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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Canned Heat -Evil Woman외

 

 


    

 

 

 

Tracks:


01. Evil Woman
02. My Crime
03. on The Road Again
04. World In A Jug
05. Turpentine Moan


06. Whiskey Headed Woman No.2
07. Amphetamine Annie
08. An Owl Song
09. Marie Laveau
10. Fried Hockey Boogie

 

 

 

 

 

 

 

 

 

재즈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지만 분명 독자적인 역사와 형식을 갖는 블루스는 1950년대 들어와서야 재즈와 분리되어

 본연의 평가를 받게 되었다.

 

블루스는 흑인의 민족성이 기원이 되어 억압과 차별에 대한 분노, 자아의 표출 등을

나타내었다. 블루스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1920년대를 시작으로 점차 리듬 앤 블루스, 록 블루스 등의 여러 다른 양상의

 스타일이 생겨났다.

 Prestige Raw Blues 시리즈에는 블루스 초창기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블루스 거장들이 모두 모여있다.


 

 

블루스 관련 번역자료

 

저명하고 신뢰할만한 블루스 스타였던 B.B. King과 Albert King은 어느 정도 혜택을 받은 입장이었는데 Fillmore East와 West 같은 곳에서 연주하고 그곳에서 앨범을 레코딩할 수 있었다. John Lee Hooker 역시 보다 많은 백인 청중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대부분 그가 블루스의 창조자라는 환상 덕택이기도 했다 -- Hooker는 1917년 태어났고, 항상 좀 늙어 보였는데, Hooker는 Muddy Waters보다 더 목구멍을 쓰는 소리 Guttural를 이용하여 노래를 불렀고, 백인 젊은이들에겐 Hooker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시기의 델타 블루스를 연주하는 것처럼 들렸다 ; 그가 백인 블루스 밴드 Canned Heat와 함께 했다는 것 역시 손해나는 일은 아니었다. 몇몇 시골 블루스맨들은 여전히 레코딩 활동을 하기는 했다 -- Capitol Records는 1969년 Mississippi Fred McDowell의 일렉트릭 블루스 앨범을 레코딩하기로 했는데, Rolling Stones가 Mississippi Fred McDowell의 “You Gotta Move”를 레코딩한 것을 시의적절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블루스를 레코딩한 레이블 대부분은 Biograph같은 소규모 레이블들이었고, 레코딩한 것은 대부분 어쿠스틱 블루스였다.

2차대전 이후 활동한 메이저 블루스 레이블 중에서 오직 Chess Records만이 1960년대 말에도 활동했지만, Chess는 청취자를 늘릴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Leonard Chess는 락앤롤 시대 초반에 Chuck Berry와 Bo Diddley와 계약할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유행에 2년 뒤쳐졌다 -- 예컨대 Muddy Waters의 <FOLKSINGER>앨범은 1963년보다는 1961년에 더 어울리며 1961에 더 성공했을 것이다 ; 그리고 Leonard Chess는 Muddy Waters와 Howlin’ Wolf의 50년대 후반 앨범을 락앤롤 쪽으로 가게 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쳤고, 60년대 중반 Rolling Stones 같은 밴드들이 이들의 노래를 부를 때, 이들을 백인 청중에게 내세울 수 있는 기회도 놓쳤다. 대신 Leonard Chess는 허송세월하고는 자신의 아들이었던 Marshall Chess가 Muddy Waters와 Howlin’ Wolf
의 곡을 사이키델릭하게 꾸미고 원래 레코드를 제대로 재현하지도 않는 “Super Blues” 잼 앨범 시리즈나 내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그의 잘못이 무엇이건간에, Leonard Chess는 Chess Record를 이끄는 힘이었고, 1969년 심장마비로 그가 죽자 이 회사를 지속해야할 이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Muddy Waters, Howlin’ Wolf, Chuck Berry를 포함해 당시 Chess에 남아 있던 뮤지션들의 앨범을 내놓는 매체 역할 외에는 말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Muddy Waters의 싱글은 별로 의미가 없었지만 (사실 Chess Records는 1966년 Koko Taylor의 싱글 “Wang Dang Doodle”을 제외하곤 R&B 차트에 히트곡을 올려 놓지 못했다) Muddy Waters는 Chess에서 1975년 나온 <THE Waters Album Woodstock Muddy>을 포함해 훌륭한 앨범들을 계속 내놓았다. Howlin’ Wolf는 1971년 <BACK Wolf Door>가 나올 때까진 새로운 곡을 담은 진정한 첫번째 앨범을 내놓지 않았지만, 마침내 <BACK Wolf Door>가 나왔을 때, <BACK Wolf Door>는 진정한 걸작이었다.

당시 ABC-Paramount에 있던 B.B.King은 수십만의 백인 팬을 더 끌어들인 동시에 흑인 팬 다수를 그대로 유지한 유일한 베테랑 전후 블루스맨이었다. 그의 앨범 판매는 수직 상승했고, 그의 음악은 보다 능수능란해졌다 -- 그러나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흐름을 추가하기 시작하면서 B.B.King의 음악이 갖고 있던 신선함과 자연스러움은 사라져 갔다. 70세가 되던 1996년, B.B.King은 자신의 이름을 블루스 클럽들(Memphis에서 아주 성업 중이던 클럽을 포함해서)을 운영하는 그룹에게 팔았는데, 이는 Muddy Waters와 Howlin’ Wolf로서는 그저 꿈이나 꿀 수 있었던 사업 전략이었다. 그 해에 B.B.King은 Kenney Center에 헌액되었고, Atlanta 올림픽에서 연주했고, Memphis에 10피트 높이의 B.B.King 조각(그가 아끼는 Lucille 기타와 함께)이 Elvis Presley 조각 바로 옆에 세워졌다. 그리고 U2
같은 밴드와 레코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레코딩 활동은 음악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명예와 재산 모두 놓쳐 버린 뮤지션들도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듀서이자 학자인 Norman Dayron은 Muddy Waters의 가장 성공적인 블루스-락 퓨젼 앨범 <FATHERS and Sons>에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Robert Knighthawk가 Chicago Maxwell Street Market에서 라이브로 연주한 것을 녹음한 테이프를 -- 최소한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설적인 블루스 연주의 현장이다 -- 내놓았고 이는 Nighthawk 앨범 중 가장 많은 갈채를 받은 앨범이 되었다. 유사하게 오랜 기간 잊혀져 있던 Arthur "Big Boy" Crudup은 꽤 비싼 공연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의 인생 끝무렵에 새로운 레코딩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Newport Festival에서 Muddy Waters, Big Mama Thornton
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당시 Newport Festival은 Lincoln Center에서 열렸고, Avery Fisher Hall에서 Arthur "Big Boy" Crudup의 "That's All Right"의 라이브 레코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그가 사기당하고 빼앗겨 온 것을 보상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사람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만들고 그가 어떻게 사기당하고 빼앗겨 왔는지를 기억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블루스 레코드는 상당히 풍성했다. 그러나 이 앨범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 이 시대에 나온 컴필레이션 앨범에 담긴 음악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보물들은 그것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예컨대 Muddy Waters의 <RARE and Unissued>는 그의 죽은 그 다음해에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은 40년대 후반 그리고 50년대 초기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Last Time I Fool Around with You"라는 제목의 트랙이 수록되어있는데 이 트랙에는 기타 두 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인터플레이가 나온다. 세션 크레딧을 보면 이 노래가 이전 세대의 시카고 블루스 스타였던 Tampa Red와 Muddy Waters의 아마도 유일한 만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앨범에 수록된 트랙에는 Muddy Waters가 Little Walter Jacobs와 함께 한 초기 작품이 있고 60년대 시절 곡을 재출시한 것에는 Buddy Guy와 함께 한 것도 수록되어 있는데, Buddy Guy는 Muddy Waters의 후계자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CD로 이런 레코딩들을 제대로 감상하는 일이란 한번에 수많은 앨범에 있는 한 곡에 집중하고 이 곡들 각각을, 각 곡이 나온 문맥에 따라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곡들이 어떤 방식으로 한데 묶였는지가 아니라.

1970년대 즈음에 블루스는 대중 음악이라는 대지에 확고히 자리잡은 분야가 되었다 -- Led Zeppelin, Rolling Stones, Allman Brothers, Eric Clapton, Ten Years After, Marshall Tucker Band, Lynyrd Skynyrd와 많은 다른 유력한 밴드들, 그리고 이들의 카피 밴드들은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했으며, 심지어 Doors조차도 Howlin’ Wolf의 레파토리를 연주하고 노래했다. Eric Clapton과 Rolling Stones 같은 몇 몇 밴드들은 Muddy Waters 같은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와 함께 공연 여행을 하여 이들에게 보답하려 했다. 그리고 Johny Winter는 Blue Sky레이블에서 70년대 후반까지 일련의 음반을 통해 엄청난 갈채를 받고 새로운 블루스 세대에 자신의 명성을 확립했는데, Blue Sky 레이블에서 내놓은 자신의 두번째 앨범 전체를 Muddy Waters
에게 바치기까지 했다.

이와 동시에 Yazoo와 Arhoolie 같은 블루스 전문 레이블은 처음으로 이전 세대에 속하는 컨트리 블루스 뮤지션들의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Yazoo는 Charlie Patton 같은 뮤지션들의 유명한 78회전 레코딩을 되살려내는데 뛰어나서, (사실 수십 년전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최초로 이런 뮤지션들의 음악을 LP에 담았다. 반면 Arhoolie는 당시 살아 있던 컨트리 블루스맨의 곡을 레코딩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 당시 잊혀졌던 Li'l Son Jackson, Mance Lipscomb
그리고 다른 농촌 연주자들이 이런 저런 레이블에서 몇 년만의 첫 앨범 또는 수십년 만의 첫 앨범, 심지어는 평생의 첫 앨범(이자 어떤 경우엔 그들의 최고의 앨범)을 내놓았다.

 

 

 

 



바다 건너 유럽에선 -- 미국에선 오직 클래식만이 존경을 받았지만 유럽에선 미국 블루스 음악 역시 (재즈나 락과 함께) 존경을 받았다 -- 더 많은 재발매가 이루어졌다. 대중의 관심이 확립되었을 뿐 아니라, 유럽의 저작권법이 2차대전 이전의 미국 블루스가 보다 대중적으로 보급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사실은 재발매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에 기반한 Document Records, Wolf Records, RST Records은 블루스 골수 팬들을 이용해서 아주 놀라운 재발매 사업을 벌여나갔는데, 이런 성과에는 Leadbelly의 스튜디오 레코딩 전집, 1927년부터 1953년에 이르는 Tampa Red 스튜디오 레코딩 전집(Document Records에서 13 cd로 나왔다), Scrapper Blackwell, Papa Charlie Jackson, Frank Stokes and Dan Sane, Furry Lewis, Curley Weaver
그리고 다른 많은 뮤지션들의 스튜디오 레코딩 전집이 포함되어 있다. 더나아가 RST와 Document Records의 접근 방식은 각 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서 각 곡을 동일한 뮤지션의 다른 레코딩과 맺는 관계에 따라 올바른 역사적 문맥 속에 자리잡게 해준다.


메이저 레이블이 자신들의 역사적인 블루스 앨범을 재발매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들어서였을 뿐이다. Sony Music은 Columbia, Okeh, ARC 레이블의 후계자로서 자신들의 legacy series의 일환으로 Blind Willie McTell, Leadbelly, Lonnie Johnson, Tampa Red의 초기 작품 등 놓쳐서는 안될 블루스 컬렉션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MCA는 Chess 레이블과 존경받을만한 훌륭한 작업을 벌여나갔다. 현재 Chess는 MCA가 소유하고 있는데, MCA는 Chess 레이블 역사상 중요한 거의 모든 앨범을 재발매하고 있다. 한편 RCA/BMG는 Arthur Crudup와 Leadbelly의 작품을 재발매하는 것을 시작한 뒤, 1990년대 초반 블루스 앨범 재발매를 거의 포기해 버리고 이를 유럽 레코드사들의 재발매 사업과 해적 레이블에게 넘겨 버려 이들이 블루스 재발매라는 광맥을 캐도록 했다.

전체 재발매 사업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특히 한 뮤지션이 수십년 혹은 여러 세대에 걸쳐 레코딩한 경우엔 정말 그렇다. 예컨대 Big Joe Williams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레코딩했는데, 그가 상당히 긴 기간 활동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 났고 같은 노래를 여러 차례 재레코딩한 사실은 청취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의 Wolf Records 레이블은 Big Joe Williams의 1920년대와 1930년대 활동에 대한 아주 훌륭한 컬렉션을 내놓았다. Muddy Waters의 곡은 대부분 Chess 레이블에서 나왔고, MCA를 통해 재발매되었는데, 이밖에 그의 마지막 활동 시기의 레코딩은 Columbia 또는 Sony Legacy에서 나왔다 -- 그러나 Delmark 레이블에서 나온 것도 있는데(여기에는 “Rollin’ and Tumblin’”의 첫번째 레코딩이 포함된다) 이것은 1940년대 말의 레코딩으로 다른 레이블에선 별로 들어 볼 수 없는 곡조가 담겨 있다. Howlin’ Wolf
는 1954년부터 1974년까지 Chess Records 소속이었는데 Chess 시절 이전에는 Sun과 Modern Records에서 활동했는데, Sun 시절의 레코딩은 Chess 시절에 가깝다.

최근 독일의 Bear Family 레이블은 Sun Records 시절의 레코딩을 수록한 아주 값진 두 장짜리 CD를 내놓았는데, MCA/Chess에선 이 중 몇 곡만이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Flair/Virgin은 Modern Records시절의 앨범을 재출시했다. 이 앨범들은 다른 앨범들과 겹치지만 Wolf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소장가치가 있다. Leadbelly
역시 상당히 많은 CD가 겹치는 아티스트이다 -- 물론 RCA에서 내놓은 Golden Gate Quartet와 협연 레코딩 역시 뛰어난 부록이며 Document Rcords의 Complete Leadbelly의 Volume Four는 Leadbelly 최후의 레코딩을 수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Smithsonian/Folkways에서 출시한 것과 Columbia에서 나온 두 장짜리 CD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96년 블루스를 탐구해 볼 수 있는 영역은 엄청나게 넓어졌다 -- Willie Dixon의 "Down in the Bottom"을 1964년 Rolling Stones가 Chess Studio에서 레코딩한 것을(꽤 흔한 부트렉에 수록되어 있다) 1961년 Howlin’ Wolf의 레코딩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Buddy Moss의 "Hey Lawdy Mama", Blind Boy Fuller의 "Boots and Shoes"을 포함한 Willie Dixon의 곡들의 원천을 193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아니면 Willie Dixon의 “Spoonful”을 Cream이 연주한 것을 들어보고 Wolf의 레코딩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고 더 소급하여 1925년 Papa Charlie Jackson의 “All I Want Is a Spoonful”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라. 아니면 Beatles의 “Matchbox” 같은 곡으로 시작해서 원작곡자인 Carl Perkins의 1958년 레코딩을 들어보고 다음엔 Leadbelly의 "Packing Trunk Blues"와 "Match Box Blues" 레코딩을 들어보고(이 곡들이 Carl Perkins의 원천이었다) 다음엔 Blind Lemon Jefferson의 "Match Box Blues"로 거슬러 올라가보라.(Leadbelly
는 이 곡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1996년의 청취자들은 Allman Brothers Band 버전의 “Statesboro Blues”는 알지만, Blind Willie McTell의 원곡은 모를 것이다. Allman Brothers Band, Led Zeppelin, Lynyrd Skynyrd, 내지는 다른 그룹들의 팬들이 자신이 즐겨 듣는 곡에 대해 얼마나 알며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들은 Jimmy Page의 멋진 기타 솔로를 듣지만, 그의 곡이나 리프가 Willie Dixon이 작곡한 곡이나 Muddy Waters의 레코드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원주 : 특히 Led Zeppelin은 Willie Dixon부터 故 Ritchie Valens의 출판권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표절 혐의로 고소당해 왔다) 그리고 이들은 70 나이에도 Fretboard 위에서 놀리는 손가락 놀림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압도하는 Mance Lipscomb같은 연주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그래도 학자들과 진지한 청취자들은 블루스 레코드가 바로 저기에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이다. Led Zeppelin
팬들 가운데 블루스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라도.

Muddy Waters는 Johny Winter와 Eric Clapton, Rollin’ Stones의 도움을 얻어 1983년 그가 죽기 전까지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Willie Dixon
은 블루스 왕국의 최고 배테랑 대사로서 1992년 그가 죽기 직전까지 (대통령, 판사들, 상원의원들을 포함한)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연주했고, 사람들에게 블루스의 기원과 역사가 무엇인지 일깨워주었다.

오늘날 2차대전 이후 활동한 거의 모든 블루스 스타들이 남긴 유산은 그들의 레코딩에 남아 있다. 2001년 죽기 전, John Lee Hooker는 90년대 상당 기간동안 계속 활동했고, Keith Richards 같은 락 스타들과 정기적으로 레코딩했다. B.B.King과 Buddy Guy 같은 몇 몇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레코딩을 하고 있으며 레코딩과 공연을 통해 계속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Jimmy Rogers나 Hubert Sumlin’(Howlin’ Wolf
의 가장 유명한 리드 기타리스트) 같은 전직 Chess 뮤지션들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블루스 음악은 저기 CD에 담겨 있다. 이전 어떤 시기보다 더 많은 블루스 음반을 살 수 있고 매일매일 더 많은 블루스 음반이 나오고 있다. 이제 여기에 있는 비밀이란 이런 것이다.(역주 : 블루스를 어떻게 들어야할까?) 블루스를 연주한 사람들이 청중에게 다가갔던 방식대로 들어보고 발견하는 것 : 여러 곡들을 모은 앨범이 아니라, 각 곡과 그리고 아마도 뒷면에 있을 동료 연주자를 따라, 그리고 그들이 연주했던 순간들을 따라 -- Muddy Waters와 Tampa Red 같은 기타의 전설이 주고받은 듀엣 연주의 순간, 또는 Blind Arthur Blake와 Papa Charlie Jackson같은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고 기록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2차대전 이전의 연주자들이 흠집이 나 있는 78회전 레코드에서 함께 연주하고 노래했던 순간들을 따라, Howlin’ Wolf가 Memphis에서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블루스 사운드를 창조했던 순간들을 따라 -- 이 모든 것들을 맛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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