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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Andrea Bocelli-Besame Mu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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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ame Mucho

 

 

 

Besame, besame mucho..

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como si fuera esta noche la ultima vez...
어쩜, 오늘밤이 마지막 밤일지도 몰라요....


Besame, besame mucho…
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que tengo miedo a perderte perderte despues
나중에 당신을 잃을까 봐 두려우니까요.

Besame, besame mucho…
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como si, fuera esta noche la ultima vez.
어쩜, 오늘밤이 마지막 밤일지도 몰라요.

Besame, besame mucho..
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que tengo miedo a perderte perderte despues
나중에라도 당신을 잃을까 봐 두려우니까요


Quiero tenerte muy cerca mirarme en tus ojos

verte junto a mi
아주 가까이 보면 당신의 눈동자 속에 있는

날 보고 싶어요


piensa que tal vez mañana, yo ya estaré lejos,

muy lejos de ti
내일, 내가 당신과  멀리,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해봐요.

Besame, besame mucho..
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como si, fuera esta noche la ultima vez
오늘밤이 마지막 밤인 것처럼 말이에요


Besame,  besame mucho
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que tengo miedo a perderte perderte despues
나중에라도 당신을 잃을까 봐 두려우니까요

 

 

< chorus >


Besame, besame mucho..
키스해 주세요. 아주 많이..
que tengo miedo a perderte perderte despues
나중에라도 당신을 잃을까 봐 두려우니까

que tengo miedo a perderte perderte despues
나중에라도 당신을 잃을까 봐 두려우니까

 


 

 

 

 

 

 

 

 

 

이 곡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곡인데 멕시코 태생의 여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콘수엘로 벨라스케스(Consuelo Velazquez)가 1941년에 발표한 곡이다.


콘수엘로 벨라스케스(Consuelo Velazquez)를 잠시 소개하자면, 1916년 멕시코 할리스코에서
태어난  벨라스케스는 나중에 그의 회고를 통하여 베사메 무초를 처음으로 작곡할 즈음인
1934년은 그녀의 나이가 겨우 만18세였다고 한다.

물론 키스를 한번도 해 본적이 없으며 키스가 뭔지도 몰랐던 시절에 단지 상상력에의존하여 피아노 곡으로 작곡을 했는데
이 곡은 정열적인 볼레로로 편곡되면서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크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벨라스케스의 자작곡인 ‘베사메 무초’는1943년 서니 스카 일라가 영어로 번안하여 부른 후에더욱 유명해 지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가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 곡을 불러서세계적인 음악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던 곡이다  ,

우선 가사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영어로 불려 지며 미국에서의 히트는 물론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되면서그녀는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녀는 ‘베사메 무초’라는단 하나의 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자 멕시코 정계에
진출하여 멕시코의 여성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인의 삶을 살기도 했다.

그녀는2005년 멕시코 시티에서89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했는데 어린 시절에 작곡한 ‘베사메무초’라는 곡 하나가

세계적인 히트를 치면서그녀는 평생을 유복하게 보낸 케이스로 남아있다.


베사메 무쵸는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는데 오늘 여러분들에게 들려줄 노래는
이태리 출신 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가 2006년 라스베가스에서 ‘사막의 하늘아래 (Under the desert sky)’ 라는
제목의 라이브 공연 모습으로 감상해 보기로 하자


 

 

 

 

이탈리아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안드레아 보첼리는 선천성 녹내장을 앓았다. 부모는 농기구를 팔고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했는데, 특별한 음악적 재능은 없었다.

 보첼리는 6세 때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해 몇 년 뒤에는 플루트와 색소폰도 연주했고 집에 있는 이탈리아 테너 가수들의 음반을 따라 불렀다.

 

12세 때 축구를 하다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뇌출혈을 일으키면서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시력 장애에 굴하지 않고 피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피아노 바와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러

학비를 벌었다.

학위를 받은 뒤에는 1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으나 음악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테너 프랑코 코렐리에게서 성악을 배웠다1992년 보첼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탈리아의 팝 스타 추케로 포르나차리로부터 저명한 성악가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위해 만든 곡 <미제레레 Miserere〉의 데모 음반을 녹음하자는 요청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파바로티는 보첼리의 목소리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벗으로 삼기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보첼리는 녹음 계약에

서명했다.

 

 그의 데뷔 앨범은 유럽에서 플래티넘 음반이 되었다.

1995년에는 〈작별할 시간 Con te partiro〉이 출시되었다.

 나중에는 이 노래를 새러 브라이트먼과 함께 영어로 부르기도 했는데, 2곡 모두 대히트를 기록했다.

1999년 보첼리는 고전음악가로는 드물게 오페라와 대중음악 양쪽에서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그는 1997년 출시 음반 〈로만차 Romanza〉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음반은 줄잡아 1,500만 장이 팔렸다. 1999년에 나온 〈소뇨 Sogno〉가 출시된 지 2개월이 안 되어 약 300만 장이 팔리면서 보첼리는 대중음악 차트 1위에 오른 앨범을 가진 첫 고전음악가가 되었다.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보첼리는 주로 콘서트에서 공연했다.

 1999년 그는 그래미상 최우수신인상 후보에 올랐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팝 스타 셀린 디온과 함께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기도 The Prayer〉를 불러 기립 박수를 받았다. 1999년에는 '보첼리 열풍'이 이탈리아로부터 유럽

전역을 거쳐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이르렀다보첼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오페라라고 하면서도, 녹음을 할 때 아리아에 대중음악을 섞는다. 이를 가리켜

매스컴에서는 '팝페라'(popera)라고 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오페라계에서 진지하게 다루기에는 너무 경량급이라고 보첼리를 폄하한다.

그러나 그는 1999년 7월에 오페라 〈즐거운 과부 The Merry Widow〉에서 아리아 3곡을 불렀고, 11월에는 미시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줄 마스네의 〈베르테르 Werther〉에서 주역을 맡아 미국 오페라 관객 앞에 선을 보였다.

 

1999년이 저물 때 보첼리는 뉴욕시티의 새해 전야제로 열리는 밀레니엄 콘서트 '세기의 파티'에서 공연했다.

이후에도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오페라 〈라보엠 La Boheme〉, 〈토스카 Tosca〉 음반을

 녹음하기도 하고,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정명훈 지휘로 오페라 〈나비부인 Madame Butterfly〉에서 핑커톤 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정통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