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DERNISM 음악

Dalida - Bonsoir Mon Amour

 

 

Dalida - Bonsoir Mon Amour (안녕 내사랑)

 

 

 

 

 

Bonsoir Mon Amour

(안녕 내사랑)

 

 

 

 

 

Tu viens de partir
Pour un moment c'est long déjà
Tu es si loin, si loin de moi
Trop loin de moi

Ma vie s'éteint
quand tu t'en vas
Au fond de moi
Quand tu t'en vas

Je sais qu'il te faut partir
Et chaque fois
Je ne peux plus m'endormir
J'entends ta voix

La nuit je pense et je pleure
Et le silence me fait peur

C'est l'heure de dormir
Je veux te dire
Bonsoir

 

방금 그대가 떠났어요
기약도 없이
벌써 길게만 느껴지는군요

그대는 너무 멀리에 있어요
내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요
내게서 너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요


내 삶은 빛을 잃어가고 있어요
그대가 떠나버린 순간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대가 떠나버린 순간에


그대가 떠나야만 했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매번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내가 생각에 잠겨 눈물 흘리는 밤이면
그대의 음성이 들려와요
그리고 침묵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요
이젠 잠잘 시간이예요
나는 그대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안녕, 내 사랑
오늘 난 그대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어요
날 용서하세요
난 몹시 고통스러워요
그대가 없으면 내가 힘겨워 한다는 걸 그댄 알아요
그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랑합니다, 오직 그대만을 사랑합니다
그대 꿈을 꾸고 있어요
안녕, 내사랑
내 유일한 사랑
안녕

 

 

 

 

 

 

 

[Dalida(달리다)]는 이집트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에서음악 활동을 하다가 1987년에 자살한 유명한 여가수이다.

 미스이집트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다가 가수로 전향해서주옥같은 노래를 1000여곡 발표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으로카이로 오페라단의 수석 바이얼린 주자였다.

 

 [Dalida]는 학교를 졸업한 후 모델로활동하다가 미스 이집트 선발대회에서 1위에 오르고 영화배우가 되는데

 이집트에서의보장된 미래를 뿌리치고 21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무작정 파리로 날아간다.
이집트에서의 예명은 삼손과 데릴라에서 이름을 따서 달릴라라고 불렀는데 파리에와서는 부르기 쉽게 [Dalida]로

바꾸었다.

 

영화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파리로왔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그녀는 음악 학원에 등록해서 노래를
배우고 카바레에서 무명 가수로 생활을 한다.

 

그리고 우연히 올랭피아 극장에서 개최한 아마추어노래자랑에 참가해서 그 프로그램의 PD였던 뤼시엥 모리스의
눈에 띄어 가수로서의 기회를 잡게된다.

[Dalida]의 매니저가 된뤼시엥 모리스의 도움으로 1956년에 발표한 [Bambino]를 하룻밤만에녹음을 끝냈지만

100만장이 발매되는 대히트를 치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프랑스에서의 이 기록은 최초의 골드 디스크가 되고 1964년에는 최초의 플래티넘디스크 상으로 그리고 1981년에는

다시 다이아몬드 디스크 상으로 바뀌면서 정상의인기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런 인기에 비해 사생활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는데매니저 뤼시엥 모리스와 결혼했던 그녀는 결국 얼마 못가서 이혼을 하고뤼시엥 모리스는 자살을 하고만다.

그 후로도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2명이 자살을 하고 그녀 역시 1987년 자택에서 자살을 한다



 

 

이집트 출생으로 본명은 Yolanda Cristina Gigliotti  달리다는 세계적으로 10개국 이상의 언어로 노래한 이태리적인

 프랑스 가수며 배우로 세계 6대 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두번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는데 유럽출신 가수로는 달리다 가 유일하며 세계적 다이아몬드 디스크를 받은 최초의 가수였다, 

 

1956년에 데뷰하고 30년간 활동 후 1986년에 마지막 앨범을 내고 은퇴했다.

그러나 몇달 후 약물에 의한 자살로 그녀의 화려했던 생을 마치게 된다. 

그녀는 1967년 연인 텐코와 함께 산레모가요제에 참가하지만 텐코는 결선에 오르지 못한 자책감으로 그만

 자살하고 만다. 

 

몇일 후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던 달리다는 자살을 시도하게된다.  

가까스로 회복한 그녀는 18세의 이태리 학생으로부터 임신을 하게 되고 낙태를 하지만 영영 임신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녀의 전 남편이었던 루시엥 모리스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다.

 

그녀의 주변 인물의 죽음은 계속되었다. 

친구인 가수 마이크 브란트도 1975년 한번의 자살시도 끝에 생을 마감하고.1972년에서 1981년까지 달리다와

 동거했던 리샤르 샹프레도 1983년 차안에서 가스사한다. 

 

1987년 달리다는 다음 글귀를 남기고 약물로 자살하고 만다.

"이제 나의 삶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제발 나를 그만 놔주세요"

그녀의 나이 54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