But that's not unusual.
It's just that the moon is full
and you happened to call.
And here I sit,
hand on the telephone,
hearing a voice I'd known,
a couple of lights years ago
heading straight for a fall.
아니... 저런,
여기 당신의 환영이 다시 오고있네요.
하지만 그건 이상한 건 아니죠.
그건 단지 달이 차 오르자
당신이 전화를 하게 된 거죠.
난 여기에 앉아
전화기를 들고 있어요.
파멸을 자초하면서
가을로 접어들기 시작하던 2년전,
내게 친숙하던 그 목소리를 듣고 있네요.
As I remember your eyes
were bluer than robin's eggs,
my poetry was lousy, you said.
Where are you calling from?
A booth in the Midwest.
Ten years ago
I bought you some cufflinks,
you brought me something.
We both know
what memories can bring,
they bring diamonds and rust.
나는 기억해요, 당신의 눈이
울새의 알보다 더 파랗던 것을.
당신은 나의 시가 서투르다고 했죠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 거죠?
중서부의 어느 전화부스에선가요.
10년 전
난 당신에게 커프스단추를 몇 개 사주었죠.
당신도 내게 무언가를 주었죠.
우린 모두 추억이 무얼 가져다주는지
알고 있어요.
그건 바로 행복과 상처죠.
Well, you burst on the scene,
already a legend.
The unwashed phenomenon.
The original vagabond.
You strayed into my arms.
And there you stayed.
Temporarily lost at sea.
The madonna was yours for free.
Yes,
the girl on the half-shell
Would keep you unharmed.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나타났어요,
이미 지난날의 사람
씻겨지지 않는 기억속의 사람
원초적 방랑자여
당신은 길을 잃고 내 품으로 들어왔죠.
그리고 거기서 당신은 머물렀죠
바다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가
성모 마리아는 당신의 편이었어요
그래요,
반쪽 조개껍질 위에 있는 그 소녀는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죠.
Now I see you standing
with brown leaves falling all around.
And snow in your hair.
Now you're smiling out the window
of that crummy hotel.
Over Washington Square.
Our breath comes out white clouds,
mingles and hangs,In the air.
Speaking strictly for me,
we both could have died,
then and there.
이제 난 갈색 나뭇잎을 흩날리는 가운데
당신이 서 있는 걸 보아요
머리칼은 희끗희끗해 졌군요.
이제 워싱턴 광장 너머로
초라한 그 호텔의 창가에서
당신은 미소를 보내고 있군요.
우리의 숨결은 힌구름이되어
한데 섞이고 공중에 걸려 있어요
솔직히 말한다면
우린 그때 그곳에서
죽을 수 있었을 거예요.
Now you're telling me
you're not nostalgic.
Then give me another word for it....
You who're so good with words
and at keeping things vague.
Because I need some
of that vagueness now,
It's all come back too clearly.
Yes, I loved you dearly,
and if you're offering me
diamonds and rust,
I've already paid...
이제 당신은 내게 말하고 있어요.
당신은 지난날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그럼 다른 말로 해 보세요
말솜씨가 너무나 능숙해
막연하게 돌려 말하는 당신.
지금 난 그 막연함이
좀 필요하기에
모든 게 너무나 명백하게 되었죠.
예, 난 당신을 끔찍이 사랑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행복과 상처를
내게 준다고 해도
나는 이미 댓가를 치루었어요.
1941년, 1월 9일 메국 뉴욕시 스태이튼 아일랜드 출생 1958년, 보스톤 대학 입학. 대학가에서 노래부르기 시작. 1959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참가. 뱅가드와 12년계약, 골든앨범8장.
196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밥 딜런을 만남. 1961-2년,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전메국 순회 공연. 1962년, 11월23일자 <타임> 표지 인물로 선정.
1963년, 킹 목사와 나란히 워싱턴 대행진 참가. <우리 승리하리라> 부름 1965년, 베트남 반전운동에 앞장 섬. 전비로 들어가는 납세 거부 운동. 1967년, 오클랜드 신병 훈련소 입구 무단 점거, 10일 구류형.
1968년, 시민운동가 데이빗 해리스와 결혼 1969년, 해리스, 양심적 입대 거부로 투옥, 3년형 선고 1969년, 우드스탁 공연에 참가.
1971년, 그리스 쿠데타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 지지 공연. 1972년, <녹슨 다이아몬드> 발표. 1973년,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 기금마련을 위한 공연 시작.
1977년, 프랑코 치하 스페인 방문, 방송에서 금지곡 <흔들리지않게> 부름. 이후, 베트남, 북아일랜드, 튀니지, 아르헨티나, 레바논, 러시아, 캄보디아 등에서 전쟁 종식과 민주화를 촉구하는 공연을 개최. 1981년, 남아메리카 순회 공연, 민주화 촉구. 1983년, 유럽 순회공연. 빠리에서 12만명과 노래, 레종 도뇌르 받음. 이후로도 엠네스티를 통해 독재/전쟁/인권 탄압에 ‘지속적’으로 항의. 최근에는 메국의 이라크 반전 운동에 적극 가담 중. 반전 평화 운동 중 불교의 평화 비폭력 주의에 감동해 불교로 개종했고, 티나 터너, 해리슨 포드, 리차드 기어, 크리스토퍼 리브스와 함께 미국 불교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한편, 조앤 바에즈의 보이 프렌드 밥 딜런은 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더군요. "브로드웨이에 죽치고 앉아서 '난 사랑에 빠졌어요' 따위 노래를 만드는 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엔 사랑과 섹스 말고도 중요한 게 많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조앤 바에즈는 지난 50년 동안 자기 보이 프렌드의 말을 실천 중인가 봅니다. 착하기도 하지....
그러고도 힘이 남아서 '난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노래까지 만들다니... 재주도 출중하고... 참, <녹슨 다이아몬드>는 밥 딜런과 찢어진 지 약 10년 만에 발표한 노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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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민권을 노래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Folk의 여왕
~ Joan Baez ~
▒ '조안 바에주(Joan Baez)'의 배경 설명.
Baez / 1941년 1월 9일 ~ ]'는 미국의 가수이며 인권운동가이며 반전평화운동가입니다.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의 '스태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멕시코 출신의 '알베르트 비니치오 바에즈[Albert Vinicio Baez]'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안 브리지 바에즈[Joan Bridge Baez]'의 세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핵무기 제조에 반대하는 물리학자였으며 어머니는 희곡작가였으며, 나중에 '조안 바에즈[Joan Baez]'가 인종차별을반대하고 반전평화운동가로서 활동하게 된 데에는 반핵물리학자였던 멕시코계 아버지를 둔 가정적 환경이 컸다고 할 수 있스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고등학교 '팔로 알토 하이 스쿨[Palo Alto High School]'을 다닌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음악에 심취하여 졸업 무렵에는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음반회사에 보내기도 하였답니다.
1958년 아버지의 새로운 직장 때문에 매사추세츠로 이주한 그녀는 '보스톤 대학[Boston University]'에 진학하지만 직업적인 가수활동을 하기 위하여 곧 중퇴하였답니다. 정식으로 노래하기 시작한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The Newport Folk Festival]'을 통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1960년 '포크[Folk]' 전문 레이블인 '뱅가드 레코딩 써싸이어티[Vanguard Recording Society]'와 장기계약을 맺고 음반들을 발매하였습니다. 흑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앞장서고 월남 반전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국내외에서 펼친 음악활동만큼 반전운동도 맹렬했던 그녀는 직접 반전시위에 가담하여 체포당하기도 하였으며, '해리스[Harris]'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투옥되자 '우드스탁 축제[The Woodstock Festival]'에 참여하는 등
반전운동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음악 '스타일[Style]'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그녀의 최대 명곡인 '다이아몬드 앤드 러스트[Diamond & Rust]'는
새로운 음반사 '에이 앤 엠[A&M]'을 통하여 1975년 4월에 발매되었스니다.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8장의 '골드 앨범[gold Album]'과 1장의 '골드 싱글[Gold Single]'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래미상[Grammy Awards]' 후보에 6번 선정되었으며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 (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하였습니다.
인권과 평화운동의 공로로 2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고 2개 주로부터 '조안 바에즈의 날 (Joan Baez Day')을 지정 받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저는 '조안 바에즈[Joan Baez]'의 노래를 듣노라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처연하면서도 기품이 있고, 윤기가 흐르면서도 거만하게 들리지 않는, 쥐어짜는 음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힘차게 부르는 노래에도 편안하게 기댈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녀의 노래에 저의 거친 욕망과 다듬어지지 않은 이상을 덧칠했는지도 모릅니다.
1941년 생인 그녀는 저 보다 6년이 아래이며 그녀의 나이도 우리 나이로 어느새 63세가 더었지만 저의 머릿 속 그녀는 여전히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깊게 패인 눈동자로 세상을 응시하는 그런 가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조안 바에즈[Joan Baez]'의 최대 '히트[Hit]' 곡인 '다이아몬드 앤드 러스트[Diamonds And Rust]'를 올립니다.
▒ '포크[Folk]' 음악의 마돈나, '조안 바에즈[Joan Baez]'의 성장기
'조안 바에즈[Joan Baez]'가 음악에 대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Palo Alto]'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4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합창반에서 노래를 했고, 1956년엔 그녀만의 첫 기타를 구입해 이곳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답니다. 이 해의 일이었다.
이듬해인 1957년엔 간디주의 철학자인 '아이라 샌드펄[Ira Sandperl]'을 만나 그녀로부터 강한 정치적 영향을
받았답니다.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의 '벨몬트[Belmont]'로 이사를 했으며, '보스톤[Boston]' 대학에 등록한 그녀는 학업보다는 자신의 '뮤지션[Musician]' 경력을 꽃피우는 데 치중했다.
그녀는 처음엔 '보스턴[Boston]'과 '케임브리지[Cambridge]' 지역의 작은 클럽들에서 노래했는데, 곧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로 옮겨 갔습니다.
그녀가 정식으로 무대에 '데뷔[Debut]'한 것은 1959년 '캠브리지[Cambridge]'의 '포크[Folk]' 음악 클럽인 '클럽 47'에서였습니다.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이곳에서 '빌 우드[Bill Wood]'를 만났고, 얼마후엔 '테드 알레비조스 [Ted Alevizos]'까지 합류하여 앨범 '포크 싱거스 라운드 하바드 스퀘어[Folk Singers 'Round Harvard Square]'를
'보스톤[Boston]'의 지역 음반사인 '베리타스[Veritas]'에서 발표했습니다. '포크[Folk]' 클럽인 '게이트 오브 혼[The Gate Of Horn]'에 서도록 했으며, 미국의 '컨추리[Country]' 음악이나 '포크[Folk]' 음악에서의 '뮤지션[Musician]'들은 대개 이런 경로를 통해
발굴되었답니다 1959년 7월 11일 개최된 제1회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The Newport Folk Festival]'에서 '밥 깁슨[Bob Gibson]'의 '백업 보컬[Backup Vocal]'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노래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쏟았고, 이듬해에는 정식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그녀를 주목한 포크/부르스[Folk/Blues]' 전문 '레이블[Label]'인 '뱅가드[Vanguard]'는 '조안 바에즈 [Joan Baez]'와 12년간의 계약을 맺었고, 이 기간 동안 그녀는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둬 8장의 '골드 앨범[Gold Album] '골드 싱글[Gold Single]'을 기록했습니다.
' 포크[Folk]'의 '조안 바에즈[Joan Baez]'와 '밥 딜런[Bob Dylan]',
함께 노래하는 '조안 바에즈[Joan Baez]'와 '밥 딜런[Bob Dylan]' - 1963년 워싱턴 D.C.에서 시민권 신장을 위한 행진을 한 뒤의 공연 모습이다 '저즈 포크 시티[Gerde's Folk City]'에서 '밥 딜런 [Bob Dylan /클릭해서 음악듣기]'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존 리 후커[John Lee Hooker]'의 '오프닝[Opening]' 공연에 함께 했고, 이후 '포크[Folk]'의 왕과 여왕은
연인이 되어 동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해에 그녀는 처음으로 전미 '콘서트 투어[Concert Tour]'에 들어갔는데, 그녀는 이 '콘서트[Concert]'를 통해 인종차별주의와 흑인의 공민권 확보를 위한 주장들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1955년 '알라바마[Alabama]'주 '몽고메리[Montgomery]'시 에서 발생한 흑인들의 버스승차거부운동은 곪아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던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공민권 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1963년 3월 25만 명의 민중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공민권 확대를 요구하며 워싱턴 D.C까지 이어지는 거리 행진에 참여했고, 이들 앞에서 '위 쉐얼 오버컴[We Shall Overcome / 우리 승리 하리라]'을 노래했답니다. [Martin Luther King]' 목사는 너무도 유명한 연설의 서두로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을 말했습니다.
이 행진엔 '조안 바에즈[Joan Baez]', '밥 딜런[Bob Dylan]', '피터 폴[Peter Paul]', '앤 머레이[Anne Murray]', '해리 벨라폰테 [Harry Belafonte]',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등의 쟁쟁하고 의식있는 '뮤지션[Musician]'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암살당하고, 부통령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포크 페스티벌[Monterey Folk Festival]'에 '밥 딜런[Bob Dylan]'과 함께 출연을
했습니다. 북베트남 사이의 전면전이 되었다. [Peter Seeger / 클릭 해서 음악듣기]'(그는 50년대 '위버스[Weavers]'를 이끌며 학생 '포크[Folk]' 운동에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매카시즘[McCarthyism]' 선풍 때 공산당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미시시피 존 허트[Mississippi John Hurt]', '잭 엘리엇[Jack Elliot]', '이안 앤 실비아[Ian & Syivia]', '탐 팩스턴[Tom Paxton]', '필 오크스[Phillip Ochs]'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포크 뮤지션[Folk Musician]'들이 대거 참여하는 행사였다. 노래는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노래들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해
'포크[Folk]' 음악이 배출한 여성 '아티스트[Artist]' 중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션[Musician]'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세금 징수에 불복했고, 존슨 대통령에게 베트남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존안 바에즈[Joan Baez]'는 자신의 주장을 좀더 널리 알리기 위해 흑인 공민권 확대를 위한 콘서트와 반전 등 여러 현장에서 무료로 공연하며 자신의 의지를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이 해 연말 '조안 바에즈[Joan Baez]'의 앨범은 '그래미상[Grammy Awards]'의 '베스트 포크 레코딩 [Best Folk Recording]' 부문 수상 후보작이 되었습니다.
이 해 '조안 바에즈[JoanBaez]'는 '밥 딜런[Bob Dylan]'과의 연인 관계를 끝냈으며, '조안 바에즈[Joan Baez]'와 '밥 딜런[Bob Dylan]'의 관계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이 두 사람은 '포크[Folk]'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저항 정신을 실천한 운동가였숩니다. 베트남전, 세대간의 갈등 등 - 을 저항과 '리얼리즘[Realism]'의 정신으로 담아냈고, 삶에 대한 열의와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고자 했던 청년 문화의 대변인이었습니다. 없는 것이지만 '밥 딜런[Bob Dylan]'을 가장 중요한 '포크 뮤지션[Folk Musician]'으로 주목받도록 한 사람이 '조안 바에즈[Joan Baez]'란 사실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밥 딜런[Bob Dylan]'은 '조안 바에즈[Joan Baez]'에게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도록 했고, '포크[Folk]' 음악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 서로 많은 교감을 이루었습니다. '밥 딜런[Bob Dylan]'보다 더 오래 지켜나갔고, '포크[Folk]' 음악의 대중화란 측면에선 '밥 딜런[Bob Dylan]'보다 더 많은 공로를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억압받는 자의 노래하는 교사. '조안 바에즈[Joan Baez]',
'진보'를 "강한 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조안 바에즈[Joan Baez]' 만큼 이런 진보의 정신에 충실했던 '뮤지션[Musician]'은 드물 것입니다.
소수의 정서를 노래에 담았고, 잊혀진 그들의 권리와 상실된 권리를 찾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소외받는 민중들의 위안이자 실탄이
되었으며, 더군다나 그 전쟁은 미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불의의 전쟁이었습니다.
산업협회(RIAA)로부터 골든 앨범으로 인정받았으며,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시종일관 약자 편에 서서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반전시위 현장에서 흑인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쉬지 않고 노래했고, 시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발언이 의도적으로 오역되는 일이 일어났고, 당시 그녀의 통역자는 '시 아이 에이[CIA]' 요원으로부터 '조안 바에즈[Joan Baez]'의 정치적 발언들을 오역하도록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시 아이 에이[CIA]'는 이런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자손들 모임인 '디 에이 랄[DAR / The 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이 그녀의 반전운동을 문제삼아 공연허가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안 버에즈[Joan Baez]'는 이들의 공연허가 거부에도 불구하고 즉석에서 3만여 명의 청중이 모인
워싱턴 기념비 앞에서 무료로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모두 빼앗자,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무대에서 내려와 청중들 한 가운데 자리잡고 노래했답니다. 하자 경찰이 압수했던 공연 장비를 어쩔 수 없이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안 바에즈[Joan Baez]'의 행동은 미국의 보수
우익들에겐 눈에 가시와 같았답니다. 그러나 '조안 바에즈[Joan Baez]'는 이들의 증오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으며, 그녀는 이 해 10월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California Oakland]'에 있는 군 입소대 입구를 무단으로 점거하기까지 했으며, 그로 인해 10일간의 형을
받기도 했답니다. 기성 세대의 권위를 깡그리 짓밟고자 했습니다. 모든 금기들 '정치적·사회적·성적 금기 등 모든 금기'에 대해 도전하고, 저항함으로써 혁명을 성취하고자 했습니다.
추락하는 순수의 시대와 마지막 생존자, '조안 바에즈[Joan Baez]'
1969년 그녀의 남편 '데이빗 해리스[David Harris]'가 징병 기피 혐의로 3년형을 선고 받았고, 20개월을 복역하게 되었으며,'조안 바에즈[Joan Baez]'는 남편이 감옥에 있는 동안 남편에게 바치는 《DAVID'S Album》을 발표했고, 8월에는 역사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The
Woodstock Festival / 클릭해서 음악듣기]'에 참가했습니다. 그렇게
1960년대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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