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 Dylan -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in' on Heaven's Door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I can`t use it anymore. It`s gettin` dark, too dark to see.
I feel I`m knockin` on Heaven`s door.
엄마, 이 뱃지를 떼어주세요.
난 더이상 이걸 사용할수 없어요.
이젠 앞을 볼수도 없어요.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I can`t shoot them anymore.
That long black cloud is comin` down.
I feel I`m knockin` on Heaven`s door.
엄마, 내 총들을 땅에 내려주세요.
이젠 더이상 쏠수도 없어요.
넒게 퍼져가는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어요.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것 같이...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Oh Mama whipe the blood from my face
I`m sick and tired of all this war
There`s a lot of people feelin` just like me yeah
Feel like we`re knockin` on Heaven`s door
오 엄마, 내 얼굴에 뭍은 피를 닦아주세요.
난 이모든 전쟁이 아프고 지쳐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죠.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것처럼....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I`m knockin on Heaven`s door
난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One More Cup Of Coffee
Your breath is sweet
Your eyes are like two jewels in the sky
Your back is straight your hair is smooth
On the pillow where you lie
But I don't sense affection
No gratitude or love
Your loyalty is not to me
But to the stars above
One more cup of coffee for the road
One more cup of coffee 'fore I go.
To the valley below.
Your daddy he's an outlaw
And a wanderer by trade
He'll teach you how to pick and choose
And how to throw the blade
He oversees his kingdom
So no stranger does intrude
His voice it trembles as he calls out
For another plate of food.
One more cup of coffee for the road
One more cup of coffee 'fore I go.
To the valley below.
Your sister sees the future
Like your mama and yourself
You've never learned to read or write
There's no books upon your shelf
And your pleasure knows no limits
Your voice is like a meadowlark
But your heart is like an ocean
Mysterious and dark.
One more cup of coffee for the road
One more cup of coffee 'fore I go.
To the valley below.
Bob Dylan
1941년 미국의 미네소타에서 출생한 그는 1962년에 데뷰앨범을 발표하였다. 이후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수 없이 많은 히트 앨범과 히트곡을 발표한 대형가수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의 노래는, "Blowin' In The Wind"외에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다.
그를 일컬어 "음유시인"이라 하고 "저항가수"라 하지만, 정작 그가 무엇을 이야기했고 무엇에 저항하려 했는지도
잘 알려져있지 않다.
1962년의 데뷰앨범 <Bob Dylan>이후 1966년의 7집 <Blonde on Blonde>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저항의 메시지를 노래에 담아 불러왔던 밥 딜런.가수란 감미롭고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타령을 읊어대기만 하는
이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삶의 고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는 직접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는 1966년 7월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칩거에 들어갔고, 우드스탁에 있는 집에서 음악만들기에
전념하게 된다.
그리고 1년 여가 지난 후 밥 딜런은 8집 <John Wesley Harding>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재개하게 되는데, 이 앨범은
그의 음악활동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전까지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저항의 메시지를 노래에 담았던 그가, 이 앨범에서는 한 발짝 뒤에서 세상을 보며
은유와 관조가 담겨있는 노래들을 선보였고, 그리고 이후 그가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단초들이 보이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그러한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All Along The Watchtower"인데, 이 곡의 가사는 중세시대의
어느 조커와 도둑이 부조리한 세상을 한탄하며 종말에 대한 언급을 하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이후 Jimi Hendrix가 다시 불렀는데, Bob Dylan 자신도 Jimi의 버전이 더 좋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컬트무비의 선구자, 샘 페킨파 감독이 만든 서부영화,
"Pat Garrett & Billy The Kid"의 래스트 씬에서 원 작곡자인 밥 딜런의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이 노래다.
영화에서 주인공 빌리 더 킷 역은 가수 크리스 크리스타훨슨이,그의 연인 역에는 그 당시 크리스의 아내였던
가수 리타 쿨릿쥐가 맡았고보안관 팻 개럿 역은 죄임스 코번이 맡았었다.
밥 딜런은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자 서부 악당 빌리 더 킷의 따까리 쿠커 역의 연기자로 나와 1인2 역할을 해냈을 만큼
이 작품을 좋아했다고 한다.
원래 밥 딜런이 칸츄리 스타일로 만들어 부른 것이지만롹 그룹들의 단골 곡이 되면서 마치 오리지널 롹넘버로
착각되기도 한다.
1980년대 말 롹그룹 헤븐의 커버곡이 7080 세대들에게 사랑받았다
밥딜런과
조안 바에즈의 역할
두 사람은 당시 젊은이들의 의식, 시각, 욕구 등에 양심적 가치가
우선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조안 바에즈는 포크프로테스트 시대에 밥 딜런의 여성 대응자로서 오히려 포크의 저항적 색채를 밥 딜런보다 더
오래 지켜감으로서 포크음악의 기수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그녀는 밥 딜런보다 빨리 포크음악의 대중화에 기여했는데 그럼에도 밥 딜런의 여성 대응자 정도로 일컬어지는 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습관적인 성차별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안 바에즈는 실로 약자를 위한 여교사와
같았다.
그는 늘 힘없는 사람과 상처받은 사람 편에 서서 노래했으며 미국내의 대표적 약자 가운데 한 계층을 이루고 있는
가난한 이주민의 정서를 노래에 자주 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잊혀진 자유와 잃어버린 권리를 쟁취하라는 메시지를 던졌으며 나아가 이런 소외 받는 계층 위에
군림하고 전쟁만을 고집하는 미국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Strangest Dream과 같은 반전가요를 잇달아
발표하고 심지어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과격한 노래까지 불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정치색이 짙은 노래를 지향한 이 맹렬여성은 1941년 멕시코가 모국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피부는 검은색이었다.
그로 인해 백인 우월의 세상에서 어린시절부터 인종차별을 당하며 성장했다.
그의 부친은 핵물리학자로 방위산업체의 스카우트를 많이 받았는데 원폭의 가공함을 잘 알고 있는지라 번번히
거절했다고 한다.
바에즈는 민중적이고 반상업적인 성격을 특징으로하는 포크음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보스턴대학의 연극과에 입학하긴 했지만 학업에는 뜻이 없었고 포크의 전당인 하버드스퀘어 주변의 다방을
드나들곤 했다.
그녀는 한때 1년공연의 개런티로 10만 불을 제시한 프로모터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포크음악은 의식에 관여하는 음악이다.
누구든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포크음악이라고말할수 없다"라고 거부이유를 밝혔다.
돈보다는 인류애를 선택하는 가풍을 그녀가 이어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바에즈는 이 세상이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로 뚜렷이 이분되어 있음을 일찍이 간파하였는데 초기의 노랫말을 보면 약자의 교사라는 말답게 가난이라는 말이 무수히 반복된다.
그녀는 50년대말 하버드스퀘어에서 활동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59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여 운집한 1만3천명 청중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당시 관람을 하던 뉴욕 타임즈의 기자 로버트 셀던이
바에즈의 노래를 듣고,
"전율을 자아내는 풍부한 비브라토와 열정적이며 잘 통제된 호소력을 지닌 젊은 소프라노"
라고 극찬을 했다.
62년 타임지는 그녀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존 바에즈는 현 포크진영 신인중 가장 재능있는 가수라고 언급했다.
그해 그녀는 3장의 앨범을 발표 선풍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고 이듬해 밥 딜런과 조우하여 뉴포트 포크페스티발에 함께 서는 등 콤비플레이를 전개 주목을 끌기도 한다.
반전과 인종평등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다했다.
연좌농성 프리덤라이트, 시가행진등 모든 형식의 저항에 적극참여 했으며 그런 일들이 순회공연을 대신했으며
또 그런 일들들이 순회공연 내용이기도 했다.
65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카멜벨리에 있는 학교건물을 개조하여 "비폭력연구사무소"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수강생들은 간디와 핵시대같은 평화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평화에 대한 세미나와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물론 존 바에즈였으며.
한데 카멜벨리의 일부 주민들이 연구소의 회원과 수강생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운 영토에 침입하여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즉각 연구소 활동을 중지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이 히피, 그리고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위험인물"로 비쳐진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의 크레임은 거부되었고 연구소는 상당기간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마을 주민뿐 아니라 정부도 존 바에즈를 "통기타치는 파괴 분자" 로 간주했고 "페스트"와 같은 존재로 치부했다.
그녀의 이름은 대학생들에겐 명성이었지만 정부입장에서는 악명이었다. 여러 차례 정부 기관과 관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유감'을 표해왔지만 그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함께 현장을 뛴 동지이자 운동권의 지휘자인
데이비스 헤리스와 68년 결혼을 한다.
우리에게 조안 바에즈는 밥 딜런과의 로맨스로 유명한데 그녀는 밥 딜런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밥 딜런도 그녀를
모델로 한 "Vision of Johanna" 등의 곡을 써 간접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부분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의 순수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밥 딜런이 포크록이란 장르를 개척하는 등 포크음악과 록 역사에 한획을 그은 거인으로 평가받는 반면 조안 바에즈는 음악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평론가들은 그의 곡을 걸작으로 꼽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그녀가 직접 곡을 쓰지못했다는 점에 대한 실력폄하와 포크를 했지만 너무나 고운 목소리를 지녔다는 점이
거부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밥 딜런도 언젠가 "조안 바에즈의 음악은 포크를 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미성의 소유자였기에 실상 음반 판매면에서는 밥 딜런을 앞서갔고 특히 포크의 본질적 성격을 더 오래
견지해 나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비평계가 조금은 잔인했다는 느낌도 있다.
70년대 이후 조안 바에즈에게 정치색은 줄어들고 대신 사회사업가적인 면모가 나타난다. 음악에도 변화가 일어나
전속 레코드사가 뱅가드에서 A&M으로 바뀌면서 통기타의 자연음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 탈바꿈, 밥 딜런의
전철을 밟는다.
이렇게 변화가 깃들고 조안 바에즈라는 이름 자체의 신비력이 떨어져가던 71년에 이르러서야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이란는 곡이 처음으로 싱글차트10위권에 진입을 한다.
80년대 들어 그는 팝음악의 공식무대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메이저 음악사들의 기피때문에) 간간이
군비축소, 인종차별반대, 환경보호 등의 현실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록 반전이나 이념을 담은 곡을 내놓진 않았지만 입장을 선회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인기를 지향하는 상업가요는 배격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든 실로 60년대의 조안 바에즈는 기념비적이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현실반영과 저항의 곧은 태도로 무대나 혹은 장외활동에 임했던
여가수는 그 외에는 찾기가 어렵다. 63년 그녀는 잡지 LOOK에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나는 낙태로 아이를 죽이는 행위 인종차별로 정신을 죽이는 행위등의 현실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은 내 노래를 좋아한다.
난 이 두 가지 측면을 따로 분리할 수 없다. 두 가지가 나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노래에 대한 애정도 계속 되고있다.
이 두 부분 아니 그녀의 모든 부분은 그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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