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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Barclay James Harvest - Play to the World

 

 

 

 

Barclay James Harvest - Play to the World

 

 

 

 

 

 

Play to the World

 

 

 

 

You can make the day seem right
And make the darkness bright
That's what you do
Girl, don't hide your love away
You'll want it back some day
That's what they say

And, my friend
We're gonna make it right
And play to the world tonight
We'll play to the world

Time, what's to become of me?
What will the future see?
What will they say?

Life is like a passing dream
It's never what it seems to be
From day to day

And, my friend
We're gonna make it right
And play to the world tonight
We'll play to the world

 

 

)

 



 

 

BJH는 흔히 예언자로 비유된다.

성경의 구약성서에 보면 예언자는 '제 고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타지에서는 알아준다'는 구절이 나온다.

모국인 영국에서는 어떠한 명성과 부도 쌓지 못했지만 그 이외의 지역, 특히 독일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그룹이 'Barclay James Harvest'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그 어떤 아트록 그룹보다도 국내에 많은 앨범이 소개되기도 했다.
물론 'Polydor' 시절의 음반들만이 소개된 아쉬움은 있었지만...


60년대 초반, 영국의 록계는 비트 그룹의 성공으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주로 '리듬앤드 블루스 스탠다드'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65년 '랭커셔'에 있는

'Oldham Art Schoo'l에 다니던  'Stuart Wolstenholme'과 'John Lees'라는 두 청년이' Rock and rol'l 스타일의 'The Sorcerers'를 결성하고

66년에는 The Keepers로, 그 후 블루스 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해 'The Blues Keepers'로 재차 이름을 바꾼다.


한편, 'Les Holroyd'와 'Mel Pritchard'는 'Oldham'의 다른 밴드인 Heart & Soul & The Wicked에서 활동하고 있던 오랜 친구 사이었다.

 

그들은 어느날 'The Blues Keepers'의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되는데 당시 'Heart & Soul & The Wicked'의 리드 기타리스트가 탈퇴한 상태였다.

그들은 'John Lees'에게 다가가 그 공백을 메워줄 것을 제안했고 죤과 울리는 자신들의 그룹명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 총 6명의 새로운 라인업으로 구성된

The Blues Keepers를 탄생 시킨다.


이 그룹은 주로 라이브를 위주로 했다. 이 라인업은 출발부터 약간 불안해서 리드싱어 였던  'Rob Buckely'가 교사가 되기위해 활동을 중단했고, 결국 오래지 않아 그룹은 4인조로 줄어들었다.
이 때가 66년으로 이들은 어떤 음반도 제작하지 않았지만, 음악은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실질적인 'Barclay James Harvest'가 탄생하는 것이다.


멤버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John Lees(기타, 보컬), Stuart Wooly Wolstenholme(키보드,보컬), Les Holroyd(베이스, 보컬), Mel Pritchard(드럼).

 

이들은 66년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줄기차게 앨범을 발표해 오지만 항상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Barclay James Harvest'에 대한 혹평의 단골 메뉴는 그들을 'Moody Blues'와 비교하면서 'Moody Blues'의 아류쯤으로 치부하는 것이었는데  멤버들은 늘 그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래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리더 'John Lees'는 이에 대한 복수극(?)으로 Moody Blues의 히트곡 'Nights In White Satin'을 철저히 해부해서 기본 코드만 남겨 둔 채 완전히 다른 곡을 만들어 낸다 곡의 제목마저도 어느 평론가의 혹평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곡은 그들의 가장 큰 히트곡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바로 'Poor Man's Moody Blues' 이다...

 

77년에 발표되어 전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한 'Poor Man's Moody Blues' 덕분에 이들에겐 더 이상 '무디 블루스' 의 아류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기쁨도 잠시 이들에겐 또다른 시련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 79년 6월 독일의 로렐라이에서의 콘서트를 시작으로 도르트문트, 베를린에서 열린 콘서트는 Whitesnake, The Police, Dire Straits등의 인기를 압도했으며, Munich(뮌헨)에서의 공연은 그 클라이막스였다. 그러나 이 공연이 4인조 BJH의 끝이 될줄이야!

이러한 성공의 대가는 너무 컸다. 키보디스트 Wooly가 그룹 탈퇴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현재까지 그의 탈퇴 이유가 명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후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성공에 대한 부담감, 건강상의 이유로 추측된다.


이 결정은 BJH가 새로운 앨범 제작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모든 멤버들은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Wooly는 9월에 공식적으로 탈퇴를 선언한다.

<Wooly의 탈퇴 = BJH의 해체>라는 등식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비록 그가 'John'이나 'Les'보다 적은 수의 곡을 만들기는 했지만, BJH적인 사운드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제 겨우 가을이 되어 추수(Harvest)하게될 벼를 눈앞에 두고 그룹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의 손실은 남은 멤버들에게는 큰 타격 이었다. 그러나 BJH가 택한 방법은 그룹을 해체시키는 것도, 그를 대신할 새로운 멤버를 찾는것도 아니었다.

 

팬들과 Wooly모두를 실망시키지 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세션 뮤지션을 쓰면서 트리오로 음악 활동을 계속하기로 결정하고 명곡 <Play to the World>가 담겨있는 앨범 "Eyes of the Universe"를 79년 말에 발표한다.

 

Les가 키보드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Make Honey'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Kevin McAlea'가 도와준다.

Wooly의 특징인 복잡함과 섬세함이 결여된 록적 앨범이었지만 흥행은 잘되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커다란 히트를 기록한다.


한편, Wooly는 1년 후 솔로앨범 "Maestoso"를 발표하고 'Judie Tzuke'의 짧은 투어에 BJH에 걸맞지 않는 모습으로 참여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귀머거리가 되었고 현재는 음악계에서 완전히 은퇴해 그의 농장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pmuze/70094560049

 

 

 

 

 

 

 

1966년 결성된 Oldham, England 출신의 Progressive Rock 밴드.

 

197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로 보컬리스트인 John Lees, 베이시스트인 Les Holroyd, 키보디스트인 Woolly Wolstenholme, 그리고 드러머인 Mel Pritchard로 구성된 밴드로 40년이 넘게 우리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2004년 심장 마비로 드러머인 Mel Pritchard의 죽음으로 현재 3인조로 활동 중이다.
2008년 까지 총 16장의 공식 Studio Albums을 출시하고 있다.

 

 

 

 

 

Studio Albums  

  •  Barclay James Harvest, 1970

  • Once Again, 1971

  • Baby James Harvest, 1972

  • Everyone Is Everybody Else, 1974

  • Time Honoured Ghosts, 1975

  • Octoberon, 1976

  • Gone to Earth, 1977

  • XII, 1978

  • Eyes of the Universe, 1979

  • Turn of the Tide, 1981

  • Ring of Changes, 1983

  • Victims of Circumstance, 1984

  • Face to Face, 1987

  • Welcome to the Show, 1990

  • Caught in the Light, 1993

  • River of Dream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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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곡은 1979년 발표한 그 들의 9집 앨범 "Eyes of the Universe"에 수록된 SIDE B4번 마지막 트랙 곡.

    아름다운 키보드 선율과 서정적인 보컬이 인상적인 Les Holroyd의 곡으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Line-up

  • John Lees - vocals, guitars

  • Les Holroyd - bass, guitars, keyboards, vocals

  • Stuart "Woolly" Wolstenholme - vocals, mellotron, keyboards, guitars

  • Mel Pritchard - drums, percussion

     

     

    출처 : http://movedsong.blog.me/800725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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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pertramp, Genesis와 함께 영국의 3대 Flash Rock의 선두 주자였던 그룹 Barclay James Harvest는 1967년

     랭카셔 지방의 올드햄에서 결성되었으며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룹이 결성된지 10년이 지난 1977년부터였다.

     

    그들의 사운드는 다소 무겁고 중후하며 앨범 중심의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으나 오랜 역사를 통해 멤버 교체가 거의 없는 단결성을 보이며 그러한 모습을 음악에 담아낸 그룹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Poor Man's Moody Blues 라는 명곡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68년 첫번째 싱글 Early Morning/Mr. Sunshine 으로 데뷔했으며, 1970년 데뷔앨범인 Barclay James Harvest 를 발표하였다.

     

    또한 발매의 때를 맞추어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 출신의 로버트 갓프로이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뉴 심포니아' 와

    영국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1971년 두번째앨범 once Again 을 발매했고 그해 연말에는 세번째 앨범 Other Dhort Stories 를 내놓았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고, 네번째 앨범인 Baby James Harvest 는 이들이 처음으로 제작한 앨범으로 영국의 대학가를

     중심으로 작은 인기를 얻었다.

     

    1973년 실존찰학적 내용을 담은 Everyone Is Everyboby Else 와 공연실황을 담은 Barclay James Harvest Live

     두장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 싱글 Mockingbird , Medicine 등은 처음으로 이들을 영국차트에 진입시켰다.75년

     Time Honoured Ghosts , 76년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앨범 Octoberon 을 발매하는등 꾸준한 음반작업을 했다.

     

    77년 앨범 Gone To Earth 를 발표하여 처음으로 유럽전역에서 성공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이 앨범에서

     Poor Man's Moody Blues 가 대히트하였다.

     

    이외에도 Love Is Like A Violin 이 사랑을 받았다.

     1978년 두번째 라이브 앨범인 Live Tapes 와 스튜디오 앨범인 XII를 발표했다.

     1979년 Eyes Of The Universe 를 발표 독일에서는 50만장에 달하는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1980년8월에 서독의 철의장벽 앞에서 19만여명의 청중을모아놓고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BJH는 60년대 중반 올드햄(Oldham)을 근거지로 했던 R&B밴드 블루스 키퍼스(The Blues Keepers)와 하트 앤 소울 앤 더 위키즈(Heart And Soul And The Wickeds)를 모체로 탄생했던 밴드다.

    블루스 키퍼스는 곧 하트 앤 소울 앤 위키드를 흡수하였고 이 블루스 키퍼스는 6인조로 활동을 하다가 66년에 접어들어

     4인조 밴드가 된다.

     

    이들은 뮤직비지니스 쪽에서 일을 하던 존 크로우더(John Crowther)를 매니저로 맞아들인 후 밴드명을

    ‘바클리 제임스 하베스트'로 바꾼다.


    BJH 최초의 싱글 [Early Morning]은 아름다운 하모니와 청명감으로 인하여 공중파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내긴 했지만

    판매고는 신통치 않았다.

     

    이어 등장했던 [Brother Thrush] 역시 상업성 면에서는 [Early Morning]과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음악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후 BJH는 밴드의 사운드메이킹에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로버트 존 고드프리(Robert John Godfrey)를

     만난다.

    고드프리는 클래식을 전공한 학생들을 규합, ‘바클리 제임스 하베스트 오케스트라

    (The Barclay James Harvest Orchestra)'를 결성하였고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BJH의 라이브와 레코딩 작업시

     전폭적인 서포팅에 나선다.

    포크를 기반으로 한 전원적인 서정성과 클래시컬한 볼륨감 갖추게 된 BJH는 ‘EMI' 산하레이블로서 진보적인 성향을 띤

     ‘Harvest'와 계약을 체결했고 에비 로드(Abbey Road)스튜디오에서 데뷔앨범 레코딩작업을 마친다.

     

     BJH는 데뷔작을 통해 밴드가 지닌 기본적인 하모니에 오케스트라 편곡과 록적인 필을 가미, 음악적 완성도를 한 단계] 높이는데 성공했으며 'Dark Now My Sky', 'Taking Some Time on', 'Mother Dear' 등과 같은 양질의 작품들을

     양산해냈다.

     

    이어진 앨범 [Once Again]은 더욱 강력해졌는데, 여기에는 초기 BJH의 최대걸작인 'Mocking Bird'를 비롯, 섬세하고

     아름다운 곡들이 가득 실려있었다.
    이 앨범은 BJH의 초기를 대표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아냈고 후에 쿼드로포닉(quadrophonic)버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Once Again]은 BJH를 진일보하게 했으며 많은 추종세력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세 번째 앨범

    [Barclay James Harvest And Other Short Stories]는 전작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앨범에는

    'Medicine Man'과 같은 특출한 명곡과 함께 'Song With No Meaning', 'After The Day' 등이 실려있었다.

     

     앨범의 판매고가 부진하자 BJH는 곧 재정곤란에 빠지게 되는데 오케스트라를 유지, 관리할 만큼의 고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고 유럽투어의 말미에 가서는 콘서트 프로모터에게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악기를 압수 당하기도 했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프로듀서도 없이 급조했던 앨범 [Baby James Harvest]는 BJH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졸작이란 혹평을 받았다.

     평론에서의 비난과 바닥을 긴 판매고로 인하여 결국 BJH는 저가 컴필레이션 앨범 [Early Morning onwards]가

     발매되기도 전에 ‘EMI'로부터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게되었고 그들의 매니지먼트와도 결별한다.


     

    BJH의 초기레코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던 [Early Morning onwards]를 끝으로 BJH는 ‘Polydor'와 새로운

    레코딩계약을 체결한다.

    또한 오케스트라를 유지할 여유가 없게 되면서 BJH는 자신들의 악기만으로 오케스트라 편곡을 해결해나간다.

     

    이를 계기로 BJH는 음악적 전환기를 맞이하는데 포크의 서정성과 록의 강렬함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어레인지한 오케스트레이션 효과 등이 혼합된 사운드메이킹으로 클래시컬 프로그레시브록 영역에서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사운드의 변화를 안고 발매한 ‘Polydor'에서의 첫 번째 앨범 [Everyone Is Every-body Else]는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명곡 'Child Of The Universe'를 오프닝넘버로 수록했던 이 앨범을 통해 독특한 사운드를 완성한 BJH는 그것을

    곧바로 라이브무대로 옮겼으며 74년에는 더블앨범세트로 그들 최초의 라이브앨범 [Barclay James Harvest Live]를

     공개한다.

    이 앨범은 BJH 최초의 라이브앨범일 뿐만 아니라 BJH의 오케스트라시대를 마감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이때부터 BJH는 보다 대중화된 밴드로 바뀌어 갔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로듀서 엘리엇 메이즈(Elliott Maze)와 팀을 이뤄 차기작 [Time Honored Ghosts]를 공개했고 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낸다.

    한편, 바클리 제임스 하베스트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로버트 존 고드프리는 74년 경에 ‘Charisma'레이블로부터 솔로앨범 [Fall Of Hyperion]를 공개했다.

     

    70년에 ‘Harvest'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 [Picnic]에는 BJH의 'Mother Dear'가 수록되어 있으며 ‘Harvest'의

     또 다른 컴필레이션인 [Bag]에는 'After The Day'가 실리기도 했다.

     

    BJH의 존 리스는 70년대 중반에 두 장의 싱글을 발매했고 스튜어트 볼스텐홀름은 80년에 그의 솔로앨범 [Maestoso]를 ‘Polydor'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출처 : http://rima58.blog.me/100034064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