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h Brightman-A Whiter Shade Of Pale
A Whiter Shade Of Pale
We skipped the light fandango
우리는 경쾌한 판당고춤을 추었고
turned cartwheels 'cross the floor.
마루를 가로질러 옆굴려 재주넘기를 했지요.
I was feeling kind of seasick
나는 배멀미 같은 것을 느꼈지만
but the crowd called out for more.
사람들은 더 하라고 소리를 질러댔어요.
The room was humming harder
방안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고
as the ceiling flew away.
천장이 날아갈 듯 했지요.
When we called out for another drink
우리가 술을 한잔 더 청했을 때
the waiter brought a tray.
웨이터는 쟁반을 들고 왔지요.
And *so it was that later
아주 늦은 시간이었고
as the miller *told his tale
술집주인이 뭔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그러자 처음엔 유령처럼 흰 그녀의 얼굴이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조금 더 하얗게 변해갔어요.
She said "*there is no reason
그 녀는 말했죠"아무런 일 없어요,
and *the truth is plain to see."
보이는 그대로의 일 일 뿐이죠."
But I wandered through my playing cards
그러나 나는 카드 게임에 빠져 여기저기 다녔죠,
and would not let her be one of sixteen *vestal virgins
그리고 바다로 떠나려는 그녀를 16살 또래의
who were leaving for the coast
순결한 처녀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죠,
and although my eyes were open
비록 내 두눈은 뜨여있었지만,
they might just as well 've been closed.
차라리 감겨져 있었다고 해야겠지요.
And *so it was that later
아주 늦은 시간이었고
as the miller told his tale
술집주인이 뭔가 자신의 이야기를 얘기했고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그러자 처음엔 유령처럼 흰 그녀의 얼굴이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조금 더 하얗게 변해갔어요.
천상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Sarah Brightman" 은 1960년 8월 영국 버크 햄스테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타고난 능력은 어릴 때부터 특출했다고 한다.
3살 때부터 에름허스트 발레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12살이 되는 해에 데뷔를 하였다.
그리고 16살 때에는 Dance Group "Pan People"의 멤버로 활동하였으며 18살 때 초연된 뮤지컬 "캣츠"의
공개오디션에 합격해 뮤지컬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남편인 Andrew Lloyd Webber와 결혼하면서 "오페라의 유령","레퀴엠" 등 그의 대표작 초연 무대에 전격
발탁되어 그녀의 능력을 발휘하였고" 그녀가 출연한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음으로서 당대 최고의 뮤지컬 스타로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과 같은 성악가들과 협연을 함으로써그녀는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앤드류와 이혼하면서 잠시 공백기간이 있었지만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프랭크 피터슨이 만든 "Time to say Goodbye"를 1996년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불러
전 세계적으로 1천만장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Time to say Goodbye"는 매년 연말에 애창되는 곡이기도 하다
*Sarah Brightman* Cat's의 오리지날 캐스팅후 수직상승 |
“20세기 최고의 뮤지컬 여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자명하다.
지금은 남남지간이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두번째 부인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다.
영국 태생으로 아름다운 음색의 고음을 구사하는 그녀의 명성은 두 세기에 걸쳐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녀의 무대경력은 13세 때부터 시작된다.
데뷔 이후에도 학업을 계속하며,하루도 빠짐없이 발레 레슨을 받는 등 매사에 성취욕이 강한 여인이었다.
16세에는 댄스그룹(Pans People)의 멤버로 참여하고,18세에는 알린 필립스의 무용단(Hot Gossip)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웨버와의 첫 만남은 81년 ‘캐츠’의 오리지날 캐스팅에서였다. 그 후 ‘송 앤 댄스(Song and Dance)’,‘레퀴엠
(Requiem)’의 제작에 함께하는데,특히 ‘레퀴엠’은 앨범판매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끌어 그녀를 ‘그래미
최우수 클래식 신인상’ 후보에 오르게 한다. 여세를 몰아 제작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오페라 유령’. 영화 ‘타이타닉’과 ‘쥬라기 공원’을 제치고 20세기 최고의 입장권 수익을 기록한 이 작품에서 사라의 인기는 천장부지로 상승한다.
그래서 ‘유령’은 웨버가 부인 사라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의도적 작품이란 설까지 나왔다.
뮤지컬에서 시작된 그녀의 활동영역은 음악적 깊이를 더해 가며 세계로 확산된다. 92년에는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식에서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식 주제가 ‘영원한 친구(Amigos Para Siempre)’를 불러 지구인을 침묵시킨다. 몬주익
경기장에 뛰어드는 황영조 선수의 자랑스러운 모습과 함께 우리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의 노래였다.
웨버의 히트곡들로 구성된 뮤지컬 콘서트 투어도 시작하는데,작년 한해 동안만도 전세계 81개 대도시에서 무대에
올랐다. 특히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둬 이른바 ‘사라 브라이트만 신드롬’까지 일으킨다.
웨버와의 결별은 사라의 음악적 자존심에서 비롯됐다. 사라에게 웨버는 사랑하는 남편이자,동료이며,음악의 파트너였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그녀의 성공을 웨버의 그늘 덕이라 평가하자 분연히 독자적 행보를 내디뎠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잠시의 공백기를 거쳐 97년 사라는 맹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부른 ‘이별의 시간(Time to say goodbye)’으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이목을 모으며 자력갱생의 위대한 여가수로 재등장한다.
새 천년,사라는 99년 3월에 있었던 남아프리카 선시티 공연실황을 담은 비디오 앨범 ‘에덴에서의 하룻밤
(One Night in Eden)’을 내놓고 또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내 성공은 내 노력의 결과다”라며 웨버가 선사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버린 사라 브라이트만. 올해 이미 마흔
(우리 나이로)에 접어들었지만,아직도 그녀의 노래 여행은 끝나지 않은 듯싶다.
크리스탈처럼 영롱한 목소리를 가진 사라 브라이트만은 오페라의 유령 이나 캐츠로 잘 알려진 최고의 뮤지컬 가수일 뿐 아니라, 대중음악에서 고전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소화해 내는 완벽한 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이들은 그녀를 가리켜 크래시컬 팝 싱어의 여왕이라고도 부른다.사라는 유려한 가창력 뿐 아니라 고음에서
나는 맑고 순수한 느낌과 저음에서 나는 거칠고 싸늘한 느낌까지 다양한 음색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게다가 매춘부에서 천사까지 다양한역을 소화해 내는 그녀의 표정과 연기력은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뮤지컬 가수임을 확신케한다.
하지만 더이상 사라를 뮤지컬 가수라는 이름안에 가둬 놀 수 없게 됐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이혼한 이후 그 녀는 뮤지컬 이외에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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