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DE -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2001 Concert in Southern California)
Smooth Operator
Diamond life, lover boy.
We move in space with minimum waste and maximum joy.
City lights and business nights.
When you require streetcar desire for higher heights.
No place for beginners or sensitive hearts
When sentiment is left to chance.
No place to be ending but somewhere to start.
No need to ask.
He"s a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Coast to coast, LA to Chicago, western male.
Across the north and south, to Key Largo,
love for sale.
Face to face, each classic case.
We shadow box and double cross,
Yet need the chase.
A license to love, insurance to hold.
Melts all your memories and change into gold.
His eyes are like angels but his heart is cold.
No need to ask.
He"s a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Coast to coast, LA to Chicago, western male.
Across the north and south, to Key Largo, love for sale.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smooth operator...
다이아몬드 같은 삶
우린 최소한의 소모로 최대의 기쁨을 얻으며
공간을 움직이죠
도시 불빛과 비지니스의 밤들
당신이 시내전차를 더 높게 하기를 요구하면
사랑의 초보자나 여린 마음들은 설 자리가 없어요
감정이 우연으로 남겨질때
끝날 자리는 없고 어딘가에서 시작만 하죠
물을 필요도 없어요
그는 능수능란한 남자니까요
여잘 잘 다루는 남자
능수능란한 남자
능수능란한 남자
해변을 따라 LA에서 시카고까지 서부 남자
북쪽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키 라고까지
사랑을 팔고 있어요
얼굴을 맞대는 고전적인 경우에
우린 따귀를 맞고 두배의 고난으로 그늘지죠
아직도 추적이 필요해요
사랑의 면허, 사랑을 잡기위한 보험을
당신의 모든 기억에 녹여서 그걸 황금으로 바꾸고
그의 눈은 천사같지만 마음은 냉랭하죠
물을 필요도 없어요
그는 여잘 잘 다루는 남자죠
여잘 잘 다루는 남자죠
능수능란한 남자
능수능란한 남자
해변을 따라 LA에서 시카고까지 서부 남자
북쪽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키 라고까지
여잘 잘 다루는 남자죠
능수능란한 남자
능수능란한 남자
능수능란한 남자
1980년대의 팝 음악 씬을 돌아보자면 항상 '소란스러움'이라는 느낌이 먼저 기억된다.
이것은 사운드 자체가 시끄럽다거나 크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의 팝 음악 씬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언제나 '가볍다'라는 느낌을 주었다는 기억을 말한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진지함을 피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던 1960-70년대와 달리 본격적인 소비 문화가 꽃을 피우던
1980년대는 항상 흥청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던 음악들 속에서 진지함이나 심각함을
찾아보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Wham과 듀란 듀란(Duran Duran), 컬쳐 클럽(Culture Club)과 마돈나(Madonna), 신디 로퍼(Cyn야 Lauper)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시대였던 1984년에 등장했던 샤데이(Sade)의 모습은 너무나도 색달랐다.
이 밴드가 만들어 내던 사운드와 팀명이 똑같이 샤데이라고 불리는,헬렌 폴세이드 아두(Helen Folsade Adu)라는
여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는 LP 한 장이 다 돌아간 뒤에도 이상하게도 계속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동그란 이마에 커다란 입술과 눈망울을 지닌 이 혼혈의 여인의 출생에 관한 얘기도 언제나 화제가 되곤 했다.
나이지리아인 이었던 아버지와 영국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던 중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가서 정착했다는 이 여인이 만들어내던 이상스럽게도 고혹적이고
슬픈 이미지는 한번 보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 후 패션을 공부하던 샤데이는 몇몇 밴드들에서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다가 음반사들의 주목을 받고 팀을
대표하는 프론트우먼으로 계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샤데이를 단지 한 명의 여성가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흡입력이 너무나 강했던 결과였다.
이후 샤데이가 만들어냈던 성공은 한마디로 기이할 정도였다.
1984년에 발표되었던 데뷔 앨범인 Diamond Life는 'Your Love Is King', 'Smooth Operato',
'Hang on To your Love' 등의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단지, 히트곡들을 쏟아냈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샤데이라는 밴드가 만들어내던 이국적인 사운드(최근에 우리는
이러한 사운드에 적합한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에쓰닉(ethnic)'이라는…)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촉촉하게
젖은 듯한 습기 어린 보이스칼라가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었다.
샤데이의 음악은 전혀 자극적이지도 않았고 동시대 음악들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요란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앨범은 차트 밖으로 내려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이것은 이후 나온 모든 샤데이의 앨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이 되었다.
1985년에 발표되었던 Promise에서는 'Never As Good As The First Time'과 'Sweetest Taboo'가 터져 나왔다. 특히, 'Sweetest Taboo'는 샤데이 음악의 전반적인 형태를 결정짓는 밴드와 그녀의 대표곡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읊조리는 듯한 분위기로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무한의 슬픔을 표현해내는 수작이었다.
샤데이의 팬들은 점점 더 밴드와 그녀에게 끌리게 되었다. 샤데이의 음악은 어떤 상황이나 어떤 분위기에서도
잘 어울렸다. 일면, 늘어지고 또 한편으로는 밝지 않은 분위기의 음악들이 거부감 없이, 어렵다는 느낌 없이
계속해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1988년의 Stronger Than Pride에서도 꾸준히 'Love Is Stronger Than Pride',
'Nothing Can Come between Us'같은 히트곡들이 나왔다.
이전의 늘어지기만 하던 샤데이의 보컬이 이 앨범에서는 약간은 소울풀하고 블루지한 힘을 가미한 창법으로 바뀌는
시도를 한 부분도 있었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샤데이의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앨범이었던 이 작품도
간단히 플래티넘을 넘기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샤데이는 4년 동안의 첫 번째 잠행을 행한다.
그녀가 그 4년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는 평소의 그녀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자세히 알려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이렇게 그녀와 그녀의 밴드인 샤데이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던 1994년 샤데이는 가장 아름다운
앨범인 Love Deluxe로 씬에 복귀한다.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한마디로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훌륭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있던 습기의 자욱은 이 앨범에서는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건조한 듯 변한 것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드러내지 않는 슬픔의 표현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전에 발표되었던 어떠한 앨범보다 훨씬 더 큰 슬픔을 담은 앨범은 여전히 식지 않은 그녀와 밴드 팬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특히, 이 앨범에 담긴 'Pearls'라는 곡에서 나타난 인간에 대한 슬픔과 연민의 감정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샤데이는 자취를 감췄다.
정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꾸준히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샤데이 본인은 거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샤데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그녀가 지난 8년 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단지, 그녀가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40세가 넘은 나이가 됐다는 사실들만이 확실할 뿐이다.
하지만, 언론을 극도로 싫어하고 대인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는 항간의 보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단지 언론에 노출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사람들을 피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오히려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함께 있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사실, 샤데이는 언론에 음악과 자신의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인터뷰를 위한 여하한 접촉을 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자세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것과 대중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음악뿐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녀를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밴드를 기다렸지만 8년이라는 세월은 그다지 짧지 않았다.
음악계의 흐름은 마구 변해갔고 1980년대의 영화를 노리고 복귀했던 많은 스타들이 나자빠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샤데이가 음악계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며 인터넷에 팬페이지들을 꾸며오던 팬들은 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샤데이의 팬들은 그 응집력이 무척이나 강하고 그들의 음악 스타일처럼 팬 층의 한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샤데이의 음악은 연령도, 인종도, 종교도 초월해서 좋아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60년대를 풍미했던 보사노바를 8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장본인이 바로 샤데이(Sade)이다.
그녀는 종래의 보사노바에다 끈적끈적한 블루스를 가미시킨 독특한 보컬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60년 1월 16일 나이지리아에서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폴라 샤데이 아두(Folasade Adu)로 중간 글자만 따와서 샤데이로 지었다.
4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성장하였는데, 재즈와 소울 뮤직에 심취하여
빌리 할리데이, 마빈 게이, 니나 시몬등의 음악을 즐겼다고한다. 17세에 런던의 세인트 마틴 칼리지에 입학하여
패션디자인을 전공하였는데 실제로 그녀는 디자이너 겸 모델로 활동했다고 한다.
1979년 라틴 펑크를 연주하는 로컬밴드에 가담하면서 음악과 손을 잡게되었다.
그녀의 히트곡 "Diamond Life"를 작곡한 레이 세인트 존이 이 밴드의 리더였다.
매니저 리 배리트에게 발탁되어 그녀의 이름을 딴 샤데이의 보컬을 맡으면서 1984년 데뷔앨범[Diamond Life]로
공식데뷰하게 되었다.
여기에 "Smooth Operator"가 히트하면서 샤데이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비평가들에게
"1984년 가장 인상적인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뉴스위크지에는 "1980년대 팝계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격찬을 받기도했다.
1985년 두번째 앨범 [Promise],87년 [Stronger Than Pride],92년 [Love Deluxe]를 발표하여 많은
사랑을받았다.
그 가운데 "No Ordinary Love"는영화 "은밀한 유혹"에 수록되기도 했다. 진한 커피향이 느껴지는 그녀의 독특한
음색이 은밀한 유혹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겐 'Smooth Operato'로 친숙한 샤데이(Sade)는 재즈와 블루스를 결합한 고급스런 감각의 노래들로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밴드이다. 밴드라곤 하지만 보컬인 샤데이 아두(Sade Adu)의 이름에서 밴드명을 지은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곧 그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샤데이의 본명은 헬렌 폴라샤데 아두로 1959년 나이지리아에서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녀가 4살 되던 해 부모가 이혼하자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오게 된다.
어릴 적부터 매우 노래를 잘 불렀던 샤데이는 영국에서 레이 찰스, 아레사 플랭클린, 마빈 게이등의 소울음악을
들으면서 자라났다.
그때까지도 가수가 되리 라곤 생각지 않았던 샤데이는 예술학교에서 패션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덕택으로 매우 이국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었던 샤데이는
학업과 병행해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었고 재즈 펑크 밴드 Pride에 백보컬로 참여하기도 샜다.
하지만 당시 그려는 노래에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고 있진 않았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게 된 것은
1984년 무렵이다.
밴드활동을 통해 그녀는 점차 작곡에 재미를 붙여 나갔고 밴드인 리드보컬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녀의 히트곡
''Smooth Operator'가 만들어진 시기도 이 때이며 밴드 샤데이가 출발하게 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재즈 펑크 그룹 Pride에 있었던 동료 멤버 스튜어트 매튜먼(기타/색소폰),
폴 댄먼(베이스)eh 새로운 밴드에 참여하게 된다.
1984년 발표된 샤데이의 첫 앨범 [Diamond Life]는 아주 인상적인 데뷔앨범이었다. 2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가고
수록곡 중 'Smooth Operator' 와 'Your Love Is King'가 인기를 얻었으며 이 앨범으로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게된다.
이듬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Promise] 역시 전작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며 'Sweetest Taboo'가 영국과
미국의 챠트에서 모두 상위권에 진입하는 인기를 누렸다(그녀의 곡들은 넘버원 히트는 없지만 챠트에서 오래 머물기로 유명하다).
그 시절 신디로퍼(Cyndi Lauper), 마돈나(Madonna) 등 뉴 웨이브풍의 댄스뮤직이 지배하고 있던 터라 끈적한
재즈 색소폰 연주에 차갑고 허스키한 보이스로 들려주던 그녀의 블루스, 소울 넘버들은 그녀의 외모 만큼이나
매우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그녀의 독특한 배경은 USA for Africa, Band Aid 등을 통해 당시 불고 있었던 아프리카 열풍을 타고 인기를 얻는데 적잖은 요인이 되기도 했다. (같은 시기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영국 가수
Billy Ocean의 인기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1, 2집의 성공 이후 계속된 투어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샤데이는 3집 작업을 위해 할동을 중단했고 3년후 세 번째 앨범 [Stronger Than Pride]로 팬들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앨범에서는 빠른 재즈스타일의 곡들보다는 블루스와 소울에 더 충실한 곡들을 선사했고 'Paradise',
'Nothing Can Come Between Us'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곧 다시 모습을 감춘 채 조용히 새 앨범 작업에 몰두한 그녀 는 4년 후인 1992년 네번째 앨범 [Love Deluxe]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3집부터 강해지던 소울의 색채를 이어간 이 앨범에서는 영화 '은밀한 유혹'에 삽입되기도 했던 'No Ordinary Love'를 비롯해 'Pearls'와 'Feel No Pain' 등이 인기를 얻었다.
그 이후 8년이라는 오랜 공백기간을 가지며 다음 앨범 제작과 공연에 몰두했지만 2000년 그녀의 다섯번째 앨범 [Lovers Rock]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동그란 이 마에 커다란 입술과 눈망울을 지닌 이 혼혈의 여인의 출생에 관한 얘기도 언제나 화제가 되곤 했다.
나이지리아인 이었던 아버지와 영국인이었던 어 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던 중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가서 정착했다는 이 여인이 만들어내던 이상스럽게도 고혹적이고
슬픈 이미지는 한번 보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 후 패션을 공부하던 샤데이는 몇몇 밴드들에서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 하다가 음반사들의 주목을 받고
팀을 대표하는 프론트우먼으로 계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샤데이를 단지 한 명의 여성가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흡입력이 너무나 강했던 결과였다.
이후 샤데이가 만들어냈던 성공은 한 마디로 기이할 정도였다.
1984년에 발표되었던 데뷔 앨범인 [Diamond Life] 는 'Your Love Is King', 'Smooth Operato',
'Hang on To your Love' 등의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단지, 히트곡들을 쏟아냈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샤데이라는 밴드가 만들어내던 이국적인 사운드
(최근에 우리는 이러한 사운드에 적합한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에쓰닉(ethnic)'이라는…)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촉촉하 게 젖은 듯한 습기 어린 보이스칼라가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었다.
샤데이의 음악 은 전혀 자극적이지도 않았고 동시대 음악들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요 란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앨범은 차트 밖으로 내려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이것은 이후 나온 모든 샤데이의 앨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 이 되었다.
1985년에 발표되었던 [Promise]에서는 'Never As Good As The First Time'과 'Sweetest Taboo'가
터져 나왔다.
특히, 'Sweetest Taboo'는 샤데이 음악의 전반적인 형태를 결정짓는 밴드와 그녀의 대표곡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읊조리는 듯한 분위기로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무한의 슬픔을 표현해내는 수작이었다.
샤데이의 팬들은 점점 더 밴드와 그녀에게 끌리게 되었다. 샤데이의 음악은 어떤 상황이나
어떤 분위기에서도 잘 어울렸다.
일면, 늘어지고 또 한편으로는 밝지 않은 분위기의 음악들이 거부감 없이, 어렵다는 느낌 없이 계속해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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