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nyaya Pesnya(가을의 노래)/Anna German(안나 게르만)
Osennyaya Pesnya(가을의 노래)
Viyhazhu Adna Iya Na Darogu
vyihazhu azin iya na darogu
skvozituman kremnistyi pustz blertzit
notchi tzikha pustyinya vnemlet bogu
I zvezda zvezdoiu gavarit
가을의 정원으로 나를 부르는 지나간 추억들,
오렌지 색 차림으로 불타오르고.
신선한 공기와 하늘에서 울고 있는 학들,
우리에겐 영원히 이별은 없을 것 같았어.
서로 헤어지지 않고, 마치 공기와 물처럼,
너와 나는 함께 있을 줄 알았어.
nebesakh torzhestvenna I tchudna
spit zimliya siyannie golubom
schuto zhe mne tak bolno I tak trudna
zhudu li iya tchivo zhaleiu li a tchiom
ush ni zhu ot zhizni nitchivo iya
I ni mne proschulova nitchutz
iya ischu svabodyi I pakoiya
iya b hatzel zabyitziya I zasnutzya
가을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 차림은 이제 불타오르지 않으니,
나는 고요해진 정원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추억이 모든 소망과 모든 사랑을 다시 돌려주었으면.
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구나,
너의 말들이 따뜻한 불꽃처럼
나를 과거의 시간 속으로 부르는구나.
나는 알고 있지,
내가 널 잊지 못할 거란 것을...
Anna German (1936-1982)
안나 게르만(Aanna German)은 우즈베키스탄의 작은 마을 우르겐치에서 1936년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윈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성이 다른 '게르만'인인 폴란드인을 아버지로 맞게 된다.
그러나 새아버지마저도 전쟁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안나는 어머니와 함께 새 아버지의 주검을 찾아 폴란드로 이민을 떠난다.
10살의 소녀 안나 게르만에게는 그때 부터 폴란드어는 모국어가 되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음악을 시작하였는데 지질학을 전공하던 그녀가 친구에게 이끌려 무대에 서게 된 것이 음악 인생의 전기가 되었다.
얼마 후 그녀는 국제 가요제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순회공연을 갖게 된다.
1964년 오폴레에서 열린 제2회 폴란드송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고, 소련의 국영 레코드사인 멜로디아와
첫 앨범을 발매하며 모스크바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7년에 그녀는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하여 이태리의 Dalida와 실력을 겨루기도 했는데 그녀는 이 때 부터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태리에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성공의 탄탄대로를 걷던 안나는 자동차 사고로 인해 거의 죽음에 이를 뻔 하여 모든 음악 생활을 중단했었다.
그 후1970년에 멜로디아의 편집장인 아나 까찰리나의 권유로 당시 소련 최고의 작곡가인 알렉산드라 빠흐무또바의
'희망'을 녹음하게 되고, 또한 러시아 로망스를 주로 노래하면서 그녀의 명성이 소련에서 되살아나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활동을 재개한 그녀는 미국에서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지만, 1980년 호주에서 가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시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바르샤바에서 46세(1982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자신의 맑고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러시아 로망스를 더욱 아름다운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특히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해서 러시아 음악 발전에 지한 공헌을 해 온 국민적 공훈가수 알라 뿌가쵸바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 로망스의 대명사 안나게르만(1936-1982)은
우즈베키스탄의 산골에서 태어나 폴란드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지질학을 공부하던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폴란드 송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되는데 영광의 날 만큼이나 고통의 날도
준비되어있던 Anna German은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심한고통을 받으면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진 공연을
마지막으로병마에 시달리다가 46세라는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프랑스의 페르라세로 묘지에 잠든 쇼팽은 안나게르만이 보낸 이 음악편지를 받아 보고 행복하리라
1936년 지금의 우즈벡키스탄의 작은 마을 우르겐치에서 태어났다
1964년 오폴레에서 열린 제2회 폴란드 송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수상,소련의 국영 레코드사인 멜로디아와
첫 앨범을 발매하여 모스크바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1967년에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하여 이탈리아의 달리다와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이 때부터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더욱 큰 성공을 거둔다
영광의 날들 만큼이나 고통의 날들도 준비되어 있었던 안나 게르만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198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병마에 시달리다 46세라는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안나 게르만'은
1936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10세 때 폴란드로 이민을 떠났다
1982년 46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활동 기간 동안 풍부한 성량, 그리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러시아 로망스'란 ..
'러시아의 위대한 여성 보컬 시리즈'중 그 첫 작품은 '안나 게르만'의 정원에 꽃이 필 때이다.
이 여가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생소한 '러시아 로망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다면, 우리의 '가곡'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사랑과 이별, 인간의 영혼,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가사와 단조의 음계로 만들어진 음악으로서,
많은 부분 가수의 목소리에 의존하면서 고전음악에 사용되는 악기가 그 뒤에 깔리는 경우가 많다.'러시아 로망스'는 18세기 말경에 생겨나 귀족층의 예술로 사랑을 받아오다가 20세기 초에는 지식인층에도 많이 알려져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지만,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부르조와들의 노래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로망스가 자리했던 곳에는 사회주의 혁명의 수행과 성공을 내용을 담은 혁명 찬가들이 채워졌다.
그러나 그러한 혹독한 시간 속에서도 로망스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그 아름다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있다.
러시아 로망스의 대명사 '안나 게르만' .. 로망스를 부른 많은 여자 가수들이 있지만, '안나 게르만'은 그 음악의 깊이로
보나, 러시아 로망스에서 차지하는 그녀의 위치로 보나 '러시아의 위대한 여성 보컬 시리즈'의 첫 장을 장식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녀는 지난 1980년대에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도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을 정도로
로망스를 불렀던 당대 최고의 여가수였다.
'안나 게르만'은 1936년 지금의 우즈벡키스탄의 작은 마을 우르겐치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소련정부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되어 아버지를 여읜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성이 '게르만'인 폴란드인을 아버지로 맞게 된다.
그러나 새 아버지마저도 전쟁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안나'는 어머니와 함께 새 아버지의 주검을 찾아 폴란드로 이민을 떠난다.
10살의 소녀 '안나 게르만'에게 이제 폴란드어는 모국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음악을 시작하였다.
지질학을 전공하던 그녀가 친구에게 이끌려 무대에 서게 된 것이 음악인생의 전기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몇 달 후에 열린 국제 가요제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그녀는 순회 공연을 갖게 된다.
1964년 오폴레에서 열린 제2회 폴란드 송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고, 소련의 국영 레코드사인 멜로디아와
첫 앨범을 발매하며 모스크바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7년에 그녀는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하여 '달리다(Dalida)'와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그때 당시 '달리다'는 타고난 빼어난 미모와 감성적인 음성을 앞세워 음반시장을 장악했었다.
이때부터 '안나 게르
성공의 탄탄대로를 걷던 '안나'는 대형 교통사고로 인해 거의 죽음에 이를 뻔했다.
이후 모든 음악 생활을 중단했다가 1970년에 멜로디아의 편집장인 안나 까찰리나의 권유로 당시 소련 최고의 작곡가인
알렉산드라 빠흐무또바의 '희망'을 녹음하게 되었고,
또한 러시아 로망스를 주로 노래하면서 그녀의 명성이 소련에서 되살아나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활동을 재개한 그녀는 미국에서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지만, 1980년 호주에서 가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시 병마에 시달리게 되어 결국 1982년에 바르샤바에서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호주에서 마지막 공연을 한뒤 2년뒤쯤이다.
그녀는 자신의 맑고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러시아 로망스를 더욱 아름다운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특히,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해서 러시아 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영광의 날들만큼이나 고통의 날들도 준비되어 있었던 안나 게르만은 심한 교통사고로 십수년간을
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46살의 나이로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녀가 남긴 러시아의 로망스들은 먼 곳에서 온 기쁜 편지처럼 우리들 마음을 적시고
있다.
Anna German (안나 게르만)은 1936년. 지금의 우즈벡키스탄의 작은 마을
우르겐치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생부를 잃고 어머니가 재가 하게 되어 계부의 성을 따라 German 으로 바꿨는데
그 계부마저 전쟁에서 죽는 서글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폴란드로 이주한 안나 게르만은 학교에서 평범한 지질학을 공부하면서 학창생활을 보냈는데
1964년 오폴레에서 열린 제2회 폴란드 송 페스티발에서 뜻 밖에 대상을 수상. 소련의 국영 레코드사인 멜로디아와 첫 앨범을 발매하여
모스크바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7년에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하여 이탈리아의 달리다와 실력을 겨루기도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더욱 큰 성공을 거둔다.
이후 자동차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하게 되자 잠시 음악 생활을 중단 했다가 1970년에
멜로디아의 편집장인 안나 까찰리나의 권유로 당시 소련 최고의 작곡가인 알렉산드라 빠흐무또바의 "희망"을 녹음하게 되었고, 또한 러시아 로망스를
주로 노래하면서 그녀의 명성이 소련에서 되살아나게 되었다.
음악활동을 재개한 뒤 미국에서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지만, 198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시 병마에 시달리다가 결국 그녀는 바르샤바에서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비운의 너무나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맑고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러시아 로망스를 더욱 아름다운 장르로 승화
시켰으며, 특히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해서 러시아 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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