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Moon Rising
I see the bad moon rising.
I see trouble on the way.
I see earthquakes and lightnin'.
I see bad times today.
나는 나쁜 달이 뜨는 걸 봅니다.
앞길에 근심이 보여요.
나는 지진을 보고 번개를 보아요.
오늘 나는 나쁜 시간을 봐요.
CHORUS:
Don't go around tonight,
Well, it's bound to take your life,
There's a bad moon on the rise.
오늘 밤엔 돌아다니지 마라.
음, 그것이 당신 목숨을 얻으려고 졸라매요.
저 위에 나쁜 달이 있어.
I hear hurricanes ablowing.
I know the end is coming soon.
I fear rivers over flowing.
I hear the voice of rage and ruin.
나는 태풍이 부는 소릴 들어요.
나는 곧 종말이 온다는 걸 알아요.
나는 홍수가 두렵습니다.
나는 격노한 파멸의 소리를 들어요.
CHORUS
All right!
Hope you got your things together.
Hope you are quite prepared to die.
Looks like we're in for nasty weather.
One eye is taken for an eye.
좋아!
당신이 모든 것을 얻었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죽을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악천후 속에 놓여 있는 것 같네요.
(태풍의) 한 눈이 또 한 눈을 움켜쥐려 합니다.
CHORUS
John Fogerty가 흑인음악을 출발점으로 하게 된 배경은 두 가지가 추측이 됩니다.
첫째는 그의 음악 스승 Barry Olivier (1935년생 미국)의 영향 때문입니다.
Barry Olivier는 CCR멤버들과 같은 지역 Berkeley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살았는데,기타리스트이며, 지역라디오방송에서 <The Midnight Special>이란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했고,58년부터 70년까지 매년 행사로 The Berkeley Folk
Festival이란 음악축제를 개최했습니다.
이 포크페스티발에 참가한 뮤지션들을 보면 Pete Seeger나 Joan Baez 같은 백인 포크뮤지션도 있지만,
Mississippi John Hurt나 Mance Lipscomb 같은 흑인뮤지션들도 있습니다.
당시 많은 흑인뮤지션들은 블루스와 포크 그리고 컨추리블루스를 함께 불렀습니다.
존포거티가 이들 흑인뮤지션들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지만,CCR이 포크/컨추리/블루스를 망라해 모두 CCR식 swamp rock으로 바꾼 것을 보면 연관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존포거티의 음악스승 Olivier가 라디오 프로명을 The Midnight Special로 명명한 것과,
CCR이 흑인뮤지션 Lead Belly의 “Midnight Special”을 리메이크한 것을 모두 우연의 일치라고 보긴 어렵겠죠.
둘째는 존포거티의 군대복무 경력 (66년~67년)입니다.
이 때 흑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좀더 밀착해서 공부하지 않았나 추측이 됩니다.
그 근거로 존포거티가 “Proud Mary”의 작곡을 군대 제대 바로 직후에 완성했다는 점을 눈여겨 봅니다.
CCR의 1집 앨범에서 흑인음악 “Susie Q” 리메이크가 히트곡이 되자,2집 앨범에는 100% 흑인음악 지향의
“Keep on Chooglin”과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이 반반 섞인 “Proud Mary”를발표했는데, 흥행성공은 “Proud Mary”가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3집에는 어떤 곡을 올려야 할까요? 흑인음악/백인음악 반반 아니면 백인음악이 좀더 많이 섞여야 하겠지요.
3집의 히트곡은 “Bad Moon Rising”입니다. 이 노래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백인음악의 멜로디가 있습니다.
그것도 주절과 후렴 모두에 확실한 멜로디가 있습니다.
다만 흑인음악의 영향으로 멜로디 자체에 강한 리듬이 들어있습니다.
존포거티 식으로 노래를 하면 무반주에 노래를 해도 강한 박자가 느껴집니다.
정규앨범 발표 한참 전인 69년 4월에 서둘러 발표한 싱글은 미국 빌보드Hot100 2위를 하고,영국싱글차트에선 1위를
하고 특히 아일랜드 지역에서도 1위를 합니다.
존포거티의 가계가 아일랜드 이민자라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을 했을 겁니다.
첫 번째 동영상은 CCR의 초기 공연 모습입니다.
강한 리듬이 느껴집니다.
두 번째 동영상은 John Fogerty의 2010년 로테르담 공연 모습입니다.
강한 리듬을 뺀 오케스트라 반주에도 곡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수려한 멜로디라인을 만들어냅니다.
멜로디가 유럽음악(백인음악) 스타일 맞습니다.
세 번째 자료는 Thea Gilmore (79년생 영국)이 2004년 리메이크한 곡 “Bad Moon Rising”입니다.
타악기 리듬을 아예 빼내고 멜로디만 영국 포크 스타일로 부르는데 이것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Bad Moon Rising”의 가사는 그리 대단한 내용이나 감성은 없습니다.
존포거티가 미국의 단편소설 “The Devil and Daniel Webster”를 영화로 제작한 “All That Money Can Buy”를 보고 가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불길한 징조의 붉은 달이 뜨면 곧 불행이 닥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내용입니다.
소설 “악마와 다니엘웹스터”는 1937년 미국인 작가 Stephen Benet (1898~1943)이 썼습니다.
줄거리가 가난한 농부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10년간 부자로 살다가 10년 기한이 된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는 독일 전래민담 파우스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소설 속의 악마는 무섭고 잔혹한 모습이아니고 친절하지만 교활함을 감춘 모습으로 나옵니다.
부자가 된 농부는 10년 계약기간이 만기가 되어 악마의 종으로살아야 하게 되자 다니엘웹스터라는 변호사에게 거금을
주고 구명을 부탁합니다.
다니엘웹스터는 악마와 협상을 통해법정에서 계약의 적법성에 대해 판결을 받아 결론 짓기로 합니다. 결국 재판에서
다니엘웹스터가 이겨 농부는영혼매매계약서에서 해방이 됩니다.
악마는 다니엘웹스터에게 다가올 불행을 미리 얘기해줍니다.
상원의원이었던 그가 대통령 출마에 실패하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것과, 그의 아들이 죽게 되는 고통을 겪게 될 거라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다니엘웹스터는 결국 이 불행들을 피하지 못하고 맞게 됩니다.
이 소설은 두 번 영화화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1941년 William Dieterle이 감독한 흑백영화 “All That Money Can Buy”
두 번째 영화는 2007년 Alec Baldwin이 감독한 “Short cut to happiness” (한국 개봉제목; 악마의 유혹)입니다.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은 록음악이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되던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R&B와 Country에 기반을 둔 복고적인 사운드로 큰 인기를 얻은 밴드이다.
C.C.R의 음악에 있어서 거의 모든 역할을 담당하던 John Fogerty(보컬, 기타)와 그의 형Thomas Fogerty(기타)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태생으로 John의 학창시절 친구들인 Stuart Cook(베이스),
Douglas Ray Clifford(드럼)와 함께 1959년부터 The Blue Velvets라는 밴드이름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활동을 계속하던 이들은 1964년 샌프란시스코의 Fantasy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밴드이름을
The Golliwogs로 바꾸어 몇 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나 비틀즈가 미국 전역을 휩쓸 무렵인지라그리 신통치는 못했다.
그들의 상업적 성공은 1968년 밴드 이름을 Creedence Clearwater Revival로바꾸고 셀프타이틀로 첫 앨범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첫 골드를 기록한 이 앨범에서는 Dale Hawkins의노래를 리메이크한 'Susie Q'(필자에게는
코미디언 이주일의 엽기버전이 더 인상에 남는다)와Screaming Jay Hawkins의 'I Put A Spell on You', 두 개의
50년대 커버곡이 인기를누렸는데, 'Susie Q'는 싱글차트 11위까지 올라갔다.
C.C.R이 본격적으로 전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밴드가 된 것은 1969년 2월 두 번째 앨범 [Bayou Country] 이후 그해 연속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2집에서는 싱글차트 2위 곡인 'Proud Mary'와 'Born on The Bayou'가 인기를 끌었고 같은 해 8월 발표한 3집
[Green River]에서 'Bad Moon Rising', 'Green River'가 미국차트 2위에 올라갔다.또 그해 4집 [Willly & The
Poor Boys]에서는 'Down on The Corner', 'Fortunate Son'를 대히트 시켰다.
야유회, 고고장 등지에서 젊은이들은 '로다이', '헤이 투나잇', '모리나' 등 흥겨운 CCR의 레퍼터리들에
율동을 맡겨버렸으며, 그열기는 1970년대 말까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심지어 CCR의 최대 히트 송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 같은 곡은 외설적인 우리말로 가사가 바뀌어
유행되기도 했다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은 록음악이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되던 60년대 말부터70년대 초까지
R&B와 Country에 기반을 둔 복고적인 사운드로 큰 인기를 얻은 밴드이다.
C.C.R의 음악에 있어서 거의 모든 역할을 담당하던 John Fogerty(보컬, 기타)와 그의 형Thomas Fogerty(기타)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태생으로 John의 학창시절 친구들인 Stuart Cook(베이스),Douglas Ray Clifford(드럼)와 함께
1959년부터 The Blue Velvets라는 밴드이름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활동을 계속하던 이들은 1964년 샌프란시스코의 Fantasy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밴드이름을
The Golliwogs로 바꾸어 몇 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나 비틀즈가 미국 전역을 휩쓸 무렵인지라그리 신통치는 못했다.
그들의 상업적 성공은 1968년 밴드 이름을 Creedence Clearwater Revival로
바꾸고 셀프타이틀로 첫 앨범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첫 골드를 기록한 이 앨범에서는 Dale Hawkins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Susie Q'(필자에게는 코미디언 이주일의 엽기버전이 더 인상에 남는다)와
Screaming Jay Hawkins의 'I Put A Spell on You', 두 개의 50년대 커버곡이 인기를
누렸는데, 'Susie Q'는 싱글차트 11위까지 올라갔다.
C.C.R이 본격적으로 전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밴드가 된 것은 1969년 2월 두 번째 앨범 [Bayou Country] 이후 그해 연속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2집에서는 싱글차트 2위 곡인 'Proud Mary'와 'Born on The Bayou'가 인기를 끌었고 같은 해 8월 발표한 3집
[Green River]에서 'Bad Moon Rising', 'Green River'가 미국차트 2위에 올라갔다.
또 그해 4집 [Willly & The Poor Boys]에서는 'Down on The Corner', 'Fortunate Son'를 대히트 시켰다.
야유회, 고고장 등지에서 젊은이들은 '로다이', '헤이 투나잇', '모리나' 등 흥겨운 CCR의 레퍼터리들에
율동을 맡겨버렸으며, 그열기는 1970년대 말까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심지어 CCR의 최대 히트 송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 같은 곡은 외설적인 우리말로 가사가 유행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CCR은 가장 60년대적인 감각으로블루스를 복원해 냈다. 존(보컬)과 톰(베이스) 포거티 형제, 이들과 한동네 친구인 더그 클리포드(드럼), 스튜 쿡 (피아노) 4인으로 이루어진 CCR은..60년대 블루스 리바이벌의 가장 성공적인 밴드였다.
67년 데뷔한 이들은 첫 싱글 "Susie Q"가 골드 싱글을 기록한 데 이어 69년 한 해 동안만 "Proud Mary", "Bad Moon Rising", "Green River", "Down on The Corner" 등이 모두 백만 장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으며 72년 6월 해산할 때까지 "Who Will Stop The Rain"('70) 등 모두 14곡의 히트를 기록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름처럼 블루스 본래의 의미를 어느 정도 살리면서도 컨트리 색채가 강한 초기 록큰롤의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해 경쾌한 리듬과 특유의 정서를 만들어 냈다.
부모의 불화와 가난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던 존 포거티의 목소리에는 블루스의 끈끈함과 컨트리의 투박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으며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일렉트릭 기타와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도 나무랄 데 없는 조화를 이루었다.
CCR이 3년 반이라 는 길지 않은 활동기간 동안 그처럼 폭넓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오묘한 절충 덕이었다. 그러나 이는 바꿔 말하면 이들의 음악은 백인들의 블루스 리바이벌이 블루스 본래의 순수함에서 벗어나 점차 록으로 탈바꿈해 가는 과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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