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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Renaud & Axelle Red - Manhatan Kaboul

 

 

 

 

 

 

 

 

 

Renaud & Axelle Red  - Manhatan Kaboul

 

 

 

Manhatan Kaboul

 

 

 

Petit Portoricain, bien int?gr? quasiment New-yorkais
Dans mon building tout de verre et d'acier,
Je prends mon job, un rail de coke, un caf?,

Petite fille Afghane, de l'autre c?t? de la terre,
Jamais entendu parler de Manhattan,
Mon quotidien c'est la mis?re et la guerre


Deux ?trangers au bout du monde, si diff?rents
Deux inconnus, deux anonymes, mais pourtant,
Pulv?ris?s, sur l'autel, de la violence ?ternelle


Un 747, s'est explos? dans mes fen?tres,
Mon ciel si bleu est devenu orage,
Lorsque les bombes ont ras? mon village


Deux ?trangers au bout du monde, si diff?rents
Deux inconnus, deux anonymes, mais pourtant,
Pulv?ris?s, sur l'autel, de la violence ?ternelle


So long, adieu mon r?ve am?ricain,
Moi, plus jamais esclave des chiens
Vite impos? l'islam des tyrans
Ceux l? ont-ils jamais lu le coran ?



Suis redev'nu poussi?re,
Je s'rai pas ma?tre de l'univers,
Ce pays que j'aimais tellement serait-il
Finalement colosse aux pieds d'argile ?


Les dieux, les religions,
Les guerres de civilisation,
Les armes, les drapeaux, les patries, les nations,
Font toujours de nous de la chair ? canon


Deux ?trangers au bout du monde, si diff?rents
Deux inconnus, deux anonymes, mais pourtant,
Pulv?ris?s, sur l'autel, de la violence ?ternelle


Deux ?trangers au bout du monde, si diff?rents
Deux inconnus, deux anonymes, mais pourtant,
Pulv?ris?s, sur l'autel, de la violence ?ternelle. 

    



 

 

악셀레드


1968년 벨기에 플라망드 권인 Hasselt에서 태어나 모차르트에서 아메리칸 소울까지 음악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녀는 83년 15살 때,?Fabby라는 이름으로) "Little Girl"이라는 그녀의 첫번째 노래를 영어로 취입한다

(본명 : Fabienne Demal).

 

 85년에 David Bowie와 Lou Reed의 프로듀서였던 Mick Ronson은 그녀의 음반을 듣고 그녀의 목소리에 감격하게

 된다.

당장에 Hasselt로 갔지만 쉽게 성사되지는 못한다. 그 후 그녀는 계속 노래를 하면서 학업에도 열중하게 된다.

연극, 영화, 그리고 그녀의 전공인 법학(변호사 학위 소지)까지... 89년에 Toulouse 출신의 작곡가인 Seff형제

(Diniel et Richard)를 만나게 되면서 "Kennedy Boulevard”라는 곡을 히트시키게 되고, 이 곡은 벨기에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한 첫번째 싱글 앨범이 되었다.

 

 두번째 싱글인 “Aretha et moi”는 Axelle의 영원한 우상인 미국의 소울음악의 여왕인 Aretha Franklin에게 바치는

 곡이었다.

 

 91년 소속사를 Virgin Records로 바꾸게 되면서 93년 첫번째 앨범은 "SANS PLUS ATTENDRE"를 발표한다.

여기서 처음으로 그녀는 자작곡을 5곡씩이나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 역시 이전 앨범의 다섯배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대히트 했다.

 

96년 두번째 정규앨범인 "A Talons"에서 그녀의 꿈을 이뤘다. 그녀는 전곡의 작사작곡은 물론이고 Nashville

스튜디오에서 프로덕션까지 맡게 된 것이다.

이어 97년 흑인 가수 Youssou N'Dour와 98월드컵 공식주제가인 La Cour des grands"을 취입하고 98년

UNICEF 친선대사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Axelle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99년 발표한 앨범 "Toujours moi"서는 "Ce matin", "Parce que c'est toi",

 "Bimbo a moi" 등의 노래가 인기순위 차트 상위권 진입을 기록하면서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이 노래

 "A Quoi Ca Sert"는 97년 감독 겸 배우인 Alain Corneau의 출연작인 "Le Cousin" O.S.T.에 실린 곡이다

 

 

 

 

 

 

 

 

 

 

 

 

 

8년만에 발표한 새앨범 ‘지옥의 소란(Boucan d’enfer)’로 2002년 최고의 가수의 자리에 오른 흐노(Renaud)는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민중 가수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아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 나라의 민중 가수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겠지만. 흐노의 음악 세계는 소외받는 이들의 삶과 그러한 삶의 주변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끈질기게 묘사하고 있다.
흐노라는 가수를 잘 몰랐을때 '제르미날Gérminal'이라는 영화를 봤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그 영화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에티엔 랑티예(Etienne Lantier)의 연기를 했던 배우가

 흐노라는 사실을 얼마전에 알았다.

그리고 영화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내세우며 탄광에 노동운동의 씨앗을 키우던 에티엔은 바로 흐노 자신이 살아온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흐노는 1952년 5월 11일 파리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평범하지만, 편안한 가정 속에서 별문제없이 보낸다.

 

학교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었던 흐노는 미술과 불어 교과에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68년 5월 학생 운동이 발발했을 때, 한 달 동안 학생 운동에 참여한다.

 

이때 흐노는 소르본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그 당시의 정황을 처음으로 노래로 표현해서 불렀고, 이 것이 그의

첫 번째 창작 활동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흐노는 서점에 일을 시작한다.

72년에서 73년까지 그는 카페를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서 노래를 만들고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미셀이라는 아코디언 연주자를 만나게 되고, 둘은 거리의 악사가 되어 길거리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공연을 한다.

 

 흐노의 인기를 조금씩 모아가기 시작했고, 카페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함과 동시에 75년 그의 첫 앨범 ‘파리를 갈망하는

Amoureux de Paname’을 발표한다. 가수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한 흐노는 78년 그의 두번째 앨범

 ‘Laisse béton’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엄청난 성공을 거둘뿐 아니라, 앨범 제목부터 verlan(단어의 철자를 바꾸어서 사용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프랑스 언어와 관련해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cf. ‘laisse béton’은 ‘laisse tomber(집어치우다. 그만두다)’라는 표현에서 ‘tomber’라는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서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계속해서 흐노는 소외된 삶을 노래하며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상업적인 성공까지 동시에 얻게 된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음반의 판매 수익등으로 부를 획득한 흐노가 노래하는 서민들의 삶에 대해서 사람들은 조금씩 회의를 갖게 된다.

따라서 흐노는 상업적인 광고를 자제하지만, 여전히 그는 앨범을 발표할 때 마다 꾸준히 6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다.
91년 흐노는 어려서부터 숙원해오던 배우라는 직업에 첫 발을 디디게 된다.

 에밀 졸라(Emile Zola)의 작품 ‘제르미날(Gérminal)’을 영화화 한 크로드 베리(Claude Berri)의 영화

‘제르미날’에서 광산에서 노동운동의 불씨를 키우는 에티엔 랑티에(Etienne Lantier)의 역할을 훌룡하게 연기한다.

그 후 두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한 흐노는 96년 민중 가수로 알려진 조르쥐 브라상(Gerges Brassens)의 노래 23곡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다시 녹음을 한다.
97년 흐노에게는 아주 힘겨운 시련들이 시작된다. 아내와 헤어진 그는 의기 소침해졌고, 그 슬픔은 그를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그를 이끌었다.

 

99년부터 흐노느 파리를 제외한 소극장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여는데, 그는 피아노 연주자와 기타 연주자 둘과 함께 공연을 계속했다. 관객들은 이 공연을 ‘기타, 피아노 그리고 흐노(une guitare, un piano et Renaud)’라고 명명을 했고,

 흐노는 이 공연에서 두 곡의 미발표곡(‘Elle a vu le loup’와 ‘Boucan d’enfer’)을 포함해 자신의 히트곡을 불렀다.

 

 흐노는 첫번째 미발표 곡에는 흐노가 젊은 시절 자신의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는 과정에 대해서 노래를

 하고 있고, 두번째 곡에는 아내와 헤어진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이 공연은 2001년 봄까지 계속되었다.

흐노는 94년 이후 처음으로 새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28일 새앨범 ‘Boucan d’enfer’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발매 1주일만에 무려 4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흐노는 이 앨범으로 2002년 프랑스 샹송제에서 최고의

가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또한 흐노는 이 앨범의 녹음과 동시에 ‘Crime Spree’라는 새로운 영화 촬영에 돌입했는데, 제라드 드파르디유

(Gérard Depardieu), 조니 할리데이(Johny Hallyday) 등이 함께 이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민중가수 흐노는 자신의 노래 속에 항상 소외된 이들의 삶과 사회적인 문제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노래 속에서는 속어들도 많이 나올뿐 아니라, 신조어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가 만들어 낸 신조어는 호베르 사전

(Le petit robert) 사전에 까지 올라있다고 한다.

그는 작년 5월에 발표한 악셀 레드(Axelle Red)와의 듀엣곡 ‘Manhattn-Cabul’에서는 9.11일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칸 공습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 곡은 프랑스의 반전무드와 함께 여전히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최고 남자 가수상의 시상식장에서 그는 "예술가와 지식인의 역할은 난폭함barbarie에 맞써 싸우는 것"라고 강조할

정도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굳건히 하고 있다.


흐노 팬페이지 :
http://www.sharedsite.com/hlm-de-rena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