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ivia Newton John-Physical
Physical
I'm saying all the things that
난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얘기하고 있어요
I know you'd like making good conversation
그대가 즐거운 대화를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요
I took you to an intimate restaurant
난 그대를 아늑한 레스토랑으로 데려갔어요
Then to a suggestive movie
그리고 야한 영화를 보았어요
There's nothing to talk about unless it horizontally
나란히 누워 얘기하지 않는 한 더 이상 할 말은 없어요
Let's get physical, physical
육체적이 되어 봐요
I wanna get physical, let's get into physical
난 육체적인 걸 원해요, 육체적으로 느껴 봐요
Let me hear your body talk, your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Let me hear you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Let's get physical, physical
육체적이 되어 봐요
I wanna get physical, let's get into physical
난 육체적인 걸 원해요, 육체적으로 느껴 봐요
Let me hear your body talk, your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Let me hear you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I've been patient, I've been good
난 계속 참아왔어요, 잘 견뎌 냈어요
Tried to keep my hands on the table
테이블 위의 손을 내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It's gettin' hard this holdin' back If you know what I mean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져요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요
I'm sure you'll understand my point of view
내 생각을 이해해주리라 믿어요
We know each other mentally you gotta know that
우린 서로를 정신적인 면에서는 잘 알죠 그댄 알아야만 해요
You're bringin' out the animal in me
그대가 내 안의 동물적 욕망을 끌어내고 있다는 걸
I wanna get physical, let's get into physical
난 육체적인 걸 원해요, 육체적으로 느껴봐요
Let me hear you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Let's get physical, physical
육체적이 되어봐요
I wanna get physical, let's get into physical
난 육체적인 걸 원해요, 육체적으로 느껴 봐요
Let me hear your body talk, your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Let me hear you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Let's get physical, physical
육체적이 되어 봐요
I wanna get physical, let's get into physical
난 육체적인 걸 원해요, 육체적으로 느껴 봐요
Let me hear you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Let's get animal, animal
동물처럼 솔직해져 봐요
I wanna get animal, let's get into animal
난 동물이 되고 싶어요, 동물적으로 느껴 봐요
Let me hear your body talk, your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Let me hear your body talk
그대 몸의 얘기를 듣게 해주세요
[Olivia Newton John(올리비아 뉴톤 존)의 가계는 영국의학자 집안이다.
독일계 외할아버지 [Max Born(막스 본)]은 노벨상을수상한 과학자이고 아버지는 [Cambridge(캠브릿지)] 킹 대학의 학자였다.
캠브릿지 태생(1948.9.26일)인 [Olivia Newton John]은 아버지가 오스트레일리아멜버른 오르몬드 대학으로
옮김에 따라 1953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장했다.
어린시절부터 다재다능한 음악적 재능을 보인 [Olivia Newton John]은 15세 때부터 스쿨 밴드인[The Slo Four
(솔 포)]를 결성하기도 했고 커피 하우스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다 16세 때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탤런트 컨테스트에 출전하여 우승하면서 영국으로 옮겨 본격적인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Olivia Newton John]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Pat Carroll(팻 캐롤)]과 함께 [Pat & Olivia
(팻 & 올리비아)]라는 듀오로, 이후그룹 [Tomorrow(투모로우)]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Cliff Richard]와 함께 영화 [Tomorrow]에 출연하기도 했다.
[Olivia Newton John]은 [Bob Dylan(밥 딜런)] 작곡으로1971년 빌보드 팝 싱글 차트 25위까지 진입한 첫 솔로로 히트를기록했다.
1973년에는 일본 동경 가요제에 출전했는데 여기에서 유명한작곡 프로듀서 [Paul Williams(폴 윌리암스)]에게
발탁되어 그의 지원을 받게되었다.
그가 작곡해 준 [Let Me Be There]는 1973년 팝 싱글 차트 6위를 차지했고[Olivia Newton John]은 1974년에
제16회 그래미의 컨트리 부문을 수상했다.
전성기가시작된 것이다.
이후 [Olivia Newton John]의 전성기 주요 히트곡으로는 1974년 싱글차트5위곡 [If You Love Me(Let Know)]와 동년 싱글차트 첫 1위, 1975년 싱글차트 1위곡[Have You Never Been Mellow], 동년 싱글차트 3위곡
[Please Mr. Please]등이있다.
이중 [If You Love Me (Let Know)]로는 1975년 제17회 그래미 팝 부문을수상했다.
1976년에는 [Bee Gees(비지스)]의 [Barry Gibb(베리 깁)]과[Robin Gibb(로빈 깁)]이 작곡해준
[Come on Over]를 히트시켰다.
[Olivia Newton John]과 비슷한 나이의 형제 트리오인[Bee Gees]는 영국 맨체스터 출신으로 그녀처럼
오스트레일리아로이주하여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는 남다른 음악적 교류를 나누게 된다.
[Olivia Newton John]의 1980년 히트곡도 [Bee Gees] 형제들의 막내로, 솔로로활동하던 [Andy Gibb(앤디 깁)]과 듀엣을 이룬 곡이다.
7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싱어로떠오른 [Olivia Newton John]은 [John Travolta(존 트라볼타)]와 함께한 1977년의 영화[Grease]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주제곡으로 [John Travolta]와 듀엣을 이룬[Yor're The one That I Want]는 1978년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
이 외에도또다른 주제곡으로 1978년 싱글차트 3위의 [Hopelessly Devoted To You]와5위를 차지한
[Summer Nights]등이 히트했다.
컨트리 포크 성향으로 히트활동을 시작한 [Olivia Newton John]은 [Grease]의 출연과 함께
유행을 따른 디스코 성향으로 변신하여 성공을 하였다.
1978년 싱글 차트 3위를 차지한 [A Little More Love]도대표적인 디스코 히트곡이다.
[Olivia Newton John]은 1980년에뮤지컬 영화인 [Xanadu(제너두)]에도 출연하였는데 주제곡으로 노래한
[Magic]은 1980년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또한 록 밴드 [E.L.O]와 함께한영화의 동명 타이틀 곡 [Xanadu]는
동년 싱글 차트 8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외에도[Cliff Richard(클리프 리처드)]와 듀엣을 이룬 [Suddenly]도 히트했다.
그녀의 최전성기를마감한 히트 곡은 [Physical]이다.
이 곡은 1981년 싱글 차트에서 무려 10주간이나 1위를지켰고 5번째이자 마지막 1위곡이 되었었다.
[Physical]은 지금까지 청순한 이미지의그녀를 단숨에 섹시 스타로 부각시켰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금지가 되기도
한이 곡의 음악 비디오에서 그녀는 숏 팬츠의 모습으로 뭇 남성들을 유혹했다.
이 비디오는 팝계에 음악 비디오 시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Michael Jackson(마이클 잭슨)], [Madonna(마돈나)],[Whitney Houston(휘트니 휴스턴)]등은 자신들만의 음악적 분위기를음악 비디오를 통해 보다 감각적으로 대중들에게 어필시켰다.
[Physical]은음악 비디오로 대표되는 80년대 팝 역사에 있어 그 변화를 가져온 출발점이 되었다.
1982년 싱글 차트 3위곡 [Heart Attack]과 1983년 싱글 차트 5위곡 [Heart Attack]의히트에 이어서
[Olivia Newton John]은 다시 한번더 [John Travolta]와 함께 뮤지컬 영화[Two Of A Kind]에 출연하였다.
이 영화의 주제곡으로 [John Travolta]와 듀엣을 이룬[Twist Of Fate]는 1983년 싱글 차트 5위를 차지했다.
[Olivia Newton John]은1984년에 11살 연하 영화배우 [Matt Lattanzi(매트 라탄지)]와 결혼하였고
1986년에는 첫 딸 [Chloe]를 출산했다.
이로인해 활발한 음악 활동은보여주지 못했지만 1986년 [David Foster (데이비드 포스터)]와듀엣을 이룬
[The Best Of Me]등을 히트시키기도 했다.
가정과 사업에 몰두하던 [Olivia Newton John]은 유달리 동물에대한 애정도 컸다.
그리고 딸의 출산과 함께 환경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가지게 되었다.
1990년 UN 환경대사로 공식 임명되기도한 그녀는 브라질의아마존 방문으로 자연파괴의 위험성을 전세계에 알리고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담은1992년 앨범 [Gaia]를 발표했으며 여러 환경관련 방송 프로그램과 행사에 모습을 보이는등
환경보전 운동에 앞장서는 민간대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1992년에 유방암으로 개인적인큰 시련을 맞이했으나 이를 극복한 인간승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1995년에 불행한 이혼으로 다시한번 시련을 겪기도 했다.
자신의 수많은 히트곡들과 함께아직도 고혹적인 목소리와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있는 [Olivia Newton John]을
통해서 자신의 음악과 더불어 음악 만큼이나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대중들과함께 나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타의
모습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48년 9월 26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도착한 그녀는 호주로 돌아가지 않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했으며 최초의 레코드 취입(single : Till you say you'll be mine/For ever)도 이 무렵 시작되었다. 올리비아의 노래가 처음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밥 딜런의 오리지널을 브루스 웨일즈가 편곡한 'If not for you'였다. 이 곡은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제법 인기를 얻게 된다. Shadows 의 다른 멤버였던 존 파라가 작곡한 Let me be there 는 공전의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존 파라와 올리비아의 파트너쉽이 25년 이상 계속되고 있고 그후 존 파라는올리비아의 초기 듀엣파트너 팻 캐롤과 결혼하게 된다. 올리비아의 연인이자 매니저를 맡게 되었고 올리비아는 그의 도움으로 유러비젼 송 콘테스트에서 영국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1974년은 그룹 ABBA가 유럽을 휩쓴 해였는데 ABBA의 노래 Waterloo 가 1위를 차지하고 올리비아의 Long live love 는 4위에 그쳤다. never been mellow, Please Mr.please 등의 연속적인 히트곡을 내면서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올리비아는 1970년대 초,중반 미국의 그래미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을 매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당대의 최고 여가수로 승승장구하게 되었고 ABC 방송국에 그녀 자신의 쇼도 가지게 되기에 이르렀다. 올리비아는 1978년 뮤지컬을 영화화한 '그리스'에서 주인공 샌디 역을 맡아 존 트라볼타와 함께 멋진 노래와 춤을 선보였는데 영화와 사운드 트랙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는 지난 1998년 그리스 개봉 2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봉되었는데 흥행에 성공을 거두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뮤지컬 영화 사상 가장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Summer night 장면은 최근 국내에서 고소영과 정우성이 등장하는 청바지 CF에서 패러디 되기도 했다. 영화 속의 샌디가 청순한 소녀에서 끼가 넘치는 여인으로 변신하듯 올리비아의 음악도 이 무렵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컨츄리, 발라드 계열의 노래를 즐겨불렀던 그녀는 비트가 강한 록이 가미된 음악들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제 2의 전성기를 예고하게 된다. 모두 참패를 거두었다. 다만 ELO와 같이 만든 사운드 트랙만은 그리스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재너두에서 그녀는 11살 연하의 무명 댄서 배우 매트 래턴지를 만나며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되어 훗날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불어닥친 에어로빅 붐과 맞물려 Physical의 뮤직비디오 또한 많은 인기를얻었다. 1983년에는 존 트라볼타와 다시 짝을 이루어 영화 Two of a kind를 찍는데 영화자체는 기대이하였지만 데이비드 포스터가 제작한 사운드 트랙만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결혼 후 그녀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 Soul kiss 라는 앨범을 발표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으나 이전같은 큰 인기는 누리지 못했고 1986년에 딸 클로에를 분만한다. 이후 올리비아는 딸의 양육과 사업 '코알라블루'에만 신경을 쓰며 음악적으로는 수년간 공백기간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업가로서의 올리비아는 성공하지 못했다. 코알라블루는 90년대 초반 파산신고를 내기에 이르렀으며 올리비아는 경제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타격을 입었다. 물론 공백기간에도 음악을 완전히 등한시하지는 않았는데 1988년 엘튼 존이 써준 곡
올리비아는 1965년 호주의 탤런트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우승, 부상으로 영국여행의 기회를 얻게 되는데 영국에
그후 1972년 클리프 리챠드의 TV 쇼에 고정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그녀는 런던의 라이브가수로 명성을 굳혀갔다.
올리비아는 1974년 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유능한 사업가인 Lee kramer를 만나는데 그는 이후 수년간
한편 If not for you 의 성공 이후로 미국에서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I honestly love you, Have you
가수로서의 성공은 스크린으로도 이어졌다.
1980년 올리비아는 그리스 성공의 여세를 몰아 또다른 뮤지컬 Xanadu 에 출연했는데 아쉽게도 영화는 비평과 흥행
1981년에는 올리비아의 최대 히트곡인 physical 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올리비아열풍으로 물들였는데 이 노래는 빌보드 지에서 10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80년대 미국 최대의 히트곡 중 하나로 남게 된다.
1984년 겨울 마침내 올리비아는 그간 동거해오던 매트 래턴지와 결혼식을 올렸다.
Warm and tender 이후로 올리비아는 MCA와 결별하고 데이비드 게펜 사에서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사업의 실패 후 다시 올리비아는 노래에 전념하기로 하는 듯 싶었다.
1992년 Back to basic 이라는 그동안의 히트곡을 모은 곡에 신곡들을 섞은 앨범을 발매하고각종 투어를 계획하는 등
재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연이은 불행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곧이어 그녀 자신도 유방암에 걸린 것이다.
그녀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유방암 수술과 화학요법 및 1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거친다.
이 투병기간은 그녀의 음악과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녀는 전곡을 손수 만든 Gaia-one woman's journey 라는 앨범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투병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유방암 조기 발견 및 환자의 재활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95년 올리비아는 남편 매트 래턴지와 별거를 시작했고 이듬해 결국 두 사람은 결혼생활을 마감했다.
이혼 후 그녀는 호주에서 환경보호 TV 프로에 출연(올리비아 뉴튼 존의 자연과 인생이라는 시리즈로 국내 교육방송에서도 방영)하거나 여성건강관리 및 미용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녀는 A Pig tale 이라는 동화책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며 호주의 Woman's day에 [Looking great with onJ 라는
제목의 고정 칼럼을 최근까지 맡았었다.
올리비아는 열렬한 환경보호론자이자 아동보호 운동가이다.
최근에 발표하는 자작곡들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짙어지는데 사실 그녀는 이미 1990년부터 유엔의 환경친선대사를
맡았고 Childrens' Health Environmental Coalition 이라는아동건강보호 단체에서 자선활동도 계속 벌이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사회적인 활동은 1999년 Red CrossHumanitarian Award (for environmental & breast cancer charity work) 및 Women's Guild of Cedar- Sinai Woman of the 21st Century Award (for environmental & breast cancer charity work) 등의 수상으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올리비아의 음악적 컴백은 1998년 팝-컨츄리 앨범 Back with a heart 로 본격적인 출발을 고했다.
이 앨범은 전성기 때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고혹적인 모습과 건강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시켜 그녀의 팬들을 기쁘게 했다.
이후 그녀는 클리프 리챠드와의 듀엣 공연, 호주에서의 Main Event tour 에 이어 99년에는 미국 순회 공연까지
성황리에 치루어내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2000년에도 그녀는 콘서트를 통해 계속 팬들과 만나는 한편 컨트리 가수 Vince gill 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을
만들었고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의 메인 아티스트와 성화 봉송주자 로도 등장했다.
그리고 이에 앞서 30년가까이 국내 팬들이 고대해왔던 한국 공연을 8월 22일 마침내 성사시켰다.
5곡의 넘버원 싱글과 22곡의 탑 40 히트곡을 배출한 팝의 여왕 Olivia Newton-John은 '팝계의 신데렐라' 혹은
'팝계의 꾀꼬리'라는 애교스런 별명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치했다.
국내에서는 디스코와 팝록으로 전향한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녀의 첫사랑은 컨트리
음악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 미녀 가수의 초기 히트곡들인 'If not for you'나 'Let me be there', 'If you love me
(Let me know)' 등은 'Physical', 'Xanadu', 'Summer nights','Magic'보다 조금은 더 생경하게 다가온다.
1948년 9월 26일,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독일계 할아버지인 막스 본(Max Born)과 대학 학장인 아버지를 둔 '영국판 사대부' 집안의 딸로 태어나 곱게 자란 올리비아 뉴튼 존은 기숙사처럼 딱딱한 가풍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악에 몰입했다.
20대 초반에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의 백보컬리스트로 합류하면서 가닥을 잡아가던 금발의 뉴튼 존은 1971년에 밥 딜런(Bob Dylan)의 원곡 'If not for you'로 데뷔하면서 팝 역사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1970년대 초반 그녀는 미국인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컨트리 음악으로 그래미는 물론 주요컨트리 음악 상을 수상하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통 컨트리 신봉자들은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선 이 미녀 가수가 미국인이 아니라 호주에서 성장한 영국인이었고, 둘째는 컨트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소위
'꺾기 창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한 잔의 맑은 정화수나 청명한 봄바람 그 자체다.
이 컨트리 창법 상의 약점(혹은 장점) 때문에 1970년대 후반 올리비아 뉴튼 존이 디스코나 팝 록으로의 방향 전환이
어렵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올리비아 뉴튼 존의 명성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데뷔 초기 그녀가 취입한 곡들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노래들을 커버한 것이 많았다.
브레드(Bread)의 'If', 'Everything I own', 존 덴버(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What is life', 홀리스(Hollies)의 'The air that I breathe',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등, 그녀가 그래미 최우수 컨트리 여자 가수상을 수상한 'Let me be there(6위)'를 제외하면
초기 3장의 음반은 거의 컴필레이션의 성격이 짙은 앨범으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기존에 많이 알려진 곡들로 신인 가수들의 입지를 빠르게 다지면서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하기 위한 스타 메이킹 공식이었다.
포모어 징크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녀를 스쳐갔다.
경쾌한 컨트리 곡 'If you love me(Let me know-5위)', 포크 풍의 발라드 'Please Mr. Please(3위)', 그리고
빌보드 싱글 차트 탑을 장식한 'I honestly love you'와 'Have you never been mellow'로 눈이 큰 올리비아의
인기에 가속도를 붙였다.
'I honestly love you'로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보컬과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한 금발의 싱어는 1976년엔 프레드
로스(Fred Rose)의 컨트리 고전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재해석했다.
이 곡은 1990년대 초반 국내의 땅콩 CF에서 조영남이 불러 뒤늦게 알려졌다.
1975년도 싱글 'Please Mr. Please'가 3위에 오른 이후 인기 전선이 소강상태를 보이자 그녀는 '컨트리 소녀'에서
'섹시 걸'로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감행했다. 청바지 대신 검정색 가죽 바지를 입은 올리비아 뉴튼 존은 머리 기름을
한껏 바른 존 트라볼타와 1978년도 뮤지컬 영화 <그리스>의 주인공을 맡은 것이다.
옷만 바뀐게 아니었다.
음악도 바뀌었다.
컨트리와 포크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디스코와 팝록, 소프트 팝 등 다양한 음악 형식을 소화했다.
영화 성적도 좋았고 사운드트랙도 플래티넘의 고지에 올라섰다.
프랭키 밸리(Frankie Valli)의 'Grease'와 뉴튼 존과 트라볼타가 함께 부른 'You're the one that I want'가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컨트리 풍의 'Hopelessly devoted to you'와 'Summer nights'도 각각 3위와 5위를 기록하면서
1980년대 꽃을 피우는 컴필레이션 형(形) 사운드트랙의 물꼬를 텄다.
'Summer nights'는 정우성과 고소영이 등장하는 국내 청바지 광고의 배경 음악으로 깔리면서 1990년대 후반에
사랑 받았다.
다시 맞이한 전성기로 한껏 고무된 금발의 여가수는 안정적인 길을 택했다.
1978년도 솔로 음반 <Totally Hot>은 성인 취향의 팝록과 디스코 사운드에 의지했다.
1980년에는 <그리스> 형식을 답습한 공상 과학 뮤지컬 영화 <제너두>에 출연해 ELO와 함께 뉴웨이브 스타일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타이틀 트랙 'Xanadu(8위)'와 'Magic(1위)', 클리프 리차드와 호흡을 맞춘 발라드 'Suddenly(20위)'의 히트로 앨범은 성공했지만 영화는 혹평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뉴튼 존은 이 영화에서 만난 11살 연하의 배우 매트 라탄지(Matt Lattanzi)와 1984년에 결혼해 개인적으로는 큰 수확을 거두었다.
1981년 연말, 제목만큼이나 육감적인 뮤직비디오를 앞세운 'Physical'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곡은 데비 분(Debbie Boone)의 'You light up my life'와 함께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간 1위 고수라는 당시로서는 기네스 적인 기록을 새운 대형 히트 곡이었다.
이 노래 때문에 Foreigner의 'Waiting for a girl like you'는 10주 동안 2위에 머물러야 했었고, 개국한지 1년도
안 된 MTV는 이 선정적인 뮤직비디오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헬스와 에어로빅 장면을 코믹하게 다룬 이 뮤직비디오로 1980년대 초반 에어로빅 비디오 제작이 봇물을 이루어 제인
폰다 같은 여배우들이 그 덕을 봤지만 그 이면에는 뮤비의 음란성에 대한 사회적인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래미 위원들은 'Physical'에게 최우수 비디오 트로피를 건네면서 더 이상의 잡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Make a move on me(5위)', 'Heart attack(3위)', 'Tied up(38위)'으로 인기의 끈을 이어간 뉴튼 존은 1983년에도 존 트라볼타와 다시 한번 <투 오브 어 카인드>라는 로맨틱 코메디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 작품도 실패작이라는 멍에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Twist of fate(5위)'와 'Livin' in desperate times(31위)'만이 인기곡 대열에 합류했다.
1986년에는 유명한 작곡가 겸 제작자인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 함께 부 'Best of me(80위)'가 국내에서 유독 사랑을 받았다.
타이틀 트랙 'Soul kiss'가 20위에 랭크된 1985년도 LP <Soul Kiss>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성공 스토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89년부터는 UN에서 추진하는 환경 운동의 민간대사를 맡아 부메랑처럼 데뷔 시절의 풋풋한 이미지로 돌아간 그녀는 1990년대에 유방암을 극복하면서 인간 승리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몇 편의 영화에 실패한 올리비아 뉴튼 존이 드디어 '인생'이라는 영화를 통해 진정한 헤로인이 된 것이다.
이후 1990년대까지 꾸준한 앨범을 발표했지만 현재는 환경 운동가나 사회 사업에 좀 더 집중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0년 8월, 시드니 올림픽 성화 주자로 참여하기 직전 내한 공연을 가져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준
올리비아 뉴튼 존의 당시 나이는 5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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