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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Placido Domingo& 홍혜경-그리운금강산

 

 

 

 

 

 

 

 

 

 

그리운 금강산

 

 

 Placido Domingo & 홍혜경

 

 

 

그리운 금강산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염원인 통일의 그날을  .

 지금부터 수년전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 공연 파일 입니다, 입장료가 50만원 가까이 했던 공연인걸로 기억합니다.

이곡을 들으면서 느낀것은 역시 대가 답다는 생각 뿐이였습니다... 내한공연을 앞두고 많은 연습을한흔적이 묻어 나는 곡이였습니다.

 

자세히 듣지 않으면 마치 우리나라 테너가 부른 곡으로 착각할 정도로우리말의 발음이 좋았습니다..함께 부른 소프라노 홍혜경님의 목소리를 사랑하게 되는 시간 되시길.

 

 

 

 

 

 

 

에스파냐의 테너 가수. 사르수엘라를 비롯해 이탈리아·프랑스·독일 오페라를 아우르는 다양한 레퍼토리와 극적

표현력 및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로 '오페라의 제왕' '음악계의 진정한 르네상스 맨'으로 불리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원어명  Placido Domingo
국적  에스파냐
활동분야  음악
출생지  에스파냐 마드리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내한 공연에, 도밍고와 함께 무대에 설 게스트와 프로그램이 최종 확정되었다.

 테너 김건우와 문세훈, 소프라노 강혜명과 박혜상, 지휘에 유진 콘, 연주는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도밍고가 젊은 성악가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 1993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하여 현재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콩쿠르인 '오페라리아 더 월드 오페라 콩쿠르'에서 김건우는 2016년 우승, 박혜상은 2015년 2위에 입상하여 도밍고와 연을

 맺은 바 있다.

 

도밍고는 이번 공연에 성악가로서, 지휘자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1부는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도밍고는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중에서 '그대는 내 명예를 더럽혔도다'로 공연 시작을 알릴 예정이며, 김건우와 함께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 테너와 바리톤의 이중창 '성스러운 사원 안에서', 테너 문세훈과는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우리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소프라노 박혜상과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창백한 빛이 내얼굴에 비치네'를 부를 예정이다. 2부에서는 도밍고는 지휘자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문세훈과 강혜명, 김건우의 주옥 같은 아리아를 지휘하며 후배 성악가들을 리드한다. 또한 '베사메무쵸',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중 'on the Street Where you live' 등 대중적인 레퍼토리는 물론 레하르의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의 '왈츠 듀엣'을 박혜상과 함께 부르는 등, 친숙한 작품들도 들려줄 예정이어서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도밍고는 2016년 기준 147개 배역과 4,000회 이상의 공연(레코딩 포함), 9번의 그래미상 수상 및 3번의 라틴

그래미상 수상, 케네디 센터 명예인, 프랑스 인이 아니면 받기 힘든 프랑스 레종 훈장, 영국 기사 작위, 미국 자유의

메달 수훈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로마에서 방영된 오페라 '토스카'는 117개국에서 10억 명의

 시청인구를 기록했다.

 

그는 1991년 처음 내한공연을 가졌으며, 지금까지 5번의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도밍고는 1957년 바리톤 가수로 데뷔하였고, 1961년 미국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로 출연 한 뒤

 50여 년간 테너로 활동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국립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등 전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에서 수십 년간 가장 멋지고 늠름하며 연기력 뛰어난 테너로 대활약을 펼쳐 왔다.

 

또한 오페라를 넘어 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했으며, 팝가수 존 덴버와 함께 최초로 성악과 팝이 만나는 곡인

'Perhaps Love'로 크로스오버 성악의 문을 열기도 하였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하여 전세계인에게 가장 친숙한 성악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쓰리테너' 콘서트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한 이 공연의 실황음반은 전세계

 1,2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를 기록하며 클래식 음반 중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고,

당시 공연 실황은 전세계 15억 관객에게 생중계 되었다.

 

올해 75세를 맞은 도밍고는 지난 2007년 영국의 한 인터뷰에서 테너에서 다시 바리톤으로 돌아간다는 깜짝 발표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새로운 앨범 'Encanto Del Mar - Mediterranean Songs'(Sony 뮤직) 를 발매하였으며, 최근까지도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격정적 아리아를 선사할 정도로 변치 않는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 런던, 밀라노, 발렌시아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며, 2016-2017 시즌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

'나부코'의 나부코역, '라 트라비아타'의 조르조 제르몽 역으로 출연을 앞두고 있다.

 

 

 

 

도밍고(Plácido Domingo)

 

 

현존하는 테너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가수
'Placido Domingo' (우리말로 ‘즐거운 일요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1941년 1월 21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모두 가수였다고 하며 그가 8세 때에 부모를 따라 멕시코로 이주했기 떄문에 멕시코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원래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으나, 16세 떄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었답니다.

처음엔 바리톤 가수로 데뷔했으나 1961년,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테너인 알프레드 역으로
출연하여 테너와 바리톤을 병행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국립오페라단, 뉴욕시티 오페라, 메트로폴리탄 등에서 활약하여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높여갔습니다.

 

그는 또한 밀라노의 라스칼라, 비엔나, 런던, 파리, 시카고,LA, 바르셀로나, 잘츠부르크 등의 세계 유명 오페라 극장에서
매년 정기적인 공연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는 어떤 테너보다 오페라의 많은 역할을 맡았으며 레퍼터리 또한 모짜르트,
베르디, 푸치니, 바그너 등 매우 광범위하게 소화하고 있는 가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9회의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101개의 오페라 작품을 레코딩했으며  <라트라비아트>  <오셀로>  <카르멘> 등
3편의 영화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또 지휘자로서 메트로폴리탄과  런던 코벤트가든, 비엔나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 주요극장 무대에서 오페라가 아닌 교향곡을 베르린 필이나 빈 필, 런던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등의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고 하니 역시

대단한 음악가입니다

 

 

그는 음악 행정가로서 현재 워싱턴 국립오페라단과 로스앤젤레스 오페라단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젊은 아티스트의 발굴 육성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자신이 지독한 노력파라고 합니다.
후진 양성을 위헤 매년 그가 진행하는 콩클이 세계의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는데 20만달러의 큰 상금과 아울러

수상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따르고 있어 젊은 아티스트의 성장과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케네디 센터 명예인, 프랑스인이 아니면 받기 힘든 프랑스 레죵훈장. 영국 기사 작위. 미국 자유의 메달 등을
받았으며최근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 고르바초프 상. 오페라 뉴스매거진 상 등을 받았습니다.

뉴스위크의 헤드라인에서 '오페라의 왕'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다루어지기도 하였으며,또 이탈리아의

comiere della sera 신문에서는 “음악의 진정한 르네상스인” 런던의 가디언지 로부터는 “한 마디로 오늘날 가장

위대한 오페라 가수”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저서로는 1983년 자서전 <나의 40년>이 있습니다.
영국 BBC의 Music Magazine이 16명의 저명한 오페라 평론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역사상 가장 유명한 테너'에
'도밍고'가 뽑혔으며 그가 성장한 멕시코 시티에는 높이 2m,  무게 300kg의 그의 동상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도밍고를 이렇게 위대한 인물로 만든 힘은 그의 천부적인 자질과 무관하진 않겠지만 그가 지독한 연습 벌레라는 점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연습하지 않으면 녹슨다."는 정신을 철저히 가지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성실한 노력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연습하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에스파냐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에스파냐의 민속오페라 사르수엘라 가수였으며 8세 때 부모를 따라 멕시코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멕시코시티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하다가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사르수엘라극단의 가수로서 활약하다가 1961년 멕시코시티 가극장에서 바리톤가수로 데뷔한 뒤 같은 해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테너인 알프레드 역으로 출연하여 얼마 동안 테너와 바리톤을 병행했다.

1962~1965년 이스라엘 국립오페라단에서 활약하다가 196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에서 프랑코 코렐리

(Franco Corelli)의 대역으로 무대에 올라 뛰어난 기량을 선보임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테너 가수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베르디·푸치니·베를리오즈의 오페라를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펼치며 전세계 오페라무대와 음반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지휘에도 관심을 가져 오페라와 교향악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지휘하는 빈국립가극장무대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출연하여 독일오페라로레퍼토리의 폭을 넓혀갔다.

 

1998년에는 가을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에서 《삼손과 데릴라》로 뉴욕 데뷔 30주년 기념공연을 가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개막공연을 17회 기록함으로써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르수엘라를 비롯해 이탈리아·프랑스·독일 오페라를 아우르는 다양한 레퍼토리와 극적 표현력 및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로서, '오페라의 제왕' '음악계의 진정한 르네상스맨'으로 불리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성악가로 평가된다.

 

가장 유명한 공연으로는 로린 마젤(Lorin Maazel)이 지휘하고 프랑스 국립가극장무대에서 공연한 비제의

《카르멘》이 꼽힌다.

1990년 로마월드컵 전야제 때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연한 '3 테너 콘서트'를 시작으로 2001년 한국공연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을 무대로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워싱턴오페라의 예술감독이자 로스앤젤레스오페라의 창립자 겸 예술감독을 지내고 있다.

1991년 처음 내한공연을 가졌으며, 1992년과 1995년·2001년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퍼온글; 완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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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경

 

1959년 서울에서 그녀는 태어났다.

어렸을때부터 합창단활동을한그녀는 재능을 두루 갖춘 합창단단원이였다

 

그녀는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바있다 .

그녀는 메트로 폴리탄 콩쿠르에서 1982년 우승했고 , 다음해에''미국을 대표하는'' 4인의 젊은 성악가로 선정되었다 .

1984년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 세르빌리아역으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데뷔하였고그이후 수백여 연주, 음악회,오페라, 등의 무대로 한국을 빛내고있는성악가이

 

2007년  노만 빈센트 필 재단로부터 상을  받은 그녀의소감을 물었을때= 이 상은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과 정신과

의사인 블랜튼씨가 만든 ‘블랜튼 필 재단’에서 주는 것인데사람의 정신이 깨끗해지려면 신앙과 의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매년 그런 활동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데 제가 어떻게 뽑혔는지는 모르겠어요(웃음).

지금까지 저는 커리어를 쌓기 위한 노력도 해왔지만 항상 좋은 크리스천이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크리스천은 좀 달라야 하잖아요.

 

사실 오페라 가수로 프리마돈나가 되고 디바가 되려면 기독교적인 것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감사하면서 생활하려고 했어요. 그것을 본 사람들이 저를 뽑은 것인지 모르겠어요.

라고말했다.

 

그녀는 신앙심이좋았다

신앙생활은 어머니 배에서부터 시작돼었다고한다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광주에 맨 처음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지은

양림교회의 장로님이셨고.그때부터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났으며 또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임신하셨을 때 계속 찬송을 부르셨다고한다. 어머니가 풍금을 치면서 교회에서 노래를 가르치셨던것과.

그로인해 찬송가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하셨다.

 

그녀에겐 13살짜리 어린아들이있고  아이를 기르면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열심히활동할수있는것은 아무래도 음악에

대한 홍혜경 선생님의 열정이 그 어느누구보다깊은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든다.

 

 

 

 

 

 

 

 


 

Three Tenors

일반적으로 Three Tenors 라고 하면 Luciano Pavarotti, Placido Domingo, 그리고 Jose Carreras를 말한다. Luciano Pavarotti 는 이태리출신이고, Placido Domingo와 Jose Carreras는 스페인 출신인데 Placido Domingo와 Jose Carreras 의 사이 있었던 아주 유명한 아래와 같은 일화가 있다. 스페인에 가지 않아도 ‘카타로니아’지역 사람들이스페인을 다스렸던 마드리드’지역으로부터의 자치권을 쟁취하려는 것

때문에 두 지역이 적대관계 있었던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마드리드지역 출신인 플라시도 도밍고와카타로니아 지역 사람인 호세 카레라스도 그렇게 되어,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카레라스와 도밍고는1984년에 앙숙이 되었다. 그들이 대단히 유명해지고 세계 여러 곳을 다니게 되면서,그들은 필요에 따라 서로가 오직 상대방이 초빙되지 않았을 때에만 나가기로 약정(約定)하였다. 1987년, 카레라스는 그의 라이벌 플라시도 도밍고 보다도더 받아드릴 수 없는 적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백혈병에 걸렸다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받고 놀랐던 것이다. 그의 백혈병과의 투쟁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그는 골수이식과 수혈 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매달 미국으로 가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는 다소 부유하였지만이러한 빈번한 여행과 치료에 드는 막대한 비용은 그의 재산을 고갈(枯渴)시키고 말았다. 그의 경제적 능력이 다 했을 때, 그는 마드리드에오직 백혈병 환자만을 위한 재단(財團)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레라스는 그 ‘Hermosa’재단의 후원에 감사하며 투병하고,다시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였다. 그는 다시 재기하였고, 그럴만한 형편이 되자 그 재단에가입하려고 하였다. 그는 재단의 정관(定款)을 읽고 나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그 재단의 설립자이며 기여자의 리더이고, 또한 이사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후에, 이 재단이 애당초 그의 치료를 돕고자 설립되었으며, 앙숙인 자기로부터의 도움을 창피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익명(匿名)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정점은마드리드에서의 만남으로, 도밍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카레라스는 도밍고의 연주회를 찾아가 그의 연주회를 중단시키고, 겸손하게 도밍고의 발 아래에 무릎 꿇고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도밍고는 그를 잡아 일으키고 꼭 껴안아, 그들의 위대한 우정의 시발(始發)을 확고히 하였다. 플리시도 도밍고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앙숙에게 이익을 주는 것뿐인 ‘Hermosa재단’을 그때에 설립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그는 대답하기를"다만 자기의 경쟁자인 다른 예술가를 도우려 한 것" 이라고 하였다. 그의 대답은 짤막하고 명확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애에 대한 실화(實話)이며, 하나의 본보기로서 또한 감화(感化)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테너 김건우가 며칠 전 멕시코에서 열린 제 24회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 콩쿠르에서 남성 성악가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도밍고와 여성부 1위를 차지한 프랑스 출신 소프라노 Elsa Dreisig)


이 날의 결선 상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는데지난해 2위 입상한 소프라노 박혜상이 초대 성악가로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http://www.medici.tv/#!/operalia-2016-final-round-opera-placido-domingo


김건우는 1시간 20분경, 그리고 2시간 10분쯤 나오는데 유려하고 호소력있는 미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면서

First Prize뿐만 아니라 Audience Prize까지 거머쥡니다.

( 대단한 김건우! )


매년 다른 도시에서 개최되는 이 대회가 올해 멕시코에서 열리다 보니안나 네트렙코 때문에 자주 보게 되는 롤란도

비야손이 떠오릅니다.

김건우가 비야손만큼이나 널리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작년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할 무렵의 김건우

 

 

 

 

 

 

 

 

 

편집 구성; 도토리 깍지