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MY LOVE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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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그리이스의 아테네에서 태어난 데미스 루소스는 부모를 따라 이집트로 건너와 그의 나이
18세가될 때까지 이집트에서 성장했다.
유명한 건축가였던 아버지의 덕분으로 부족함 없이 자란 그였으나1965년, 돌연 이집트가 좌익 정권의 개혁 정책에
휘말려 그의 가족은 많은 재산을 압수당한 채 그리스로 추방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의 가족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기울였으며 데미스 루소스도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바, 클럽 등을 전전하면서 고생스런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절을 통하여 고국 그리스의 민속 음악에 심취하게되었고 또한 그의 음악의 핵을 이루는
비잔틴 스타일을 확고히 하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의 전통적인 민속 음악에다 현대적인 락 비트를 혼합한 그의 음악은 유럽의 유행 음악에새로운 장을
열게 한 것이다.
그 무렵 데미스는 친구인 반젤리스 파파테나시우 와 4인조 락 그룹을결성하게 되었는데 데미스 루소스가 이끌었던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출범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유럽 음악계의 주역이었던 아티스트들로는 나나무스쿠리, 비키, 조르즈 무스타키 등이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사령관으로서 화려한 성공을 거둔 그는 자기 감각에 충실한 노래를 표현하기 위해1971년 솔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함으로써 그의 음악 세계는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다른그리스 출신의 가수들과는 달리그의 노래는 환상적인 색채감이 있고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에서 오는전율적인
고음이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 만의 장르임을 우리 모두가 공감하게 됨으로써 앞으로그의 인기는 더욱
더 치솟을 것이다.
흔히 세례 요한이라고도 불리우는 그는 90kg의 체중을 가진거구인데다 고대 그리스의 법의를 어깨까지 덮고
검고 긴 머리카락과 얼굴을 덮은 검은수염으로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과 신비스러운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의 데뷔곡 We Shall Dance는 60만장의 레코드가 팔려나가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71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전 유럽의 히트 퍼레이드를 누비고 72년에 발표한 My Reason으로 완전히 황금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이듬해인 73년 Forever and Ever를 발표하여 또한번 대히트를 기록하더니,이어 내놓은
Goodbye My Love Goodbye로 폭발적인 그의 인기는 그칠줄을 몰랐다.
레코드의 인기가 날로 상승됨에 따라 각국으로부터의 초청 공연도 연달아 들어와
2년간에 걸쳐 24개국에서 200회 이상의 공연을 가졌다.
겉모습만 보면 프로 레슬링 선수나 역도 선수를 떠올리게 되는 거구의 남성.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가득한 이 사람이 정장이라도 입으면 시칠리아 섬 출신의
마피아 보스 정도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외모와는 달리 가늘게 떨리는 미성으로 사랑받아온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팝 가수가 바로
데미스 루소스(Demis Roussos)다.
데미스 루소스는 1947년 6월 15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했는데본명은 신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의 아르테미오스 벤투리스 루소스.
18세가 될 때까지 이집트에서 유명한 건축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1965년에 이집트가
좌익 정권의 국유화 개혁 정책에 휘말리게 되면서 재산을 모두 압수당했고 결국 그리스로 추방된다.
데미스 루소스는 원래 그리스 집시 출신이었던 부모의 영향으로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청년기에 그는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했고 돈을 벌기 위해 레스토랑, 바, 클럽 등을
전전하며 일 또는 노래를 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을 통해 그리스의 민속 음악에 심취하게 됐고 훗날 자신 음악의 핵심으로 부각되는 비잔틴 스타일을 확고히 익혔다.
그리스의 전통적인 민속음악에 현대적인록 비트를 혼합한 데미스 루소스의 음악은 유럽 대중음악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또 이 무렵 자신과 비슷한 음악적 취향을 지닌 키보드 연주자 반겔리스와 어울리기도 했다.
데미스 루소스는 한때 그룹을 결성해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결국 반겔리스 등과 함께 '아프로디테의 아이(Aphrodite's Child)'를 결성했고 이들은 '레인 앤 티어스
(Rain And Tears)', '스프링, 서머, 윈터 & 폴(Spring, Summer, Winter & Fall)' 같은 골든 팝 수준의 히트 곡들을 남기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68년과 1969년에는 롤링 스톤즈에 버금갈 정도의 레코드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고 데미스 루소스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갑부가 됐다.
그는 밴드 해산 후인 1971년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굿바이 마이 러브 굿바이
(Goodbye My Love Goodbye)'를 비롯해 '아랑페즈 협주곡'을 편곡해 가사를 붙인 '팔로우 미(Follow Me)' 등의
솔로 곡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리고 반겔리스와 함께 만든 리메이크 곡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나'스탠 바이 미(Stand By Me)' 등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노래다.
인상만큼이나 넉넉한 마음과 배짱까지도 지닌 데미스 루소스는 1985년 6월 14일 그가 탄 비행기가 공중납치되는
사건에 휘말렸다.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가 된 그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노래를 불러주며 진정시켜 피해를 최소화시켰다고.
그런 모습에 감동한 범인들도 결국엔 기내에서 맞은 데미스 루소스의 생일까지 축하해 주었다는 일화는 당시
세계 토픽이었다.
1946년 6월 15일 이집트에서 출생한 데미스 루소스(Demis Roussos)는 1961년 그리스로 이주한 후
17세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하여,
1968년 4인조 록 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를 키보드 연주자 반젤리스(Vangelis) 등과 함께 결성 "Rain And Tears",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등의 앨범을 히트시킵니다.
1972년 'Aphrodite's Child' 해체 이후 반젤리스와 데미스 루소스는 각자의 활동을 하는데요. 반젤리스는 연주자와
작곡가, 영화음악가로서..
데미스 루소스는 솔로 가수로 1973년 "Forever And Ever", "Goodbye My Love Goodbye" 등을 히트시키며
세계적인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베이스 보컬 리드싱어 데미스 루소스(Demis Roussos)가 2015년
1월 2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한 병원에서 향년 6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고음과 바이브레이션이
돋보이는 미성의 목소리는 영원히 우리들 곁에 남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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