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i Braxton - Breath Again
Toni Braxton/ Breath again
Breath Again
If I never feel you in my arms again
If I never feel your tender kiss again
If I never hear I love you now and then
Will I never make love to you on-ce again
Please understand if love ends
Then I promise you, I promise you
That, that I shall never breathe again
Breathe again
Breathe again
That I shall never breathe again
Breathe again
당신을 다시 내 품에 안을 수 없다면,
부드러운 키스를 다시 느낄 수 없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면,
당신과 다시는 사랑을 나눌 수
없을 거라면 이해해 주세요
사랑이 끝나 버리면
난 약속해요, 약속해요
다시는 숨도 쉬지 않을 거라고
숨쉬지 않겠어요
숨쉬지 않겠어요
다시는 숨도 쉬지 않겠어요
숨쉬지 않겠어요
About the way things used to be
And I can't stop thinkin' about
About the love that you make to me
And I can't get you outta my head
How in the world will I begin
To let you walk right out my life
And blow my heart away
그리고 난 떨쳐 버릴 수가 없어요
지난 우리의 사랑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요
당신이 나누어 주던 사랑을
머리 속에서 떨쳐 버릴 수가 없어요
당신이 떠나 버리고,
내 마음도 휩쓸어 가 버리고
난 어떻게 세상을 살아 가나요
And I can't stop carin' about
About the apple of my eye
And I can't stop doin' without
Without the center of my life
And I can't get you outta my head
And I know I can't pretend
That I won't die if you decide
You won't see me again
그리고 난 떨쳐 버릴 수가 없어요
소중했던 당신을
난 살아 갈 수 없어요
내 인생의 중심 없이는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없어요
죽어 가는 내 모습을
숨길 수 없어요
당신이 나를 떠난다면
If I never feel you in my arms again
If I never feel your tender kiss again
If I never hear I love you now and then
Will I never make love to you on-ce again
Please understand if love ends
Then I promise you, I promise you
That, that I shall never breathe again
Breathe again
Breathe again
That I shall never breathe again
Breathe again
당신을 다시 내 품에 안을 수 없다면,
부드러운 키스를 다시 느낄 수 없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면,
당신과 다시는 사랑을 나눌 수
없을 거라면 이해해 주세요
사랑이 끝나 버리면
난 약속해요, 약속해요
다시는 숨도 쉬지 않을 거라고
숨쉬지 않겠어요
숨쉬지 않겠어요
다시는 숨도 쉬지 않겠어요
숨쉬지 않겠어요
And I can't stop thinkin' about
About the way my life would be
No I can't stop thinkin' about
How could your love be leavin' me
And I can't get you outta my mind
God knows how hard I tried
And if you walk right out my life
God knows I'd surely die
And I can't stop doin' without
Without the rythm of my heart
No I can't stop doin' without
For I would surely fall apart
And I can't get you outta my mind
Cause I know I can't deny it
And I would die if you decide
You won't see me again
그리고 난 떨쳐 버릴 수가 없어요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떨쳐 버릴 수가 없어요
어떻게 당신의 사랑이 떠나 버렸는지
마음속에서 지워 버릴 수가 없어요
난 정말 노력했어요
당신이 떠난다면
난 죽어 버리고 말 거에요
난 살아갈 수 없어요
내 마음의 리듬이 없이는
난 살아갈 수 없어요
난 무너지고 말 거에요
마음속에서 지워 버릴 수가 없어요
부인할 수 없어요
난 죽어 버릴 거라는 걸
당신이 떠난다면
If I never feel you in my arms again
If I never feel your tender kiss again
If I never hear I love you now and then
Will I never make love to you on-ce again
Please understand if love ends
Then I promise you, I promise you
당신을 다시 내 품에 안을 수 없다면,
부드러운 키스를 다시 느낄 수 없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면,
당신과 다시는 사랑을 나눌 수
없을 거라면 이해해 주세요
사랑이 끝나 버리면
난 약속해요, 약속해요
That, that I shall never breathe again
Breathe again
Breathe again
That I shall never breathe again
Breathe again
다시는, 다시는 숨도 쉬지 않을 거에요
숨쉬지 않아요
숨쉬지 않아요
다시는 숨도 쉬지 않을 거에요
숨쉬지 않아요
Toni Braxton
토니 브랙스턴은 미국 메릴랜드주 세븐이라는 곳에서 출생했다.
목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 부터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다.
그 후 자신의 동생들과 The Braxtons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했지만 네 명의 동생들의 학업 때문에
그룹을 해체하게 되었다.
음악의 열정을 버리지 않았던 그녀가 드디어 '89년 프로듀서이자 송 라이터인 빌 페트웨이를 만나 음악계에 입문했고, '90년에는 아리스타 레코드사에서 싱글 The good life를 발표, 좋은 반응을 얻어 드디어 '91년 초에는 안토니오 LA
리드와 베이비 페이스가 만든 라페이스(LAFace) 레이블과 계약을 맺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의 토니 브랙스턴이 탄생하게 된계기랄까.
1968년 10월 7일 메릴랜드(Maryland) 세번(Severn)의 감리교 목사 마이클 브랙스턴(Michael Braxton)의 1남
4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난 토니 브랙스턴.
그러나 감리교라는 교파가 애초 methodist라는 어원을 가질 정도로 엄격한 원리 주의에 입각한 교파였던 고로 그녀의 집안에서 '세속적인' 대중 음악이 청취되는 일은 절대 불가한 것이었다.
여자는 바지만 입어야 하고 샌들도 신어서는 안되고 화장도 일체 금기되었던 가풍 속에서 자랐으니 그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닌가?
하지만 아버지가 심방을 위해 집을 비울 때면 브랙스턴 가는 여지없는 악의 굴혈(掘穴)이 되었다. 큰오빠 마이클
(Michael)은 피아노를 연주했고 토니는 그 곁에 기대서서 애시포드 앤 심슨(Ashford & Simpson)의 히트곡을
열창하곤 했다.
6살 터울인 토완다(Towanda)와 5살 아래인 세째 트리나(Trina) 그리고 10살 어린 막내 테이마르(Tamar)는
화음을 입히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뜻을 거스른 현명한 어머니 에벌린(Everlyn)이 있었다.
처녀 시절 아마추어 오페라 가수로 활동했고 역시나 모타운(Motown) 소울 음악에 심취해 있었던 탓이다.
다이애나로스(Diana Ross),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의 LP들이
어머니의암묵적인 찬성 내지는 동의 하에 집 안으로 밀 반입되기 시작했다.
큰오빠야 워낙 아버지를 닮아 노래 실력이 일천했다 쳐도 나머지 네 여인은 종교의 이름과 가부장의 권위에 눌려 억압, 구속당하는 자신들의 천부적인 재능에 안타까움 금할 길이 없었음은 익히 짐작이 가능하리라.
전략의 수정이 필요했다.
일단 이들의 재능을 살릴 수 있으려면 그만한 노력을 투자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기에 말이다.
이들은 결국 아버지와 회중을 속이기로 했다. 매 주일 예배 때마다 네 자매가 함께 특송을 하겠노라 자원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했고 토요일 오전 시간이 연습 시간으로 허용되었다.
어머니는 일단 지신의 소시적 테크닉들을 딸들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어려서부터 가스펠 합창단에서 활동해 이제 물이 오르기 시작한 토니의 보컬 능력은 정말 각별했다.
교회 신도들조차도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는 걸음에 목사님께 이들의 가수 데뷔를 권유할 정도였단다.
어느덧 성인이 되고 보위(Bowie) 주립 대학에 입학해 교육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토니가 일단 제일 먼저 '독립 선언'을 감행했다.
토니는 동생들과 함께 브랙스턴스(The Braxtons)라는 여성 4인조 보컬 그룹을 결성했다.
아버지는 순수 가스펠 음악만 한다면 허락하겠노라 일단 10% 정도만 양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세상에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던가! 아버지의 한숨과 어머니의 미소 속에 이들은 1990년 (아리스타
(Arista)) 레이블과 레코딩 계약을 맺게 된다.
CCM 분위기 물씬 배어 나 그다지 세속적이지도 않았던 데뷔 싱글 The good life를 발표했다. 1991년에는 일단
토니만 (LaFace) 레이블과 계약을 채결했다.
싱글 The good life가 비록 빌보드 R&B 차트에 아주 잠깐 등장해 바닥을 기다가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클럽 등지에서의 라이브 무대를 통해 점차로 지역 스타로써의 입지를 굳혀 간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토니에게 (LaFace) 레이블의 쌍두마차인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엘 에이 리드(L.A. Reid)부터의 전언(傳言)이 있었다.
스튜디오로 찾아와 보란 것이다. 그곳에서는 에디 머피(Eddie Murphy) 주연의 영화 (부메랑(Boomerang))의
사운드트랙 앨범에 삽입될 곡들이 한창 녹음 중에 있었다.
싱글 앨범을 발표할 당시부터 브랙스턴스의 리더격인 토니의 각별한 재능을 눈여겨봤던 베이비페이스는 늘 그녀를
띄워 볼 기회를 엿보던 친구다.
마침 하늘도 그녀를 도왔다.
베이비페이스와 듀엣으로 Give u my heart를 부르기로 약조했던 아니타 베이커(Anita Baker)가 임신 중임을 이유로 들어 약속된 스케줄을 펑크냈기 때문이다.
토니는 그의 피처링 파트너로 참여했고 후에 싱글 커트된 이 곡은 빌보드 차트 29위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내친 김에 아예 혼자 부른 Love shoulda brought you home까지 덩달아 히트해 싱글 차트 33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BOOMERANG의 앨범의 재킷 사진 하단에는 이미 Introducing Toni Braxton 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베이비페이스는 이미 그녀가 성공할 것을, 그의 안목이 틀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면밀 주도한 사람!
합격점 이상을 받은 셈이다.
한편 토니가 빠진 브랙스턴스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막내 테이마르를 리드 보컬로 삼아 활동을 계속했고 1996년에는 (애틀랜타(Atlanta))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데뷔
앨범 SO MANY WAYS를 발표해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가 선사한 동명 타이틀 트랙을 히트시키기도 했다. 테이마르는 막 솔로 가수로 독립해 데뷔했다.
2000년 05월 GMV 양중석
1993년 토니는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TONI BRAXTON을 내 놓으며 팝 신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실력에 걸맞은 든든한 후원을 업은 채로. 데뷔 앨범 가운데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국내에도 그녀의 존재를 알리게 된 계기가 된 곡이 Breathe again이다.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때는 아직 지금과 같은 디바(diva) 열풍이 불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각 소속사의 자존심 마저 걸고 고음(高音)의 디바 싸움을 펼치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굵직한 중저음 톤의 목소리만으로 듣는 이를 휘어잡는 이 섹시한 여가수를 두고도 디바라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앨범은 이래저래 총 5곡의 골드 싱글 히트곡을 내며 롱런 히트했다.
BOOMERANG의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히트한 두 곡이 데뷔 앨범에도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었던 덕이기도 하다.
같은 해 겨울 베이비페이스는 자신(LaFace) 사단이 제작한 크리스마스 앨범 LAFACE CARTEL에 토니를 기용했다.
3분 35초 짜리 캐롤 The Christmas song을 불렀다. 그녀는 그래미(Grammy) 심사 위원단에게서마저 사랑 받았다. 1994년 2월에 열린 제 36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Another sad love song으로 최우수 신인상과 최우수 R&B 여성
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 열린 제37회 시상식에선 Breath again으로 최우수 여성 R&B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 앨범은 Hot 200 앨범 차트와 R&B 앨범 차트에서 모두 공히 정상을 차지했고 전 세계적으로 천만 장 이상의
지속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Another sad love song, You mean the world to me는 모두 R&B와 팝 차트에서 5위, 10위권 내에 랭크되었고
그녀를 지지한 것은 일반 팝 대중들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토니의 2집을 벌써부터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각각 2개씩 해서 총 4개의 아메리칸 뮤직 시상식 및 소울 트레인 시상식 트로피마저 그녀의 몫이 되었다.
1993년 토니는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TONI BRAXTON을 내 놓으며 팝 신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실력에 걸맞은 든든한 후원을 업은 채로. 데뷔 앨범 가운데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국내에도 그녀의 존재를 알리게 된 계기가 된 곡이 Breathe again이다.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때는 아직 지금과 같은 디바(diva) 열풍이 불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각 소속사의 자존심 마저 걸고 고음(高音)의 디바 싸움을 펼치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굵직한 중저음 톤의 목소리만으로 듣는 이를 휘어잡는 이 섹시한 여가수를 두고도 디바라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앨범은 이래저래 총 5곡의 골드 싱글 히트곡을 내며 롱런 히트했다. BOOMERANG의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히트한
두 곡이 데뷔 앨범에도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었던 덕이기도 하다.
같은 해 겨울 베이비페이스는 자신의 (LaFace) 사단이 제작한 크리스마스 앨범 LAFACE CARTEL에 토니를
기용했다.
3분 35초 짜리 캐롤 The Christmas song을 불렀다. 그녀는 그래미(Grammy) 심사 위원단에게서마저 사랑 받았다. 1994년 2월에 열린 제 36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Another sad love song으로 최우수 신인상과 최우수 R&B 여성
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 열린 제37회 시상식에선 Breath again으로 최우수 여성 R&B 아티스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
앨범은 Hot 200 앨범 차트와 R&B 앨범 차트에서 모두 공히 정상을 차지했고 전 세계적으로 천만 장 이상의 지속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Another sad love song, You mean the world to me는 모두 R&B와 팝 차트에서 5위, 10위권 내에 랭크되었고
그녀를 지지한 것은 일반 팝 대중들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토니의 2집을 벌써부터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각각 2개씩 해서 총 4개의 아메리칸 뮤직 시상식 및 소울 트레인 시상식 트로피마저 그녀의 몫이 되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애초 녹음 계약 체결시 맺어진 불공정한 계약 조건들로 인해 토니는 그간 벌어들인 수익금 가운데 그녀의 지분으로 돌아올 몫 이상의 거액인 1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하는 법적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그 결과 토니는 1998년 1월 30일 LA 법정에 파산 선고를 하면서 스스로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
어릴 적에 아버지 탓에 보지 못했던 수많은 디즈니 만화 영화들과 영화, 연극에 대한 미련과 욕심은 여전했고
이 시기를 통해 그녀의 소망들이 현실로 이뤄졌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에 주연으로 출연케 된 것이다.
오랫동안 쉬었던 성대에도 다시 윤활유가 뿌려졌다. 후에 녹음 작업을 다시 재개했을 때 스튜디오 동료들은 놀랐다.
뮤지컬 스타일의 파워풀한 가창이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초 그녀와 (LaFace)간의 불미스러웠던 돈 문제는 청산이 되었다.
예정보다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토니의 4년만의 컴백은 지난번 보다 더 화려하고 치명적일 것임을 사람들은 다 느끼고 있었다. 1
월 말 있었던 제 34회 미국 슈퍼보울 개막 축하 공연 무대에서 토니는 애틀랜타(Atlanta)를, 아니 미국을 뒤흔들어
보이는 컴백 예고 무대를 가졌다.
4월 25일 전 세계에 발매된 앨범 THE HEAT는 일단 토니의 음악적 코드와 소스가 좀 더 다변화되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브랜디(Brandy)와 모
니카(Monica)의 듀엣곡 The boy Is mine 이후로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의
If you had my love,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의 Say my name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넘버원 히트곡과 그에 준하는 히트 넘버들을 보유하고 있는 젊은 작곡가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와 손을 잡았다.
그간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 휘트니 휴스턴과 작업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그리고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신작에도 참여한 이 히트 보증 수표가
그녀의 재기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첫 싱글 He wasn't man enough가 바로 로드니의 곡이다.
3월 18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에 68위로 데뷔했고 에어플레이만으로 6주만에 24위까지 무난하게 오르더니 4월 28일 자 차트에서는 싱글 발매에 힘입어 순위가 껑충 뛰었다. 현재 3위에 올라 있고 이런 추세면 1위 자리 등극도 우스울 듯.
토니에게도 이 제휴가 남달랐던가?
곡의 인트로에서부터 'Dark child' 라 일갈을 더해 줬다. 이 곡은 워낙 로드니 풍이기도 하지만 그간의 그의 작품과
견주어 보건대 약간 더 스피디하다.
연주는 간결하고 특유의 업템포 리듬 트랙도 토니의 매력적인 저음이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한 발자국 물러나 죽어 있다. 저음 코러스와 고음 코러스를 따로 녹음 해 흡사 게스트 보컬리스트 내지는 백 보컬 세션이 첨가된 듯 보이도록 만든
아이디어도 칭찬해 줄까?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출신으로 What kind of man would I be 등을 히트시켰던 6인조 R&B 남성 그룹
민트 컨디션(Mint Condtion) 멤버인 케리 루이스(Keri Lewis)와 토니가 공동으로 작곡한 The heat는 리듬 트랙과 호흡을 같이 해 짧게 끊어 연주하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간지럽다.
아이스크림을 준비해 둬야겠다.
Un-break my heart의 연장선상에서 국내 팬들에게도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Spanish guitar는
아니나 다를까 다이앤 워렌의 작품이다.
애잔한 멜로디 전개와 라틴 풍의 스패니시 기타 연주 그리고 중간에 삽입된 스페인어 내레이션과 코러스까지 정말
일품이다.
페이드 아웃(fade out) 부분에서 약간의 파격을 시도해 단순히 뱀프 코다(vamp coda)와 프레이징(phrasing)으로 끝내지 않고 새로운 버스(verse)를 끼워 넣는 색다른 맛을 가미했다. 닥터 드레(Dr. Dre)가 게스트 래퍼로 참여한
슬로 힙 합 발라드 트랙 Just be a man about it과 TLC의 레프트 아이(Left Eye)가 함께 한 베이비페이스작의
업 템포 힙 합 넘버 Gimme some은 토니의 변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다음 번 앨범에선 토니가 직접 래핑을 구사할 지도?
다이앤 워렌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토니를 위해 그리고 이 지구상의 박해받는 여성을 위해 가사를 썼다고 하는 소프트 발라드 I'm still breathing 역시 토니로서는 남다른 감회의 트랙일 것이다. '나는 산산조각 나지 않았어. 이렇게 여전히 숨쉬고 있다니까'라고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보다 미니멀(minimal), 어쿠스틱해진 사운드 조성을 즐기는 최근 베이비페이스의 작풍을 느껴보기에 충분한
발라드 트랙 Fairy tale이 꿈결 끝자락처럼 흘러 가버리고 나면 뭔가에 취한 듯 관능미가 전율로 다가오는
The art of love가 이어진다. 저 멀리서 토니가 미소짓고 있다.
토니 브랙스턴이 직접 작곡에까지 손을 댄 Speaking in tongues는 나른한 봄날 오후 같다.
Maybe는 그 단잠을 깨우기에 충분한 트랙. 흑인들의 천부적인 리듬 감각에 대해 칭찬을 해야 하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히다.
보컬 어레인지에서도 리듬감이 퉁겨져 나온다. 토니네 막내 테이마르가 백 보컬로 참여했고 스타일리스틱스
(The Stylistics)의 고전 Stop, look, listen(to your heart)의 일부가 새로 녹음되어 수록된 You've been wrong에 이어 앨범을 마무리짓는 트랙이 바로 대릴 시몬스 특유의 팝 감각이 묻어나는 Never just for a ring이다.
육하 원칙에 의거해 이 앨범을 구입해야만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주고 있는 듯 들리는 것은 왜인지?
1968년 10월 7일 태어난 토니 브랙스턴은 1993년에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Toni Braxton 을 내놓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1994년 2월에 열린 제 36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Another Sad Love Song으로 최우수 신인상과 최우수 R&B
여성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고이듬해 열린 제37회 시상식에선 Breath Again 으로최우수 여성 R&B 아티스트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천만 장 이상의 지속적인 판매고를 기록한 대단한 아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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