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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Andrea Bocelli Ft CHristina Aguilera -Somos Novios

 

 

album



 

 

 


Andrea Bocelli Ft CHristina Aguilera -Somos Novios



 

Somos Novios

 

 
Andrea:
Somos novios
Pues los dos sentimos mutuo amor profundo
Y con eso ya ganamos lo más grande
De este mundo

우리는 연인이지요
우리 두 사람은 마음 속 깊은 서로의 사랑을 느끼죠
그리고 그것으로 이미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을 얻었어요

Nos amamos, nos besamos
Como novios
Nos deseamos y hasta a veces
Sin motivo, sin razón
Nos enojamos

우리는 사랑하고
키스를 하며
서로를 원했지만,
때때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서로에게 화를 내기도 했어요

Christina:
Somos novios
Mantenemos un cariño limpio y puro
Como todos
Procuramos el momento más oscuro

우리는 연인이지요
우리는 청결하고 순수한 애정을 유지했죠
모든 사람들처럼
우리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노력했어요

Both:
Para hablarnos
Para darnos el más dulce de los besos
Recordar de qué color son los cerezos
Sin hacer mas comentarios
Somos novios

보다 더 대화를 나누고
키스중에서 가장 감미로운 키스를 나누기 위해서
앵두나무가 무슨 색인지 기억하면서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면서
우리는 연인이지요

Christina:
Ohh ooh ooh, ohh yeah
오오오오, 오 예

Both:
It's just impossible
이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예요

Nos amamos, nos besamos
Como novios
Nos deseamos y hasta a veces
Sin motivo, sin razón

우리는 사랑하고
키스를 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원했지만,
때때로 아무런

Andrea:
Nos enojamos
이유도 없이

Christina:
Sin motivo, sin razón
서로에게 화가 나기도 했어요

Andrea:
Somos novios
우리는 연인이지요

Both:
Mantenemos un cariño
우리는 청결하고 순수한

Andrea:
Limpio y puro
애정을 유지했죠

Christina:
Yeah
그래요

Andrea:
Como todos
모든 사람들처럼

Christina:
Como todos
모든 사람들처럼

Andrea:
Procuramos
우리는

Both:
El momento más oscuro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노력했어요

Christina:
Ohh yeah
오 그래요

Para hablarnos
Para darnos el más dulce de los besos
Recordar de qué color son los cerezos
Sin hacer mas comentarios

보다 더 대화를 나누고 키스중에서
가장 감미로운 키스를 나누기 위해서
앵두나무가 무슨 색인지 기억하면서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면서

Andrea:
Somos novios
우리는 연인이지요

Christina:
Somos novios
우리는 연인이지요

Andrea:
Entre novios
이 세상 모든 연인들 중에서

Christina:
Ooh


Both:
Somos novios
우리는 연인이지요

 

 

 

이 곡은 맹인인 안드레아 보첼리가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만 듣고 너무 좋아서 듀엣을 청했다는 곡

안드레아는 크리스티나를 무척이나 예뻐하는 것 같다.

위의 영상을 보시면 안드레아가 크리스티나에게 이렇게 말해요,

"크리스티나, 기억해요, 당신은 천사에요.."

 

역시 마음의 눈으로 봐서 아는걸까,

크리스티나는 겉은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한없이 속깊고 여린 여자라는 것을

 


 

 

 

 

 

그는 1958년 9월 22일 토스카나 주(州)의 Laiatico 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내인 Enrica와 자식들인 Amos,그리고 Matteo와 가족농장에서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인 Sandro Bocelli는 'Chianti Bocelli'라고 불리우는 와인을 제조하고 있다.

 

그가 음악적인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부모들은 그가 6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고, 후에는 플롯과 섹소폰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Pisa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고,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음악을 하기 전에는 1년 여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다.

1992년에 Zucchero Fornaciari는 그가 발라드에서 오페라의 아리아까지 모든 형식의 음악을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발탁했다.

 앞을 못보는 장애는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가로막지 못하였고, 다른 활동들을 가로막는 장벽을 깰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시각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고, 12살 때 축구경기 중의 사고는 그의 시력을 완전히 빼았았다.

가수인 Zucchero는 그를 1992년에 Miserere 앨범 작업에 참여시켰고, Luciano Pavarotti가 등장하는 세계적인 음반이 되었다.1993년에 그는 Zucchero의 유럽 투어 연주에 동행했고, 솔로로 Nessum Dorma(공주는 잠 못들고)를 불러서 큰 환호를 받았다.San Remo 가요제에서의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곳에서 그는 최고의 인상을 관중에게 심어주었다.

1994년 9월, 그는 Modena에서 열린 Pavarotti의 공연에서 게스트로 초대되었고, 솔로곡을 부르고 Pavarotti,

Bryan Adams, Andreas Vollenveider, Nancy Gustavsson 그리고 Giorgia와 같이 듀엣곡을 불렀다.

그는 클래식계(界)에서 큰 명성을 얻었으며, 오페라와 콘서트 리사이틀 등에서 활동했다. 그는 199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황 앞에서의 공연을 비롯해서 국제적인 음악제 등에 많이 참가했다.

1995년 12월에 그는 Al Jarreau, Bryan Ferry, Roger Hodgson와 같이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스페인, 프랑스

투어를 했으며, 45만이상의 사람들이 라이브 공연을 보았다.

그의 두 앨범인 ANDREA BOCELLI와 BOCELLI는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의 차트에 진입했고, 상당한 기간동안 인기가 있었다.

그의 2집인 Bocelli는 이탈리아에서 더블 플레티넘을 기록했고, 벨기에와 독일, 네덜란드에서 역시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그의 노래인 'Con te Partiro'(Time To Say Goodbye)는 프랑스에서 6주간 1위를 지켰고, 벨기에에서는 12주 동안 1위를 지켰다.
나폴리 전통음악과 유명한 아리아를 혼합한 3집 VIAGGIO ITALIANO가 발매되었을 때, 불과 몇 달만에 30만 이상이 팔렸다. 그의 앨범 ROMANZA는 서구를 강타했다.

1999년 독일,그 앨범의 수록곡들은 소프라노인 Sarah Brightman과 듀엣으로 부른 "Time To Say Goodbye"처럼

 각종 팝으로 소개되었고, 곧바로 각종 차트에 상위에 올랐으며, 'Con te Partiro'의 싱글 버전은 300만장 이상

 팔렸으며,6개의플래티넘을 기록했다.

"Time To Say Goodbye"는 이전의 싱글 앨범 판매량보다 100만장이상 더 팔렸다.

독일에서 'Time to say Goodbye' 는 14주 동안 1위를 지켰다.Romanza 앨범은 판매지역 모두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모두에서 차트 1위와 100만장 이상이 팔렸다. 그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가장 늦게 앨범이 발매된 영국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탈리아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안드레아 보첼리는 선천성 녹내장을 앓았다.

부모는 농기구를 팔고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했는데, 특별한 음악적 재능은 없었다. 보첼리는 6세 때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해 몇 년 뒤에는 플루트와 색소폰도 연주했고 집에 있는 이탈리아 테너 가수들의 음반을 따라 불렀다.

12세 때 축구를 하다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뇌출혈을 일으키면서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시력 장애에 굴하지 않고 피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피아노 바와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러 학비를 벌었다.

 학위를 받은 뒤에는 1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으나 음악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테너 프랑코 코렐리에게서 성악을 배웠다.

1992년 보첼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탈리아의 팝 스타 추케로 포르나차리로부터 저명한 성악가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위해 만든 곡 〈Miserere〉의

 데모 음반을 녹음하자는 요청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파바로티는 보첼리의 목소리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벗으로 삼기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보첼리는 녹음 계약에

서명했다.

 

그의 데뷔 앨범은 유럽에서 플래티넘 음반이 되었다.

1995년에는 〈Con te partiro〉가 출시되었다. 나중에는 이 노래를 새러 브라이트먼과 함께 영어로 부르기도 했는데, 2곡 모두 대히트를 기록했다.

1999년 보첼리는 고전음악가로는 드물게 오페라와 대중음악 양쪽에서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그는 1997년 출시 음반 〈Romanza〉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음반은 줄잡아 1,500만 장이 팔렸다.

1999년에 나온 〈Sogno〉가 출시된 지 2개월이 안 되어 약 300만 장이 팔리면서 보첼리는 대중음악 차트 1위에

오른 앨범을 가진 첫 고전음악가가 되었다.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보첼리는 주로 콘서트에서 공연했다.

 

1999년 그는 그래미상 최우수신인상 후보에 올랐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팝 스타 셀린 디온과 함께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The Prayer〉를 불러 기립 박수를 받았다. 1999년에는 '보첼리 열풍'이 이탈리아로부터 유럽 전역을 거쳐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이르렀다.

보첼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오페라라고 하면서도, 녹음을 할 때 아리아에 대중음악을 섞는다.

이를 가리켜 매스컴에서는 '팝페라'(popera)라고 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오페라계에서 진지하게 다루기에는 너무 경량급이라고 보첼리를 폄하한다.

그러나 그는 1999년 7월에 오페라〈The Merry Widow〉에서 아리아 3곡을 불렀고, 11월에는 미시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줄 마스네의〈Werther〉에서 주역을 맡아 미국 오페라 관객 앞에 선을 보였다. 1999년이 저물 때

 보첼리는 뉴욕시티의 새해 전야제로 열리는 밀레니엄 콘서트 '세기의 파티'에서 공연했다.

이후에도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오페라 〈라보엠〉<토스카〉 음반을 녹음하기도 하고,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정명훈 지휘로 오페라〈나비부인〉에서 핑커톤 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정통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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