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ray you'll be our eyes
and watch us where we go
And help us to be wise in times
when we don't know
Let this be our prayer
우리의 눈이 되어주시고
우리가 어딜 가든 굽어 살펴 주소서
그리고 우리가 무지할때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저희가 기도하게 하소서
as we go away
Lead us to a place
Guide us with your grace
To a place where we'll be safe
우리가 길을 잃고 헤메일 때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당신의 자비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안전할 수 있는 곳으로
La luce che to dai
(The light that you give us)
I pray we'll find your light
nel cuore restero
(Will stay in our hearts)
And hold it in our hearts
당신이 주시는 빛
당신의 빛을 찾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 속에 머물도록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하도록
a ricordarci che
(Reminding us)
When stars go out each night
L'eterna stella sei
(That in my prayer)
Nella mia preghiera
(You are an everlasting star)
그 빛을 저희가 기억하게 하소서
매일 밤 별들이 떠오를 때
저희의 기도 속에서
당신은 영원한 별이십니다
Let this be our prayer
Quanta fede c'e
(There's so much faith)
When shadows fill our day
Lead us to a place
이렇게 당신께 기도하게 하소서
얼마나 많은 믿음이 필요한지요
어둠이 우리 삶을 뒤덮을 때
당신의 은총으로 저희를 인도해 주소서
(Guide us with your grace)
Give us faith so we'll be safe
Sognamo un mondo senza piu violenza
(We dream of a world with no more violence)
Un mondo di giustizia e di speranza
(A world of justice and hope)
Ognuno dia la mano al suo vicino
(Grasp your neighbors hand)
당신의 자비와 함께
우리께 믿음을 주시면 저희를 안전하게 하소서
평화의 세상을 꿈꾸게 하소서
정의와 희망의 세상
가장 가까이 있는 이의 손을 잡게 하소서
Simbolo di pace e di fraternita
(As a symbol of peace and brotherhood)
La forza che ci dai
(The strength that you give us)
We ask that life be kind
E'il desiderio che
(Is the wish)
평화와 형제애의 상징으로
주님이 주신 사랑의 힘으로
우리의 삶이 평화롭게 하소서
저희의 바램입니다
And watch us from above
Ognuno trovi amore
(That everyone may find love)
We hope that life be kind
Intorno e dentro a se
(In and around himself)
Another soul to love
하늘에서 저희를 굽어 살피시어
모든 영혼이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이처럼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또 다른 영혼이 그 사랑을 만나기를
Let this be our prayer
(Let this be our prayer)
Just like every child
(Just like every child)
Needs to find a place,
Guide us with your grace
Give us faith so we'll be safe
이렇게 기도하게 하소서
어린 아이처럼
당신의 은혜와 함께 인도하소서
우리가 안전하게 믿음을 주소서
E la fede che
(And the faith that)
Hai acceso in noi
( You've lit inside us)
Sento che ci salvera
(I feel will save us)
그 믿음
주님께서 우리 맘 속에 밝히시던
그 믿음이 우리를 살리게 하소서
Josh Groban
본명 : Joshua Winston Groban
출생 : 1981. 2.27. 미국 L.A.
어려서부터 팝, 록,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을 섭렵했던 조쉬 그로반은 학교에서 연기와 노래 수업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 자신은 스스로를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소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 특히 그의 음악 선생님은
그의 가수로서의 자질을 높이 평가했다.이윽고 1998년 학교 선생님은 평소 교분이 있던 데이빗 포스터에게 소개 했고,
포스터는 그에게 다짜고짜 캘리포니아 주지사 취임색 행사에서 노래를 부를 싱어가 한 명 필요하다면서
데모 테잎을 보내라고 했다.
('All I Ask Of You' 를 부른 테잎을 보냈다)
포스터에게 합격점을 받은 그로반은 예정대로 주지사 취임식 행사에서노래했고,학생답지 않은 대담함과 빼어난
가창력으로 격찬을 받았다.
이후 조쉬 그로반의 인생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한낱 평범한 학생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신인 가수가 된 것이다.
작곡과 편곡, 프로듀싱으로 무려 14개의 그래미상 수상 경력이 있는 팝계의 마에스트로 데이빗 포스터는 신인 발굴에도
뛰어난 안목을 지닌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코어스도 그가 발굴하여 길러낸 팀이다.
그는 대중적인 가능성보다는 음악적인 능력을 중시해 신인을 발탁하는데, 그런 면에서 조쉬 그로반은 누구보다도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우선 데이빗 포스터는 직접 강도 높은 음악 수업을 했다.
그러면서 착실히 무대 경험도 쌓았는데, 안드레 아가시 그랜드 슬램 달성 기념 공연에서는 엘튼 존, 스티비 원더 등
거물급 스타들과 공연했고,1999년에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셀린 디옹과 듀엣 무대를 갖기도 했다.
이어 헐리웃의 대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야심작 A.I' 에서 주제가를 부른 행운도 안은 것이다.
그를 발탁한 순간부터 음반 제작을 생각했던 포스터는 진통 끝에 드디어 데뷔 음반의 청사진을 완성하게 된다.
그 결과 그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데뷔 음반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팝페라 가수 혹은 팝클래시컬 크로스오버 가수로 분류될 조쉬 그로반의 데뷔반은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음반이다.
무명의 스무살 청년이 발표한 데뷔반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원숙하며 완벽하기 때문이다.
데이빗 포스터에 의해 치밀하게 만들어진 곡들은 신곡과 리메이크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로반의 풍부한 성량과
섬세한 창법이 잘 살아나도록 배려되어 있다.
음반의 포문을 여는 곡 'Alla Luce Del Sole' 는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에신선함이 더해진 크로스오버 넘버다.
이어지는 'Gira Con Me' 는 보다 이태리적인 오페라 아리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곡. 가요적인 선율에
섬세한 창법이 한번만 들어도 가슴을 뒤흔드는 매력이 있다.
첫 싱글로 커트된 'To Where You Are' 는 간절한 사랑을 노래한 곡.
예술적인 품격에 대중성을 겸비한 곡으로 음반 전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핫트랙이다.
이 음반에는 여러 스타들과의 듀엣곡도 수록되어 있다.
이미 샤롯 처치의 정규반에 삽입되어 소개되었던 그녀와의 듀엣곡 'The Prayer', 코어스의 안드레아 코아와 함께
입을 맞춘 'Canto Alla Vita, 릴리 하이든과 함께한 'Jesu, Joy of Man's Desiring' 등이 담겨 있는데,
어느 곡 하나 매혹적이지 않을것이 없다.
한편,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영화 시네마 천국의 테마곡인 'Cinema Paradiso' 와 돈 맥클린의 'Vincent' 도 그만의
감성으로 재현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2006년 KBS 드라마 '서울 1945'의 OST 'Giro Con Me'에서 부드럽고 성스런 팝페라 가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Celine Dion (셀린 디온)
1968년 3월 30일생이니 올해로 만 45세이고 직업은 가수이면서 작곡가, 배우, 사업가이다.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를 꼽는다면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라이어 캐리와 셀린 디온을 꼽을 것이다. 90년대의 시작과 더불어 소니 뮤직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90년대 최고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머라이어 캐리의 기록에 비하면 셀린 디온의 시작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현재 두 디바의 위치를 놓고 보면 결코 셀린 디온의 인기가 뒤쳐진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1968년 14명의 아이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음악적 천재성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퀘벡주에서 태어난 셀린 디온은 5살 때 샹송을 부르며 무대 데뷔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과 초기 Dion은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Céline Marie Claudette Dion
[셀린 마리 클로데 디옹]이다.
The youngest of 14 children born to Adhémar Dion and Thérèse Tanguay, both of French-Canadian
descent 1973 년 8 월에는 5살의 어린 디옹은 그녀의 오빠 미셸의 결혼식장에서 그녀의 첫 노래하는 모습이
공개 되었다.
그녀의 부모 작은 피아노 바에서 그녀의 형제 자매와 노래하며 디온은 연기자가 되는 꿈을 키워왔다.
1994년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가족과 내 고향을 떠나와서 그리워하지만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가진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녀가 12세 때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 자크와 공동으로 작곡한 그녀의 첫작품 "그것은 단지 꿈" "Ce n'était qu'
un rêve" ("It Was only a Dream")을 오빠 미셸이 매니저 르네 Angélil에 데모테이프를 보냈다.
Angélil는 디온의 목소리듣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았고, 그녀를 스타로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1981 년 그는 자신의 집을 저당잡히고 그녀의 첫 번째 앨범 La voix du bon Dieu ("The Voice of the Good God좋은 하나님의 음성")를 발표하여 성공하였고 그녀가 1982 일본 도쿄 야마하 세계 음악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금상을 받자 1982 Yamaha World Popular Song Festival in Tokyo 그의 인기는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83년 이후에도 디온은 펠릭스 상을 수상하는 등 계속 성공하였으나 그녀의 성공은 불어권에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메니저 르네는 디옹의 이미지 변신을 과감하게 계획하고 스포트라이트 뒤로 물러나 영어교육을 받고 치과수술 등 외관 개선에 주력하였다.
1989 년 시크릿 투어 콘서트 도중, 디온은 그녀의 목소리가 이상이 생겨 성대수술도 받았다.
그리고 12살이 되던 해 그녀는 데모 테잎을 만들어 퀘벡의 음반 기획자였던 르네 안젤릴에게 가져다 줬고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에 빠진 르네 안젤릴은 자신의 집까지 저당 잡히며 그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르네 안젤릴은 이후 26살 연하의 셀린 디온과 결혼한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불어권의 지역에서 넉넉하지 못한 음반 기획자의 후원 속에 활동을 시작한 그녀이기에 시작부터 큰 빛을 보지는 못했었다.
그런 그녀의 실력은 수 차례에 걸친 음악 페스티벌 수상으로 차츰 국제 무대에 떠오르게 된다.
82년 그년는 도쿄에서 열린 야마하 월드 송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83년 15세의 나이로
[D`Amour Ou D`Amite]를 발표해 7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캐나다인 최초로 프랑스 골든 레코드를
수상했고, 20세인 88년 유러비전 송 컨테스트에서 그랑프리로 입상하는 등 초기 그녀의 경력은 실력을 인정받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불어권에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못했던 듯하다.
세계시장 진출을 꿈끈 그녀는 영어가 필수임을 인식하고 영어공부에 전력을 기울여 마침내 부자연스럽지 않은
발음으로 영어권 시장 공략에 나서게 된다.
90년 발표된 첫번째 영어 앨범인 [Unison]은 캐나다에서의 대성공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 1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기록하게 되고 수록곡인 'Where Does My Heart Beat Now'는 빌보드에서 4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녀는 이 성공을 통해 미국내 최고의 대형 프로듀서인 David Foster와 인연을 맺게 된다.
첫 앨범의 성공을 발판으로 92년 그녀는 두번째 영어 앨범 [Celine Dion]을 발표한다. 앨범 내에 4곡이 빌보드 40위권에 올랐다. 그 이후, 셀린 디온의 음악적 성공은 말할 필요 없이 승승장구를 한다. 두번 연속 그래미상까지 거머쥔
그녀다.
하지만 그녀도 잠시 공백기가 길었던 시절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남편 르네 안젤릴의 후두암이다.
그녀는 병간호를 위해 음악 활동을 자제하고 인공수정으로 임신까지 성공하는 등 남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왔다. 2000년 말엽에 공식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한 셀린 디온.
그녀의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는 셀린 디온의 모습은 그때 무척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미국의 연예정보지 ‘피플’ 인터넷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그동안 인공 수정 등으로 수차례 임신을 시도해 온
셀린 디옹 부부가 6번의 인공 수정 끝에 쌍둥이 임신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2010년 5월 보도에 따르면 셀린 디옹은 그동안 뉴욕에 거주하며 한방 침 치료를 병행하는 등 임신을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 셀린 디옹은 임신 14주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매체를 통해 “어렵게 임신에 성공한 만큼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나길 바란다”면서 “한 번에 두 명의 아이를
갖게 돼 두배의 축복을 누리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셀린 디옹은 남편 르네 안젤릴 사이에 아들 르네 찰스 안젤릴(8살)을 두고 있다.
그 동안 명실상부한 공동 1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모두 셀린 디온의 밑으로 내려 앉고 말았으며
급기야 ‘셀린 디온 격파’를 외치며 함께 듀엣 곡을 내놓는 공동 대항전선을 펴기도 했다.
근래 셀린 디온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이보다 잘 말해주는 단서도 없을 것이다.
1998년 연말호에서 영국의 잡지 ‘Q’는 소니 뮤직의 통계를 빌어 “지난 30개월 동안 셀린 디온은 매 1.2초마다
한 장의 앨범을 팔았다”고 보도했다.
96년 발표한 앨범 < 너에게 빠져 (Falling into you) >가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2500만장, 97년 말에 나온 후속 앨범 < 사랑을 얘기합시다(Let`s talk about love) >가 2400만장이라는 경이적 판매고를 수립한 것을 두고 시간당 수치를 계산한 것이다.
‘1초당 한 장’의 파죽지세는 이후에도 변함없어 현재 두 앨범은 모두 3000만장을 돌파했으며 이어서 프랑스어 앨범과 히트곡 모음집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셀린 디온이 이처럼 가공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확실한 분석이다.
일례로 셀린 디온의 히트송 ‘이제 모두 나한테 되돌아오네요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를 들어보면 왜 때로 ‘질릴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지 알게 된다.
셀린 디온은 엄청난 보컬의 파괴력이 주무기이다.
쉬지도 않고 20곡을 내리 한결같이 높은 음으로 질러대는 놀라운
힘을 보유하고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다른 여가수들과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무대는 정적이고 우아한데 반해서 셀린 디온의 공연은 열띠고 힘이 넘친다.
공연장은 그래서 어떤 헤비메탈 그룹의 무대 못지 않은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한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감상하더라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이런 에너지와 파워 말고도 그녀를 당대 톱 가수로 부상시켜준 또 하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사 해석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결코 억지로 질러대지 않는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미리 짜놓은 적은 없다. 노래 부르기란 기본적으로 첫 키스나 첫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키스나 포옹할 때 미리 리허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치르는가?
” 마치 실제처럼 가사의 감정을 충분히 살리되 정해진 공식대로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셀린 디온은 철저히 백인 풍의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도 딴 가수와 차별화된다.
머라이어나 휘트니를 비롯해서 근래 디바들 노래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녹아있다.
하지만 셀린 디온은 그러한 공통분모를 배격하고 철저히 백인 스탠더드 팝을 구사한다.
여전히 흑인음악이 친근감이 덜 한 유럽의 기성세대 음악팬들이 이 때문에 셀린 디온에게 열광한다.
캐나다 퀘벡 태생인 그녀는 캐나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가수이기도 하다.
캐나다 음반산업협회는 올해 초 셀린 디온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국내와 국외에서 가장 음반을 많이 판 캐나다가수라고 공식 발표했다.
1999년 말 캐나다의 음반판매고는 9백만장으로 어떤 캐나다가수보다 많았으며 해외에서는 1억1천장을 넘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근래 최고인 샤니아 트웨인과 브라이언 아담스도 그녀에게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물론 특히 퀘벡과 같은 문화권인 프랑스도 셀린 디온을 ‘국민가수’ 또는 ‘국보급 가수’로 떠받든다.
프랑스 팬들에게 인기는 거의 절대적이어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이미 두 차례나 받았다.
셀린 디온도 이를 의식해 정기적으로 불어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셀린 디온의 지난 94년 말 결혼은 특급화제였다.
1968년 생으로 스물 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정확히 나이가 배인 52세의 매니저 레니 안젤리와 몬트리올 노틀담
성당에서 웨딩 마치를 거행했다.
어렵던 시절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가며 셀린의 음반작업을 주선한 매니저와 결혼하자 사람들은 사랑의 결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요즘 가수치고는 드물게 ‘의리형’ 인물이라고 셀린 디온을 높이 평가했다.
너무도 바쁜 스케줄로 가정생활에 여유가 없는 관계로 아직 레니와의 사이에 자식 소식은 없었다.
남편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더욱이 사람들은 언제 그녀가 아기를 가질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녈 인콰이어러’는 “셀린이 체외수정을 통해 현재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지만
셀린 디온 측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며 그 신문에 대해 2천만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셀린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임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들이다.
지난 91년 ‘지금 내 심장이 어디서 두근거리나요(Where does my heart beat now)’를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은
이래 무수한 히트퍼레이드를 펼치며 그녀는 ‘90년대의 가수’로 영광의 나날들을 보냈다.휴식 후 내후년에 신보가
나오게 되면 다시 광풍을 몰아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진형형이라 실감은 나지 않지만 분명 셀린 디온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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