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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Caterina Valente-Flamenco Espanol

 

 

 

 

 

 

 

 

 

 

 

 



Caterina Valente-Flamenco Espanol


 

 

Flamenco Espanol

 

 

 

 
Flamenco espanol.
La milsica del sol.


Gitano he gitano einfach doll.
Flamenco espanol
en el pais del sol.
Gitano he gitano wundervoll.

Eviva la cancion.
Eviva el patron.
Und die Gitarren
Plim-wi-di-bim...

Wie liebe ich sie.
Eviva el bailador.
Eviva el amor.

Und Andalusiens
Plim-wi-di-bim...
vergesse ich nie.

Eviva el Flamenco Flamenco espanol.
Und die Musikdie ruft mich he komm wieder
komm wieder zu mir.

Eviva el Flamenco Flamenco espanol.
Wenn die Musik ich hor'
dann komm ich wieder Jadann komm
ich wieder zu dir.Flamenco espanol


 

 

 

 

 

 

 



 '노래하는 통역'이라 일컬어지는 카테리나 발렌테는 1931년 1월 파리에서 이탈리아계 어머니와 스페인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자그만치 11남매 중 열번째 딸이었다.

카테리나 발렌테의 부모는 모두 연예인이었다.

 

 아버지는 코미디언, 어머니 마리아 발렌테는 가수였기 때문에 카테리나 발렌테는 어렸을 때 부터 별로 힘들이지 않고

운명의 손에 이끌려 노래의 세계로 간듯하다.


카테리나 발렌떼가 연예 가족의 일원으로 처음므로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보인 것은 5세 때, 그녀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였다.

카테리나 발렌테의 귀염성스런 눈동자, 활기에 찬 춤, 비상한 노래 솜씨는 노래하는 귀여운 천사로서 순식간에 파리의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소녀 카테리나 발렌테는 가족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 . 스페인 . 러시아 등지의 무대를 순회하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가수들 중에서 어학의 천재라고 하면 곧 카테리나 발렌테가 연상되지만
영어·불어·독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 심지어

러시아어까지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국제적인 가수라는 의미에서 그녀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역 가수들 중에서는 비키나 나나 무스쿠리가 독어 ·불어 ·영어로 노래하지만, 라틴 ·샹송 ·재즈 ·팝송 등

각국의 히트곡을 그 나라 언어로 멋지게 불러 제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최초의 국제적 대중 가수로

카테리나 발렌테의 이름을 꼽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소녀 시절의 방랑의 예인 생활은 평생토록 그녀의 노래 생활 위에 비치는 화사한 태양의 축복이 되었다.

카테리나 발렌테의 육감적인 분위기에 넘치는 스페인풍의 창법, 델리커시한 향기 그윽한 샹송, 또 재즈 보컬의 멋진

필링 등 그녀의 풍부하고 빛나는 재능이야말로 노래하는 통역으로서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카테리나 발렌떼의 성공의 가도에는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어 그녀가 대스타가 되기까지에는 꽤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였다.

 그녀가 스톡홀름의 어느 작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을 무렵, 이 이름 없는 나이트 클럽의 젊은 여가수를당시 서독의

인기 밴드 리더였던 쿠르트 에델하겐이 발견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에델하겐 밴드의 전속가수가 되었고, 그무렵 서독 주둔 미군을 상대로 한 밴드의 위문공연에 참가하여 Gl들 앞에서 노래하며 춤추게 되었다.


    그때 카테리나 발렌테는 23세, 바야흐로 꽃이 화려하게 만개된 나이로 Gl들 사이에서 전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마침내 레코드계의 프로포즈를 받기에 이르렀다.


    1954년 그녀는 당대 최고의 인기 악단 리카르도 산토스와 콤비로 '말라게니아' '산들바람과 나' '그라나다' 등 일련의 라틴 음악을 노래한 레코드를 발표함으로써 마침내 독일 경음악단의 스타가 되었다.

 원래 1950년대의 독일 경음악계는 아메리칸 재즈의 매력을 도입해서, 오래되고 독자적인 그들 자신의 음악 전통속에

새로운 감각을 채택하는 것을 특색으로 하고 있었다.


    바로 이무렵에 등장한 카테리나 발렌테의 노래는 소위 클라식의 리트 Lied적인 스타일에서 샹송풍의 콘티넨탈한 무드,

전후 독일에서 널리 애호된 미국의 팝송적인 감각을 골고루 포함하는 폭넓은 영역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독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카테리나 발렌테는 서독 대중 음악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남아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녀가

진정으로 자랑으로 여기는 것은 라틴 아메리칸 무드로 '말라게니아'와 같은 스페인의 환상을 노래해서 그녀의 오른쪽에 설 만한 가수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데뷔곡 '말라게니아'가 미국에서 대히트한 것은 1955년,그 뒤 영국의 데카 레코드로 이적, 여기서 또 하나의

대히트곡인 '정열의 꽃 Passion flower'을 1959년 여름에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인기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당시 그녀는 28세, 인생의 원숙함이 감도는 한 사람의 여인을 노래하면서 전세계의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던 것이다.

강렬한 여인의 정염을 한평생을 통해 일관해 온 길고 긴 가수 생활, 카테리나 발렌테의 노래는 여전히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 나는 새로 구입한 레코드를 정리하다가 문득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는 듯한, 한 나이 든 여인의 사진을 보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카테리나 발렌테, 나우 Caterina Valente, now'라는 타이틀 아래 수줍은 듯한 미소를 머금은 선한 초로의 여인의

모습, 그것은 이미 예전의 미모를 잃어버린 여인 카테린나 발렌테 였던 것이다.


라틴계 여성 특유의 육감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전성시대의 카테리나 발렌테의 미모가 강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만큼, 잔주름이 얼굴에 새겨져 어딘가 초췌하고 실제 나이보다 더욱 쇠잔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도저히 현실로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황금의 시절 Goldne Tage'을 독일어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역시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노래로써 일생을 관철해 온 여인의 보석과 같은 존귀함이 넘쳐흐르는 것이 아닌가.


    카테리나 발렌테는 지금 나이 벌써 53세, 그녀의 노래 '황금의 시절'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무한한 애정과 그리움을

느끼곤 한다.
  카테리나 발렌테는 아직은 과거의 페이지 속에 갇혀 버릴 여인이 아니다


 

 

 

 

 

La Golondrina(제비)를 처음 부른 프랑스 출신의 가수Caterina Valente 는
불어, 이태리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와 스웨덴어, 6개국어로
녹음했던 다국어

아티스트로 노래하는 통역이라 불립니다.


 


매혹적인 용모와 신선한 목소리,고음과 저음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기교가

빛나는수많은 라틴 음악계열의 레퍼토리를 전 세계에 퍼뜨리면서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까떼리나 발란떼는 라틴음악의 여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조영남의 '제비'로 번안되어 잘 알려진 Caterina Valente 의
La Golondrina는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노래입니다.


 


까떼리나 발란떼의 그 청아한 목소리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눈을 감고 상상속에서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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