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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Jimmy Lee Jones- Since You've Gone Away, Mrs. Simpson's Late Love"

 

Jimmy Lee Jones - Since You've Gone Away

 

 

 

 

" Mrs. Simpson's Late Love"

 

 



1981년 미국명이 Jimmy Lee Jones인 이정명이라는 젊은 아티스트의 곡이 컨트리 음악의 심장부인
내시빌의 송 콘테스트 MCF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 Mrs. Simpson's Late Love로 입상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컨트리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기회를 얻었으며
그는 현재 내시빌 국제 작곡가 협회(NSAI)의 평생회원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세계화를 위해 1970년대 중반부터 추진해온  country music singer - songwriter

이정명 (Jimmy Lee)의 보도자료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 졌습니다. - ☆

 

○ 1980 April : " Mrs. Simpson's Late Love"

MCSF(Music city song festival : Nashville pop festival)

won BEST songwriter in country music category

"심슨부인의 늦바람" 이라는 곡으로 네슈빌 팝 페스티발에서 컨트리 뮤직 작곡부문  수상, 인증서 받음.

 

○ 1980 June : NSAI (Nashville songwriters Assocuation) became a member.

"내슈빌 작곡가 협회" 의 준회원으로 가입

 

○ 1981 May : NSAI  became a  honorable member.

NSAI 정회원으로 인준

 

○ 1982 April :  " Mrs. Simpson's Late Love" award winning song, release on the

album  "JimmyLee Jonse".

"심슨부인의 늦바람" 수삭곡을 담아 "Jimmy Lee Jone" 이라는 타이틀로 1집 앨범 발표.

side2 는 우리말 가사로 제작.

 

○1983 June : NSAI becomes lifetime  member.

MASI 라이프 멤버로 인준

 

○ 1984 August : becomes a singer - sonrwriter at SCL productions in Nashville.

내슈빌의 [SCL 프로덕션] 전속 작곡가로 가입

 

○ 1984 Dec : Records second album "Nashville Sound"  Gary primme(Piano)

Gary Lunn (Bass)  Mark chesshir (Guitars) John Hammond (Drums)

내슈빌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우리말로 "Nashville Sound"  2집 앨범 녹음.

 

○ 1985 Jan : becomes member of ASCAP.

세계 3대 제작인세 전파방송협회인 ASCAP 에 작품 최초로 가입. Membership 획득. 

 

○ 1987 Jury : "Nashville Sounds" album relesed in Seoul.

"Nashville Sounds" 2집 앨범 발표.

 

○ 1990 Jan : "For Always" album relesed in Seoul.

"For Always (언제나)"  3집 앨범 발표.

 

○ 1998 march : Became a main professor, [music and Broadcast]

depatment in WooSong college.

우송 대학교 방송 음악과 전임 교수 역임.

 

○ 음악장르 : Country Music

국내 COUNTRY 계열 뮤지션 중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SINGER - SONGWRITER

 


가버린 사랑(Since You've Gone Away) - 이정명(Jimmy Lee Jones)

 

 

그 시대를 산 민중들의 생각이 노래에 녹아있는 것이 포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대를 비판하고 민중들의 한이 녹아있죠.

 

포크는 민중의 한을 부르는 노래

 

가요계의 황금기 60년대 서울 환도 이후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1957년 공보실에서는 국민의 정서를 그르치는

 가요를 시정해 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 방편으로 건전가요 보급을 꾀하고자 처음으로 행정력을 발휘, 순수 음악가들에게만 의뢰하던 새 노래 보급에 과감하게 대중가요 작가들에게 작품을 위촉해서 만든 곡들이 '금수강산에 백화가 만발하구나'(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고향에 찾아와도'(이재호 작사, 작곡) '청춘목장'(손석우 작사, 송민영 작곡) '꽃중의 꽃'(서일수 작사, 황문평 작곡) 등이 보급되었다.

그런 가운데 한편으로는 저질 가요가 범람했다. 자유당 말기의 혼란한 사회풍조가 가요에도 영향을 끼쳐 어수선한 정국을 비방하는 노래와 부정부패에 대한 무저항적 현실도피를 내용으로 하는 가요가 유행하자 당국에서는 이에 대한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물레방아도는 내력'(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이 문제가 됐다. 이 노래는 자유당을 비방한 노래라 하여 작사가 손로원이 경찰에 불려 다니는 수모를 당했고 공화당 정권에서는 금지곡이 되었다.

 

 

 

학사가수

 

1962년 이후, 가요계의 특징은 소위 학사 가수들이 많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당시 KA 전속가수 중 강수향이 학사가수 1호였고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희준, 박형준, 유주용, 위키 리 등이 있다.

 

그리고 김상희, 최양숙 등이 대학을 졸업한 가수들로서 이들은 학사출신답게 미8군에서의 경험을 살려 서구화된 가요를

불러 궁극적으로는 종래 가요의 질을 한 계단 높힌 공이 인정된다.

 

 

Duet의 시대

 

그 시발은 1967년에 등장한 배인순, 배인숙 자매의 펄 시스터즈였다. 이 팀은 '커피한잔' '님아'(1969년) 등 절묘한

 화음과 뛰어난 가창력, 여기에다 빼어난 미모로 당대를 풍미했음은 물론 가요계 사상 최고의 여성 듀오로 인정받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그녀들의 유명세를 능가할 만한 팀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1968년에 등장한 송창식, 윤형주로 짜여진 트윈 폴리오는 남성 듀오의 이정표를 제시하면선 '하얀손수건'

'축제의 노래' '웨딩케익' 등 번안가요를 주로 불렀는데 단 한장의 앨범을 냈을뿐인데도 인기가 높았다. 이들의 만남은

국내 가요계에 젊음이 중심의 문화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몇몇 듀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온 듀오의 역사는 70년대에 들어서자 황금기를 맞는다.

마침 불이 당겨진 포크의 도화선은 1970년대에 들어 라나 에 로스포, 뜨아 에 모아, 서수남 하청일, 4월과 5월, 현경과

 영애, 산이슬, 어니언스, 투 에이스 등 포크를 표방한 듀엣을 대거 배출시켰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어니언스와 투 에이스이다.

 

 

컨트리뮤직

 

1960년대 말에는그랜드 올 오프리의 멤버로 있던 김해숙이 컨트리 요들송을 갖고 등장, 카우보이 차림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일품이었으며 '날개'라는 노래로 크게 각광을 받았던 허영란도 여기 출신이다.


1970년대 이후는 스위스에서 요들을 유학하고 돌아온 김홍철의 음악이 힐빌리와 유사한 것도 유의해야 할 점이며,

 '고아'의 오세은은 기타를 통한 블루 그래스 컨트리 그린이란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한편 혼성 듀오의 바람도 세게 불었다. 최초의 혼성 듀오인 '연가'(1969년)의 버블껌, 이필원, 박인희의 뜨아 에 무아는

 '임이 오는 소리' '그리운 사람끼리' 등 주옥같은 노래를 선사한 팀으로서 두 사람이 다 작품을 쓰는 능력을 지녀

여타 그룹보다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았으며 7명의 여성 개구리를 바꾼 두꺼비 한민이 이끈 라나 에 로스포는

'사랑해'라는 명곡을 낳기도 했다.

 

이 외에도 '당신의 모든것을'(1974년)의 원+원, '순이 생각'(1977년)의 물레방아, '목화밭'(1977년)의 하사와 병장,

'다락방'의 논두렁 밭두렁, '긴머리 소녀'(1975년)의 둘다섯, '눈이 큰 아이'(1975년)의 버들피리, '영원히 사랑하리

'(1972년)의 에보니스 등이 1970년대에 활동했던 듀오들이다.

 

 

혼성듀오 & 내한공연


1980년대에 혼성 듀오로서 한마음, 배따라기, 높은음자리, 4막5장, 마음과 마음 등이 강세를 보인데 이어 솔로 가수가

 힘을 합쳐 듀엣으로 정태춘, 박은옥 부부를 필두로 전영록 윤시내가 제6회 MBC서울국제가요제에 팀을 이뤄 참가했고

 구창모 정수라가 역시 ABU국제가요제에 듀엣으로 나간 것을 위시해 '사랑의 대화'의 이정석 조갑경, '사랑은 세상의

반'의 민해경 강인원, '이별 이야기'의 이문세 고은희, '찻잔의 이별'의 윤수일 최진희 등의 조화가 하나의 유행이었다.

 

 1950년~1960년대 무드음악을 주도했던 빌리 본 악단이 1972년 6월 이화여대 강당에서 코미디언 곽규석의 사회로

 이봉조와 함께 '하숙생'을 협연해 박수를 받았으며 1960년대 캄보 밴드의 유행을 주도했던 벤처스 악단도 1975년,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들렀으며, 폴 모리아 악단은 5번이나 내한공연을 가졌다. 1980년대 이후 더욱 활발해져

 

놀란스에 이어 에어 서플라이, 리틀 리버 밴드, 아라베스크, 빌리지 피플, 보니 엠, 앤디 윌리엄스, 톰 존스 등이 줄을

이었다.

 

 1988년 개최된 프레 올림픽 행사에 훌리오이글레시아스, 잉글버터 험퍼딩크, 나나 무스쿠리, 로라 브래니거, 마이아미

사운드 머신 등이 입국하였다.

 

 

컨트리 음악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컨트리 음악에 분수량을 긋는 2가지 일이 일어났다.

그 하나는 1981년 이정명이라는 젊은 아티스트의 곡이 컨트리 음악의 심장부인 내시빌 송 콘테스트 MCF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 '심프슨 부인의 늦바람'(Mrs. Simpson's Late Love)로 입상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컨트리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기회를 얻었으며, 작곡가 방기남이 1982년 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션(CMA)의 정회원이 됐는데 이들은

 

 지금껏 미국에서 건너오는 음악만을 수용하던 우리 음악계에서 과감히 탈피,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긍심을 심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