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S. Bach
Concerto brandebourgeois No.5 in D Major, BWV 1050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은 여섯곡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중 가장 규모가 크고 또한 화려한 작품이다.
이것은 쳄발로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쳄발로 성부에 상당히 비중을 두고 있는 관계이겠으나 쳄발로의 기다란 카덴차까지 가지고 있어서 다분히 쳄발로의 협주곡 같은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이 제5번은 바흐가 1720년 베를린에서 새로이 도착한 쳄발로의 훌륭한 성능에 자극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시대의 쳄발로는 대부분 저음과 화음을 연주하는 보조악기로 사용한 정도에 그쳤으나 이 곡에서는 전체를 주도하는
독주악기로 사용하고있다.
즉, 쳄발로와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콘체르티노, 다시 말해서 독주부로 하고 이에 대항해서 현악 합주가 콘체르토 그로소로서 들어와있다.
물론 전체적인 곡취는 바로크적인 합주 형태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악기 편성은 독주부가 플루트, 바이올린,
쳄발로, 합주부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비올로네로 되어있다.
Schola Cantorum Basiliensis
August Wenzinger, 1905-1996 (cello, vilola)
Bach, Johann Sebastian (1685-1750 G.)
의 브란덴부르그 협주곡 제5번 D 장조 BWV 1050
Brandenburg Concerto No.5 in D major, BWV 1050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하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습니다.
아이제나하 태생인 바하는 지금까지 그의 가문의 풍습에 따라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0세에 부모를 잃은 그는 오르가니스트인 그의 형의 집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어라는 악기를 배웠습니다.
그는 마침내 명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며 18세기까지의 음악의 모든 경향을 한데 모아 비약적인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베토벤.바그너 등에게 독일 음악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활약한 시기는 바이마르 궁정의 약 10년 간이며 쾨텐 궁정 악장으로서 실내악과 오케스트라곡,독주곡 등을 많이
썼습니다.
다음은 1729년부터 27년간의 라이프치히 시대입니다.
창작에 있어서 활발한 시대였습니다.
칸타다, 오라토리오, 파시온 등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의 독실한 신자였는데, 음악으로서 신에게 봉사하는 데에 그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의 대위법의 작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여기에 화성적인 수법을 가미시켰습니다.
말하자면 화성적인 복음악(福音樂)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토벤은 그를 가르켜 화성의 아버지라고 까지 말한 바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서는 대 미사곡, 마태 수난곡, 토카타 d단조 오르간곡, 기악 독죽곡, 중주곡, 합주곡 등 여러 방면에 많은
작품을 작곡 하였습니다.

Brandenburg Concerto No.5 in D major, BWV 1050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은 여섯곡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중 가장 규모가 크고 또한 화려한 작품입니다.
이것은 쳄발로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쳄발로 성부에 상당히 비중을 두고 있는 관계이겠으나 쳄발로의 기다란 카덴차까지 가지고 있어서 다분히 쳄발로의 협주곡 같은 느낌을 줍니다.
따라서 이 "제5번"은 바흐가 1720년 베를린에서 새로이 도착한 쳄발로의 훌륭한 성능에 자극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이 시대의 쳄발로는 대부분 저음과 화음을 연주하는 보조 악기로 사용한 정도에 그쳤으나 이 곡에서는 전체를 주도하는 독주 악기로 사용하고있습니다.
즉, 쳄발로와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콘체르티노, 다시 말해서 독주부로 하고 이에 대항해서 현악 합주가 콘체르토 그로소로서 들어와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곡취는 바로크적인 합주 형태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악기 편성은 독주부가 플루트, 바이올린, 쳄발로, 합주부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비올로네로 되어있습니다.
플루트, 바이올린, 각 1개와 쳄발로를 독주부에 넣었습니다.
보조적인 합주군은 현악 5부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쳄발로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가운데서 가장 늦게 작곡된 것으로 여겨지는 곡입니다.
전곡중 가장 내용적으로 충실하면서 규모도 제일 큽니다.
특히 제1악장에서 유난히 화려하게 연주되는 쳄발로의 독주는 통주저음으로 사용되면서도 한편으론 완전히 쳄발로
협주곡 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다분히 바로크적인 곡으로서 매우 장대하고 화려합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 6곡 가운데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높은 곡이 바로 제 5번 D장조입니다.
1 Allegro
2 Affetuoso
3 Allegro
만년의 바흐(작자 불명. Musikbibliothek Peters,
Leipzig.)
아이제나하 태생인 독일의 작곡가. 바흐 집안은 수대에 걸치는 음악 가족으로, 부친 암브로지우스도 음악가였다.
10세 때 양친을 잃고, 오르두르프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있던 형이며, 오르간의 명수이던 파헬벨의 제자이던
요한 크리스토프에게로 가서 음악을 배웠다.
1700년에 뤼네부르크의 학교에서 소년 소프라노 가수로 있을때, 쉬쯔의 제자인 뢰베와 라인켄의 제자 뵘의
두 오르가니스트를 알게 되어, 뵘으로부터 북독일과 프랑스의 오르간 음악 양식을 배웠다.
가극의 중심지인 함부르크에 걸어가서 직접 라인켄의 가르침을 받거나, 쩰레 궁정을 방문하여
프랑스 양식의 관현악을 접하기도 했다.
1703~07년에 아른시타트의 성 보니파치우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있었는데, 이 사이에 대작곡가 북스테후데의
가르침을 받기위해 뤼벡을 여행했다.
1707년에 뮐하우젠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나, 그 자신은 루터적인 프로테스탄트의 정통파여서 다른 파의 교회
목사 때문에 괴로움을 받기도 했다.
1708년에 바이마르의 궁정 오르가니스트의 자리로 옮기고, 1714년에는 궁정 악장이 되었다.
이 궁정에서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새로운 세속적인 음악이 환영받고 있어서, 그는 특히 이탈리아의 협주 양식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 이 무렵에는 오르가니스트로서의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다.
1717년에는 쾨텐의 궁정에서 악장을 지냈다.
바이마르에서는 주로 오르간곡이 작곡되었듯이, 쾨텐에서는 클라비어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등이 작곡되었다. 1720년에는 첫번 아내인 마리아 바르바라를 잃었지만, 이듬해에는 안나 막달레나를 아내로 맞이했다.
1723년에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학교의 합창장으로 취임한 후부터 그의 라이프찌히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합창장은 학교에서 음악과 라틴어를 가르치며, 교회 성가대를 훈련시키고, 거기다 교회의 예배를 위해 필요한
음악인 칸타타, 수난곡 등을 작곡해야 할 직무가 주어져 있었다.
눈병으로 타계하기까지 27년간을 이 직위에 머물면서, 그는 무수한 명곡을 남겼다.
이곳에서 바흐는 300곡의 칸타타를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 100곡 정도는 악보가 분실 되었다.
쾨텐에서 쓰기 시작한 성 《요한 수난곡》은 1723년에, 보다 유명한 《마태 수난곡》은 1729년에 완성되었고,
라틴어 전례 음악인 《마니피카트》는 1723년에 작곡되었다.
1733년에는 드레스덴의 아우구스트 선거후의 궁정 작곡가가 되려고 미사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전체가 완성된 것은
1738년으로, 이 곡은 그의 신비 사상적인 으뜸가는 걸작이 되었다. 그 뒤 명작을 잇달아 쓰고, 《푸가의 기법》을
마지막으로 65세의 생애를 라이프찌히에서 마쳤다.
바흐는 헨델과 함께 바로크 음악의 최후를 장식하여, 음악사상 최대의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바흐는 중세 이래로 발전해 가고 있던 폴리포니 음악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푸가는 폴리포니의 최고의 걸작이며, 푸가 이외의 음악도 대개 폴리포니적이어서, 그의 동시대자인 헨델의
이탈리아풍으로 투명하고 간결한 양식에 비하면, 한층 북방적으로 복잡하고, 대위법적이며 깊은 정신에 넘쳐 있다.
그러나 바흐의 음악, 특히 협주곡, 오르간 소나타는 그의 정신적인 파헬벨, 북스테후데, 뵘 등에서 본다면, 훨씬
진보적이고 화성적이다.
베토벤이 바흐를 평하여 ‘화성의 아버지’라고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의미로 바흐는 단순히 전통적인 폴리포니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 행해졌던
새로운 화성도 충분히 채용하여, 그 전대 미문의 표현력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전 작품은 1,080곡에 이르며,
어느 작품이나 최고의 완성도를 보이고있다.
[주요 작품] 200곡 이상의 칸타타, 수난곡 《성 요한》(1723), 《성 마태》(1729), 미사 《B단조》(1749경),
《마니피카트 D장조》(1723), 오르간 코랄 다수, 클라비어곡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1719경),
《프랑스 모음곡》(1722경), 《인벤션》(1720~23),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1722) 제2권(1744),
《영국 모음곡》(1722), 《골드베르크 변주곡》(1742), 실내악곡 《음악의 헌정》(1747), 《푸가의 기법》(1750),
협주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곡(1718~21), 《2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1718경),
관현악곡 《모음곡》 4곡(1718~36) 등.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 (아버지)
(Johann Ambrosius Bach 1645~1695)
유화. Deutsche Staatsbibliothek, Berlin
바흐의 아버지
16세기 무렵부터 중앙 독일의 튀링겐 지방에는 바흐 집안 출신의 음악가가 대단히 많았다.
그 대부분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궁정이나 관공서에 근무하는 음악가였다.
약 300년 동안의 5~6대에 걸쳐 바흐의 이름을 가진 음악가가 60명 가까이나 있었다고 한다.
대(大)바흐인 요한 제바스티안의 아버지 요한 암브로지우스는 1645년에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요한 크리스토프와 쌍둥이로서, 이 두 사람은 얼굴 생김새나 몸매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꼭 닮았기 때문에 그들의 아내조차도 옷으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제바스티안은 이 아버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r, Sebastian Bach]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 9. 10., 한국사전연구사)

' CLASSIC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Brahms-Eb Major, Op.49-4 Wiegenlied 'Lullaby' (0) | 2016.07.28 |
|---|---|
| Brahms - Clarinet Quintet B minor Op.115 (0) | 2016.07.28 |
| Brahms,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0) | 2016.07.28 |
| Beethoven, Piano Trio No.7 in B flat major Op.97 'Archduke' (0) | 2016.07.27 |
| Vivaldi-L'estro Armonico Op.3, No.5 RV 519 A minor I Musici (0) | 2016.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