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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Jeff Beck - Cause We've Ended as Lovers

 

 

 

 

 

 

 
 

Live at Le Grand Rex, Paris. 2014.05.

 

 

 

 

Live in Seoul, 2010.3.20.

 

 

 

 



오리지날인 제프벡과 탈 위켄필드의 버전입니다.

 그루브 위주의 베이스 솔로가돋보입니다.

 제프벡 기타의 여운도 많이 남구요




두번째는 거스리고반과 빌리시헌이 연주한 버전입니다.

베이스솔로가 빌리시헌 전매특허인 하모닉스피킹과 밴딩 태핑같은

 테크닉 위주로 흘러가네요.

 

특히 베이스기타로 서스테인 주는게 인상적입니다.

거스리고반은 제프벡에 비해 서스테인이 좀 짧게 느껴지는것 같지만

그 대신 정갈한 느낌이 많이 드네요

 

 

 

 

 

 

 

 

Jeff Beck - Cause We've Ended As Lovers

 

 

2009년 4월 4일에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Metallica)'와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에 입성한 영국의 록 기타리스트 '제프 벡(본명 : Geoffrey Arnold "Jeff" Beck)'은 열살때 교회 성가대에 들어가

노래를 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호기심이 한참 왕성했던 십대 시절 부터는 기타 연주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당시 자신의 기타가 없었던 제프 벡은 친구에게 자주 기타를 빌려 연주 연습을 하고는 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내가 직접 기타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스스로 기타를 만들게 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제프 벡의 첫번째 기타는 여송연(Cigar)을 포장했던 나무 상자와 낙하산 줄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언뜻 어슬퍼 보이는 이 기타가 후일에 좀더 발전하여 '프렛리스 기타(Fretless Guitar)'가 세상에 탄생하게 된다.

제프 벡이 서툰 솜씨지만 진지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자신의 첫번째 기타가 프렛리스 기타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

'레스 폴(Les Paul)', '클리프 갤럽(Cliff Gallup)', '비비 킹(B.B. King)' 같은 기타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고 따라 하며

기타 실력을 키워가던 제프 벡은 '윔블던 예술 대학교(Wimbledon College of Art)'를 졸업하고 에릭 클랩튼의 뒤를

 이어 록 팬들에게 전설로 남아있는 영국 록 밴드 '야드버즈(The Yardbirds)'에 가입하여 프로 음악인으로 첫번째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에 가입하여 이듬해 탈퇴할 때 까지 약 2년간 야드버즈에서 활동하면서 주목받는 기타 연주자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지만 실험적인 면을 강조한 자신의 기타 연주 방식이 밴드가 추구하던 음악과 상충되며 멤버들과의 잦은

 의견 충돌이 생겨나게 되자 결국 1966년 말에 제프 벡은 짧은 밴드 활동을 마감하기로 결정하고 야드버즈를 탈퇴하여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제프 벡은 야드버즈 탈퇴 후 첫번째 활동으로 1967년에 단발성 밴드 '벡스 볼레로(Beck's Bolero)'를 결성하였다.

기타와 보컬을 맡은 제프 벡을 비롯하여 12현 기타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

베이스)', '키스 문(Keith Moon, 드럼)', '니키 홉킨스(Nicky Hopkins, 키보드)'와 함께

 결성한 벡스 볼레로는 1967년 2월에 녹음실에서 'Hi Ho Silver Lining'과 'Tallyman'을 녹음하여 싱글로 발표하였다.

 

 싱글로 발표한 'Hi Ho Silver Lining'이 영국 싱글 차트에서 14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게 되자 제프 벡은 이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제프 벡 그룹(The Jeff Beck Group)' 결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프 벡 그룹에는 벡스 볼레로에서 제프 벡과 함께 했던 니키 홉킨스가 가장 먼저 합류하였으며 뒤 이어 '로니 우드

(Ronnie Wood, 베이스)',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보컬)', '미키 월러(Micky waller, 드럼)'를 합류시켜 멤버

 구성을 마친 제프 벡 그룹은 1968년에 음반 'Truth'를 발표하며 데뷔하였고 이듬해에 두번째 음반 'Beck-Ola'를

 발표하였다.

 

밴드 구성원의 개인 기량이 특출했던 제프 벡 그룹은 블루스 취향의 하드 록으로 미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였으나

 구성원들간의 잦은 의견 충돌이 빌미가 되어 결국 1969년 7월에 해산의 길을 선택하고 만다.

제프 벡 그룹을 해산한 제프 벡은 '팀 보거트(Tim Bogert, 베이스)', '카마인 어피스(Carmine Appice, 드럼)'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 단계 까지 접어들었으나 1969년 11월에 제프 벡이 불의의 교통 사고를 당하여

그로부터 1년 6개월 가량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이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말았다.

 

 1971년 4월 부상에서 회복한 제프 벡은 '바비 텐치(Bobby Tench, 보컬)', '맥스 미들턴(Max Middleton, 키보드)',

 '클라이브 채먼(Clive Chaman, 베이스)', '코지 파웰(Cozy Powell, 드럼)'로 구성된 완전히 새로운 멤버로

 제프 벡 그룹을 재결성하고 그해 10월에 새 음반 'Rough and Ready'를 발표하며 록계에 복귀하였다.

1972년 5월에 제프 벡 그룹은 통상 네번째 음반 'Jeff Beck Group'을 발표하고 또 다시 해산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 표면적 이유는 밴드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프 벡이 밴드를 해산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제프 벡 그룹을 해산한 후 제프 벡은 팀 보거트와 카마인 어피스가 활동하고 있던 밴드 '켁터스(Cactus)'가 해산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미루어 두었던 트리오 프로젝트의 재개를 시도하게 되는데 '벡 보커트 앤 어피스

(Beck, Bogert & Appice)'는 이렇게 하여 결성이 되었다.

1973년에 데뷔 음반이자 유일작인 'Beck, Bogert & Appice'를 발표하고 1974년 까지 공연 활동을 했던

벡 보커트 앤 어피스는 두번째 음반의 준비 도중 제프 벡의 탈퇴로 급작스러운 해체를 맞게 된다. 벡 보커트 앤 어피스의

 활동을 마감한 제프 벡은 1974년 10월에 녹음실에 들어가 자신의 첫번째 솔로 음반을 녹음하여 1975년에

'Blow by Blow'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흔히 '명반 중의 명반이며 기타 연주자를 지망하는 이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교과적인 음반'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이 음반은 '필 첸(Phil Chen, 베이스)', '리차드 베일리(Richard Bailey, 드럼)', 그리고 해산한 제프 벡 그룹의

 '맥스 미들턴(키보드)'이 연주자로 참여하였고 '비틀즈(The Beatles)'의 음반 제작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함께 하였다.

재즈와 록을 자연스레 융합해낸 음반으로 정평이 난 이 음반에서 첫번째 트랙으로 선택된 곡은 연주자들의 호흡이

 멋지게 어울어지는 록 취향의 'You Know What I Mean'이며 비틀즈의 곡을 경쾌하게 편곡한 'She's a Woman'이

두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프 벡이 만든 'Constipated Duck'에서는 힘이 넘치는 베이스 연주와 제프 벡의 정교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

 힘찬 드럼 연주로 시작하는 'Scatterbrain'은 제프 벡의 연주를 투명한 키보드 음과 오케스트라 풍으로 편곡된 현악기

소리가 보조하며 다음 곡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곡으로 블루스 기타의 제왕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에게 바치며

스티비 원더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부제가 붙은 음반 최고의 명곡 'Cause We've Ended As Lovers'가

 'Scatterbrain'이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간 자리를 빠르게 메우며 다가 오는데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이 적절한

이런 연주는 평생을 통해 여러번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연주를 제프 벡은 들려주고 있다.

제목 그대로 잼 세션을 듣는 것 같은 'Freeway Jam'을 지나면 음반의 마지막 트랙인 현악 파트가 가미된

 'Diamond Dust'가 차분하게 시작된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명곡 'Cause We've Ended As Lovers'에서 들었던제프 벡의 연주도 감탄스러울 지경이지만

8분 짜리 대곡이자 마지막 트랙인 이 곡에서도 제프 벡은 특유의 정교한 기타 연주를 유감없이 펼쳐보이며 음반을

마무리 하고 있다. 현악 파트와 록 기타의 절묘한 조합이 이 곡만큼 세련되게 조화되는 곡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제프 벡 (Jeff Beck) : 1944년 6월 24일 영국 서리주 월링턴(Wallington)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퓨전(Fusion), 하드 록(Hard Rock), 앨범 록(Album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effbeck.com/  

 

출처 : http://wivern.egloos.com/10566502#trb

 

 

 

 

 

 

 

 

이 곡의 작곡자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로 제프 벡의 1975년 발매된 솔로 앨범 블로우 바이 블로우

(Blow By Blow)에 들어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제프 벡이 그가 존경하는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에게 헌정한 곡이기도 하다.

로이는 펜더 텔레캐스터(Telecaster) 기타 사운드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베이스는 호주 시드니 출생의 탈 윌켄펠드(Tal Wilkenfeld)가 연주하고 있다.

탈은 14세 때 기타를 처음 시작, 16세 때 음악을 위해 학업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 가 처음에는 일렉 기타를 배우다가

17세때 베이스로 바꾸고 18세 때에는 이미 뉴욕 재즈 클럽의 유명 베이시스트로 활약, 제프 벡밴드와 투어 공연을

같이 하게 된다.

제프 벡은 1944년생, 탈은 1986년생이다.  

 

 

일렉트릭 기타의 교과서, 재즈 록의 교본, 기타 연주의 오케스트레이션화. 만장일치의 기타 명반

지미 페이지가 그랬던가. ‘기타리스트의, 기타리스트를 위한 앨범’이라고.

이른바 면도날로 상징되는 섬세한 톤 감각,혁신적인 방법론과 정교한 테크닉이 만나 이뤄낸 탁월한 사운드로

빚어진 수록 곡들을 듣는 순간 그간 이 작품에 쏟아진 수많은 찬사에 공감하게 된다.

 

제프 벡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천재적인 록 뮤지션이자 기타리스트이며, 앨범 [Blow By Blow]는 세월을 뛰어넘는

설득력을 지닌 희대의 걸작이다.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만들어 낸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커다란 성공을

 거뒀으며, 수록 곡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스티비 원더의 오리지널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제프 벡이라는 이름은 락 음악사의 대표적인 천재 뮤지션이고 [Blow By Blow] 역시 그의 많은 앨범 가운데에서도

빛나는 걸작 명품이다.

혁신적인 일렉트릭 기타 연주방법론과 정교한 테크닉(기술), 그리고 작품 전반을 정교하게 다듬은 어레인지와

 사운드메이킹(디자인)으로 인해 당대 그 어떤 작품보다 높은 경쟁력과 차별성을 보였고 또한 3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전혀 '구식'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 시공을 초월하는 세련된 설득력까지 지니고 있는 앨범.

 

Blow By Blow 앨범은 제프벡의 7번째 앨범이자 그의 첫 솔로 앨범으로 1975년에 발표되었고,

 연주곡 만으로 이루어진 앨범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차트 4위 까지 오른곡입니다.

 이 앨범은

1974년 Beck, Bogert & Appice를 탈퇴한뒤 나온 앨범으로 특히 이 앨범은 그 유명한 George Martin이 프로듀서를

한 앨범으로 조지마틴은 비틀즈의 프로듀서로서 비틀즈의 5번째 멤버라고 불리울 정도로 비틀즈의 음악을 모두

만들어낸 장본인 입니다.

 

 

 

 

 

이곡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작곡한 곡으로 원래 스티비 원더가 발표한 1972년작 Superstition을 제프벡에게 주려고 하였으나 스티비 원더가 먼저 녹음 하여 발표를 하는 바람에 나중에 Beck, Bogert & Appice의 앨범에

녹음하였고, 스티비 원더는 대신 이곡을 제프벡에게 주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곡입니다.

 

두곡 모두 명곡으로 통하는 곡으로 스티비 원더의 작곡 능력이 얼마 뛰어난지 대변해주는 곡들입니다.

만약 스티비 원더가 눈을 볼 수 있었다면 이런 명곡들을 만들수 있었을까...

신은 스티비 원더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빼았어 갔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은 빼앗지 못했습니다.

 

이 곡외에도 Blow By Blow 앨범에는 델로니오스 몽크(Thelonious Monk)에게 바치는 Thelonius 라는 곡도

 스티비 원더가 작곡을 해서 제프벡에게 주었습니다.

 

특히 이곡은 기타연주자라면 한번쯤은 꼭 들어봐야 하고, 연주해봐야 하는 곡으로 기타의 명곡이며 블루스 기타의

 교과서적인 곡으로 극찬을 받는 곡입니다.

 

또한 블루스 기타의 제왕 로이 부케넌(Roy Buchanan)에세 바치는 곡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듣한 연주로

시작해서 스티비 원더의 아름다운 선율이 듣는 내내 가슴을 촉촉히 적셔줍니다.

 

Jeff Beck – electric guitars, bass

Max Middleton — keyboards

Phil Chen — bass

Richard Bailey – drums, percussion

 

출처 : http://rockthenation.tistory.com/131

 

 

 

  

 

 

Jeff Beck (제프 벡)



“난 랙 계열의 이펙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들은 가공할 사운드를 만들어주지만 일률적으로 비슷한 소리를 뽑아낸다.

음악인의 퍼스널리티를 섬세하게 표출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프 벡은 언제나 음악에 대한 새로운 모험과 시도를 통해 자신의 매너리즘을 경계해 왔다.

따라서 그의 연주는 신선도라는 측면에선 데뷔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음의 낭비가 전혀 없이 핵심만 찌르는 실험적인 재즈퓨전 기타의 파이오니어 제프 벡은 1944년 6월 24일 영국 웰링턴에서 태어났다.

‘Junior At School’에 다닐 무렵에 레스폴의 음악을 듣고 기타를 잡게 된 제프는, 62년 ‘Night Shift’의

기타리스트가 되면서부터 프로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65년에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그룹 야드버즈에 가입,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야드버즈에서 제프는 피드백 사운드를 도입한다거나 그외 실험적인 연주패턴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기타리스트중의 하나로 부상했다.

새로운 음악을 해보고 싶었던 제프는 이번에는 야드버즈를 탈퇴하고 로드 스튜어트, 론 우드 등과 함께 제프 벡 그룹

(Jeff Beck Group)을 결성하였다.

하지만 하드록 블루스사에 길이 남을 앨범 2장을 내곤 69년 9월에 돌연 그룹을 해산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

71년에 제프는코지 파웰 등과 함께 제2기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해 역시 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다시 그룹을 해체시켰다. 그룹 해체 후

제프는 이번에는 헤비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와 함께 락 역사 불멸의 슈퍼그룹인

벡 보커트 앤 어피스(Beck, Bogert & Appice)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록트리오도 오래가지 못하고 2장-1장은 일본에서의 실황을 수록한 비공식 라이브임-의 앨범을 끝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이 그룹 저 그룹을 많이 옮기던 제프는 자신의 성격상 밴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고 이후부터 솔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최초의 변신이 바로 역작 [Blow By Blow]이다.

75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재즈적 어프로치에 락 비트를 혼합한 재즈퓨전 기타 사운드를 완성해, 제프의 관심사가 이젠

하드록 블루스 소울 등에서 재즈로 넘어간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앨범을 시발로 제프는 계속해서 재즈록 역사에 비중 있게 자리 매김될 명반들을 터트리며 본격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재즈 퓨전도 부족해 85년의 앨범[Flash]에선 뉴웨이브 댄스사조도 수용한 바 있다.

 

제프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89년의 앨범 [Guitar Shop]으로 또 한번 음악계 전반을

뒤흔들었다. 드러머 테리 보지오와 키보드 주자 토니 하이머스를 불러 만든 이 솔로 작은 다채로운 리듬탐색에서

어프로치, 테마 등 모든 면에서 기성 기타리스트들을 고무시킬만한 대작이었다.

제프의 이와 같은 도전적인 실험성이 93년에는 전혀 색다르게 변신을 하는 데, 빅 타운 플레이보이스

(Big Town Playboys)가 그것이다.

제프는 여기에서 빅밴드 형태의 멤버구성으로 50년대의 록큰롤 체취를 강하게 풍기는 추억의 사운드를 연주하였다.

이 역시 언제나 예측을 불허하는 제프 벡에게서나 가능한 대 변신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99년에는 테크노 사운드와 블루지한 기타를 접목한 [Who's Else]라는 앨범을 공개해 다시 한번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제프는 음의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지적이고 냉철한 감각 아래 핵을 관통하는 영감(Inspiration)으로 충만된 연주를 들려준다.

 

하이템포의 셔플리듬을 좋아하는 그는, 같은 코드 톤으로 연주가 흐르다가도 갑자기 코드 체인지 시켜버려 의표를 찌르는 충격적인 시도를 자주 하곤 한다.

또한 9th가 가지는 긴장감을 솔로 끝부분에 배치하여 특이한 이미지를 낳기도 한다.

제프는 즉흥성이 뛰어나 이 애드립에서가 아니면 도저히 이 곡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솔로를 전개한다.

'You Never Know'에서 원 코드로 전개되는 솔로나 'Come Dancing'에서처럼 7th가 얹혀지는 치밀한 악상전개,

 그리고 'Guitar Shop', 'Big Block' 등은 가히 ‘영감’의 기타라고 할 만한 것이다.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서도 제프는 고정된 칼라를 싫어하고 항상 변화 있는 톤을 추구해 왔다. 야드버즈 시절엔

 텔레캐스터에 Vox 등의 퍼즈 박스와 에코를 썼고, BB & A에선 레스 폴,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에 토크박스를,

 

 [Blow By Blow]에선 옥타버를, [Wired]에선 코러스와 플랜저를 각각 사용해가며 각양각색의 사운드에 도전했다.

그의 위와 같은 변화무쌍함이야말로 록 기타 파이오니어로서의 제프 벡의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스트라토캐스터와 텔레캐스터 모두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장 잘 뽑아내는 기타리스트 중의

하나로도 유명하다.

사 용 장 비
◇Fender Telecaster(54):Seymour Duncan Pickups, Fender Strato-caster, Gibson Les Paul, Fender Esquire
◇Marshall 100W
◇Alesis Midiverb, Yamaha Rev7, Rat Pedal


글 / 조성진

 



왼쪽부터 에이슬리 던바, 제프 벡, 로드 스튜어트, 론 우드

 

 

 

 

제프벡은 62년 Night Shift라는 밴드로 대뷔하였다. 그러나, 제프벡의 실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에릭클랩튼의

 후임으로 리듬 앤 블루스 그룹 야드버즈에 가입하면서이다.

 

여기서 제프벡은 피드백의 사용등 실험적인 연주로 그룹을 최고의 성공으로 올려 놓았다. 또한, 야드 버즈 후기에는

베이스 주자였던 지미 페이지와 트윈리드 기타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후 제프벡의 관심사는 블루스에서 에너지를 뽑아내는 것이다. 제프벡은 멤버 간의 갈등으로 야드버즈를 탈퇴하고

 자기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려했다. 사실 이 당시 제프벡이 정말로 원했던 사운드는 레드 제플린적인 사운드였다.

 

그래서 포크적인 리듬감이 충만한 지미페이지, 탁월한 감각의 존 폴 존스, 후에서 보다 강렬한 음악을 원했던 키스 문,

매력적인 목소리의 신예보컬리스트 로드 스튜어트 등을 영입해서 사상 최고의 밴드를 결성하려고 했다.

이러한 라인업은 Truth에 실려있는 Beck's Bolero에서 구현되었다. 기적적인 밴드가 될 뻔한 이 라인업은 제프벡의

원만하지 못한 성격으로 이루어 질 수 없었다.

제프벡 역시 이점을 아쉬워했다.

 그것은 최초의 레드제플린 사운드였죠."

이 말은 바로 경쟁 관계에 놓일 지미 페이지의 밴드 레드제플린과의 경쟁에서 졌음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며 또한,

자신이 당시 정말 원했던 사운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하는 것이다.

 제프벡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블루스에서 에너지를 끌어낸 하드록이었던 것이다.

 

 이후 제프벡은 론 우드, 로드 스튜어트를 영입하여 레드 제플린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제프벡은 자신의 그룹에서 멤버 들간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두장의 수작을 내놓는다.

 제프벡 그룹과 레드 제플린은 윌리 딕슨의 곡 You shook me를 동시에 리메이크했다.

 

사실, 이는 지미 페이지가 제프벡의 작업을 보고 시도한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제프벡이 알게 되었을 때 분노를 금치 못하였고 또한, 보다 뛰어난 상대편의 음악을 들었을 때 또 한번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이 곡에서 제프벡 그룹은 순발력 있는 제프벡의 솔로와 호소력 있는 로드 스튜어트의 보컬을 보여주었다. 한편, 레드제플린은 보다 거대한 사운드와 로버트 플랜트의 날카로운 목소리롤 해석하였다.

 그런데, 에너지를 요구하는 하드록에서 로드 스튜어트의 목소리는 그다지 적합한편이 아니었고-물론, 상대적인

비교지만-전체적인 사운드의 크기에서 앞서는 레드 제플린의 완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장의 앨범 Truth와 Beck-Ola는 하드 블루스의 수작 중에 하나로 꼽히며 이들의 해체는 상당히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다.

 Truth는 블루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성을 타진한 앨범이라면 Beck-ola는 블루스에서 하드록적인 에너지를

뽑아내는데 주력한 작품이다. 그리고 Beck-ola는 제프벡의 별명에서 따온 앨범이다.

 

제프벡은 이 때의 멤버들과 완전히 해어지고 완전히 새로운 밴드를 조직한다. 그리고 그의 음악적 관심도 빠뀐다.

 여기서는 파워 드럼계의 최고 거물이 될 코지 파웰을 발굴한다.

또 소울적인 느낌이 강한 흑인 보컬인 밥 텐치를 기용한다.

 

 코지의 파워드러밍은 실력이 아직 만개하지 못한 반면 밥 텐치의 소울적인 보컬과 맥스 미들턴의 유연한 피아노,

 클리브 채먼의 베이스는 소울적인 느낌을 충분히 발휘한다.

 

 Rough & Ready는 마치 템프테이션즈의 사이키델릭한 소울에 제프벡의 리드미컬한 기타가 인상적인 앨범이다.

다음 발표한 Jeff Beck Group은 비슷한 성향이지만 재즈적인 자유분방함이 넘친다. 특히 Definitely Maybe는

와와를 이용한 섬세한 기타톤이 Blow by Blow를 예견하기 충분한 곡이다.

 

 

퓨전 성향의 솔로 앨범

이 밴드를 통해 제프벡은 밴드라는 조직이 자신의 음악세계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록커로서 청중을 사로잡는 매력과 보컬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계속되는 멤버들과의 불화는 그를 지치게 했고 이후 솔로의 길을 택하게했다.

 

 또한 블루스를 통해 에너지를 끌어낸다는 장르에서도 상당한 회의를 품게된다.

이는 그 뿐만 아니라 록의 발전을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한 방법론은 75년 전후했을 때 충분히 포화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75년에 발매한 Blow by Blow는 록기타와 재즈록 퓨전이라는 장르에 이정표가 된 작품이다.

특히 그가 이 앨범에서 보여준 기타톤은 사상 최고의 기타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에게 헌정한 Cause we've ended as a lover는 섬세한 기타톤과 더불어 정중동의 드센 필링이 살아 숨쉬는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다.

 

이 앨범을 통해 제프벡은 오케스트라의 깊이를 가질 수 있는 기타라는 악기의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76년에 발표된 Wired, 78년의 Live with Jan Hammer, 80년의 There and Beck은 Blow by blow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감각적인 건반 주자 Jan Hammer나 Tony Hymas등과의 활동으로 보다

감각적이고 SF적인 느낌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80년대에 내놓은 Flash는 그래미를 통해 제프벡이 최초로 인정받은 작품으로 제프벡으로는 이색작이다. 오히려 이전의 제프벡 매니아들에게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이 앨범에서 제프벡은 뉴웨이브나 펌프록의 매끄러운 사운드, 다시 말해 지극히 80년대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후 그와 가장 궁합이 잘맞는 멤버들인 테리 보지오와 토니 히마스와 함께한 Guitar Shop은 이전 앨범과 달리 오히려 비상업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에 치중한 의욕작이었다.

리듬 진행이나 사운드, 테마 등에서 충분히 충실한 앨범이었고 기타 키즈들에게도 환영을 받았으나 상업적으로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90년대 초반 발표한 Big town playboys에서는 그 음악의 원천이었던 50년대 록커빌리를 재현하였다.

블루스나 포크에 기초한 다른 기타리스트들과 달리 그의 음악의 시작은 록커빌리였던 것이다.

 톤과 함께 제프벡의 가장 큰 강점인 리드미컬한 솔로잉은 이러한 원천력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그는 젊은 기타리스트 못지않은 순발력있는 피킹 솜씨를 보여준다. 최근작인 Who's else를 통해 일렉트로니카와 중동풍의 사운드를 블루스에 크로스오버시키는 또다른 시도를 보여주었다.

제프벡에 대해 Guitar World지에서는 예측가능할 만큼 예측 불가능한 음악적 변신을 한다고 한다.

그것도 수박 겉큰기 식이 아닌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음악적 본질을 누구보다 충분히 이해한 채 새로운 음악을 보여준다. 장르에서 뿐만 아니라 사운드 메이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펜더 스트라토 캐스터와 텔레캐스터의 강점을 최대한 이해한 채 살려내고 또한 퍼즈박스, 토크 박스, 옥타버 등의 이펙터의 사용에서도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말 필요한 만큼의 이펙터를 사용해서 기타가 가지는 원래 의

 음색을 충분히 살려내는 기타리스트이다.

또한, 그의 경쟁자이자 친구였던 지미 페이지는 그에 대해 '그와 함께있다면 그가 가장 최고의 실력자일 것이다.'라고

예기했다.

사실, 록이란 장르는 젊을 때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할 수 있는 장르이다.

 그러나 제프벡에게만큼은 나이가 들수록 보다 뛰어난 연주를 한다.

 

특히 섬세한 기타톤과 적재적소의 솔로잉, 치밀한 악상 전개는 지금까지도 록기타계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말 그는 기타리스트에게 존경받는 기타리스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