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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Elton Joh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Elton Joh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What I got to do to make you love me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날 사랑할까요

What I got to do to make you care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까요

 

 

What do I do when lightning strikes me
번개가 치고 내가 깨어났을때

And I wake to find that you're not there

당신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하죠



What do I do to make you want me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날 원할까요

What I got to do to be heard

당신이 내 말을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What do I say when it's all over
모든게 끝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하죠

And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미안하단 말은 가장 어려운 말 같아요


It's sad, so sad슬프죠, 정말 슬퍼요
It's a sad, sad situation

너무 슬픈 상황이예요

 

 

And it's getting more and more absurd
더 불합리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죠

It's sad, so sad

슬퍼요, 너무 슬퍼요

 

 

Why can't we talk it over
왜 우리는 더이상 얘기 할수 없는건가요

Oh it seems to me
That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오 미안하단 말은 가장 어려운 것 같군요

 

 

What do I do to make you want me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나를 원하게 될까요
What I got to do to be heard

당신이 내 말을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What do I say when it's all over
모든게 끝났을때 난 무슨 말을 해야할까요

And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미안하단 말은 가장 어려운 말인것 같아요


 


It's sad, so sad

슬퍼요, 너무 슬퍼요
It's a sad, sad situation

너무 슬픈 상황이에요


 

And it's getting more and more absurd
더 불합리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어요

It's sad, so sad

슬프죠, 너무 슬퍼요

 

 

Why can't we talk it over

왜 우리는 더이상 얘기 할수 없는거죠
Oh it seems to me
That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미안하단 말은 가장 어려운 말 같군요

 



What do I do to make you love me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나를 사랑할까요
What I got to do to be heard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내말을 들어줄까요

 

 

What do I do when lightning strikes me
번개가 치고 당신이 없으면 난 어떻게 해야하죠

What have I got to do

난 어떻게 해야하죠


 

What have I got to do
어떻게 해야하죠

Whe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미안하단 말은 가장 어려운 말 같아요

 

 

 

 



 

 

 

 

 

엘튼 존은 1947년 3월 25일 레지날드 드와이트(Reginald Dwight)라는 이름으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으나 자식이 은행가가 되기를 바란 아버지의 반대로 늘 마찰을 겪었다.

어머니의 이해와 관심 그리고 후원으로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나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Lewis) 등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11살에 입학했으나 대중음악인의 길을 걷고자 졸업을앞두고 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후 블루스로지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음악 판에 뛰어든다.

보컬리스트 엘튼 딘(Elton Dean)과 섹스폰 주자 존 볼드리(John Baldry)의 이름에서 예명을 가져오고.그는 작사가

버니 토핀(Bernie Taupin)을 만나 68년 솔로로 나서 70년 'Your Song'을 발표해 미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다.

 

 71년의 [Tumbleweed Connetion] 앨범과72년의 [Honky Chateau]가 빅 히트해 비틀즈 이후 4개의 앨범을

동시에 Top 10에 랭크 시킨최초의 아티스트로 기록되기도 했다.

1977년 버니 토핀과 결별하기까지 'Goodbye Yellow Brick Road', 'Rocket Man', 'The Bitch Is Back'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Crocodile Rock'
등 23곡의 Top 40 히트곡과 15곡의 Top 10 그리고 5곡의 No. 1 히트곡을 기록했다.


인 스테이지 매너와 화려한 분장 및 의상의 라이브 공연으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79년'구 소련에서 순회공연을 한 최초의 서방국가 가수'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이후로는 성인 취향의 팝넘버들을

추구했으나 4년간 힘겹게 이어왔던 결혼생활의 파국, 동성연애 선언,알코올 중독, 스트레스 성 다식증에 시달리면서

아티스트로서 치명적인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1994년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언 킹(Lion King)>의 사운드 트랙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로
아카데미상과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또 한 번의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다이아나 황태자비를추모하는 Candle In The Wind'는 그의 경력 통산 세 번째로 리메이크 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며칠 전에 올린 70년대 대표 히트 팝송 모음, 80년대 대표 히트 팝송 모음, 80〜90년대 대표 히트 팝송 모음에

엘튼 존의 곡의 한 곡도 들어 있지 않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일단 그의 약력과 영화

 <라이언 킹>의 주제곡 2곡만 먼저 올려둔다.

 

 

  1947년 3월 25일에 영국의 미들섹스주 피너에서 태어난 엘튼 존(Elton John)은 전형적인 영국의 중류 가정에서

레지낼드 케네스 드와이트란 이름으로 성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이던 엘튼 존은 4살 때부터

 피아노 수업을 받으면서 재능을 키워 나갔다. 후에 런던의 로얄 아카데미 오브 뮤직 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클래식을 공부하던 엘튼 존은 뛰어난 성적을 보여 줄곧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

 

클래식 피아노 수업을 받으면서도 그가 관심을 가졌던 음악은 클래식 쪽보다 파퓰러한 록 뮤직에 심취했었던

 관계로 해서 엘튼 존은, 17살이 되던 해인 1966년에는 아예 학업을 중단하고 밀즈 음악출판사에서 근무하면서

저녁에는 블루소로지(Bluesology)란 프로 밴드에 가담해 연주 경력을 쌓았다.

 

 

  그때까지의 이름인 렉 드와이트란 이름에서 엘튼 존으로 개명된 것은 본래 블루소로지의 리더가 색소폰 주자였던

엘튼 딘이었는데, 엘튼 존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자 리더 자리를 엘튼 존에게 양보를 하였지만,

사람들은 엘튼 존이 엘튼 딘인 줄 알고 엘튼이라고 부르자 그때부터 이름을 엘튼 존이라고 개명했다고 한다.

 

1969년까지 이 그룹에서 연주를 하던 엘튼 존은 신인 작곡가 모집에 응모하면서 블루소로지에서 탈퇴하여 솔로로

독립했다. 개성이 강한 피아노 테크닉으로 록 뮤직을 연주하던 엘튼 존은 신인 작곡가 모집에 응모했을 당시에

 만난 랭커셔 출신의 시인인 버니 토빈(Berine Taupin)과 함께 곡을 만들어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버니 토빈이 쓴 가사에 엘튼 존이 곡을 입혀서 발표한 <Empty Sky>는 좋은 반응을 얻었던 데뷔곡이 되었다.

 

 

Empty Sky>가 돌연 영국내에서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모으자, 미국의 레코드 업자들은 엘튼 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으며, 결국에는 미국의 유니버셜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은 엘튼 존은, 1970년 여름부터

 계속되는 레코드 취입과 공연으로 순식간에 미국의 화제 스타로 등장했다.

 

 

  엘튼 존의 공연 날자를 앨범 타이틀로 붙인 실황 음반 「11-17-70」을 발매하기 시작한 그는,

그 뒤로 계속해서 1972년에는 「Honky Chateau」를, 1973년에는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 같은 골드 레코드를 발표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싱어 송 라이터로

 각광을 받았다. 엘튼 존이 발표한 곡 중에는 다른 유명 가수들이 리바이벌해 크게 히트시키기도 했는데,

 1969년에 발표했던 <Lady Samantha>를 후에 쓰리 독 나잇(Three Dog Night)이 불러 히트시켰으며,

 실라 블랙은 <Your Song>을 불렀으며, 토우 패드는 <Bad Side of The Moon>을, 아리사 후랭클린은

 <Border Song>을 히트시키는 등, 70년대에 가장 많은 곡을 만든 작곡가로도 인정을 받았다.

 

 

  송 라이터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던 엘튼 존은 1976년 6월에 키키디(Kiki Dee)와 함께

<Don't Go Breaking My Heart>를 듀엣으로 불러 골드 레코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엘튼 존은

1977년에 작사를 맡아 함께 활동해 온 버니 토핀과 결별하면서 그의 활동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때부터

 엘튼 존은 싱어 송 라이터 생활보다는 갖가지 사업에 치중했는데,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자신이 직접 로케트(Rocket)란 레코드 회사를 설립해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면서 사업가로도 수완을 보이고 있다.

 

 

  1980년에 엘튼 존은 자신의 21번째 앨범인 「21 At 33」을 발표했는데, 그러한 앨범 타이틀은 33살에

21번째 앨범을 발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1년 후반에는 앨범 「The Fox」를 발표해 <Nobody Wins>를 히트시켰다.

또한 엘튼 존은 노래뿐만 아니라 스포츠에도 대단한 광(狂)으로, 영국의 축구 클럽 Nottingham Forest F. C.의

회장이기도 하며, 엘튼 존은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폭 넓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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