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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New Trolls-Adagio (Shadows)

 

 

 

 

 

 


 

 

 

 

Adagio (Shadows)

 

 

Wishing you to be so near to me
Finding only my lonliness
Waiting for the sun to shine again
Find that it's gone to far away

To die,To sleep May be to dream
To die,To sleep May be to dream

May be to dream..to dream
To die,To sleep May be to dream
To die,To sleep May be to dream
May be to dream..to dream

 

 

당신이 내 곁에 있기를 소망해 보지만
알게 되는 건 나의 외로움 뿐...
태양이 다시 밝게 빛나며
떠오르길 기다리지만
그 태양은 너무도 멀리 가 버렸어


죽는다는 것은 잠자는 것,
어쩌면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지
죽음은 잠과 같은 거야

어쩌면, 어쩌면 꿈일지도 모르지
죽는다는 것은 잠자는 것,

어쩌면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지
죽음은 잠과 같은 거야
어쩌면, 어쩌면 꿈일지도 모르지
...



 

 

 

 

 

 

 

 

 

 

 

 

New Trolls (뉴 트롤스)




 

뉴 트롤스는 1966년 기타에 Vittorio De Scalzi, 기타와 보컬에 Nico Di Palo, 퍼커션에 Gianni Belleno, 베이스에

 Giorgio d'Adamo, 키보드에 Maoro Chiarugi 등 5인조 라인업으로 결성된 아트록 그룹이다.

결성된 해에 이미 제노바의 음악 평론지로부터 언더그라운드 음악인 중에서 최고의 뮤지션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음악성을 인정받은 이들은 이듬해 1967년 롤링 스톤즈(RollingStones)의 이태리 순회공연시 협연하여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기회를 얻었고 Festival de Riati로부터 평론상을 수상한 첫 싱글 [Sensazion](67)을 취입한다.

초창기에 이들의 음악은 그 당시 유행하고 있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바닐라 퍼지(Vanilla Fudge)와 유사한 헤비록풍의 음악성을 띄고 있었다.
1968년 발매한 싱글 [Vision]은 2십만장 이상 판매되는 등 크게 히트했으며 이해에 뉴틀로스는 250여회의 공연을

갖는다.

특히 Nico di Palo는 지미 헨드릭스와 공연중 이빨로 기타를 연주해 팬들을 열광시켰고 뉴트롤스는 점차 당대 최고의

그룹이라는 평을 받기 시작한다.

[Senza Orario, Senza Baniera]는 이태리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앨범 전집으로 당시에는 거의 모든 그룹들이 외국의 유명한 싱글을 이태리식으로 카피한 단행본 자체로 끝났지만 [Senza Orario, senza bandiera]는 하나의 테마로 구성되어 이루어진 앨범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1969년에는 45회전 싱글 음반으로 제작된 [lo che hote], [Una miniera]를 발표했는데 이 싱글판은 보컬음악에

있어서 그들의 명성을 다시한번 인정해주었다.
1970년 뉴트롤스는 Viareggio에서 개최된 제 1회 ""Festival d'Avanguardia""와 ""Nuuve Tendenze""에서

 새롭게 시도된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 공연을 통해 이태리 음악계에 하나의 이정표가 된 [Concerto Grosso Per I]은 8십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무렵 그룹에 변화가 일어난다.

 Mauro Chiarugi가 군에 입대하게 되어 1970년부터 그룹에 참여하지 못하고Giorgio d'Adamo마저 72년 팀을

떠난 것이다.

 

 이후 베이스 파트는 Frank Laugelli가 대신했다.
1972년 이들은 영어로 부른 더블 LP [Searching for A Land]를 발매했으나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같은 해에 이들은 Manrizio Salvi가 키보디스트로 참여한 하드록풍의 앨범 [UT]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1973년 밴드는 멤버들간의 음악적 개념과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인해 해체되고 만다.
이후 De Scalzi는 레코드회사 Magma를 설립하여 뉴트롤스의 이름으로 싱글 [Una Notte SulMonte Calvo]를

취입했고 이것으로 인하여 뉴트롤스라는 이름을 쓰기를 기다리던 다른 멤버들에게 그룹 결속의 길을 열어놓았지만

 5명의 구성원중 어느 누구도 뉴트롤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De Scalzi와 Giorgio d'Adamo가 결합하며 그룹명을 뉴 트롤스 오토믹 시스템(New Trolls Atomic System)으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한편 Gianni Belleno는 'Satisfaction'이란 곡을 취입했는데 여기에는 Nico Di Palo도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1973년 Di Palo와 Belleno는 Fonit Cetra의 기획으로 [Nico, Gianni, Frank, Maurizio]를 취입했고 그때 밴드

이비스(Ibis)를 구성하고 있던 Gianni Belleno는 솔로데뷔를 위해 이비스를 떠났다.
그 후 그는 Magma 레코드를 통해 LP를 발표한 후 새로운 재결합의 실마리를 쥐고서 DeScalzi의 곁에 남는다.

1975년에 다른 구성원들과 Nico Di Palo는 Nuova Idea Group의 전 리더였던 Ricky Belloni와 함께 되돌아오고

뉴트롤스는 마침내 재결합했다.
재결합을 기념하기 위해 이들은 [Concerto Grosso Per II]를 취입했는데 이 앨범은 아주 강렬한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Concerto Grosso Per I]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다.

1977년 그룹은 [Aldebaran]으로 클래식의 정상으로 복귀하지만 이 작품은 헨드릭스의 스타일과는 거리를 두고 비지스(Bee Gees)의 분위기에 가까워진 상업성 짙은 작품이었으며 스페인에서는 높은 판매실적을 올렸지만 중,장년층에서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1981년에는 d'Adamo와 솔로 기타를 맡은 Giorgio Usai의 탈퇴가 있었으나 같은 해 그룹 FS앨범 전집을 만들기 위해 되돌아온다. 1988년에는 LP [Amiei]를 발표하는 한편 Ricky Belloni가 밴드를 탈퇴한다.
지금까지도 뉴 트롤스는 이탈리아 팝의 탄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밴드중의 하나로 기록되고있다.

뉴트롤즈"는 1966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빅토리오 데 스칼지(기타)","조르지오 아다모(베이스)", "니코 디 팔로

(기타&보컬)", "마오로 치아루기(키보드)", "지아니 벨레노(드럼)"의 5인조로 결성되어 1968년 첫 싱글

"Sensazion"을 발표하면서 등장 했다.

이들은 이탈리아 최고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라는 찬사를 받으며 출발부터 호평을 얻었는데, "롤링스톤즈"의 이태리 순회공연에 참여하며 대중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Vision", "Senza Orario", "Senza Bandiera" 등을 발표한 이후에 아직까지도 이들의 최고 역작으로 꼽히는 앨범 [Concerto Grosso Per 1]을 발표하면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New Trolls - Adagio (Shadows)

많은 이탈리아의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 가운데 우리나라의 팝팬들에게 까지 친숙한 곡인 'Adagio (Shadows)'의

주인공인 '뉴 트롤스'는 재즈와 클래식을 비롯하여 사이키델릭과 하드 록 까지 수용한 록 음악을 구사하며 실험성을

 강조한 음악들을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 들려주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이다.

 

뉴 트롤스의 탄생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제노바(Genova)에서 다섯명의 연주자들이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제노바를 근거로 주로 제노바 인근의 해변에서 연주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 다섯명의 연주자들은 1960년대

 중반의 어느 날 제노바 지역 신문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음악인들을 소개하는 연예란에 나란히 소개가 되면서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 신문 기사를 인연으로 서로 교류를 하면서 자연스레 뉴 트롤스가 출범하게 된다.

 

 밴드의 리더인 '비토리오 데 스칼지'를 비롯하여 '니코 디 팔로', '조르지오 다다모', '마우로 케루지(Mauro Chiarugi, 키보드)', '자니 벨레노'로 구성된 뉴 트롤스는 처음에 밴드 이름으로 비토리오 데 스칼지의 예전 밴드 이름인 '트롤스

(I Trolls: The Trolls)'를 사용하기로 했다가 새 출발을 의미하는 뜻으로 앞에 'New'를 붙여서 뉴 트롤스라는

 이름이 최종 만들어지게 되었다.

제노바 지역의 클럽 무대에 서는 것을 시작으로 활동을 개시한 뉴 트롤스는 실력을 인정받아 영국 록 밴드 '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의 이탈리아 순회 공연에 보조 밴드로 합류하는 행운을 잡게 된다.

 

하지만 롤링 스톤스의 이탈리아 공연은 롤링 스톤스 멤버들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별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거기에 더해 일설에 의하면 오프닝을 맡기 위해 뉴 트롤스가 롤링 스톤스의 이탈리아 순회

공연을 책임지고 있던 공연 추최 측에게 거액을 출연 댓가로 지불했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롤링 스톤스의 이탈리아 순회 공연은 팬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실망스러운 돈 냄새만을 남긴채 공연의

 막을 내리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여간 뉴 트롤스는 밴드 결성 후 주어진 최고의 기회를 적절히 활용하여 많은 관중들 앞에서 무사히 공연을 치루었고

이 공연이 끝난 후 뉴 트롤스는 1967년에 이탈리아의 국영 음반사인 '포니 체트라(Fonit Cetra)'를 통해 데뷔 싱글

 'Sensazioni'를 발표하게 된다.

 

하드 록 성향의 데뷔 싱글에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에게 영향을 받은 기타리스트 니코 디 팔로의 연주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는데 어린 시절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을 들으며 기타리스트를 꿈꾸었던 소년 니코 디 팔로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1968년에 두번째 싱글 'Visioni'를 발표한 뉴 트롤스는 이때 부터 왕성한 공연 활동을 펼쳐 나가기 시작하였으며 니코

디 팔로는 이빨로 기타 줄을 뜯는 등의 행위를 무대에서 연출하며 이탈리아의 새로운 기타 영웅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싱글 'Visioni'의 성공과 공연 활동으로 1968년을 바쁘게 보냈던 뉴 트롤스는 그해 10월 23일에 'Senza Orario

 Senza Bandiera'라는 제목을 새겨 넣은 데뷔 음반을 공개하였다.

뉴 트롤스가 데뷔 음반을 발표하던 당시 이탈리아의 음악계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유명한 히트 곡들을 번안하여 부르던

 것이 주를 이루던 '비트(Beat) 시대'를 맞아 대부분 싱글 위주의 음반 활동을 하던 시기였으나 뉴 트롤스는 데뷔 음반을 이탈리아 최초의 '컨셉트 음반(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수록 곡을 만든 음반)'으로 만들어 발표하여 이탈리아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데뷔 음반 발표 후 뉴 트롤스는 꾸준히 싱글들을 발표하며 인기 행진을 이어가다 1969년에 'Io che ho te'라는

 곡으로 '산레모 음악 축제(Festival di Sanremo)'에 참가하였으며 이듬해에는 그동안 발표했었던 싱글들을 모아

두번째 음반 'New Trolls'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 발표 후 뉴 트롤스는 첫번째 멤버 변동을 경험하게 되는데

마우로 케루지가 군 복무 문제로 밴드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남은 뉴 트롤스의 멤버들은 멤버 충원을 고심하다 결국 4인조로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1971년에 신곡

'Una storia'를 들고 산레모 음악 축제에 두번째로 참가하였다.

산레모 음악 축제에 참가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뉴 트롤스에게 뜻밖의 제안을 들고 영화 음악가 '루이스 바칼로프

(Luis Bacalov)'가 찾아 오면서 역사적인 음반 'Concerto Grosso Per 1'이 탄생하게 된다. 그동안 뉴 트롤스의

연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 보았던 루이스 바칼로프는 '제쓰로 툴(Jethro Tull)'이나 '킹 크림슨(King Crimson)'

 같은 영국 밴드들 처럼 록과 클래식을 접목한 프로그레시브 록을 뉴 트롤스가 시도해 볼 것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뉴 트롤스는 루이스 바칼로프가 작,편곡을 담당한 음반 'Concerto Grosso Per 1'을 1971년에

발표하였다.

루이스 바칼로프의 화려한 오케스트라 편곡과 지미 헨드릭스 풍의 록 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명곡

'Adagio (Shadows)'를 탄생시킨 음반 'Concerto Grosso Per 1'은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을 단숨에 사로 잡는

 한편으로 이후 이탈리아 밴드들이 록과 클래식을 접목하는데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곡 'Adagio (Shadows)'는 바이올린의 구슬프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니코

디 팔로가 들려주는 햄릿에서 인용한 가사가 곡의 극적 효과를 증폭시켜주고 있다.

 

 

 

 




 

 

아다지오가 남긴 선율의 여운


그것은 신화였다.

 저 황량했던 시절. 절대 명반이라 일컫는 음반은 고사하고 이름만 대면뻔히 알만한 음반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게다가 요즘처럼 신속하게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것에 비할 수가 없었던 사막같은 시절에, ‘뉴 트롤즈’를 접한 음악 애호가들은 마치 수맥을
발견한 이들처럼 부르르 온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정윤수(음악애호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다 귀에 익은 음악을 들으면 선율이 실어다주는 지난 추억을 더듬곤 한다.

 아름다웠던 연인의 살결을 보듬는 듯 감미롭다. 기억하기도 싫은 아픔을 덧나게 한다.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달려가는 ‘현재’라는 초침을 잠시 정지시키는 마력 때문일까.

‘쇼생크감옥’수감자들이 들었다는 ‘피가로의 결혼’이 생각난다.

얼마전이었다.

 TV 광고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분명 어디서 들은 음악인데 상실이 기억을 잡아먹었다.

다락방을 뒤져 처박아 두었던 CD를 찾았다. 잠시 잊어버렸던
옛 기억을 더듬었다.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당시, 후배를 통해 첫 인연을 맺은 그 음악은 이방인치곤 낯설지 않은 친숙한 존재였다.

뉴 트롤즈(new trolls)의 아다지오. ‘아트록' 이라는 쟝르 자체는 낯설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다지오의 선율은

 가슴을 저미었다.

 

 클래식과 록이 절묘하게 섞여 새로운 감각을 자아낸다.

‘trolls’가 요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느낌은 더욱 새로웠다.

‘뉴 트롤즈' 는 1966년 제노바에서 결성되었으며 멤버는 빗토리오 데 스칼지(기타), 조르지오 아다모(베이스),

 니고 디 팔로(기타·보컬), 마오로 치아루기(키보드), 지아니 벨레노(드럼)의 5인조였다.
67년 첫 앨범을 발표했다.

여러 번의 탈퇴, 재결합에도 불구하고 팀의 리더인 스칼지의 주도에 따라 오랫동안 음악적

 순결을 지킨 이태리의 대표적인 아트록 그룹이다.

 

당시 이태리의 록 세계는 60년대초 시작된 영·미 밴드를 복사한 비트 그룹이 대중에게 널리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태리 고유의 음악적 전통을 60년대말 영국에서 일기 시작한 프로그레시브 록과 결합시킨 음악적 움직임이 싹트던

시절, 이 움직임의 선두 진영에 나선 밴드가 ‘뉴 트롤즈' 였다.

출범하던 첫 해에 평단으로부터 이태리 최고의 언더그라운드 그룹이라는 찬사를 들었으며, 그 해 세계 최고의 록그룹으로 일컬어지는 ‘롤링스톤스' 의 이태리 순회공연에 함께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첫 싱글 ‘Sensazion’으로 데뷔한 그들은 이후 ‘Vision’ ‘Senza Orario’‘Senza Bandiera’ 등을 발표한 끝에 드디어

 1971년 이태리 음악사의 이정표가 되는 문제작 ‘Concerto Grosso’를 내놓게된다.

이 순간부터 아트록의 역사는 오로지 뉴 트롤즈를 중심에 놓고 쓰여지게 된다.

‘아다지오’는 ‘Concerto Grosso no.1' 의 제 2악장. 이 앨범은 고전음악의 콘체르토 형식을 빌려 1악장 Allegro,

 2악장 Adagio, 3악장은 Cadenza, 그리고 4악장 Shadow로 구성되어 있다.

 ‘아다지오’는 고요한 정적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 부드럽다.

 

 새벽녘 물안개가 낀 호수를 걷는 감미로움이 선율을 감싼다.

고요 속의 웅장함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조용한 클래식 선율을 전하다가 멤버 전원의 목소리가 하나가 돼 애처로운하모니를 연출한다.

 

 

 “to die, to sleep, may be to dream”. 곡의 끝을 알리는 듯한 음이 들린 후 몇 초. 정적이 흐른다.

짧은 순간이지만 여운이 감돈다.

 

그리고 다시 들린다. “to die, to sleep, may be to dream”. 마지막은 아무말 없이

전장을 향해 길을 나서는 전사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또한 어둠 속의 달빛을 차단하여 깊숙한 꿈속에 빠지기 위해

 창문을 닫는 요정을 보는 듯 무언(無言)의 여운을 던진다.

음악적 지식의 유무를 떠나 뚜렷한 표현을 못하게끔 만든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옛 추억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진 ‘아다지오’는 갓 태어난 요정(new trolls)이 던져준 선물이다.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게 하지만 인스턴트 커피처럼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신화 속의 주인공이 영원히 존재하듯, 소중한 추억을 조심스레 끌어내어 영원을 갈구하게끔 만든다.

 현실 속에서 잊혀진 신화를 얘기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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