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둘기처럼)
L'Amore E' Una Colomba
(사랑은 비둘기처럼)
L'Amore è una colomba
Che trema già nelle mie mani
L'amore è una canzone
Leggera come un petalo di rosa al mattino
사랑은 손안에서 떨고 있는 하얀 비둘기
사랑은 아침 장미의 경쾌한 꽃잎의 노래
Non dimenticare non mi far soffrire
Io t 'amo sempre da morire
Non coprirmi il sole con le tue parole
Ripeti ancor che cosa'è
괴롭히지 말아요 잊지 말아요
넘쳐나는 사랑을 껴안고 부드러운 말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마음
L'amore è una colomba
L'amore è una canzone
Io morirò di un sentimento
Io sbaglierò ma non mi pento
사랑은 하얀 비둘기 사랑은 장미의 노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후회 없는 사랑이지만
Io sono un soffio Tu sei la luce
Come'è lontano il primo bacio
Ora che farò se mi dici addio
Amore grande amore mio
Di lasciare te l'ho pensato anch'io
Ma poi mi hai detto che cos'è l'amor
당신이 말로 불빛을 끄지는 말아요
이별을 알려 줄 때가 온다면
나의 사랑은 어디로 흘러가는 건가요
입맞춤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L'amore è una colomba
L'amore è una canzone
Io morirò di un sentimento
Io sbaglierò ma non mi pento
L'amore è una colomba
Che trema già nelle tue mani
사랑은 하얀 비둘기 사랑은 장미의 노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후회 없는 사랑이지만
사랑은 누구의 것인가 장미는 시들어 가네
Casa Bianca
C'e' una casa bianca che, Che mai piu io scordero
Mi rimane dentro il cuore Con la mia gioventu.
어느 동네에 하얀 집 한 채 낡고 무섭고 무너져가는 집
그 집을 다시 세우고 싶어요 추억이란 다 그런 거지요
Era tanto tempo fa, Ero bimba e di dolore
Io piangevo nel mio cuore Non volevo entrare la.
그곳에 난로와 의자와 꿈이 있었죠 그때 난 열여섯이나 일곱이였던가요
세월이 흐르면 알게 되지요 시간이 마음을 속인다는 걸
Tutti i bimbi come me Hanno qualche cosa che
Di terror li fa tremare E non sanno che cos'e.
하얀 집의 기쁨 사라질 거예요 지난 날은 이제 어디로 갔지요
어머니 아버지 그곳에 계실 땐 사방에 온통 사랑이 넘쳤죠
Quella casa bianca che Non vorrebbero lasciare
E' la loro gioventu Che mai piu ritornera.
미움이 문을 닫고 말았던가요 아이들이 전쟁을 어찌 아나요
낡고 무섭고 다 쓰러져 가는 집 동네의 하얀 집 사라지고 없어요
Tutti i bimbi come me Hanno qualche cosa che
Di terror li fa tremare E non sanno che cos'e.
하얀 집의 기쁨 사라질 거예요 지난 날은 이제 어디로 갔지요
어머니 아버지 그곳에 계실 땐 사방에 온통 사랑이 넘쳤죠
E' la bianca casa che, Che mai piu io scordero
Mi rimane dentro il cuore Con la mia gioventu.
어느 동네에 하얀 집 한 채 낡고 무섭고 무너져 가는 집
그 집을 다시 세우고 싶어요 추억이란 다 그런 거지요
E mai piu ritornera
Ritornera.
추억이란 다 그런 거지요
그 하얀 집의 ....
Marisa Sannia는 1947년 지중해에서 시칠리아에이어 두번째로 큰 사르데니아 섬의 최대 상업도시 칼리아리의
이글레시아스에서 태어났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Mrisa Sannia는산레모 페스티벌에서 배출하여 스타로 각광을
받은 가수다.
물론 많은 칸초네스타들에 비한다면 좀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Don Backy(돈 배키)의 원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을 받았던 Casa Bianca(하얀 집)을 불렀던 가수라고 한다면고개를 끄덕일 올드 팬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Mrisa Sannia는 열아홉 때이던 1966년이탈리아 방송사 RAI가 주최한 신인발굴 페스티벌에서 우승하면서 음악계에
모습을나타냈다.
그 뒤 TV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던 그녀는 1968년에 Don Backy가만든 화제의 곡 Casa Bianca로 주목을 받았고 그 해에 TV 페스티벌인칸초니시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실력을 과시했다.
그 뒤 1970, 71년에도 산레모에서 L'amore E Una Colomba와Come E Dolce La Sera로 결선에 오르는 단골손님이 됐고 1984년에도Amore Amore라는 곡으로 행사에 참가했었다.
1968년에는 Casa Bianca와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안개 낀 밤의 데이트)등이 수록된 데뷔작
Marisa Sannia를 시작으로 L'amore E Una Colomba(사랑은 비둘기처럼)이 실린Marisa Sannia Canta Sergio
Endrigo E Le Sue Canzoni(1970)와 Marisa NelPaese Delle Meraviglie(1973)등의 앨범을 내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Marisa Sannia는 1976년 앨범 Lapasta Scotta을 끝으로 활동이 뜸하여 졌고1984년에 산레모 가요제에 얼굴을
드러낸 이후에는 별다른 소식을 전해주지못했었다.
그러다가 1993년 Sa Oghe De Su Entu E De Su Mare로다시 대중앞에 모습을 나타내며 여전한 노래 솜씨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년 이상의 세대라면 [Casa Bianca]란[Canzone(칸초네)] 곡을 기억할 것이다.
[Don Backy]의 원곡인이 노래를 히트시켰던 주인공이 바로 [Marisa Sannia]다.
이탈리아인들의낙천적인 기질을 반영하듯이 대체로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Canzone]는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는데 [Marisa Sannia]는 [Milva(밀바)], [DomenicoModugno(도메니코 모듀뇨)]등 여타 칸초네 가수들에 비해서는 우리나라에 상대적으로덜 알려지긴 했지만 [Canzone]와 동의어로 여겨지는 [San Remo] 페스티벌을 통해 스타로부각되었던 인물이다.
1951년 시작된 [San Remo] 페스티벌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까지 여겨졌는데 역대 [San Remo]
가요제에서 우승했거나 입상했던 가수들은그 자체가 이탈리아 인기 가수들의 계보를 의미한다고 할 정도였다.
이 [San Remo]페스티벌에서 입상한 그녀는 1968년 [Don Backy]의 [Casa Bianca]로 주목을받고 1970년과
1971년에도 [San Remo] 페스티벌에서 [L'amore E UnaColomba]와 [Come E Dolce La Sera]로 결선에 올라
유명해졌다
청초한 목소리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멜로디가돋보이는 곡이다.
이탈리아의 대중 음악인 [Canzone]는 프랑스의[Chanson(샹송)]이나 스페인의 [Cancion(칸시온)]과 마찬가지로 노래를의미하는 말이다.
모두 그 나라의 대중적인 음악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데그 안에는 포크라든가 록 음악등 여러가지 종류의 음악이 포함되지만 그 나름의 특징은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Canzone]의 경우 클래식 음악을 제외한 대중 음악을 일컫는데대체로 쉬운 곡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멜로디로 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경우가많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Canzone]가 [Chanson]이나 [Cancion] 그리고 파두 등의음악과 비교했을 때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업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하다는 점이라할 수 있다.
어쩌면 이들 음악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며 국가와 인종을초월해 사랑받을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Canzone]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San Remo]페스티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산레모 가요제란 이름으로 불렸다.
물론 관광 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탈리아에는 수많은 [Canzone]페스티벌이 존재했지만 1951년 시작된
[San Remo] 페스티벌 만큼 역사와 권위또 대중적인 인기를 지니고 있는 행사는 찾기 힘들다.
역대 [San Remo] 페스티벌에서우승했거나 입상했던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그 명단 자체가 이탈리아 인기 가수들의
계보를의미한다고 할 만큼 이 행사를 통해 등장한 가수들은 대중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빅 히트곡[Volare]로 1958년 8회 대회에서 우승한 [Domenico Modugno]라든지 [Non Ho L' Eta
(나이도 어린데)]로 1964년 14회 대회에서 우승을 한 [Gigliola Chinquetti(질리오라칭케티)]외에도
[Iva Zanicchi(이바 자니치)], [Nicola Di Bari(니콜라 디 바리)]같은 추억의 스타들이 있었고 80년대 이후엔 요즘
젊은 음악 팬들도 잘 알고있는 [Eros Ramazzotti(에로스 라마조띠)]나 [Laura Pausini(라우라 파우지니)]등의
스타들이 등장했었다.
[Aegean Sea(에게 해)] 한가운데 떠 있는 화산섬 [Santorini]는검은 색과 붉은 색 단층이 교대로 낯선 풍광을
보여준다 .
바다와맞닿은 곳에선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 서 있고 그 정상 들판에는 길고 짧은 직선들로이루어진 [Casa Bianca
(하얀 집)]가 들어서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섬의 중심 마을[Fira(피라)]의 야경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 덩어리.
그 자리에서 있는 카페테리아 [Japora(자포라)]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Parthenon(파르테논)] 신전에서 보듯이 그리스는 대리석의 나라다.
때문에 큰 건축물들은 대리석으로 지어져 회색빛을 띤다.
하지만 일반 가옥이나작은 교회당은 순백색이라 눈이 부신다.
시멘트 벽돌 위에 수성 페인트를 칠한 것이다.
백색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은 [Santorini] 어디서나 쉽게 볼수있다.
[Casa Bianca] 덕분에
흰색이 주류를 이루는 이곳에도 파란색은 흔하다. 포도주빛 에게해가 우선 그렇다.
풀장의바닥과 정교회의 돔 지붕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흰색이 햇빛을 반사하여 시원한 눈맛을선사한다면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파란색은 물빛과 하늘빛을 닮아 청량감을 안겨준다.
그리스 국기가 청색과 백색으로 이뤄진 이유를 알 것 같다.섬의 한쪽 끝을 이루는 작은 마을 [Oia(오이아)]는 아침이
늦게 시작된다.
하지만 석양에 붉게 물든 [Casa Bianca]와 이글거리는 바다는 보는 사람의 기를죽이고도 남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오전 11시를 전후해 햇살이 달아오르면 건물의 옥상이나발코니에 등을 다 내놓은 젊은 여자들이
나타나 몸매를 과시하기 시작한다.
이또한 놓칠 수 없는볼거리이다.
뭐니 뭐니 해도 [Oia] 최고의 자랑거리는 [Casa Bianca]가 붉은 꽃을 가득 피운[Bougainvillea(부겐빌레아)]와
만나는 순간 펼치는 색채의 교향악이다. 이곳에 아주 흔한[Bougainvillea]는 분꽃과에 속하는 열대 식물이라 색채가
화려하기 그지없다.
사라져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의 일부분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Santorini] 섬.
[Santorini]를 일러 에게해의 진주 라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Marisa Sannia
칸초네와 민속 음악이 어우러지는 'Casa Bianca'의 스타 마리사 사니아의 앨범
-현대적 감각으로 담아낸 고향 사르데니아의 정서
음반 시장에서 미국세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요즘과 달리 지난 1960년대와 70년대는그야말로 다양한 음악이
사랑받았던 시대라 할 수 있다. 물론 1990년대 후반, '월드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제 3세계의 음악들이 잠깐 관심을 모은 적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 수요층은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었던 반면 60년대와 70년대 이 땅에서는 샹송이나 칸초네 등의 비영어권 음악들도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역시 프랑스의 샹송과 이탈리아의 칸초네였다.
아다모나 에디트 피아프, 자크 브렐, 이브 몽탕, 앙리코 마샤스 등의 샹송 가수와 니콜라 디 바리, 질리오라 친케티, 루치오 달라, 토니 달라라, 밀바, 도메니코 모두뇨 등 칸초네 가수들이 방송을 통해 널리 사랑받았다. 음반 시장에서 팝 음악에 비해 가요가 우위를 점하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대중들이 노랫말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영어에 비해 더욱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샹송이나 칸초네가 그토록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은 지금의 현실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리듬보다는 멜로디에 감상의 우선 순위를 두는 우리 취향에 들어맞는 아름다운 선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샹송의 경우 가수들이 그 노랫말의 전달에 비중을 두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멜로디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고 칸초네 역시 이탈리아인들의 낙천적인 기질을 반영하듯, 대체로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부르기 쉬워 우리 취향에 잘 들어맞는 음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샹송이나 칸초네 곡들이 지닌 아름다운 멜로디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는 일 아닐까... 이탈리아의 대중음악인 칸초네(Canzone)는 프랑스의 샹송(Chanson)이나 스페인의 칸시온(Cancion)과
마찬가지로 '노래'를 의미하는 말이다. 모두 그 나라의 대중적인 음악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데 그 안에는 포크라든가 록 음악 등 여러가지 종류의 음악이 포함되지만 그 나름의 특징은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칸초네의 경우 클래식 음악을 제외한 대중 음악을 일컫는데 대체로 쉬운 곡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멜로디로 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칸초네가 샹송이나 칸시온, 그리고 파두 등의 음악과 비교했을 때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업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하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들 음악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며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사랑받을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칸초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산레모 페스티벌-우리나라에서는 '산레모 가요제'란 이름으로 불렸던-이다.
물론 관광 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탈리아에는 수많은 칸초네 페스티벌이 존재했지만 1951년 시작된 산레모 페스티벌 만큼 역사와 권위, 또 대중적인 인기를 지니고 있는 행사는 찾기 힘들다.
역대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했거나 입상했던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그 명단 자체가 이탈리아 인기 가수들의 계보를 의미한다고 할 만큼 이 행사를 통해 등장한 가수들은 대중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빅 히트곡 'Volare'로 1958년 8회 대회에서 우승한 도메니코 모두뇨라든지 'Non Ho L'Eta(나이도 어린데)'로 1964년 14회 대회에서 우승한 질리오라 친케티 외에도 이바 자니키, 니콜라 디 바리 같은 추억의 스타들이 있고 1980년대 이후엔 요즘 젊은 음악 팬들도 잘 알고 있는 에로스 라마조띠나 라우라 파우지니 등의 스타들이 등장했었다. 1947년 지중해에서 시칠리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사르데니아 섬의 상업도시 칼리아리의 이글레시아스에서
태어난 마리사 사니아 역시 산레모 페스티벌에서 입상하면서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마리사 사니아(Mrisa Sannia) 역시 산레모 페스티벌이 배출한 스타로 주목을 받았다. 물론 위에 열거한 칸초네 스타들에 비한다면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돈 배키(Don Backy)의 원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던 'Casa Bianca(하얀 집)'을 불렀던 가수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올디스 팬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지중해에서 시칠리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사르데니아 섬(Sardegna 혹은 Sardinia)의 최대 상업도시 칼리아리의 이글레시아스(Iglesias)에서 1947년에 태어난 마리사 사니아는 열아홉 때이던 1966년 이탈리아의 방송사인 RAI가 주최한 신인 발굴 페스티벌에서 우승하면서 음악계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뒤 TV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던 그녀는 1968년엔 돈 배키가 만든 화제의 곡 'Casa Bianca'로 주목을 받았고 그 해에 TV 페스티벌인 칸초니시마 (Canzonissima)-1961년부터 시작된 행사로 매해 주제를 정해 행사를 열어서 주목을 받았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실력을 과시했다. 그 뒤 1970년과 1971년에도 산레모에서 'L'amore E Una Colomba(사랑은 비둘기)'와 'Come E Dolce
La Sera'로 결선에 오르는 단골손님이 되었고 1984년에도 'Amore Amore(사랑, 사랑)'이란 곡으로 행사에 참가했었다. 1968년에 'Casa Bianca'와 '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안개 낀 밤의 데이트)' 등이 수록된
데뷔작 "Marisa Sannia"를 시작으로 'L'amore E Una Colomba(사랑은 비둘기처럼)'이 실린 "Marisa Sannia Canta Sergio Endrigo E Le Sue Canzoni"(1970), "Marisa Nel Paese Delle Meraviglie"(1973), 등의 앨범을 내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던 그녀는 그러나 1976년 앨범 "Lapasta Scotta"을 끝으로 활동이 뜸해졌고 1984년에 산레모 가요제에 얼굴을 드러낸 이후 별다른 소식을 전해주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1993년 "Sa Oghe De Su Entu E De Su Mare"로 다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며 여전한 노래 솜씨를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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