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Music Video Live
Baby one More Time
Oh baby baby How was I supposed to know that something wasn't right here Oh baby baby
I shouldn't have let you go And now you're out of sight
Show me how you want it to be Tell me baby cuz I need to know now Oh because
(repeat) My loneliness is killing me I must confess I still believe when I'm not with you I lose my mind Give me a sign Hit me baby one more time
Oh baby baby The reason I breathe is you Boy you've got me blinded
Oh pretty baby There's nothing that I wouldn't do That's not the way I planned it
Show me how you want it to be Tell me baby cuz I need to know now Oh because
(repeat)
Oh baby baby How was I supposed to know Oh pretty baby I shouldn't have let you go
I must confess that my loneliness is killing me now Don't you know I still believe that you will be here And give me a sign Hit me baby one more time
(repeat)
오 그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여기에 뭔가 잘못된게 있었다는 걸 오 그대 당신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제 당신은 보이지 않는군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 주세요 내게 말해 줘요, 지금 알아야겠어요 왜냐하면
(후렴) 외로움은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죠 당신이 없으면 난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걸 고백해야겠어요
내게 신호를 해주세요 나를 한번 더 만나 주세요
오 그대 내가 사는 이유는 당신 때문이죠 이런, 난 당신께 눈 멀었어요 오 사랑스런 그대
난 무엇이든 하겠어요 이건 내가 예상했던 게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 줘요, 지금 알아야겠어요 왜냐하면
(후렴 반복)
오 그대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오 사랑스런 그대 당신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외로움 때문에 미칠 지경이란 걸
난 고백해야겠어요 당신이 여기 와서 내게 신호를 할 거라고 난 여전히 믿고 있다는 걸 당신은 모르나요 나를 다시 한번 더 만나 주세요
(후렴 반복)

미국 출신의 여성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1998년에 발표된 곡으로 댄스 곡. 싱글 차트 2주 동안 No.1에 올랐던 이 곡은 10대 특유의 싱싱함과 발랄함,
여기에 댄서블한 리듬이 더해진 그녀의 데뷔곡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와 함께 팝씬 최고의 이슈메이커로 그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는Britney Jean Spears가 풀네임이며, 1981년 12월 2일 미국 루이지애나(Louisiana)주
켄트우드(Kentwood)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99년 첫 싱글 'Baby one More Time'이 동세대 팬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비디오 스타로서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던 그녀는 동명의 데뷔앨범마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차트 1위에 랭크시킴으로써 가수활동의 시작을 매머드급으로 장식했다.

본명 : Britney Jean Spears
출생 : 1981년 12월 2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신체 : 163cm / 48kg
데뷔 : 1999년 1집 'Baby one More Time'
수상경력 : 1999년 Billboard Awards 'New Artist of the Year'
틴 팝 열풍을 주도하며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든 '팝의 요정' Britney Spears! 그녀는 청순함과 섹시함을 겸비한 외모, 감칠맛 나는 보컬, 뛰어난 춤 실력을 주무기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가수의 평균연령을 뚝 떨어뜨리며 '10대 마케팅'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1981년 루이지애나주의 켄트우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Britney는 이미 4살 때부터 교회의 성가대와 마을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9살때는 디즈니 채널의 미키 마우스 클럽의 오디션을 보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 탈락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 본 관계자가 Britney를 뉴욕의 한 에이젼시에 소개해 주었고, 3년동안 노래와 춤을 교육받은 Britney는 11살이 되자 미키 마우스 클럽 오디션에 다시 응모하여 합격하게 된다.
재미있게도 이 곳에서 그녀는 지금 최고의 라이벌인 Christina Aguilera와 한 때 연인이었던 Justin Timberlake를 만나게 된다.
이 후 자이브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은 Britney Spears는 1998년 17세의 나이로 데뷔음반
[Baby, one More Time]을 발매한다. Britney는 그해 바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면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고 단숨에 '틴에이저 여왕'으로 떠올랐다. 1999년 각종 음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으며, 데뷔앨범은 미국내 1300만장, 전세계적으로 23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성공적인 데뷔 후 2000년 발표한 2집 [Oops!...I Did It Again]은 달콤한 멜로디를 지닌 댄스곡들을 수록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사상 여가수 최초로 앨범발매 한 주동안 130만장이 판매되어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2003년에 발매된 3집 [Britney]는 Michael Jackson의 신보를 3위로 끌어내리며 곧바로 1위에 올랐고,
발매 첫 주 74만 6천장이 팔려 36만 6천장이 팔린 Jackson의 음반을 압도하기도 했다.
3집은 음악적으로 '버블 검' 팝 가수와 작별을 고하고,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첫 싱글인 ‘I'm A Slave 4 U’는 10대들에게만 사랑받는 ‘틴 에이지 스타’에서 벗어나려는 Britney의 변신이
돋보이는 곡이고, Dido와 함께 참여한 2번째 트랙 'Not a Girl, Not Yet A Woman'은 Britney 주연의 영화
'Crossroads'의 사운드 트랙으로 수록되며 인기를 얻었다.
2003년 발표한 4집 [In The Zone]은 록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수록함으로써 엔터테이너가 아닌 뮤지션으로의 도약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특히 Madonna와 협연한 타이틀 곡 'Me Against The Music'과 Metrophonic의 Mark Taylor가 작곡한 'Breathe on Me', 발랄한 비트가 재미있는 곡 'Toxic' 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팝 댄스 여가수로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2003년 한국을 방문한 Britney는 한국 대표가수 보아와 한 무대에 서기도 하는 등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브리트니 진 스피어스(영어: Britney Jean Spears, 1981년 12월 2일 ~ )는 미국의 가수, 영화배우,
엔터테이너이다.
미시시피 주 매콤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 하는 등 연예인 활동을 했다.
브리트니는1997년 자이브 레코드와 레이블 계약을 체결해 가수로 데뷔하면서 주류 팝 음악과 문화를 대표하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데뷔 음반과 두 번째 정규 음반 ...Baby one More Time (1999)과 Oops!... I Did It Again (2000)은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10대 솔로 가수로는 단기간에 가장 높은 앨범 판매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 타이틀 트랙이자 리드 싱글인 "...Baby one More Time"과 "Oops!... I Did It Again"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2001년에는 《크로스로드》에 출연하면서 영화 데뷔를 했고, 같은 해 세 번째 정규 음반 Britney를 발매해 연이은 성공을 거둔다.
2003년에는 네 번째 정규 음반 In the Zone을 발매했고, 싱글 "Toxic"은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다음 해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한 이후 사적인 여러 문제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2007년 다섯 번째 정규 음반 Blackout을 발매해 "Gimme More", "Piece of Me" 등의 히트 싱글을
남겼으나, 이전에 비하면 저조한 성적이었다.
2008년은 브리트니가 재기에 성공한 해로, 여섯 번째 정규 음반 Circus를 발매해 첫 싱글 "Womanizer"가
10년만에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2009년에는 브리트니 경력 사상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렸던 월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같은 해 10월 컴필레이션 앨범의 싱글 "3"은 빌보드 핫 100 세 번째 1위 싱글이 되었다. 2011년에는 일곱 번째 정규 음반 Femme Fatale을 발매했으며, 세 개의 싱글 "Hold It Against Me", "Till the World Ends",
"I Wanna Go"가 처음으로 연속 빌보드 핫 100 10위권에 진입했다.
2012년에는 윌 아이 엠의 싱글 "Scream & Shout"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빌보드 핫 100 3위, 영국에서는 1위를 하는 등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또한 《더 엑스 팩터》 시즌 7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브리트니는 데뷔하자마자 팝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으며, 1990년대 말 유행한 틴 팝의 유행을 선도한 인물로
인정받고있다.
[2] 또 20살이 되기 전 10대 가수로는 가장 높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러한 성과로 "팝의 공주"와 같은
칭호를 얻었다.
[3] 브리트니의 작품과 성과는 수 많은 시상식과 기록을 통해 인정받았는데, 대표적으로 1번의 그래미 상 수상,
공로상을 포함한 6번의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수상, 9번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 그리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렸다.
2000년대 대표적인 팝 스타 중 한 명으로, 빌보드가 발표한 2000년대 아티스트 순위에서 8위에 올랐다.
[4] 뿐만 아니라 2000년대 가장 음반을 많이 판 여자 가수이다.
[5] 미국 음반 산업 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3,400만 장의 음반 판매량 인증을 받아 전체 여자 가수 중에서 여덟 번째에 해당한다.
[6] 또 대한민국에서도 130만 장의 판매량을 올리고있다.
[7] 세계적으로는 총 1억 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가수 중 한 명이 되었다.
[8] 《롤링 스톤》은 역사상 순식간에 인기를 얻은 아이돌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며 브리트니의 빠른 성공을
인정했다.
[9] VH1은 2012년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자 가수 100인" 순위 중 11위에 선정했다.
[10] 2012년에는 5,8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해 2002년 1위에 오른 이후 다시 《포브스》의 2012년 가장
돈 많이 번 여가수로 선정되었다.[11
11
1981–97: 어린 시절과 초기 경력[편집]
브리트니 진 스피어스는 1981년 12월 2일 미국 미시시피 주에서 린 아이린과 제임스 파넬 스피어스의 두 번째
자녀로 태어나, 런던에서 태어난 할머니를 통해 자랐다.
[12] 아버지 제임스 파넬 스피어스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가난하게 살았다.[13] 형제로는 브라이언 제임스와
제이미 린이 있다.
[14] 3세 때 스피어스는 루이지애나 주의 캔트우드 고향에서 무용 수업에 참석하고, 시작 연례 연주회에서 독주를 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스피어스는 체조 및 여러 가지 보이스 강의에 참석했으며, 국제 수준 시합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며
어린이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5][16][17] 또한 5살 때 "What Child Is This?"를 부르며 유치원을 졸업해 스타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브리트니는 어렸을 적 포부에 대해 "나는 나 자신 세계에 있고, 나는 내가 어린 나이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라며 말했다.
[16] 브리트니가 여덟 살 때 어머니와 미키 마우스 클럽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애틀랜타로 떠났다.
도착한 후, 오디션에서 브리트니는 끼를 마음껏 발산했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탈락하고 만다.
이때 스피어스를 눈여겨 본 낸시 칼슨은 뉴욕 시에 있는 에이전시에 소개를 해준다.
이후 브리트니는 카슨의 도움으로 뉴욕 유명 탤런트 학교 Professional Performing Arts School에 등록했고,
곧 스피어스의 동생인 제이미 린과 어머니 그리고 스피어스는 뉴욕으로 집을 옮겼다. 이후 브리트니는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Star Search에 나가기도 했고, 여러 광고에 캐스팅되며 스타로서 준비를 해 나간다.
[18][19] 1992년 2월, 스피어스는 마침내 미키 마우스 클럽에 캐스팅 되었으나 힘든 시기를 겪었고, 2년 뒤
이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브리트니는 고향 캔트우드로 내려와 평범한 소녀로 살아간다.
하지만, 가수라는 꿈은 여전히 이어나갔다.
또한 어렸을적에 변호사도 꿈이였다.
[20]1997년 6월, 미국의 여성 팝 5인조 그룹 이노센스의 맴버로 합류한다. 이때 엔터테인먼트의 변호사로
활동했던 래리 루돌프는 브리트니의 끼를 알아보고 브리트니의 사진과 데모 테이프를 자이브 레코드에 보냈다.
2주 후 자이브 레코드 측은 스피어스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며 25달러를 주고 계약을 한다.[13] 자이브 레코드는 브리트니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계획을 세웠고, 여러 유명 가수들과 함께 투어를 다니며
경험도 쌓아나갔다.
이후 브리트니는 데뷔 음반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브리트니는 데뷔 음반 녹음을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케이론 스튜디오에서 맥스 마틴, 데니즈 팝 및 라미 등 유명한 프로듀서들과 함께 1997년 3월부터 4월까지 작업을 진행한다.
[16] 녹음을 마친 스피어스는 1999년 초 데뷔 싱글 "...Baby one More Time"을 통해 정식으로 데뷔한다

1998–2000: 화려한 데뷔[편집]
브리트니는 스웨덴에서 데뷔 앨범 녹음을 마친 후 미국으로 돌아와 곧 발매될 앨범을 위해 쇼핑몰에서 프로모션
투어를 진행했다.
무대에서 브리트니는 네 개의 노래를 불렀으며, 두 명의 백댄서들을 동원했다. 특히 첫 투어에서는 엔싱크가 오프닝 게스트로 무대에 섰다.[21] 브리트니의 데뷔 음반 ...
Baby one More Time는 1999년 1월 발매되었다.
음반은 미국에서 발매 첫 주 120,500만 장을 팔아 빌보드 200 1위로 데뷔했고,[22] 15개 이상 나라에서 1위를
했다. ...
Baby one More Time은 발매된 그 해 세계적으로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23] 10대 가수로는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17] 이 앨범은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2,6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고있다.[24] 타이틀 트랙인 "...
Baby one More Time"은 음반의 리드 싱글로 발매된다.
자이브 레코드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찍고 싶어했지만, 브리트니는 이를 거부하고 최종적으로 가톨릭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컨셉으로
결정했다.
[25] "...Baby one More Time"은 첫 주 50만 장을 팔아치웠고 빌보드 핫 100 1위로 데뷔해 2주 동안 정상을
지켰다.
[26][27] 또한 영국에서도 정상을 차지했으며, 첫 주 46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는데, 이는 영국에서 단일 싱글 판매량 중 가장 빨리 팔린 싱글이였다.
[28] 이후 "영국 차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중 하나로 기록된다.
[29] 브리트니는 2000년 열린 제42회 그래미 상에 "...Baby one More Time"으로 그래미 최우수 여자 팝 보컬 퍼포먼스와 신인상 후보로 올랐으나, 어릴 적 친구이자 그 당시에 경쟁자로 여겨졌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게로 돌아갔다.
[30] 이 외에도 빌보드 뮤직 어워드, MTV 시상식 등에서 각종 신인상 및 여성 아티스트상을 휩쓸며 미국에서 새로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You Drive Me) Crazy"는 앨범의 세 번째 싱글로 발표되었고,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17] 이때 브리트니는 80년대 최고의 아이돌 가수였던 데비 깁슨과 비교가 되기도 했다.
[31]1999년 6월 28일, 브리트니의 첫 번째 투어인 ...Baby one More Time Tour가 북아메리카에서
시작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호평을 내놓았으나,
[32] 한편에선 선정적인 의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33] 2000년 투어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Crazy 2k라는 제목으로 투어를 이어나갔다.
이 투어에서 브리트니는 두 번째 음반의 수록곡들을 선보였다.[34] 2000년 5월, 브리트니의 두 번째 정규 음반
Oops!...I Did It Again이 발매된다.
이 음반은 미국에서 발매 첫 주 1,300,000만 장을 팔아치우며 사운드스캔 역사상 솔로 가수 중 가장 높은 첫 주
판매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34] 앨범은 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35] 음반의 리드 싱글 "Oops!...
I Did It Again"은 호주, 뉴질랜드, 영국 및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36][37] 이 노래는 그래미상 최우수 여자 팝 보컬 퍼포먼스 부문과 음반은 최우수 팝 보컬 앨범 부문에 각각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38]같은 해 Oops!... I Did It Again World Tour를 시작해 4,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으며, 엄마와 함께 첫 번째 책 Britney Spears' Heart-to-Heart를 집필하기도 했다.
[17][39] 2000년 9월 7일에 열린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 참석해 브리트니는 공연을 펼쳤는데, 브리트니의
가장 멋진 공연 중 하나로 남았다.
이날 공연을 통해 도발적인 이미지로의 변신도 알렸다.[40] 비슷한 시기 언론들은 브리트니와 엔싱크의 맴버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연애를 한다고 추측했고, 결국 이 사실을 인정했다.[17]
2001–03: Britney와 In the Zone[편집]
2001년 2월 브리트니는 엄마와 함께 A Mother's Gift라는 제목의 소설을 공동 출간 했다.
[17] 2001년 11월에는 세 번째 정규 음반 Britney를 발매 했다.
브리트니는 투어를 하면서 제이-지, 넵튠스와 같은 힙합 음악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펑키한 사운드의 음반을
만들고 싶어했다.
[41] Britney는 빌보드 200 1위 뿐만 아니라 호주, 영국, 유럽에서 5위권에 진입했으며, 세계적으로 1,200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다.
[36][42][43] Britney는 그래미 상 최우수 팝 보컬 앨범 부문에, 수록곡 "Overprotected"는 최우수 팝 보컬 여자 퍼포먼스 부문에 오르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44] 하지만 2008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선정한 "지난 25년간 최고의 앨범 100개" 목록에 포함되었다.
[45] Britney의 첫 싱글 "I'm a Slave 4 U"는 여러 나라에서 10위권에 진입하며 세계적 히트를 쳤다.
[46]2001년 브리트니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철장안에 갇힌 호랑이와 몸에 뱀의 일종인 알비노 파이손을 두르고 공연을 펼쳤는데, 이 광경은 브리트니 최고의 무대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그러나 PETA로부터 동물 학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40] 이후 Britney 음반을 홍보하기 위해 Dream Within a Dream Tour를 시작한다.
이 투어는 총수익 4천3백만 달러를 남겨 2002년 여자 투어 콘서트 수익 순위 중 셰어의 Farewell Tour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47] 브리트니의 연속된 성공적인 행보는 점자 인정을 받아 《포보스》가 선정한 2002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로 선정되었다.
[48] 같은 해 2월, 브리트니는 생애 첫 주연을 맡은 영화 《크로스로드》에 출연했다.
영화는 실패했지만, 비평가들은 스피어스의 연기력에 어느 정도 호평을 내렸다.
[49][50][51] 《크로스로드》는천만 달러의 예산으로 제작했지만, 세계적으로 5천7백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51]2002년 7월, 브리트니는 6개월 동안 가수 생활을 멈추고 쉰다고 발표했지만, 같은 해 10월 새 음반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52] 한편, 3년 동안 사귄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결별을 선언한다. 2002년 12월에 팀버레이크가 싱글
"Cry Me a River"를 발표했는데, 그 노래에 뮤직비디오 내용은 흡사 브리트니가 저스틴을 배신한다는
내용이었다.
[53][54] 브리트니는 그에 대한 답가를 하듯 본인이 직접 작곡한 "Everytime"을 내놓았다.
[55] 브리트니는 4집 발매 전, 2003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마돈나의 곡 "Like a Virgin"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부르며 오프닝 무대를 펼쳤다. 이후 마돈나가 등장하며 오프닝 무대에서 마돈나와 함께 파격적인 키스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56]2003년 11월, 브리트니의 네 번째 음반 In the Zone을 발매한다.
이 음반에서 스피어스는 공동 작업으로 자신이 직접 나서 음반 작업을 하는 등 기존의 아이돌적인 이미지에서
아티스트적 이미지로 변신도 꾀했다.
[57] 미국의 잡지 《바이브》는 "이 음반은 스피어스 춤 실력의 발전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준다."고 말했다
[58] In the Zone은 발매 첫 주 609,000만 장을 팔아 빌보드 200 1위로 데뷔했는데, 4번 연속으로 빌보드
200 차트 1위로 데뷔하는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가 되었다.
[17] 미국 이외에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앨범 차트에서도 10위권 데뷔를 했다.
[59] In the Zone은 세계적으로 1000만 장 이상을 판매했다.[60] 비슷한 시기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각종
홍보 행사와 보아와의 특별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61] 음반의 두 번째 싱글 "Toxic"은 성공을 거둬 2005년 열린 그래미상에서 댄스 레코딩 부문 수상을 하며 첫 그래미 수상을 했다.[17][62]
2004–07: 사적 문제와 Blackout[편집]
2004년 1월 3일, 스피어스는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리틀 화이트 웨딩 채플'에서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제이슨 앨런 알렉산더와 결혼식을 올린다.[63] 하지만 결혼한 지 55시간만에 파경하는데, 스피어스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64] 이후 브리트니는 2004년 3월부터 In the Zone을 홍보하는
The onyx Hotel Tour를 시작한다.[65] 그러나 2004년 6월 8일, 싱글 "Outrageous"의 뮤직비디오 촬영 중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고, 즉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MRI 검사를 통해 부동 연골을 찾았다.
다음 날, 스피어스는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브리트니는 재활치료를 하며 애썼지만 The onyx Hotel Tour는 물론 모든 스케줄이 취소됐다.
[66] 비슷한 시기 2004년, 스피어스는 마돈나와의 우정을 통해 카발라 센터에 참여하기도 했다.[67] 이어 2004년 7월, 브리트니의 댄서로도 일하던 케빈 패더린과 3개월동안 만났다며 약혼식을 발표했다.
또한 리얼리티 쇼 Britney & Kevin: Chaotic이 방영되기도 했다.
한편, 2004년 11월 브리트니의 첫 번째 히트 컴필레이션 음반 Greatest Hits: My Prerogative를 발매한다.
[68] 음반의 첫 번째 싱글 "My Prerogative"는 핀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고 노르웨이 등지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69] "My Prerogative"는 본래 미국의 가수 바비 브라운의 곡으로 브리트니가 코버 버전으로 만들어낸 곡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싱글 "Do Somethin'"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노래로 호주, 영국, 중국 본토 그 외 유럽권에서
10위권 안에 진입하는 등 높은 차트 순위를 기록했다.[70][71] 전 세계적으로 Greatest Hits: My Prerogative는 5백만장 이상을 팔아 치웠다.
[72] 이는 베스트 음반으로서 이례적인 높은 판매고 수치였다. 2005년 9월 14일 스피어스는 첫째 아이 '숀 프레스톤 패더라인'을 낳는다.
2005년 11월에는 스피어스의 첫 번째 리믹스 음반 B in the Mix: The Remixes를 발매하지만 많은 사건을 겪어 큰 성공은 하지 못했다.
[73] 2006년 2월에는 스피어스와 아들 션 프레스톤이 사고가 났는데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힌 채 운전하여
'자격 없는 엄마'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받았다.
[74] 이후 스피어스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고, 여성 전문 잡지 《하퍼 바자》의 표지에서 최초로 임신 누드 모델로
서기도 했다.
[75] 시간이 흘러 2006년 9월 12일, 브리트니는 둘째 아이 제이든 제임스 패더라인을 낳았는데
[76], 2006년 11월, 브리트니는 케빈에게 문자로 이혼 통보를 하여 당시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77] 이로써 브리트니는 두 번째로 이혼을 맞고, 2007년에 아이의 양육권에 대한 문제는 공동 양유권을 공유하기로 판결났다.
얼마 뒤 브리트니는 심각한 조울증과 행동장애로 재활 센터에 입소하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채 퇴소했다.
[78] 곧 이어 문란한 길에 빠지며 급기야 파파라치들 앞에서 타자니아 미용실을 찾아 삭발을 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Us 위클리》가 뽑은 그 해 최악의 사건 1위로 뽑혔다.
[79] 결국 브리트니는 자신의 상태가 비정상인 것을 인정하고 치료 시설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달 뒤에 퇴소했고 브리트니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은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밝혔다.
2007년 5월, 브리트니는 하우스 오브 블루스에서 작은 규모의 미니 투어 The M+M's Tour를 진행하기도 했다.[80] 한편 2007년 10월, 브리트니는 패더라인에게 아이들의 양육권을 뺏기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판결의 이유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81]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브리트니는 2007년 10월 다섯 번째 정규 앨범 Blackout을 발매했다.
[82] 이 음반은 캐나다와 아일랜드에서 1위로 데뷔 했으며, 빌보드 200에서는 2위로 데뷔했다.
[83] 이로 인해 지금까지 지켜왔던 1위 데뷔 기록은 끊겼지만, 데뷔 음반부터 총 다섯 장의 음반을 2위권으로 데뷔시킨 유일한 여자 가수라는 기록을 세웠다.[84] Blackout은 많은 문제가 있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310만 장의 판매량을 올렸다.[85] 또한 이 음반은 브리트니의 음반 중 가장 음악성있는 것으로 평가되곤한다.
[86] Blackout은 2008년 열린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으며, 《타임즈》가 선정한
10년간 팝 음반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87][88] 브리트니는 2007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싱글
"Gimme More"를 부르며 오랜만에 무대에 섰지만, 언론들은 최악의 무대였다고 평하며 BBC의 데이비드 윌리스는 "그 날 브리트니의 무대는 뮤직 어워드에 길이 남을 최악의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89] 이럼에도 불구하고 "Gimme More"는 캐나다에서 1위, 빌보드 핫 100에서는 2위, 그리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10위권 진입을 하며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뒀다.[90][91] 두 번째 싱글 "Piece of Me"는 아일랜드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호주, 캐나다, 덴마크, 뉴질랜드, 영국에선 탑 5위에 올랐다.
세 번째 싱글인 "Break the Ice"는 다음 해에 발매되었고, 제대로된 프로모션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큰 성공은
못했지만, 브리트니의 네임벨류로 중박정도로 끝냈다.
[92][93][94] 2007년 12월 부터는 스피어스가 파파라치 애드난 갈립과 연애를 한다고 밝혔다.[95]

2008–10: Circus로의 재기[편집]
2008년 1월 스피어스는 패더라인의 대표자에게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스피어스 집에 방문한 경찰은 약물 중독이 의심된다며 세다스 시나이 의료센터에 입원시켰다.
다음 날 스피어스의 방문권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중단되었고, 패더라인만이 아이들의 물리적 및 법적 양육권을
가졌다.
스피어스는 로널드 레건 UCLA 미디컬 센터 정신병동에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법원은 아버지 제임스 스피어스와 변호사 앤드류 월릿을 컨서베이터쉽에 임시로 권한을 줬다.
[96] 이후 스피어스의 재산을 완전히 통제하게 된다.[17] 스피어스는 5일 후 풀려났다.
[97] 한달 뒤, 드라마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에피소드 "Ten Sessions"편에서 접수원 애비 역으로 출연했다.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연기에서도 좋은 평을 들었다.
[98][99] 2008년 7월 패더라인과 변호사의 동의하에 방문권을 되찾았다.
[100] 2008년 9월 7일 열린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스피어스는 "Piece of Me"로 최우수 여자 비디오,
최우수 팝 비디오 그리고 올해의 비디오상을 수상했다.[101] 이후 스피어스가 음악계에 컴백한 것을 기념으로 연대순으로 정리한 다큐멘터리 《Britney: For the Record》가 방영되었다. 필 그리핀이 감독을 맡았으며,
2008년 3분기에 뉴욕과 비벌리힐스에서 촬영했다.[102] 다큐멘터리는 첫날 밤 MTV에서 두 차례 방영되었고,
560만 명의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이는 방송 역사상 일요일 밤 시간대에 가장 높은 시청률이다.[103]
2008년 12월 스피어스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Circus가 발매되었다.
앨범은 평론가들로부터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평균 100점 만점 중 64점을 받았다고 한다.
[104] Circus는 미국, 캐나다, 체코에서 1위로 데뷔했으며, 이 외에도 많은 유럽 국가에서 10위권 안으로 데뷔했다.[91][105] 미국에서는 데뷔 앨범부터 다섯 번째 앨범까지 1위로 데뷔시킨 가장 어린 여성 음악가라는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랐다.
[106] 또한 음반 판매량을 집계하는 닐슨 사운드스캔에서 유일하게 네 장 연속으로 5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데뷔시켰다.
[105] Circus는 그 해 가장 빨리 팔린 음반 중 하나였으며,[107] 세계적으로 4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108][109] 음반의 첫 싱글 "Womanizer"는 "...Baby one More Time" 이후 9년 만에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110] 이외에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많은 국가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111] 이 노래로 제52회 그래미상 최우수 댄스 레코딩 부문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112] 앨범과 동명의 두 번째 싱글 "Circus"는 빌보드 핫 100 최고 3위까지 올랐다.
[113] 2009년 1월 스피어스와 제임스 스피어스는 노력끝에 이전 매니저 샘 루트피, 전 남자 친구 아드난 찰립,
변호사 존 이어들리로부터 접근 금지라는 법원의 판결을 얻어냈다.
[114] 2009년 3월부터는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라는 제목의 투어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만 1억 3,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그 해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수익률을 올린 투어였다.
[115][116] 호주에서는 4일간 총 6만 장의 티켓을 팔아 신기록을 수립했다.
[117]2009년 11월 두 번째 베스트 음반 The Singles Collection을 발매했다.
음반의 하나뿐인 싱글이자 리드 싱글 "3"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1위로 데뷔하며 브리트니의 세 번째 빌보드 1위 곡이 되었다.
[118] 2010년 5월 스피어스의 대변인은 매니저 제이슨 트래윅과 열애 중이라고 말했고, 사적인 관계를 위해 공적인 관계를 끝냈다고 발표했다.
[119] 2010년 7월에는 의류 회사 캔디스에서 한정판 의류 라인을 디자인해 출시했다.
[120] 2010년 9월 스피어스는 폭스 드라마 《글리》의 "Britney/Brittany" 편에 특별출연했다.[121] 해당 편은 《글리》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122][123]
2011–12: Femme Fatale[편집]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10년 3월부터 새 음반의 작업을 시작했고,[124] 2011년 3월 25일 브리트니의 일곱 번째 정규 음반 Femme Fatale을 발매한다.
[125] 프로듀서로는 맥스 마틴과 닥터 루크, 윌 아이 엠, 스타게이트 그리고 다크차일드 등이 참여했다.
[126] 음반이 발매되자 첫 주 276,000만 장을 팔아 빌보드 200 1위로 데뷔했고, 이로써 6개의 음반을 1위로 데뷔시키는 여자 가수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기록을 세웠다.
[127] 음반은 2011년 7월까지 600,0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우고있고,[128] RIAA는 플래티넘 인증을 했다.
[129] 음반은 비평가들에게 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메타크리틱은 Oops!... I Did It Again 이후 가장 높은 점수인 67점을 줬다.[130] 롤링 스톤을 포함한 많은 평가의원들은 이번 음반을 스피어스의 최고의 음반으로 꼽기도했다.
[131] 그러나 일부에서는 지나친 오토튠 사용과 지나치게 가공 처리한 보컬때문에 스피어스의 목소리가 "프로그램 브릿봇"처럼 들린다고 비판했다.
[131][132] Femme Fatale의 첫 싱글은 "Hold It Against Me"로 첫 주 411,000만 건의 디지털 판매로 빌보드 핫 100 1위로 데뷔 해 테일러 스위프트의 32만 건 기록을 갈아치웠다.
[125] 이로써 머라이어 캐리 이후 두 개의 노래가 핫샷 데뷔하는 두 번째 아티스트가 되었고, 스피어스의 네 번째
빌보드 핫 100 1위곡이 되었다.[125] 두 번째 싱글로는 케샤가 작곡한 "Till The World Ends"로 2011년 3월 11일에 발매했다.[126] 이 노래는 빌보드 핫 100 3위까지 올랐고, 특히 미국 라디오에서 9,800만 이상의 청취율을 보여 지난 13년간 스피어스의 노래 중 가장 높은 청취율을 기록했다.
[133] 같은 해 4월, 리한나의 노래 "S&M" 리믹스 피처링 가수로 참여해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해 브리트니의 다섯 번째 1위 싱글이 되었다.
[134][135] 이후 세 번째 싱글 "I Wanna Go"가 발매되었고 빌보드 핫 100 9위까지 진입했다.
이로써 브리트니는 21개의 싱글을 빌보드 핫 100 40위권에 진입시켰고 이는 지난 13년간 여자 가수중 3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136]2011년 3월 4일 브리트니는 2011년 여름부터 2년만에 대규모 투어 콘서트를 한다고 발표했다.
[137] 그 투어 콘서트는 Femme Fatale Tour라는 제목으로 2011년 6월 16일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첫 콘서트를 펼쳤고 호평을 받았다.[138]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2년 전 펼쳤던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에서는 립싱크를 해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이번 투어에서는 라이브를
했다고 언급했고 춤은 지난 몇 년간 최고라고 평했다.
[138] 투어는 총 79회 공연을 했고 2011년 12월 10일 푸에르토리코를 마지막으로 끝났다.[139] 투어는 DVD로
발매하기위해 8월 13일과 14일 양일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펼친 공연을 2D와 3D로 촬영해 11월 12일 Epix 채널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
[140][141][142][143] 11월 21일에는 Britney Spears Live: The Femme Fatale Tour라는 제목으로 DVD 발매를 했고 첫 주 19,000만 장을 팔았으나, 레이디 가가의 The Monster Ball Tour: At Madison Square Garden에 밀려 빌보드 DVD 차트 2위로 데뷔했다.
[144]2011년 6월 15일 빌보드는 RCA/자이브 레이블 그룹 중 자이브가 RCA로 합쳐진다고 발표했고, 이에따라
8월 브리트니는 RCA 레코드에 합류되었다고 발표했다.
[145][146] 이후 브리트니는 2011년 8월 28일 열린 2011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 참석에 비디오 밴가드상
(공로상)을 수상했고,
[147] 여러 댄서들이 나와 브리트니의 뮤직비디오, 퍼포먼스, 스타일 등의 헌정 공연을 펼쳤다.
공로상 시상을 했던 레이디 가가는 "이 산업계는 브리트니가 없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47] 2011년 10월 7일에는 두 번째 리믹스 앨범인 B in the Mix: The Remixes Vol. 2를 발매했다.
[148] 한편, 브리트니는 1,600만 달러를 받고 2012년 《더 엑스 팩터》 미국판의 새로운 시즌에 심사위원으로
발탁되었다.
[149] 또 윌 아이 엠의 앨범 #willpower의 첫 싱글 "Scream & Shou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 노래로
빌보드 핫 100 3위,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위에 오르며 브리트니의 여섯 번째 영국 싱글 차트 1위 곡이 되었다.
[150] 12월 《포브스》의 2012년 가장 돈 많이 번 여자가수 중 5,800만 달러를 벌어들여 1위에 올랐다.[11]
2013–현재: Britney Jean과 Britney: Piece of Me[편집]
2012년 12월 스피어스는 여덟 번째 정규 앨범 Britney Jean의 작업을 시작했고,[151] 2013년 5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는 윌 아이 엠이라고 알렸다.
[152] 2013년 9월 17일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라스베가스의 플래닛 할리우드 리조트 & 카지노에서
2년 동안 Britney: Piece of Me라는 제목의 레지던시 쇼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쇼는 2013년 12월 27일 시작해 2014년, 2015년까지 총 100회 공연을 한다.[153][154] 또한 새 앨범
Britney Jean은 미국에서 2013년 12월 3일 발매된다고 알렸다.
[155][156] 앨범은 2011년 자이브 레코드가 해제되면서 RCA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다.
[157] 이번 앨범은 여덟 번째 앨범을 발매하기로 확정한 RCA 레코드와 본래 음반 계약에 따라 스피어스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되었다.
[158] Britney Jean은 107,000장의 판매량을 기록해 빌보드 200 4위로 데뷔했는데, 스피어스 앨범사상 가장
낮은 판매량과 낮은 순위로 데뷔한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159] 영국 음반 차트에서는 12,959장을 팔아 34위로 데뷔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가장 낮은 순위와 판매량을 기록했다.[160]
리드 싱글 "Work Bitch"는 2013년 9월 16일 발매되었는데, 발매 하루 전 온라인상에 유출되면서 예상보다 앞서 발매되었다.
[161] 노래는 빌보드 핫 100 12위로 데뷔했는데, 20위권으로 진입한 스피어스의 일곱 번째 노래이며, 경력사상
다섯 번째로 높은 데뷔 순위이다.
이 외에 빌보드 핫 디지털 송스 차트에서는 10위, 빌보드 핫 댄스 클럽 송스에서는 6위, 핫 댄스/일렉트로닉 송스차트에서는 2위에 올랐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7위로 데뷔, 영국 댄스 차트에서는 2위까지 오르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그밖에 브라질, 캐나다, 프랑스, 아틸리아, 멕시코, 스페인, 대한민국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162] 두 번째 싱글 "Perfume"은 2013년 11월 3일 발표되었다.[163][164] "Perfume"은 빌보드 핫 100 76위로 데뷔했다.
[165] Britney Jean 작업 중 스피어스는 2013년 영화 《스머프 2》의 사운드트랙 "Ooh La La"라는 제목의
노래 녹음을 진행했다.
[166] 2013년 10월에는 마일리 사이러스의 "SMS (Bangerz)"라는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마일리의
네 번째 정규 앨범 Bangerz (2013)에 수록되었다.[167]
2014년 1월 8일 스피어스는 제40회 피플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페이버릿 팝 아티스트 부문에서 수상을 거뒀다.
[168] 같은 해 8월 RCA와 계약을 갱신했고, 다음 앨범을 위한 새로은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169] 2014년 9월 25일 스피어스는 《굿 모닝 브리튼》에서 플래닛 할리우드 리조트 & 카지노측과 레지던시 쇼 Britney: Piece Of Me를 2년 동안 연장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170] 2015년 5월 2일에는 이기 아질리아와 함께한 새로운 싱글 "Pretty Girls"를 발매했다.[171] 싱글은 빌보드 핫 100 최고 29위까지 진입했고, 국제적으로 평범한 성과를 거뒀다.
또한 이기 아질리아와 함께 2015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공연을 선보여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는 "스피어스는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활기찬 텔레비전 공연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172] 스피어스는 2015년 6월 16일 발매된 조지오 모로더의 앨범 Deja Vu에 실린 수록곡 "Tom's Diner"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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