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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Verdi 오페라 나부코 中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Nabucco, Va.Pensiero
Giuseppe Verdi 1813-1901

 

 

 

 

 

 

 

 

 

Va, pensiero, sull'ali dorate
va, ti posa sui clivi, sui colli
ove olezzano tepide e molli
l'aure dolci del suolo natal!
Del Giordano le rive saluta,
di Sionne le torri atterrate.
Oh, mia patria sì bella e perduta!
Oh, membranza sì cara e fatal!

Arpa d'or dei fatidici vati,
perché muta dal salice pendi?
Le memorie nel petto raccendi,
ci favella del tempo che fu!
O simile di Solima ai fati
traggi un suono di crudo lamento,
o t'ispiri il Signore un concento

 

 

 

 금빛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내 상념

 

이여 가거라,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

 

이 불고 향기에 찬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날아가 쉬어라!


요르단의 큰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참배를 하라...


오, 사랑하는 빼앗긴 조국이여!


오, 절망에 찬 소중한 추억이여!

예언자의 금빛 하프여,


그대는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우리 가슴속의 기억에 다시 불을 붙이고,


지나간 시절을 이야기해다오.


예루살렘의 잔인한 운명처럼


쓰라린 비탄의 시를 노래 부르자.


참을 힘을 주는 노래로


너에게 용기를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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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이 음악은 베르디의 4막 오페라 "나부코(느부갓네살)" 중 제3막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 포로에서의 히브리 민족의 종교적 탄압에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애국적인 주제를 표현한 곡이다.

 

특히 시편 137편은 그 때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던 히브리 민족의 애환을 잘 묘사하고 있는 시편이며, 다니엘서는

 이것에 대한 역사적

실을 기술한 것이다.

"노예들의 합창"은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 밑에 있던 이탈리아 국들에게 감동을 줌과 동시에 조국의 독립 염원을 위해 시사하는 가 컸다.

 

오랜 분열과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벗어나 통일된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조국애를 일깨우고 강한 활력을 불어 넣은 곡이다.

 

1842년 이 작품이 초연될 당시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작품 속 줄거리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국민의 애국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 때에 거의 이태리국가처럼 불렸고. 베르디의 장례식에 불린 노래이기도 하다.

일종의 이태리 "국민찬가"이다.

 

 

 

 

 

 

 

자유와 긍휼을 갈망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中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Je chante avec toi liberte)

 

 

 

나부코는 주세페 베르디가 만든  4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다. 성서에 나오는 영웅 바빌론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이아기를 솔로라가 각색한 것으로,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아내의 사망과 오페라 '하루만의 왕'의 실패로 절망적인나날을 보내고 있던 베르디가 뒤에 결혼하게 되는 조세피나와

스칼라극장의 지배인 메레리의 격려속에 작곡한 이 오페라는 때마침 오스트리아의 압정하에 있었던 밀라노 사람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특히 3막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오늘날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베르디 자신이 " 이 오페라는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났다'라고 술회했듯이 이 작품의 성공으로
베르디의 이름은
전 유럽으로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베르디 [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현(縣)의 레론콜레에서 태어났다.

처음 마을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한테서 초보교육을 받고, 후에 부세트와 밀라노에서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하였다.

1836년 부세트시절의 보호자 바레치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하고, 학업을 마친 후 잠시 부세트의 음악동우회 악장을

역임하다가 1839년 밀라노에 나와, 스칼라극장의 지배인 메렐리의 후원으로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伯爵)

 오베르토》를상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후 곧 두 아이와 아내를 잃고 또 희가극 《왕국의 하루》(1840)의 상연마저 실패하여 극도로 우울한 나날을

보냈는데 이때 메렐리와 가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나중에 그와 결혼) 등의 격려로 용기를 얻어 다시 활발한

작곡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쓴 것이 오페라 《나부코》이다.

이 작품은 1842년에 상연되었는데, 그 내용이 애국적이어서 당시 오스트리아의 압제하에 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크게

 어필하였다.

그후에도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1843), 《에르나니》(1844), 《아틸라》(1846), 《레냐노의 전쟁》(1849) 등 애국심이 넘치는 많은 작품을 썼다.

이 밖에도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따 온 《맥베스》(1847), 실러의 《간계(好計)와 사랑》을 각색한 《루이자 밀러》

(1849) 등으로 새로운 극적 경지를 개척해 나갔다.

그후 베르디는 밀라노를 비롯하여 베네치아·로마·파리·카이로 등지에서 잇달아 오페라 초연을 가졌다.

 

《리골레토》(1851), 《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1853),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1853),

《시칠리아섬의 저녁 기도》(1855), 《시몬 보카네그라》(1857), 《가면무도회》(1859), 《운명의 힘》(1862),

《돈 카를로스》(1867), 《아이다》(1871), 《오텔로》(1887), 《팔스타프》(1893) 등은
모두가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걸작으로서 높이 평가되며 오늘날까지 상연되고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19세기 전반까지의 이탈리아오페라의 전통 위에 서서, 극과 음악의 통일적 표현에 유의하고 있으면서도, 독창의 가창성을 존중하고 또 중창의 충실화와 관현악을 연극에 참여시키는 문제 등에서 남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다.

베르디의 오페라가 주로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은 그의 오페라의 힘차고 당당한 극적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극적인 작품을 많이 썼던 말년에 《폴스타프》와 같은 희가극을 써낸 정력적인 창작력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오페라 이외의 작품으로는 《레퀴엠》, 현악사중주곡 등이 널리 알려졌다.

(지식백과참조)

 

 

 

 

베르디의 생가는 이 집안의 당시의 가난을 말하듯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사망한 밀라노의 으리으리한 집과 견주어 이 위인의 생애의 크나큰 비약에 감명이 깊다.

 레론콜레는 오늘날에도 교통이 불편한 빈촌으로, 이 집은 찾는 이도 없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오페라의 도시 밀라노는 베르디의 제2의 고향으로, 스칼라 극장에서는

 그의 《나부코》(1842), 《오텔로》(1887), 《팔스타프》(1893) 등이 초연되었다.

1778년 완성. 6층의 로지와 1층으로 좌석이 3,200석이나 있고 안에 오페라 박물관이 있다.

 

 

 

 

<산아가타의 저택 : 유유자적한 생황을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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